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5화
13. Cherry Bomb(4)
* * *
서난영의 성격에 관해서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의헌은 김지상을 잘 꿰뚫어 보는 편이었다.
김지상이라는 사람의 됨됨이는 정의헌이 파악한 면모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언젠가 이렇게 정의 내린 적 있지 않았는가.
‘얌전하게 생겨서 독설가, 차가운데 착한 놈.’
‘선을 그어놓고 사람을 대하는 타입, 선 밖의 타인에게는 절대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로 정의헌이 김지상과 교류하며 지낸 시간은 약 사 년. 마지막 반년은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하였으므로 사실상 삼 년 반이었다.
길다고 하면 길지만, 어떤 의미로는 짧을 수도 있는 기간이다.
아무튼 홀로 활동한 미래에서 김지상은 이렇다 할 새 친분을 만들지 않았으며 예민하고 섬세한 ‘선 안의 모습’을 좀처럼 남에게 보이지도 않았으니, 정의헌의 통찰은 단기적인 만남치고는 제법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까칠함, 시큰둥함, 냉소적인 로우 텐션.
김지상 본인은 스스로의 성격을 ‘원래 그렇게 되어먹은 것’ 정도로 취급했으나, 사람의 성격은 대개 천성과 큰 관련이 없고는 하다.
그보다는 자라온 환경이 성격에 영향을 준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많은 사람의 경우처럼.
‘저 연습생 계약하려고요.’
김지상은 같은 그룹 안에서 유일하게 성인이 되어 연습생으로 합류한 멤버였다.
스무 살 겨울 연습생 계약, 스무 살 여름 아이돌 데뷔.
공부를 더 해서 더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어보겠다고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연습생?’
‘아이돌이요.’
삼 년 전 어느 날 저녁 밥상머리 앞에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김지상은 경악보다도 경멸에 가까운 반응을 받았다.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예상은 했으나 예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날 김지상은 제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늦은 시간임에도 집 밖으로 나갔다. 공원 벤치에 삼십 분쯤 앉아 있다가, 고등학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잠시 너희 집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난생처음 ‘개인적인’ 부탁을 들은 친구 녀석이 화들짝 놀라 답했다.
[너 무슨 일 있냐]
김지상은 질문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가도, 정리가 되지 않으니 의욕이 시들해졌다.
[집 분위기 안 좋아서]
기어코 전송한 답 메시지는 그 수준. 설명은 한껏 절제된 채였다.
말할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때 문자를 받은 친구에게도 구구절절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말하기 싫었던 것뿐이다.
저를 보는 시선이 변하는 것도 소문이 날 것 같은 불안감도 모두 싫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좋은 결과가 기대되지 않았다.
말을 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기분은 싫은 이유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그는 조금 더 고민한 끝에 말을 바꾸었다.
[아니다 들어오라고 하시네 미안]
그리고 어둑어둑한 한밤중에, 아무도 부르지 않은 집으로 되돌아갔다.
‘꿈도 꾸지 마라.’
종합편성채널 보도국장인 김지상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업계를 잘 알거나 걱정이 되어서 말리는 태도는 아니었다.
‘성공이 쉽지 않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도 금방 잊히는 곳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 봤자 망신이나 당하지.’
그보다는 연관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얼굴에 감히 먹칠하지 마라, 하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아버지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끝으로 안방에 들어가시고 조금 뒤. 어머니가 조용히 나와 둘째 아들을 불러내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자식이 시간을 몇 년이나 낭비하겠다는데 허락해 주는 부모 없어.’
‘…….’
‘영 고집부리고 싶다면 해봐라. 네 인생이니까. 그렇게 후회도 해보고 하는 거지.’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후회할 것이다.
그 저주 같은 말은 삼 년이나 그의 등 뒤를 망령처럼 쫓아다녔다.
그 말마따나 정말로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룹 활동을 삼 년이나 했음에도.
‘너라면 그런 방송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거야, 지상아.’
올해 봄 매니저팀 팀장님의 말씀. 하지만 김지상은 그 말에 설득되어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에 출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세 살 많은 형이 군을 전역하더니 이제는 해외 유학에 관심이 생겼단다.
삼수에 반수로 수능을 네 번이나 본 사람이, 이제 와서 또.
어처구니없는 장남의 결심을 부모님이 다시금 지지해 주는 것을 보며 김지상은 ‘서바이벌 참가’ 결심을 굳혔다.
‘반대하신 이유가 다른 게 아니었구나. 내가 공부하라는 말을 안 들어서, 시키는 대로 안 해서……. 그게 싫으셨던 거네.’
계기는 심술이었고 반항심이었다.
하지만 점점 오기가 생겼다.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저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임한 것은 그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적이 사방에 도사릴 줄도 몰랐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여기까지 쫓아올 줄은 더더욱 몰랐지만.
그래도 김지상은 불평 없이 이를 악물었다.
한계 이상으로, 더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야지.’
동시에 그는 한편으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안한 상태였다면 제작진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무너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에게 묘한 힘이 되어준 것은 그와 같은 처지에 처한 이들이었다.
단순히 같은 상황인 게 아니라, 비밀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마음이 편했다.
바보처럼 우울하게 굴어도 누구도 비웃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농담을 나눈다.
‘혼자였다면 그렇게 못 해……. 아니, 안승준이랑 둘만 있었어도 못 했을걸.’
그 존재감을 깨달아서일까, 이번에는 솔직히 이야기해 봤다.
남들에게 정말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주제지만……. 상대의 반응이 궁금했다.
김지상으로서는 정의헌이 별일 아닌 것처럼 웃고 넘겨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의헌은 무언가 혼자 생각하는 것처럼 조용히 있다가 난데없는 선택을 제시해 왔다.
“음……. 따뜻한 위로와 차가운 위로가 있어. 뭘 들을래.”
“……둘 다는 안 돼? 따뜻한 것부터.”
“불안할 수 있는 마음은 이해해. 그렇지만 나도 있고, 승준이도 있으니까 같이 잘 이겨나가 보자. 힘들 때에는 부디 의지해 줘.”
시키는 즉시 정의헌은 따뜻하다 못해 민망한 말을 해주었다. 도덕 교과서 읽듯 또박또박.
“차가운 건.”
“너는 성인이고 직업 활동도 하고 있으니 부모님의 간섭 같은 건 사실 좀 무시하고 살아도 돼…….”
“짜증 날 정도로 중간이 없다…….”
충격적으로 김이 샌다.
둘 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 같기는 한데 오히려 그래서 어이가 없었다.
“됐어……. 알아서 이겨낼게.”
“우리 지상이 다 컸다, 다 컸어.”
속없는 칭찬에 김지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았지만, 뾰족한 시선 따위 정의헌은 웃음으로 튕겨내었다.
김지상이 먼저 투덜거리며 슬슬 나가자고 했다. 나가서 연습이나 하자는 정의헌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괜찮은 건가…….’
김지상은 생각했다. 그래서 괜찮아진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확실함에 휩쓸리는 것도 이제 싫지만은 않았다.
물살 속에 허우적거리더라도 ‘야, 우리 지금 수영하는 것 같다’고 실없이 웃을 사람이 옆에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 * *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저스티스 리그, 줄여서 ‘저리’. 드디어 정의헌과의 일방적 권태기 극복하다.
그래. 기어코 최애를 잊지 못하고 그 얼굴을 보러 왔다. 마침 ‘2차 데스 매치’ 방청까지 당첨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의헌과 스테리나인을 데뷔 때부터 좋아한 최애 위주 그룹 올팬으로, 앞서 최애의 오디션 서바이벌 방송 출연에 큰 상처를 입고 공개 사진 계정에 ‘Rest’를 공지한 후 비공개 계정으로 숨어 들은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온라인은 물론이고 회사에서까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하는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라는 프로그램 탓에 최애 소식을 지나치게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고……. 중간의 많은 일 생략. 이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잘 되려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섭섭하고 실망했는데(팬질하며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이너스 플로우를 타고 우울해하는 것은 그녀 성격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지금은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마음을 인정한 그였다.
〈Run and Run〉 활동 이후 처음이므로 대략 3개월 만이다.
‘저, 정신없어…….’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들어가는 인원은 단 오백 명에 미니 팬미팅이 있는 날도 아닌데 녹화 스튜디오 앞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정의헌 슬로건 무료 나눔 구역도 겨우 찾아냈고 개인정보 확인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다.
내성적이고 행동 느리고 체력도 없는 저리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정글이었으며, 그는 점점 서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혜주는 왜 신청하자고 해놓고 혼자 미끄러진 거냐고…….’
지인인 밀월, 윤혜주가 제안한 덕분에 신청한 방청인데……. 그는 지금 보다시피 혼자다.
밀월이 들으면 자기가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냐고 억울해서 곡을 할 만한 발상이었다.
“방청객 입장하겠습니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 오 분, 방청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절차를 밟고 그는 좌석에 앉아 기다렸다. 스탠딩 존? 몇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지 않나.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급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잠잠해지더니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무대 조명이 켜졌다.
“안녕하세요, 후원자 여러분. ‘아레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대 중앙에서 걸어 나온 MC는 짐짓 웅장한 멘트로 방청 규칙을 소개하며 스포일러나 카메라, 투표 관련 주의사항을 고지했다.
저리는 귀로 사회를 들으며 머리로는 물품보관함에 이천 원 내고 보관해 둔 자신의 카메라를 떠올렸다. 굿즈를 만들거나 사진 데이터를 팔 용도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닌 그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카메라를 들고 올 배짱도 만용도 없었다.
“오늘은 총 아홉 팀이 경연하며, 세 가지 테마에 세 개 팀이 이미 배정된 상태입니다.”
한 팀에 일곱 명인가. 그저께 방송한 탈락자 발표식의 기억을 상기하며 저리는 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명심하세요, 한 테마마다 1등, 2등, 3등 무대를 골라주시는 겁니다! 스위치가 리셋되기 전에 저희가 알려드릴 거예요.”
MC의 목소리는 경쾌했고, 기대감에 젖은 방청객들은 신이 나 MC의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호응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입장하며 받은 투표 스위치를 손에 꾹 쥐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곧, 본다. 무대 위 최애를.
‘얼마나 잘할까?’
그는 정의헌에게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다.
더 빡센 거. 더 미쳐 날뛰는 거. 〈늑대의 시간〉보다도 멋있는 거.
‘팀원들 맞춰주지 말고, 더 욕심내서!’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것이 제일 잘 어울리니까.
그런 것을 제일 잘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