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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58화 (58/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8화

14. 에너제틱(1)

라인업이나 승자와 패자가 한데 다 섞였다는 문제를 걱정했지만, 생각했던 것에 비해 ‘MT 콘텐츠’ 촬영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솔직히 제작진이 일군 기적이었다. 출연진에게 쉴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았거든.

한 시간 조금 넘는 버스 이동이 끝나고, 방을 배정하고 짐을 정리하자마자 제작진은 저녁 메뉴를 걸고 게임을 시작했다.

‘이런 거 어느 예능에서 배워온 거냐?’

미니게임 종목은 무려 〈데프아〉 애청자 테스트였다.

〈데프아〉에서부터 출발한 새로운 인터넷 유행어의 뜻이나 유명한 장면의 주인공을 맞혀야 한다거나.

방송 캡처 한 장을 꺼내놓고 자막을 가려 무슨 대사인지 정확히 말해야 하는 대사 퀴즈가 그 내용이었다.

‘……너무 흥분했다.’

그놈의 승부욕 때문에 내가 좀 오버해서 매달렸다는 점만 제외하면 적당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PD가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천직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진행이 스릴 있었기 때문에…….

‘저녁 먹은 다음에는 장기자랑도 있었지.’

촬영 일정 연락 때 미리 안내를 돌린 게 아니라 당일 촬영장 도착하니 알음알음 공지되었다는 사소한 트러블 요소가 있었지만, 다 연예인 되고 싶다는 애들이라 뭐가 없어도 부르면 나와서 뭐든 보여주었다.

그래도 초반에 무대에 오른 녀석들은 뭐라도 한두 시간 고민하고 준비한 티가 났다. 그런데 흥이 오르자 장기자랑이 무슨 이어달리기처럼 무대에 올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벌칙 쇼로 변모한 것이다. 거의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여담으로 나는 춤은 너무 많이 보여줬다는 이유로 맨손 마술을 선보였다.

데뷔 초부터 방송에서 개인기 시킬 때마다 하던 거라서, 비하인드를 아는 안승준만 이제 질린다고 야유했다.

그 뒤로는 어디서 노래방 기계를 찾아내 전원을 연결해서 유행곡을 몇 시간 메들리로 부르고 달렸다.

맹세코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다들 얼큰히 취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잘 놀았어…….’

펜션은 스물다섯 명까지 수용 가능한 크기였다. 제작진 몇 명은 근처 숙소를 따로 빌렸다고 갔고, 몇 명은 퇴근 후 각자 스케줄 대로 따로 출근한다는 듯했고, 또 몇 명은 펜션 남는 방에서 잔다는 것 같았다.

하여간 내가 쓰는 방은 2층.

계단을 올라 하늘색 벽지로 도배된 4인실에 들어가니 주태훈과 함경우가 침대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요한 화제는 아니고 오늘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이나 곱씹는 잡담인 듯했다.

“술을 못 마시는 게 아쉽네.”

들으라는 듯이 말해서 나도 끼어들었다.

“방송이니까 어쩔 수 없죠. 들고 있는 건 뭐예요?”

“아, 이거 콜라.”

기분이 좋기도 했고 모처럼 긴장이 풀린 날이다.

바로 잠들면 아쉬울 것 같으니까……. 나는 옆 침대에 털썩 기대어 앉으며 물었다.

“무슨 대화 중이었어요?”

“아, 우리 그냥. 저번 경연 무대 얘기?”

“그때 재밌었죠. 어땠어요?”

질문하자, 주태훈이 짐짓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고 나를 불렀다.

“야, 의헌아.”

“넵.”

“나는 너한테 꽤 고맙다. 처음에는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번에 돌아보니까, 은근 너한테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부딪힌 게 아니라 형이 저를 괴롭힌 거죠…….”

“그래, 미안했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이 형이 방송 때문에 겉멋이 들어서 말투가 묘한 줄 알았는데 원래 성격이 이런가 보다. 신기한데.

엎드려 절 받기 사과였지만, 상황이 그저 웃겨서 슬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나는……. 이제 와서 열심히 하는 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원래는.”

콜라가 담긴 머그잔을 손에 쥐고 주태훈이 입을 다셨다.

“그런데 너처럼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애가 계속 노력하는 거 보고 자극을 좀 받은 것 같아.”

“좋은 일이네요~”

“이 형이 감동적인 말까지 해줬건만 어떻게 이렇게 건방질 수가.”

“아니, 진짜 좋은 일이라서 좋다고 말한 건데 어째서.”

그때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하며 듣던 함경우가 실랑이에 끼어들었다.

“저는 저희 그룹 형들이 다 잘 받쳐줘서 이번 경연이 잘 된 것 같아요.”

얘 나이가 몇 살이었더라. 안승준이랑 동갑이거나 한 살 어렸던 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나보다는 나이가 적다는 거다.

함경우는 물이 거의 다 빠져 희끄무레한 민트색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저 첫 경연 때는 진짜 그룹 분위기가 별로였거든요. 남의 단점 찾으려고 안달이 나서 물고 늘어지기만 하고.”

“네가 누구 팀이었지?”

“저요, 2위 팀이었어요. 류희재 형.”

아……. 맞다, 그랬지. 잊고 있었다.

함경우는 이번 경연에서 리더로 뽑히며 팀원을 고를 권한이 생겼는데도 류희재를 호명하지 않았다.

왜 피하는가 했더니 예상보다 분명한 사유가 있었다.

‘싸우는 모습, 방송에는 안 나왔던 것 같은데.’

류희재의 비하인드는 조금 궁금했던 터라 은근슬쩍 전말에 관한 질문을 몇 개 던져보았다.

“그 누구냐, 학폭으로 하차한 형. 그 형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몰려다니던 애들이 좀 있었어요.”

“몰려다녀?”

“타입이 비슷했다 이거죠. 아무튼 그런 자기주장 센 팀원하고 아닌 팀원이 섞여 가지고 서로 엄청 싸웠어요.”

함경우의 말을 요약하자면, 엉망이 된 팀워크의 책임 소재가 딱히 류희재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퉜다는 내용도 재미있게 방송용으로 편집될 수 있을 만큼 기싸움이 오간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를 따돌리다시피 했단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만 무리 지어서 몰려다니고, 은근슬쩍 안 끼워주고, 무시하고. 대충 그렇게.

“너희 팀 리더는?”

“그 형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있으면 대놓고 눈치 주는 게 은근 심해요.”

“아니, 성격이 어떠냐고 물은 게 아니라……. 중재 안 했냐고.”

“중재를 했으면 그 난리가 안 났겠죠?”

함경우가 장난스러운 동작으로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한편 나는 골똘히 함경우가 소속되어 있었다는 1차 경연 팀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영 헷갈리는 이름과 달리 몇 얼굴은 희미하게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안승준과는 인연이 없었을 텐데, 김병석을 포함해 서너 명은 오래 살아남아 과거 〈데프아〉에서 김지상과 같은 팀도 몇 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과거의 김지상은, 단순히 주변에 불량한 녀석들이 많았던 건가.’

다시 말해 명확한 주도자가 없었을 가능성……. 눈치 주고 방치하는 것도 일종의 따돌림이라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의 발생 가능성도 낮은 사건에 대한 잘잘못 계산은 통 어려웠다.

‘저지르지 않은 일을 응징할 수는 없어. 팩트만 따지자.’

팩트 하나. 김병석을 포함해 그 친구 무리는 다른 연습생에게 싸움을 걸고 험담을 하는 등 은근한 따돌림을 행했다.

둘. 류희재는 그 그룹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김지상과는 관련 없을 수도 있지만, 이중으로 스트레스가 되었을 수도 있다.

셋. 지금 그들과 김지상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 시점 내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이쪽이 아닌 제작진의 계략.

‘오케이.’

계산을 마치고, 함경우에게 한 가지 물음을 추가로 더 건넸다.

“그때 팀원들은 지금 어디 있어?”

“예? 저번에 떨어졌으니까 집에 있지 않을까요.”

“아, 그래?”

“졌으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사라져 주었구나…….

“하여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저는 당연히 자기주장 세게 하고 싸워야 되는 줄 알았어요. 서바이벌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형들이랑 같이 하니까 되게 편하고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함경우는 히죽히죽 웃으며 외쳤지만,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2차 경연 팀원이 나를 제외하고 여섯인데 그중 절반이 나랑 이미 팀을 해본 친구들이다.

다들 나를 겪어봤으니까 내 방식을 알고 적당히 설설 기어준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아무튼 쌤통이다. 잘해서 이기니까 기분 더 좋네요.”

함경우가 기지개를 쭉 켜며 웃었다.

‘나는 쌤통까지는 아니고 걔가 결과 나왔을 때 표정 관리도 못 하는 게 괜히 안쓰럽던데’라는 생각은 마음에만 묻어두었다.

그때쯤 샤워하던 연습생이 욕실에서 나오고, 함경우가 그와 교대해 수건을 들고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자리는 흩어졌다.

시간이 많이 늦기는 해서……. 어느덧 자정도 지나 새벽이었다.

“어, 의헌아. 어디 가냐.”

“바람 쐬게요~”

주태훈에게는 가볍게 대꾸해 주고, 나는 발코니로 나섰다. 실내 공기가 묘하게 텁텁했던 탓이다.

베란다인지 발코니인지……. 어떤 표현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돌출된 구조물 이야기다.

커튼을 걷고 열린 창문을 지나면 쌀쌀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슬리퍼를 끌고 나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었다.

지역 외곽이라 지나다니는 차도 한 대 없고, 가로등도 없어서 바깥이 온통 깜깜했다. 근처에 졸졸 흐르는 하천 소리만 들리는 밤.

‘사진도 안 나오겠네.’

나는 핸드폰 카메라나 핸드폰 플래시를 들고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곧 포기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몸을 돌리다가……. 발견했다.

‘……!’

깜짝 놀랐다.

오른쪽에 누가 서 있었다.

불도 하나 켜지지 않은 야외에.

‘귀신은 아니고……. 사람이 맞는데.’

이 펜션 발코니는 난간이 허리 조금 위까지 오는 데다가 옆 방 발코니랑 딱 붙어 있어서, 말하자면 발코니 여러 개가 일자로 연결된 오픈형 구조였다.

그러니까, 옆방 발코니에 나와 있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다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사람 상대로 후면 전등 빛을 쏘아버렸다.

누군지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 반사적인 행동은 어쩔 수 없으므로…….

“치워.”

류희재가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 죄송. 안녕하세요.”

핸드폰 손전등 기능을 끄고 일단 인사했다. 방 안에서 하던 이야기는 들었을까?

방과 방 자체는 방음이 잘 되는 것 같던데, 창문도 열려 있었으니 밖에서는 소리가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그 망설임을 눈치챈 건지 류희재가 갑자기 본인 핸드폰을 내 쪽으로 들고 화면을 보여주었다.

[음성녹음_067.mp3]

……‘다 들었고, 녹음까지 했다’는 의미.

물론 방금 전 대화가 인터넷에 올리든 법적 대응을 하든 큰 논란이 될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욕설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태도가 심각하게 삐딱했던 것도 아니고, 그야 뒷담화니까 들은 사람이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공개해도 당사자 연습생끼리 사이만 나빠지고 말 것 같은데.

“재밌어?”

그와 별개로 류희재는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반박하기보다는 까라는 대로 까고 넘어가는 게 나을 성싶었다.

“죄송해요, 애가 오늘 들떠서 그랬나 봐요. 저도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는데 분위기를 못 끊었네요. 사과드릴게요.”

“……네.”

존댓말로 돌아온 것을 보면 받아준다는 뜻이겠지? 어쩐지 반응은 떨떠름하다만.

가까이 다가가서 말이나 붙여보았다.

“저희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왜요?”

대답이 없다. 나는 한편 짧은 정적 동안 고민해 보고 결론을 냈다.

류희재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까닭은 실상 김지상의 미래와 관련이 없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녀석만의 사정이 있어서거나, 성격이 나빠서거나, 아니면 둘 다겠지.

‘그러니 이제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일.’

확인만 해보자. 나는 옆 방 발코니와 이어진 방향의 난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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