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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62화 (62/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2화

14. 에너제틱(5)

웃고 싶지 않아도 지금 상황……. 내 주관적으로는 굉장히 시트콤 같다.

식당에 있는 다른 연습생들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수저를 들고 힐끔힐끔 이쪽을 훔쳐보고 있다.

그런데 초조하고 불안불안한 분위기가 아니라 다들 수저 움직이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것이, 그냥 싸움 구경을 지켜보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 안 싸울게.’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개과천선한 나는 마음에 다시 ‘착하게 살자’를 새겼다.

“그렇게 어려우면 형 이야기라도 해주세요.”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나는 주제를 바꿔보았다.

“뭐 좋아하고 뭐 싫어하는지 같은 거요. 어쩌다가 아이돌 연습생이 된 건지랑. MBTI? 뭐 그런 것도 괜찮으니까.”

“왜?”

“MBTI 재밌잖아요. 저는 ENFJ인가? 그,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그거래요.”

“그걸 물어본 게 아니야…….”

검사하면 ‘외향형’ 98퍼센트에 ‘감정형’ 91퍼센트라는 지극히 편향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TMI까지 쏟아주려고 했는데, MBTI 얘기는 그렇게 입구에서 잘렸다.

플라스틱 숟가락을 질겅거리며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알고 싶어 하는 이유라.

“글쎄요.”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정은 아닌 것 같은데.

“알면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대답했다.

* * *

한편 그 순간 류희재는 황당하다.

여태까지 행동거지를 보면 눈치가 없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이 거침없는 태도는 대체…….

그렇다고 해서 정의헌이 일부러 무례하게 심술을 부리는 것은 아닌 듯해서 더 대응이 어려웠다.

연기라면 천재고 이게 본성이라면 정신이 의심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신경이 무딜 수 있나?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살면서 본 사람 중 제일 막무가내에, 섬세하지도 못하고. 불쾌하다.

첫 촬영 때는 물론이고 합숙 도중 복도에서 마주친 것, 한밤중 펜션에서의 만남까지.

류희재에게는 정의헌에 관련해 좋은 기억이 전무했고, 그에게 정의헌은 천하의 무뢰배나 다름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무슨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도 알 수 없고, 수상하고,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

원래부터 호감 따위 없었지만, 이제는 없던 호감도마저도 마이너스 저 바닥을 향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스트레스받아…….’

자신은 먹지도 않은 밥알이 목구멍에 걸린 기분인데 태평한 얼굴만 봐도 울컥 열이 올라왔다.

몰이해에서부터 나오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진심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산짐승이나 귀신에게 쫓기는 느낌.

그래서. 그렇게까지 상극이었기 때문에(물론 정의헌은 상대를 딱히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류희재는 정의헌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되묻게 되었다.

알아내면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너부터 얘기해 봐.”

“아, 저부터요?”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이돌 된 이유. MBTI는 됐고.”

앞서 언급된 것과 똑같은 문항을 요구하자, 정의헌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요즘 좋아하는 거……. 인형 뽑기?”

상상도 못 했던 단어가 나왔다.

“……춤 같은 건?”

“그건 일이니까요. 경우가 좀 다르죠. 그래도 노래방은 좋아해요.”

류희재는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인형 뽑기가 최근 유행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 취미라는 사람은 처음 봤다.

정의헌은 집에 인형 귀여운 게 많으니 가져가라는 둥 너스레를 떨더니 두 번째 질문에도 답했다.

“싫어하는 건……. 성격 급해서 뭐 기다리는 거 잘 못해요. 광고 봐야 되는 거 있으면 다 결제해서 써요.”

이번에도 평범한……. 지나치게 평범해서 예측할 수 없던 대답이 들려왔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 할 건지 궁금해서 류희재는 이야기를 계속해 보라는 의미로 눈짓했다.

“그다음이 뭐였더라. 아이돌이 된 이유?”

“응.”

“대충 일곱 살부터 시작하는 서사랑 열일곱 살부터 시작하는 서사가 있는데요.”

“어릴 때 얘기부터 해봐.”

밝은 톤에 비해 차분한 목소리에 긴장도 풀려서, 류희재도 받아온 저녁을 늦게나마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정의헌이 말을 정리하는 동안 깨작깨작 쇠로 된 젓가락이 식판에 부딪혔다.

“흠……. 제가 동생이 둘 있거든요. 열아홉이랑 열여섯, 이렇게 두 명.”

“듣고 있어.”

“아, 저 올해 스물셋이에요. 네 살 차이, 일곱 살 차이. 둘 다 여동생.”

“네 나이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실제 정신 알맹이는 스물아홉 플러스 알파니 모르는 셈이다.

“그런데 그 막냇동생이 태어날 때 몸이 조금 안 좋았거든요.”

“…….”

“저도 의학적인 건 잘 모르지만……. 선천적으로 심장 근육인가 혈관인가, 기형이 살짝 복잡하게 있어 가지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밥 먹으며 들어도 되는 건지 류희재는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후유증도 없고 수술도 잘됐는데. 그때는 집이 비상 상황이었거든요. 부모님도 병원에 계시느라 집에 잘 못 들어오고, 애도 계속 병원 살면서 고생하고.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둘째랑 같이 있어야 될 일이 많았어요. 할머니나 이모나 고모나 친척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많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그것도 다 한계가 있잖아요.”

그는 불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불행하지 않을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옛날이야기를 알려주었다.

“아무튼 동생이랑 TV 보면서 따라 하고 놀고, 그러다가 춤에 재미를 붙인 거죠.”

인간관계가 좁은 류희재도 이게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는 것쯤은 머리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별개로 정의헌은 말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고, 이야기는 그 내용에 비해 담백하게 느껴졌다.

“그때 애니메이션 많이 봤으면 만화가가 되었을지도요~”

정의헌이 만화가로 큰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지만.

류희재는 그 가벼운 듯한 분위기에 몰입해 자연스럽게 다음 문항을 물어보게 되었다.

“열일곱 살부터 시작하는 건.”

“아. 열일곱부터 시작이 아니네요, 저 열일곱에 지금 회사 입사했으니까. 그보다 더 전이에요.”

데뷔 연도를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연습생 기간이 길었다. 금방 데뷔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류희재는 정의헌에 대한 인상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수정해 나가며 경청했다.

“원래 춤을 추려고 해서 학생 때부터 외부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댄서 말고 아이돌 되라는 추천을 자꾸 받아서요…….”

“아…….”

안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돌 권유를 받은 까닭이라면 류희재로서도 짐작이 가능했다.

우선은 얼굴이 되고……. 목소리도 괜찮고. 게다가 여러모로 눈에 띄는 타입이라, 백업 댄서가 어울리지 않으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추천을 잘했네.’

류희재는 무대 밑에서 본 정의헌의 모습과 인터넷으로 따로 찾아본 영상들을 기억해냈다.

그룹 활동하는 영상까지 찾아본 건 아니어도 인기가 많다는 〈늑대의 시간〉, 〈일일구〉 개인 직캠은 시청했다.

직캠은……. 잘해서 봤다. 그것도 여러 번. 적을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같은 영상을 재생하고 또 재생하며 류희재는 정의헌에 관해 한 가지 깨달았다.

‘춤 하나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잘 춘다.’

리듬 표현을 잘한다든가, 쓸데없는 동작이 없다든가, 힘이 좋다든가, 박자를 깔끔하게 쓴다든가.

그런 사전적인 평가는 불필요하기도 했다.

호불호를 떠나서 그냥 잘했으므로.

정의헌의 움직임은 감각적이었고 당당했으며 자유로웠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느낌이 전혀 없지. 담백해.’

그 실력이라면, 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도 느낄 것이다.

스타일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우러러볼 것이다.

사람이 싫어도 능력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압도되어서.

계선을 능가하는 예술은 원래 그처럼 경이로웠다.

‘자존심 상하게도 말이야.’

류희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무용 한 적 있지?”

“어떻게 알았어요?”

“스타일이 독특해서.”

근력을 바탕으로 탄력 있으면서도 유연한 스타일 말이다.

“그런데 저는 케이팝 먼저 했어요. 처음에는 스트릿이었고, 그다음이 코레오……. 무용은 나중에 배웠어요.”

“특이하네.”

류희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포지션을 딱 하나 고르자면 보컬일 테지만, 춤도 오래 춘 만큼 그에게는 나름의 관심사였으니까.

“노력한 거죠. 지금도 잘하는 건 아닌데, 어릴 때는 강약 조절을 더 못했거든요. ‘강약강약’ 해야 되는데 ‘강강강강’으로 추고.”

정의헌이 작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현대무용 배우면 동작도 부드러워지고 춤선이 좀 정리된다고 들어가지고 시작한 거예요. 오래 배우지는 않았지만……. 연구를 엄청 했네요.”

정의헌이 말한 ‘이해’라는 것이 과연 이런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류희재는 이야기를 들으며 몇몇 비하인드를 새로 들었다.

그래서 예컨대, 맞은편에 앉은 이의 춤에서부터 보이는 디테일한 테크닉의 근원이 어디인지 따위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거저 생긴 스타일이 아니었구나.’

그는 생각했다. 겉보기로 추측한 것보다 정의헌은 더 오랜 시간을 노력했을 수도 있겠다고도. 실제로 옳은 깨달음이었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대답할게요.”

“……아.”

여름부터 가을까지, 몇 달에 걸쳐 일방적으로 벌려둔 거리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허물어지는 감각.

정의헌이 도전 정신과 열정을 연료 삼아 살아가는 낙천가라면, 류희재는 열등감과 승부욕으로 자신을 갈고닦았다.

마음속으로 라이벌을 정해두고 그를 깎아내리거나 흉보고,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상.

다시 말해 정의헌은 류희재에게……. ‘영영 친해지지 않을 사람’, ‘꺾어야 하는 상대’였다. 처음부터.

‘실력도 좋고, 시작부터 인기 많고. 출발선이 다른 것도……. 미워해도 괜찮은 이유가 되어주니까.’

방해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적. 게임으로 따지면 몬스터나, 좋게 쳐줘 봐야 NPC 같은 존재.

정의헌이 이 인식 구조를 알았다면 ‘거 참 사회성에 결격이 심각하군’ 정도로 평했을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는.’

류희재는 침묵했다.

아직 경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편하게 미워하고 싶은데.

이 내적 갈등은 결국 오랜 고집이 이겼다.

궁금한 게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궁금할 것을 물을 때가 아니었고, 대화를 끝내야 할 때였다.

‘빨리 이야기해 주고 끝내자…….’

이 마인드 역시 정의헌이 알았다면 ‘그냥 안 가고 말을 해준다니 이 형은 진짜 사람 대하는 스킬이 전멸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건, 음. 향수 같은 거 모아. 디퓨저나.”

“우와, 신기해요. 저 후각이 별로 안 좋은 편이라, 향수는 조금 알아도 디퓨저는 전혀 모르거든요.”

“디퓨저는 인테리어로도 좋아.”

그리고 빨리 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좋아하는 향이나 사용하는 제품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진행되었다.

이삼 분쯤 지나 류희재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싫어하는 거.”

식판에 밥이 반 이상 남았지만 류희재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딸기 맛 요거트를 정의헌에게 건넸다. 사양했다면 포장도 안 뜯고 버렸겠지만, 상대는 냉큼 받아갔다.

“싫어하는 건……. 너무 많아.”

지이익. 요거트 비닐 뚜껑 뜯는 소리가 눈치도 없이 크게 울린다.

“예를 들면요?”

“유제품.”

“저런…….”

요거트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정의헌은 과장되게 유감스러운 투로 말했다.

류희재는 짧게 고민한 끝에 또 다른 예시를 덧붙였다.

“수준 미달인 사람도 싫고, 정당하게 경쟁 안 하는 사람도 싫어.”

“그거 제 얘기?”

그리고 정의헌이 굳이 질문했다.

빈정거리는 투는 아니었으나,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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