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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64화 (6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4화

15. Tamed-Dashed(1)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은데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먼저 대기실에 같이 있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저 지금 가도 되나요?”

그러자 스태프, 그러니까 우리 팀의 일일 매니저 역할을 해주시는 막내 작가님과 양복 남자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신분증과 휴대폰을 꺼내 들며 중얼중얼 대화를 일 분쯤 나누고는 재빠른 결론을 냈다.

“아, 넵! 알겠습니다!”

스태프가 높은 목소리로 외치며 나와 지상이에게 외출 허락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낯선 사람을 따라 복도를 지나가니 바삐 움직이는 스태프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도 별말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왜 따로 움직이는지 영문을 몰라서 어물어물 눈치만 보는 그 느낌이라고나 할까.

‘더 봐라. 이상한 상황 맞으니까.’

묘해 보일 거다. 앞서가는 사람은 엄격한 분위기에, 김지상 낯빛은 창백하고, 쫓아가는 나도 표정 관리를 하고 있으니까.

양복 남자는 우리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고 우리는 긴장하면서도 조용히 몰래 손짓과 입 모양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야, 야. 저 사람 얼굴 봐도 나는 누군지 모르겠거든.’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고정 스태프들은 내가 웬만하면 다 외우고, 공연을 위해 하루 이틀 고용되는 인력이라면 이런 옷차림일 리가 없다.

스태프와 의사소통이 된 것을 생각하면 외부인보다는……. 아예 높은 사람이지 않을까.

김지상에게 다이렉트로 협박을 꽂아 넣은 그놈이라든가 그 사주를 받은 깡패라든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는 길 기억해 둬.’

내가 지나온 복도와 앞 방향을 차례로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하자, 지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겁먹지 마. 다 기회야.’

나는 그 말도 덧붙였는데 이 의미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몇 분을 더 걸어갔다. 긴 복도를 구불구불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또 복도를 걸어 필요 이상으로 외진 곳으로.

양복 남자가 6층 복도 끝에 있는 회색 철문을 열었다.

두 가죽 소파가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휴게실처럼 생긴 공간.

한쪽 소파에는 갈색 정장 차림의 사람이 한 명 앉아 있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중년께의 마른 남자. 묘하게 인상이 사나운 남자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눈썹 위에는 작은 흉터가 나 있었다.

우리가 어정쩡하게 들어가서 서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왜 둘이야. 제대로 데려온 거 맞아?”

“한 명은 이미 끝났다고 합니다.”

양복 남자……. 아니, 둘 다 양복을 입었군. 그러니까 부하 직원 쪽이 진중한 투로 대답했다.

부하가 정체 모를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저 뒤로 멀찍이 떨어져 문가를 지켰다.

압박이 심한 분위기였지만, 머릿수만 따지면 2대2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의헌입니다. 부르셨다고요.”

“……아, 김지상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냅다 주먹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은 차분하게 대응해 보기로 했다.

먼저 성명을 대고 눈짓하자 지상이가 반 박자 늦게 내 말을 받았다.

“너희 거기 앉아.”

맞은편 소파에 바르게 앉아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이유로 부르신 건지, 혹시 들을 수 있을까요.”

“하~ 이거 그냥 애들이네.”

하지만 나의 물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자의 중얼거림은 대답이 아니었으므로.

이 사람은 겉으로는 젠틀해 보였지만, 말투는 어딘가 웃음이 섞여 능글능글했다.

“이런 애들은 굳이 손을 대는 것도 모양이 빠진다니까.”

“예?”

그는 내가 되물어도 무시하고, 나나 지상이가 아닌 우리 등 뒤에 서 있을 부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몇 시야.”

“일곱 시 십 분 전입니다.”

“다 끝나기까지는?”

“삼십 분쯤 남았다고 예상합니다.”

“그렇구나.”

여기서 말하는 ‘다 끝난다’는 것은……. 우리가 오늘의 경연 마지막 순서니까, 경연 녹화 마무리를 말하는 듯했다.

깡패 두목은 우리를 쏙 빼놓고 부하와 둘이서만 사이 좋게 대화하더니, 작게 헛기침하고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둘은 여기서 기다려. 넉넉하게 잡아서 한 시간 뒤에 올 테니까.”

“저희, 그러면 갇히나요?”

내가 대놓고 물었다.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따라 일어나면서.

키 때문에 상대를 내려다보게 된다. 싸가지 없어 보이는 구도는 유감이었지만, 지금은 기세를 이어가야 했다.

“경연 준비 다 하고, 방송도 녹화 중인데요……. 경연 끝날 때까지 감금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되면.”

“말씀 조심하시죠.”

“아니, 아니야. 그런 거지. 이해를 잘했네.”

부하 직원이 성큼 다가오다가 중간에 저지당했다.

예의를 갖추고 대화하기 위해 정성스레 말투와 몸가짐을 다듬으며 나는 다시금 청했다.

“누구신지, 그리고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런 건 스스로 깨달아야지, 우리 연습생들.”

아니, 이름 알려달라니까 알아서 깨달으라니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어이없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뇌내 태클을 걸어대서인지, 나보다 빨리 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방송에 계속 출연한다고 고집부려서…… 인 거죠?”

이제껏 내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지상이 입을 열었다.

김지상이 소파에서 일어서며 묻자 양복 아저씨가 밉살스럽게 피식 웃었다.

“동생이 더 똑똑하구나? 그래, 맞아.”

그는 짧은 대꾸와 함께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조용히 덧붙이기를.

“지금 보니까 아빠를 닮았네.”

철컥. 문이 닫히는 틈에 대고 내가 말했다.

“……저요?”

“형이겠냐고.”

“그런데 날 보고 말하시니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인데 나는 이목구비가 모두 친탁이다. 자주 듣는 소리에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그만.

당연하지만 가치 없는 소리에 반응 따위 없었고, 우리는 꼼짝없이 방송국 스튜디오 구석에 갇혔다.

‘상황 파악부터.’

목덜미를 주무르며 나는 제일 먼저 문의 잠금쇠를 확인했다. 밖에서 잠겨 문고리가 돌지 않았다.

대체 이 공간의 용도가 뭔데 문이 밖에서 잠기는 건지……. 이건 잘 모르겠다.

문은 아파트 현관문처럼 생겨서 중간에 손톱 크기의 외시경이 달려 있었다. 복도 끝 방이라 복도와 통하는 창문은 없다.

‘바깥 창문을 통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층 수가 높은 것은 둘째치고 우리 둘 다 입고 있는 게 무대 의상이라 모험하다가 더러워지거나 뭐가 망가지면 난감하다.

마지막으로 외시경을 통해 복도를 살펴보았더니, 문 앞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문은 잠금에 더해 주변에 굴러다니는 소품으로 추정되는 긴 막대로 앞을 막아 추가 조치를 했다. 이중 잠금이다.

‘진짜 갇혔군.’

그래서 지상이 아빠 친구인 양복 아저씨께서는 무슨 생각이실까.

‘현실적으로……. 무대에 우리가 안 서는 건 말이 안 돼.’

물론 지금 일어난 일도 현실성이 충분히 없다만.

무대가 끝난 뒤에 풀어주는 것은 그야말로 비상식적이고 무식한 짓이었다.

그들은 무대 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나는 이 점은 확신할 수 있었다.

‘사업이 장난도 아니고.’

우리를 여기 데려온 사람은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제작진, 정확히는 투자자나 제작 협력 담당으로 추정된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콕 집어 싫어하고 괴롭히는 까닭은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나도 알고 싶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표면적인 계기는 ‘자진 하차하라고 했는데 말 안 들어서 보복’이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금전 문제도 얽혀 있겠지.’

이렇게까지 심하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른 연습생 소속사와 유착이라든가, 몇억 대 규모의 ‘어둠의 순위 예측 도박판’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아무튼, 그런 건 여기서 안 중요해.’

중요한 것은 〈데프아〉의 주 수입원이 시청률이나 그로 인한 TV 광고, PPL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데프아〉 시청률은 3%대에 진입했다. 예능, 그것도 케이블 방송 심야 예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그러나 이 3%도 연간 드라마 히트작의 시청률과 비교하면 고작 오 분의 일, 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데프아〉가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라면…….’

이튜브와 플레이피 같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방송 영상이 수백 개나 백만, 천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니까.

특히 연습생들의 경연 무대 영상이.

이 동영상 조회 수야말로 〈데프아〉의 밥줄일 텐데, 굳이 나서서 무대 퀄리티를 낮추고 싶지는 않을 거다.

‘무대가 안 나오면 그쪽이 잃는 게 더 많을걸.’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따지면 안경 아저씨의 의도는 ‘방송 중에 무단 이탈 장면을 연출해서 표심 깎아 먹기’가 고작일 테다.

나중에 오겠다고 거짓말한 사유는 심리적으로 압박해 우리가 제 기량을 못 내게 하려고, 혹은 개인적으로 괘씸해서……. 정도 아닐까.

쉽게 말하자면 겁을 주는 거다.

‘이 일에 충격을 받아 자진 하차를 하면 좋고, 하차를 하지 않겠다면 마지막까지 악의적으로 편집하겠다’는 의미로.

‘그래도 다행이다.’

곤란하기는 해도 우리 둘 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심각한 폭언을 들은 것도 아니니까.

한국 느와르 영화 같은 장면을 상상하고 최악의 경우 어디 묶여서 맞는 것까지 각오했는데 이 수준이면 온건하다.

‘종합 요약하면 어쩌라고……. 싶은 기분이군.’

어쨌든 나는 알아낸 것을 지상이에게 대충 알려주며, 소파가 있는 곳에 돌아와 쿠션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김지상은 말을 다 듣고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형이야말로 왜 침착해? 우리 큰일 났는데.”

“그야 두고 봐야 알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무대 의상으로 입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내려놓았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까만색 기계. 두께가 얇고 부피감이 적은 직사각형이라, 리모콘이나 스위치처럼 생겼다.

기계 끄트머리에 달려 빨간 불빛을 내는 전구를 중앙 동그란 버튼을 눌러서 껐다.

“……뭔데, 이거?”

“내가 아까 말한 기회.”

그리고 측면의 버튼을 누르자 작지만 또렷한 음성이 그 기계에서부터 흘러나왔다.

- 방송에 계속 출연한다고 고집 부려서…… 인 거죠?

- 그래, 맞아.

멍하니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김지상을 두고 나는 다른 주머니에서 틴케이스를 하나 꺼냈다.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의 조그만 알루미늄 보관함. 내용물 때문에 손에서 굴리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야아! 제대로 설명해.”

“소리치는 싸가지 뭐지? 녹음이다.”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건데.”

“그냥 혹시 몰라서.”

그렇게 대꾸하며 나는 틴케이스에서 립스틱 크기의 플라스틱 원통을 꺼냈다.

그리고 붙어 있는 상표를 슬쩍 확인한 뒤 흥분한 김지상에게 건넸다.

“이건 또 뭐야.”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니까 너 써라.”

“아주 쇼핑을 즐겼구나……. 이런 일 없었으면 어쩔 뻔…….”

지상이가 스프레이 통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첫 협박 이후 준비할 시간을 그렇게 주었는데 손을 놓고 당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쩌면 나는 조금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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