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9화
14. 에너제틱(2)
‘진짜 확인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발코니 난간을 잡은 손에 무게를 실었다.
다리를 들어 난간을 밟고 훌쩍 뛰어 옆 난간으로 건너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오 초.
난간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면 절대 매듭을 짓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좁혀야만 대화가 될 것이다, 생각했던 것 같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작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전진에 류희재가 몸을 움츠러뜨리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빛이라고는 커튼 너머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흰 조명이 다인 밤, 반쯤은 야외. 위치가 가깝게 붙어서인지 내려다보게 된다.
“저. 혹시 저 안 좋아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요.”
“……저리 안 가?”
“있으면 말해주세요. 고칠 테니까.”
속뜻은 이유가 없지 않냐는 질문에 가까웠다. 눈싸움하는 시간 만큼 정적이 흘렀다. 몇 초쯤.
외부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침묵이 깨지자 류희재도 쥐어짜 내듯 목소리를 꺼내놓았다.
“나는 그냥 너 같은 타입이…….”
그리고 그때 말을 끊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형! 방금 뭐였어요?”
난간을 넘어오면서 소리가 난 게 방 안에서도 들린 모양이었다.
내가 다급하게 대꾸했다.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큰 소리 났는데? 넘어진 거 아니에요?”
오지 말라고 막는 것이 더 이상하게 들릴 것 같은 상황.
커튼 너머로 그림자가 움직이기에, 그냥 빠르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형.”
“…….”
“오늘 무례하게 행동한 건 죄송해요. 우리 나중에 꼭 대화해요.”
그렇게 다급하게 다시 발코니 난간을 넘고, 옆 방으로 들어가는 류희재에게 덧붙여 주었다.
“뭐 쌓인 거 있잖아요. 그거 혼자 속에 담아두면 아무것도 안 변해요.”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류희재가 이동하며 옆 방의 창이 닫힘과 동시에 이쪽 창이 열렸다.
무슨 일이었냐고 묻는 룸메이트에게 발코니에 놓인 잡동사니를 보여주면서 문득 나는 몇 주 전 체리본 쌤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방송은 여기서 끝나더라도 인연은 이어진다고 했었나. 그 말이 나에게는 조금 깊게 새겨진 모양이다.
미래로 돌아갈 수는 없고, 지금 흘러가는 시간이 내 현실이며 나는 싫든 좋든 사회와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류희재는 데뷔 그룹 해산 절차가 다 끝나고 어떻게 되었지?’
소속사 ‘CK미디어’로 돌아가서 솔로가 아니라 그룹으로 결국 데뷔했던 것 같은데.
금방 탈퇴했던 것 같기도 하고, 몇 년은 활동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 *
@3q.sss.champ _ ♡ 좋아요 15,378개 댓글 1007개
화제의 ‘늑대의 시간’ 무대를 나도 보았다. 연락이 많이 와서 이제야. ㅎ
시작부터 소름이 쫙.
훌륭한 퍼포먼스였다. 젊은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래서 더욱 어린 날의 용관이가 생각나는 춤사위였다. 특히 솔로 파트가...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최고의 춤꾼, 늦여름 샛별처럼 빛나던 스물셋 청년
너무나도 젊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소중한 내 친구...
‘늑대의 시간’으로 데뷔하자마자 분에 넘치는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한철 유행 가수가 아닌, 오래오래 기억되는 톱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우리 용관이...
최근 몇 년은 일이 바빠서, 네 기일에도 ‘그러네, 오늘이 그 날이었지’ 하며 넘어가고는 했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기리게 되는구나... 참 고마운 무대다.
용관아, 한철 유행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안 잊었다
이렇게 많은 후배들이 우리가 걸었던 길을 걷고 있지 않으냐
오늘 꿈에 용관이가 나온다면 그렇게 말해주어야지...
네가 참 많이 보고 싶은 밤이다...
#가솔린은오랜만 #우린평생삼인조 #늑대의시간 #맥주한캔 #음주는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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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u @date_ddu
아 요즘 진짜 정의헌이랑 같은수업듣는 상상만 함
이런 등짝과 어깨를 가진 선배 뒤에 앉고싶음
장점 수업시간에도 몰폰가능
단점 교수님이 안보임
한시???? @AM0100oO
강남역 환승게이트 광고 어나더즈 애들 다 같이 보고 갔어요!!
시간 좀 지나서 영상도 올려요 매니저님이랑 같이 와서 포스트잇도 수거해간 것 같아용~
#데프아 #어나더즈 #정의헌 #안승준 #김지상 #꿀벌단 #햄랑단 #상상단 [영상]
토모모 @daxse3132
약속 있어서 강남 나왔다가 우연히 어나더즈 봤는데 ㅜ (연생들 이미 가서 하는 투잇임~) 사람들 너무 붙어서 애들도 막 밀리고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어떤분 넘어지고 질서 진짜 엉망이었는데... 애들 계속 웃어주고 넘어진 팬분 직접 일으켜주고 금방 가야돼서 미안하다고 그러고 휴 애들이 착하긴 진짜 착하드라 ,,, [사진]
데프아보는계정 @legendhogu
일일구가 레전드는 레전드였나봐
원래내탐라는 다 빠수니들이라서 체감을 못했는데
울엄니가 자꾸 뎊아 투표 어디서해야되냐고 물어봄 ㅜㅜ
클낫다... 파이널때 엄마폰으로 몰래 문투하려고 했는데
밀월 ˚₊•—̳͟͞͞♡ @H0N3YM01N
지하철 광고도 보고 가고
길에서 만난 팬들한테 사인도 해주고
동생 생일선물도 사러가고
방송 촬영도 하고
밥먹으러갔다가 식당 사장님이랑 사진도 찍어주고
조공품도 야무지게 입고다니고
플레이피 비하인드 브이로그도 찍고
이모든것이 나 집에누워서 탐라 쓱뽕슥뽕 내리는사이에 정군에게 일어난일
왜캐부지런히살아 ㅁㅊ
정의헌 투표 독려계 @CheerUpHoney
???? 데프아 3차 데스 매치
신곡 미리듣기 & 팀 매칭 & 포지션 투표 오픈!
???? “정의헌 김지상 류희재” 신곡 “TOUCH”로 연합했습니다.
포지션은 3인 모두 ‘보컬’로 투표해주세요!
연합 인원 갱신되는 대로 새 투잇으로 알리겠습니다!
이박사~ @take3339
ㅎㄹ 복덕방에서 쭈니 연합 두드려로 모으려나봐
안쭌 송숨인 채소 < 여기까지 모인거보면 ㄱㅊ는것같은데...?
다 나오면 나도 투표한거 수정하려궁 [링크_익명 커뮤니티 ‘복덕방’ 게시글]
퇴않 @showmymoney
친구들아 제발이렇게 싹싹빌게 정의헌 터치 투표한표만 해주라
제발... 제발 ... 제발 ... 죽기전에 이 남자 섹시컨셉하는거는 보고죽어야겠어
제발 얘들아 ... 제발 얘 섹시에 소질이 있는남자야 제발
강석이 @ilovemalrang___
정의헌 터치해야하는이유
너희 끠헌이 비터러브 커버 춤춘거 한번도못봤구나
yitube.com/…
보고와라 끈적하게 개.잘한다
탄수화물금지 @ggo_toki
@e893iO2gMd 디엠 안보시는 것 같아서 멘션드려요 김지상 포카 팔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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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계 @e893iO2gMd
@ggo_toki 안팔아요 ㅈㅅ 저 재입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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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금지 @ggo_toki
@e893iO2gMd ㅇ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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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또 잘만 흘러갔다.
그동안 〈데프아〉는 7회까지–2차 경연 끝까지– 방영되며 명실상부한 대국민 유행 오디션이 되었다.
출연진의 사소한 행동과 발언, 과거, 목격담이 모두 분 단위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 멤버 셋은 사소한 루머 몇 가지에 휘말렸다.
첫째로 익명 커뮤니티 등지에 퍼졌던 ‘안승준 폭력 논란’.
안승준의 안티 세력이 그룹 활동하며 찍은 영상 콘텐츠 몇 개를 악의적으로 캡처하여 온라인에 퍼뜨린 일이었다.
콘텐츠용 게임에서 뿅망치로 때린다거나, 다른 멤버가 놀리고 도망가서 쫓아간다거나, 앞에 걸어가는 멤버 모자에 붙은 보풀을 떼어내 주려고 한다거나…….
대충 그런 장면을 가지고 ‘일부러 저런 거다’, ‘평소 인성이 보인다’, ‘왜 머리를 때리냐’ 등 코멘트하며 논란을 억지로 창조한 느낌이었다.
댓글을 슬쩍 봤는데 동조하는 사람들과 원본을 알리려는 사람들, 소속사에 메일 보낸다는 사람들이 뭉쳐서 싸우고 있었다.
‘억지 안티가 이렇게 많아진 것을 보면 안승준도 꽤 인기가 붙었나 보군…….’
내 감상은 그랬고, 최초 게시자는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둘째는 김지상의 새로운 악편. 첫 악편이 그랬던 것처럼 편집으로 애를 이상한 성격으로 만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주인공은 나였는데, 옛날 영상의 순간 포착 캡처를 증거랍시고 내세운 ‘코 성형’ 논란이었다.
‘허허…….’
그 덕분에 나는 좋은 유전자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되었다.
성형 루머는 굳이 내가 해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빠르게 종식되었다.
(당사자인 나는 기억도 안 나는) 몇 세기 전 위라이브 방송 중에 내가 코끝을 누르던 장면을 사람들이 찾아내 퍼뜨린 덕분이었다.
그 외에 내 옛날 사진을 찾아내 불투명도를 낮추어 각도가 비슷한 요즘 사진에 대본다거나……. 네티즌은 적극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화도 안 났다.’
아무튼, 드디어 3차 경연. 네 번째 합숙.
촬영은 익숙한 수순으로 탈락자 발표식부터 시작되었다.
나야 경연 결과로 인해 생존이 확정되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냥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어퍼스트릿의 〈일일구〉 팀, ‘일레븐’ 팀은 ‘2차 데스 매치’ 승리 베네핏으로 전원 생존합니다.”
2차 탈락자 발표식은 각 팀 생존자를 1위부터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탈락 위기 연습생의 전체 순위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실제 순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이라, 시청자들은 개인 직캠 조회 수 순위를 곧 인기 순위로 여기고 있다더라.’
여담으로 그 순위면 나는 확신의 상위권이다. 아직까지는.
‘바다’ 패배 팀 중 눈에 띄는 생존자는 류희재 정도.
‘학교’ 그룹에서는 송수민이 2등 팀의 1위 팀원으로 살아남았다.
‘……송수민 인기 많네?’
이 친구를 우습게 봐서 당황한 게 아니라……. 솔직히 놀라울 만한 변화였다.
나의 인생 1회차와 2회차의 변화, 사전투표 순위와 지금 인기의 변화. 다 통틀어서.
‘얘 의외로 꽤 잘되는 거 아니야?’
내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워대던 그 시점, MC는 새로운 투표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팀 대전으로 인한 ‘탈락자’ 발표식이 종료되었습니다.”
때가 왔구나.
“이제부터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의 투표는, 개인 투표로 전환됩니다.”
그 번거로운 어플 투표를 집어치울 때가…….
변경된 투표 규칙은 간단히 말해 ‘이제 투표권을 위한 스트리밍 폐지, 홈페이지 투표로 전환, 1일 1회 3명까지’.
새로운 규칙은 시청자의 접근성을 대폭 늘리는 동시에 경쟁을 돋우었다.
‘앞으로는 전체 순위를 보여주겠다는 말이니까.’
출연자가 아닌 시청자를 위한 MC의 이런저런 사회 멘트를 들은 뒤 우리는 밥을 먹고 탈락자들을 보내주었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면 녹화 재개. 이어지는 촬영 내용은 ‘3차 데스 매치 팀 배정’이었다.
“세 번째 데스 매치의 ‘A’ 키워드는, 모두가 예상하셨듯……. ‘Answer’입니다.”
MC가 힘주어 주제를 강조했다. 그보다 인터넷에서는 ‘Answer’가 아니라 ‘Ask’인 줄 알던데.
“자. ‘아레나’의 후원자분들께 여쭌 결과가 지금 제 손에 들려 있습니다!”
MC는 손에 들린 서른여섯 장의 카드 뭉치를 카메라 앞에 대고 흔들었다.
온라인 설문을 통해 시청자가 직접 정한 노래, 팀원, 그리고 포지션.
‘미리 듣기’로 공개되었던 노래 여섯 곡의 장르는 다양했다. 섹시, 청량, 몽환, 스포티, 팝, 재즈, 라틴, 힙합, 로큰롤, EDM, 이상의 혼합 등등.
‘음.’
놀랍게도 나도 인터넷을 안 보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내게 주어질 섹시 콘셉트를 받아들일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