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57화 (5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7화

13. Cherry Bomb(6)

이번 무대의 키워드 ‘상어’를 떠올려낸 저스티스 리그는 다른 가설을 연상해 냈다.

‘여름이 아니라……. 다른 콘셉트인 거 아니야?’

이미지가 재조합되며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키워드가 솟아올랐다.

‘바다!’

생각해 낸 동시에 무대 위 이들의 의상 디테일과 안무 변형이 눈에 들어왔다.

일곱 명 전원 손에 착용하고 있는, 목이 짧은 장갑.

손 엑스레이를 찍은 것처럼 뼈마디를 따라가는 흰 무늬가 손등에 그려져 있는 검은 장갑이었다.

정의헌의 것만 검은 배경에 붉은 무늬로 포인트가 달랐지만 말이다.

저스티스 리그는 그 무늬가 지금껏 손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빨이야……!’

상어 입안의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머리 옆에 손을 가져다 대는 후렴 포인트 안무가 끝나자, 모든 팀원이 대형을 이루고 기립해 섰다.

중앙은 정의헌.

몰아치는 노래 중간의 정적인 순간.

그때 그들은 각을 맞추어, 양손 깍지를 껴 입가를 가렸다.

지금까지는 안무 난이도 탓에 디테일을 통일한 ‘칼군무’보다는 각자 스타일을 살리는 식으로 안무를 해왔는데, 이 동작만은 아니었다.

손끝과 자세, 몸의 자잘한 선까지도 정확히 잡혀 있었다.

손등 위 희고 붉은 이빨이 맞물린다.

그리고 찰나 후, 손의 각도를 틀어 양손을 떨어뜨린다.

위와 아래로.

풀어지는 검고 붉은 손깍지 사이로 보이는 입, 틈이 더 벌어지면 보이는 눈동자.

저스티스 리그의 귓속에 삐뽀삐뽀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작은 제스처였지만 시각적으로 화려해, 범람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경고 경고 일일구 일일구

떠나라 전화해 일일구

후크 송의 본분을 다하듯 후렴구가 반복되었다.

지금껏 후렴의 ‘일일구’를 따라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어갔다. 다들 퍼포먼스에 집중해 정신이 팔린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일곱 명이 흩어지고 뭉치면서 춤과 노래는 이어졌다.

그렇게 하강 없이 꾸준히 상승하던 에너지는 마지막 후렴구를 앞두고 폭발에 이르렀으니…….

흰 조명이 총을 난사하듯 빠르게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 안승준이 중앙에 나섰다.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칭찬도 비웃음으로 들려

네 한계는 여기까지 흐르면 흐르는 대로 살라고 해

허우적 허우적 쓸려가는 삶은 내가 아니야

내 얘기를 중고 취급 훈계질 해도 난 서바이벌 체질

바이럴을 부채질해 흐름에 노 저어 한계는 없어

아무도 날 몰라도 스타 되기 전에도 나는 나였어!

안승준의 비밀 병기, 혀에 피를 내면서까지 연습한 속사포 래핑이었다.

부족한 호흡을 끌어올리며 안승준이 한 번 더 외쳤다.

Press 112 or 119

외쳐 ‘There’s a Dangerous Jaws!’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실린 마지막 구절을 지르자, 펑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폭죽 컨페티가 터져 흩날렸다.

노래는 경연 특징상 2절이 잘려 나간 구성이었는데,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쉬거나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상승, 상승, 그리고 또 상승. 끝을 모르고 내달리는 에너지.

끝나기 직전 대형 가운데에서 열기를 갈무리하는 것은 정의헌의 몫이었다.

You better Run, better Run

도망가 여기는 위험해

이 정도로 흥분하며 분위기를 타면 음정이나 박자가 날아갈 법도 한데, 정직하고 똑바른 가창이었다.

그 차분함과 여유, 능숙함, 혹은 마이페이스가 저스티스 리그의 눈에는 어떤 의미로는 우아하게도 보였다.

완벽한 피날레.

우레와 같은 박수, 비명에 가까운 함성,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쏟아내는 앙코르 요청.

박수 대신 슬로건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저리는 속으로 되뇌었다.

‘데뷔하자……. 아니, 정의헌 여기서 데뷔하지 마……. 하지만 데뷔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방청을 권했던 밀월의 ‘절대 후회 안 해, 의헌이 무대 진짜 잘해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저스티스 리그는 그 말뜻을 지금 온전하게 이해했다.

* * *

무대는 언제 서든 재미있다. 관객이 있다면 더욱이.

나는 백스테이지로 내려오며 숨을 골랐다. 〈데프아〉에서의 무대는 매번 기회가 딱 한 번이라 그런지, 더 무리하게 되는 듯하다.

일반 앨범 프로모션 활동은 적어도 3주, 4주에 행사나 사인회도 여러 번이라서 되니 부담감도 적은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반성도 좀 하자.’

다른 게 아니라, 중앙에 섰다고 너무 내 페이스대로 무대를 끌고 간 것 같다.

무대 퀄리티를 위해서는 강약을 조절했어야 되는데, 덕분에 조금 지치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저번 경연 중간 평가 때 혼자 나서지 말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도 또 이랬네.’

그나마 우리 순서가 마지막이고 이후 무대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형, 나 이거 좀 빼줘.”

안승준의 요청에 마이크에 걸린 호루라기 목걸이 끈을 빼주며, 나는 상념을 날려 보냈다.

승준이가 근처에 놓인 반사 소재 소품에 제 목덜미를 비춰보면서 중얼거렸다.

“나 목에 멍든 거 아니야? 춤추는 데 이거 너무 달랑거려 가지고, 아직도 아파.”

“멀쩡한 것 같은데?”

“그런데 형은 오늘 왜 그렇게 신났대. 따라가느라 죽는 줄.”

“아, 왜. 재밌었잖아. 너도 즐겼으면서.”

그렇긴 해, 재밌었지, 안승준은 대답한다.

나도 그거면 된 것 같기도 하다.

* * *

Q U I Z F O R M

〈밀월 ˚₊•—̳͟͞͞♡(@H0N3YM01N)의 퀴즈폼입니다. 익명 질문을 남겨주세요!〉

「질문」 쌤 이거봤어요? 케이팝 이튜버가 데프아 1차경연 리뷰한거!! ㅠ.ㅠ 헌이 열심히 해서 이러케 인정받는거 넘 쭈아 yitube.com/…

「답변」 아니 이거 마지막에 이 사람이 ‘쩐의헍 님은 이미지 소비가 꽤 됐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신선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이러는데 내 가섬팍 다찢어짐 ㅡㅡ 그 소비 저나햇죠 얼척.

「질문」 미루미루야 2차경연 스포봄? 정의헌 안승준 같은팀이고 엎스 일일구했는데 개사다하고 무대 찢어놨대

「답변」 (구독이들 이 폼에 경연 스포있어요 주의‼️‼️‼️) 하진짜 그거 스포듣고 싸이버담배 뻑뻑피움 어케기다려... 어캐기다리냐고

「질문」 허니 팬덤 이름 꿀벌단 넘 귀요운것가태요 다음 발표식에서는 꿀벌단이라고 불러줄라나

「답변」 꿀벌단 귀엽죠 미칭인간들이 헌더기로 정하려는거 겨우살려둔거임 ㅜㅜ 헌덕이 무냐고 난 꿀벌할래

「질문」 밀월님 혹시 어나더즈 어디 일본? 에서 같이 라이브한 거 영상 뭔지 아시나요 그 호텔방에 누워서 했던 방송같은데

「답변」 아!! 150411 오사카 프로모션 당일 위라이브네요 리툿했어요 ㅎㅎ 공연한날 밤이라서 지쳤을텐데도 다들 텐션 엄청 높아서 재밌어요 ㅋㅋㅋㅋ 이날 애들이 자기입으로 이 조합 너무 어색하다는 얘기 3분에 한번씩 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세상일 참 모를노릇입니다

「질문」 쌤 정의헌 잘생긴 거 맞죠? 저 진짜 정의헌 얼굴 완식이거든요 무쌍 키크고 골격좋고 냉미남인데 약간 강아지같은 느낌도 나는거 진짜 ㅈㄴㅈㄴ 취향이고 개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원래 좀 배우 김ㅎㅎ 이ㅈㅎ 아이돌중에서는 배ㅎㅁ 얼굴 좋아했고 그랬음.) 옛날 스나 영상들 찾아보면 다 정의헌말고 딴멤버보고 비주얼이다 잘생겼다 이러고있어서 제가 잘못된건가 십어요 ㅜ 근데 그멤이랑 서바도 같이나옴……

ㄱㅈㅅ 잘생긴 건 알겠는데 (솔직히 왜 비주얼이라고 미는지는 아는데…… 눈 또랑또랑하고 객관적으로 미소년인거 알겠는데 취향이 진짜 아님 ㅜㅜㅠ) 자꾸 비교되고 우리애 밀리니까 스트레스받아서 ㅜㅜㅜㅜㅜㅠ푸ㅜㅜ 진짜 정의헌 레벨이면 객관적미남 아닌가요 혹시 이런얘기하는 사람 전에는 없었나요 ㅜ 제 눈이 이상한건지 세상이 이상한건지 모르겠어오 ㅠㅜㅜㅜㅜㅜ

「답변」 ㅋㅋㅋㅋㅋ 아 쌤 너무 웃겨요 일단 진정하시구 헌이 죤나 잘생겼죠 저도 제가 콩깍지때매 잘생기게 보는줄 알았는데 ㅋㅋㅋ 요즘 커뮤에서도 의헌이로 얼굴영업하는 사람들 엄청 마니 생긴거 보면 정의헌=존잘 팩트라고 봅니당

글고 요거 좀 사정이 있거든여 의헌이 스나 영상 어디까지 찾아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원래 스나 멤들이 기본비주얼이 좀 되자나요 당장 같이나온 3명만 봐도 아시겠지만 ㅋㅋㅋ 다들 키도 길쭉길쭉하고 작은 멤버들도 (최단신도 176이라 글케 막 작은건 아니지만 ㅎ) 비율 좋아서 작다싶은 느낌 안들구 안면디자인 평균치 개높아서 데뷔때부터 나름 꽃다발 그룹(ㅋㅋ)이라고 얘기도 여기저기서 나왔을 정도... ㅋ 암튼 그래서 얼굴로 언플하려구 킹콩사장이 간판비주얼 한명 세웠는데 그게 지상이엿던 거예요 ㅋㅋㅋ

지상이가 엄청 미소년 스탈이자나요 곱고 예쁘고 이래가지구 ㅋㅋ 좀더 어린팬층한테 잘먹히는 얼굴이다보니 뽑힌것같애요 정군은 아무래도 배우상이랄까 골격미남이랄까 먼가 예~쁨~보다 잘!!생!!김!!이다보니 ㅋㅋㅋ 으른들이 좋아할 분위기죠 좀 ㅋㅋㅋ 다 어른의 사정으로 글케된거니까 넘 상심치마세요 ... ㄹㅇ 그이는 미남이심...

지상이도 넘 미워하지 마세여 스나애들 다 착하고 타멤팬한테도 잘해줘서 어나더즈 의리투표 손해업슴다 ㅜ 허니도 애들 아끼는 거 많이 보이고 같이 잘되고싶다고 마니 말하구다니는 애예요 서터레스받지말구 행덕합시다 쌤도 ㅠㅠ

「질문」 아까 폼 보내신분 개공감해여 저 청소년통장쓰고 급식먹는 현직고딩 소녀(My Princess)인데 제 친구들 다 무쌍남자의 참맛을 몰라요 ㅡ.ㅡ

「답변」 저도 억울합니다 어떤남자 무쌍, L라인, 직각어깨야말로 진짜 한국인의 국밥인데

+ + +

일주일 후 월요일, 경연 승패 공개 분량을 촬영하는 날.

추석 연휴 바로 뒤라 그런지 다들 얼굴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른다.

덧붙이자면 우리 무대는 원하던 타이밍에 잘 방송되었다.

〈일일구〉 경연 준비 파트의 주인공은 중간 평가에서 성적을 제대로 못 내고 열심히 연습해 무대에 선 팀원이었는데, 어떻게든 나와 안승준의 분량을 줄이려는 제작진의 노고가 가상할 지경이었다.

“바다 에어리어의 ‘Blue’ 그룹 승자는, 어퍼스트릿의 〈일일구〉를 커버한 ‘일레븐’ 팀입니다!”

MC가 1과 1과 9를 더해 대충 지은 팀명을 불렀다.

다행이다. 팀 안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피곤했을 것 같은데 같이 잘 되어서.

내가 안쓰럽거나 미안한 기분이 드는 건 괜찮지만, 남이 질투나 자격지심을 느끼면 거기서부터는 골치 아파서 싫다.

더불어 가장 아슬아슬하게 승리와 패배가 나뉜 것은 ‘도시’ 그룹이었다.

수트로 대표되는 ‘어른 섹시’, 뒷골목 반항아, 그리고 김지상과 채호원이 참여한 카페 청년들 콘셉트가 경쟁했다.

승자는 결국 김지상 팀이었지만……. 힘 빼고 청량한 콘셉트를 했는데 이기다니 신기했다. 인기의 승리일지도 모르겠다.

아, 제작진의 협박 건은 경연이 끝나고 일단 회사에 이야기했다. 법적인 처리는 논의를 해본다는데 최소 내용증명은 보내지 않을까 싶다.

“패자 팀 개별 촬영은 내일 오후 별도 진행합니다!”

각 팀별 생존자까지 소개한 뒤 MC가 미리 퇴근하고, 제작진이 나와 우렁차게 안내했다.

당장 촬영을 이어가지 않는 까닭은 63명 대상으로 이어지는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으로 촬영을 짧게 끝내고 우리는 제작진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장소를 이동했다.

그룹별로 다른 버스를 타고 다른 곳에 갔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경기도 외곽의 어느 펜션이었다.

두 번째 탈락자 발표식 방송에 사용될 자투리 영상 촬영을 위해서다.

‘무려 1박 2일 동안 찍는 MT 콘텐츠.’

음주는 비허용, 고기도 구워 먹고 장기자랑에 제작진이 시키는 게임도 하고, 계획만 들으면 설렐 지경이었다.

21명이 한 펜션에 하룻밤이면 살짝 바글바글하고 기간도 짧지만……. 돈 많이 써준다는데 꺼릴 이유는 없었다.

김지상은 채호원이랑 같이 다니지 않을까 싶고(듣기로는 둘이 조금 친해졌단다), 나랑 함께 펜션을 쓰게 된 인원은…….

나 있고, 안승준 있고, 리더를 맡았던 함경우랑 저번에도 같은 팀이었던 주태훈 형, 그리고 류희재 정도일까.

‘조합이 좀……. 무슨 일 생길 것 같은데.’

부디 이건 잘못된 예감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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