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56화 (5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6화

13. Cherry Bomb(5)

첫 번째 테마는 ‘학교’였다. 처음 팀을 소개하기 위해 연습생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섰을 때부터 저리는 감을 잡았다.

대개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게 아니어도 스타일이 전부 하이틴 느낌이 물씬 났기 때문이다.

노래는 유명한 노래도 있고 아닌 노래도 있었지만, 저리는 투표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문제를 깨달았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저스티스 리그, 그가 〈데프아〉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열혈 시청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투표도 필요할 때마다 꼬박꼬박하고, 동영상 플랫폼에 무대 영상 공개가 되면 바로 시청하고, 이튜브에서 ‘정의헌 CUT’, ‘어나더즈 하이라이트’ 영상을 검색해 보거나……. 앞뒤 맥락이 궁금하면 OTT 플랫폼에서 영상을 드문드문 보며 정의헌과 멤버들의 분량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밀월이 공유해오는 〈데프아〉 웃긴 영상 클립은 몇 번 봤다. 하지만 그것으로 연습생들 얼굴을 구분할 수는 없었다.

‘연습생치고는 다들 실력이 좋은 것 같긴 한데.’

저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직장 동료가 좋아하는 연습생이 소속된 팀에게 1등을, 좋아하는 노래인 〈소녀(My Princess)〉를 커버한 팀에게 2등을 주었다.

제작진이 의도한 투표 방식을 생 무시하는 처사였지만……. 아무튼 그랬다.

‘헉, 지상이 나온다!’

두 번째 테마. 연습생들이 올라와서 하는 말만 들으면 어떤 테마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MC의 간단한 물음에 돌아가며 답하는 연습생들을 둘러보며 저리는 두 번째 테마를 ‘서울’로 추측했다. 본래는 ‘도시’니까 맞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닌 셈이다.

의상은 수트를 입은 팀도 있고, 뒷골목 힙합 스타일로 캐주얼하게 입은 팀도 있었다.

그런데도 저리가 보기에 가장 헤어, 메이크업, 코디가 잘 어울리고 예쁜 팀은 김지상이 소속된 팀이었다.

이 팀에는 채호원도 있었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눈에는 아는 얼굴만 보였다.

‘카페! 바리스타!’

갈색 베레모를 쓴 팀원도, 앞치마를 두른 팀원도 있었는데, 김지상의 소품은 동그란 안경이었다.

무대에 안경을 씌워 올린다는 생각을 누가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지상은 안경도 귀엽게 소화를 잘했다.

달아서 이끌려 네게

우리가 더 가까워지게 Sweet

〈Sweet〉이라는 제목의 선배 보이그룹 노래. 김지상은 비중 있는 파트를 맡아 능란하게 커버했다.

김지상이 ‘Sweet’이라는 가사를 부르며 한쪽 눈을 감았다가 뜨자 스탠딩석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진짜 잘 어울린다…….’

저번 경연처럼 리듬감 있고 빠른 섹시 콘셉트도, 지금처럼 힘을 조금 빼고 임한 달콤 청량 콘셉트도 김지상은 잘했다.

김지상 팀에게 의리 반 팬심 반으로 1등 투표를 하며 저리는 얌전히 마지막 콘셉트를 기다렸다. 스태프들이 무대를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이 그녀 속에 스멀스멀 차올랐다.

‘의헌이랑 승준이랑 대결하면 어떡해?’

그 둘이 다른 팀으로 나뉘어 대결하면 당연히 정의헌 팀에게 1등, 안승준 팀에게 2등을 줄 테지만……. 그게 너무 당연해서 괜히 승준이에게 미안한 기분이라고나 할까(하지만 3등에게는 냉정한 그녀다).

그리고 그 걱정은 무대에 ‘세 번째 테마’ 연습생 스물한 명이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정의헌과 안승준이 같은 팀으로 서 있었으니까!

‘아니, 정의헌……! 살 왜 이렇게 빠졌어……!!’

일단 재회의 첫인상은 그랬고.

‘세 번째 테마는 뭐지?’

테마에 대한 힌트를 제작진 측에서 전혀 주지 않았기에 (스포일러 방지라나 뭐라나) 지금까지도 어설프게 예상만 해왔는데, 세 번째 테마도 두 번째만큼이나 예측이 어려웠다.

연습생들의 생김새만 보아서는 이번에도 통일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남방에 청바지 같은 가벼운 ‘남친룩’을 입은 왼쪽 팀, 계절감을 살짝 상실한 반바지나 긴 양말 등을 매치한 오른쪽 팀.

여기까지만 보면 ‘여름이 테마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에 선 정의헌과 안승준 팀의 의상은 또 다른 계절이라서, 저리는 혼란스러웠다.

“각오와 준비한 무대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해주시겠어요?”

“에너지 넘치는 무대! 준비했습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랩메이킹과 안무 창작을 후보생들이 직접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랩 가사는 승준이 형이 새로 썼고요, 안무 창작은 의헌이 형이 주도했습니다.”

우선 리더로서 무대를 소개한 연습생은 이른바 ‘썬 캡’같은 디자인의, 정수리가 뚫린 테니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같은 팀에는 허리에 웃옷을 묶은 것처럼 허리에 포인트를 준 바지를 착용한 연습생도, 야구점퍼를 입은 연습생도 보였다.

채도가 쨍하게 높은 주황색, 빨간색 포인트 컬러가 검은색과 흰색 의상에 제법 예쁘게 섞인 채였다.

‘승준이는 진짜 이런 거 해야지, 1차 경연 콘셉트는 솔직히 안 어울렸어.’

안승준은 한껏 멋을 낸 것 같았다. 빨간 반소매 후드에 크게 브랜드 네임이 적힌 박시한 조끼를 레이어드한 스타일, 그리고 이마가 보이게 다듬은 앞머리까지.

물론 그녀가 느끼기에 더욱 자극적인 것은 정의헌이었다.

핏이 딱 맞아 다리 선이 잘 드러나는 까만 바지와 하얀 배경에 주홍색 패턴이 화려한 운동화, 그리고 바지에 넣어 입은 흰 오버핏 반소매 티셔츠, 두껍지 않고 단정한 벨트, 양손에 장갑.

티셔츠에 프린트된 붉은 톤의 그래피티도 과하지 않아 허리와 다리가 잘 보였다. 바지의 무릎 근처에는 단순한 주홍색 가로 선이 그려져 있었는데, 저리는 그 포인트가 정의헌의 다리 긴 체형을 강조해 주는 것 같아 괜스레 설레었다.

‘코디는 이만하면 합격…….’

다시 밝히자면 저리는 별것도 아닌 일에 불평불만을 쌓아대는 성격이었고, 이 평은 사실상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심장을 졸이며 저스티스 리그는 ‘세 번째 테마’ 무대를 감상했다.

‘어라, 순서 배치를 왜 이렇게 했지.’

순식간에 지나가는 마지막 테마의 첫 번째, 두 번째 무대를 보며 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의헌 팀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기뻤지만……. 왠지 두 번째 테마가 엔딩에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으니까.

두 번째 테마에서 파워풀한 것을 한참 하더니 세 번째가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시원하고 청량하고 신인 같은 무대라니.

실력이 나쁜 건 아닌데,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감상이 들기도 했다.

〈Blue Wave〉도 〈휘파람〉도 저리의 취향 기준으로는 영 아슬아슬하게 ‘쪼는 맛’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무대, 노래는 ‘어퍼스트릿’의 〈일일구〉입니다.”

그리고 분위기는 곧 반전되었다.

웅성웅성. 저리의 바로 앞 좌석, 둘이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내용으로 떠들었다.

하지만 저리도 대충 앞자리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그, 그래도 돼? 이런 노래 해도 돼?’

밀월이나 안개였다면 ‘아! 이게 뭐냐고! 제발! 애들이 잘 바꿔줬겠지! 얘들아! 진짜 믿는다, 제발!’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사서 걱정하는 게 취미인 저스티스 리그는 그런 거 없이 속으로 덜덜 떨 뿐이었다.

저스티스 리그의 불안해하는 감정을 모르는 채 무대 뒤 LED 영상이 재생되었다.

앞선 두 무대의 비디오가 새파랗고 하늘색이었던 것과 달리……. 붉은 레이저가 산란하며 시작되는 무대.

자극적인 신스 사운드가 전주로 흘러나왔다.

Yeah Let’s play the game

Get Ready, You Ready

원곡과 비교해 훨씬 묵직해진 사운드에, 인트로부터 변경된 가사.

속된 말로 노래가 많이 ‘빡세진’ 것 같았다.

‘Ready’라는 단어를 안승준이 노리고 썼다는 것도 모르는 저스티스 리그는 그저 전체적인 느낌만 받아들였다.

Come and get it

Hold on tight!

가벼운 추임새로 시작한 음악은, 원곡이 그랬듯 1절이 시작하기 전에 춤 파트가 시작되었다.

빠르게 질주하는 음악에 일곱 명의 팀원이 모두 중앙으로 나와서 전신을 다 쓰는 격렬한 군무를 보여주었다.

저스티스 리그는 숨을 참았다. 무대에 중앙에서 비롯한 쫀득한 텐션이 관객석까지 뻗어 나간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그리고 그 중앙에 선 사람이, 정의헌.

저스티스 리그가 그룹 내 ‘메인댄서’ 최애를 덕질하며 알게 된 상식에 의하면, 원래 키가 크거나 몸집이 큰 사람은 춤을 잘 추기가 쉽지 않다.

정확히는……. 잘 추는 것처럼 보이기가 쉽지 않다.

몸집이 작을수록 매끄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10㎝를 반 접었다가 펴는 것이 10m를 접었다가 펴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덜 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보이그룹 기준, 키가 180대 중반 혹은 그 이상인 멤버의 포지션이 메인댄서일 수는 없었다. 역사적으로 경우가 없었다.

만약 –스테리나인처럼– 키가 185㎝인 멤버가 메인댄서라고 하면 삐뚤어진 사람들은 ‘그 키로 춤을 얼마나 잘 추면?’이 아니라 ‘그룹 멤버들이 얼마나 춤을 못 추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일반적으로는.’

그러나.

실력이 비슷하다면 신장이 크고 팔다리가 긴 사람에게 시선이 갈 것이다.

그리고 키가 큰 쪽이 압도적으로 잘 춘다면……. 말해 무엇할까.

한계선을 넘어 불리한 조건을 좋은 조건으로 만든 실력 덕분에, 정의헌은 중앙에 설 때면 늘 관객 모두의 이목을 흡수했다.

스테이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위압적인 존재감.

그리고 그 사나운 아우라를 방해할 수 있는 실력자는, 이 무대 위에는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안승준.

그가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중앙에 나섰다.

Time to wake up

진짜가 왔어 나를 따라

만족을 모르는 나 물살을 갈라

내 전부를 걸어볼게 파도 쳐도

I will go beyond the wave, Brrr Pow

그는 직접 만든 가사로 랩을 쏟아낸 뒤, 다음 멤버에게 이어지는 파트를 내어주고 옆으로 빠졌다.

저스티스 리그는 감히 생각했다. 이 가사가 원곡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다고……!

놀랄지도 모르겠네 나를 보면

You better run or call now 1-1-9

‘Warning Warning’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와 함께하는 보컬 파트, 정의헌이었다.

짧은 벌스가 지나가면 이곳 500명의 관객들이 다 알고 있을 프리코러스 파트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돌아본다 심장 떨리게

그것이 다가온다 점점 빠르게

말도 안 돼 다시 봐 눈을 의심해

바다 괴물이 나타났다 긴장해

저리가 모르는 멤버가 중앙에 나서 노래를 불렀다.

원곡이 메가 히트곡인 덕에, 응원법을 아는 대다수의 방청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떨리게’, ‘빠르게’, ‘의심해’ 등의 구절을 따라 외쳤다.

‘그녀’를 ‘그것’으로 변경했을 뿐인 가사. 거의 수정이 들어가지 않은 셈이다.

그때 안승준이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세게 불고, 이어 소리쳤다.

You better Run!

외침을 신호탄으로 한참 진행되던 멜로디가 잠잠하게 잦아들었다.

그리고 파도조차 치지 않는 망망대해 같은 무대를 가르고, 〈일일구〉보다도 더 친숙한 선율이 등장했다.

‘이 멜로디는…….’

수십 년 전 개봉한, 전설이나 다름없는 영화의 메인 테마 OST.

현악기와 금관악기의 오케스트라. ‘미’와 ‘파’ 반음이 반복되는 심플하면서도 섬뜩한 소리.

이제 더 긴장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과소평가고 오판이었다.

소름이 오소소 저스티스 리그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말도 안 돼!’

리믹스한 OST가 멎고 곡이 다시 후렴으로 돌아온 순간, 관객석에 앉은 그는 깨달았다. 그들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가사에서 말하는 ‘그것’.

마주치면 놀랄 만한 포식자, 물살을 헤치고 다가오는 정체 모를 바다 괴물.

바다의 맹수. 직관적이고 단순한 공포. 고전적인 괴수.

그러니까, 노래 속 ‘나’의 정체는…….

경고 경고 일일구 일일구

떠나라 전화해 일일구

삐뽀 삐뽀 위험해 위험해

도망가 여기는 위험해

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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