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54화
13. Cherry Bomb(3)
그러니까……. 이건 그 일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미래, 대충 ‘1회차’ 인생 때.
김지상이 〈데프아〉 종영 후, 스테리나인을 사유 무통보 탈퇴하고 나를 포함해 멤버들과 인연을 끊은 일.
나는 그 원인을 밝혀내거나 사건이 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 〈데프아〉에 연습생 신분으로서 출연했다. 출연 사유가 백 퍼센트 김지상은 아니어도 얘가 아마 절반 이상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왠지 연재 소설 50화 분량만큼 오랜만에 상기하는 기분이지만, 계속 신경은 쓰고 있었다.
‘시기는 딱 맞아.’
다시 1회차 안승준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첫 번째 조건은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한국에 없을 때’.
멤버들은 이번 합숙 시기 도중에 출국할 거다. 돌아오는 것은 10월로 달력이 넘어갈 때쯤. 넉넉하게 잡아서 한 달 정도 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안승준과 김지상이 싸워서 사이가 멀어졌을 때’……. 그것도 꽤 심각하게 싸웠을 때.
안승준은 계기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둘이 심각하게 싸우고 며칠이나 화해하지 못할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이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비약인가.’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자. 비약이더라도 이 정도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김지상이 탈퇴한 일에 류희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안승준의 증언에 의지해 사건을 풀어가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둘 사이가 나빴다고 해도 연습생 대 연습생의 갈등이지 않나.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했을 수는 있어도 그 결론이 그룹 탈퇴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만약 방송 관계자에게 직접 〈데프아〉 자진 하차를 권유 등의 압박을 받았다면, 적어도 스케일 면에서는 아귀가 맞는다.
‘그런데, 잠시만. 결국 안승준이랑 김지상 둘 다 〈데프아〉에서 최종 10명 데뷔조에 들었잖아.’
그렇다는 건 자진하차 요청을 듣지 않았다는 거고, 이 말인즉 어나더뮤직이 KMC의 압박이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건데.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듯한 오싹한 기분에 나는 다급하게 옛날 1회차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 바보인가?’
그리고 깨달았다.
스테리나인을 포함해 어나더뮤직 연예인들은 〈데프아〉 이후 KMC의 방송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한 번도 출연한 적 없다는 것을.
KMC가 〈데프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당시에 어나더뮤직 연예인 중 제대로 활동기인 아티스트가 없었어서 몰랐다.
솔로 가수 선배님은 예능 출연이나 음원 발표만 하고 음악방송을 안 돌았고, 바로 위 보이 그룹은 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에, 우리 그룹은 결원을 픽스하지 못해 새로운 활동을 준비할 수 없었으므로…….
‘진짜 없다!’
되짚어보면 그 몇 개월 동안 우리 회사에서는 딱 한 명만이 음악방송 활동을 했다.
선배 보이 그룹 멤버의 솔로 활동이었는데, 디지털 싱글로 음원만 가지고 한 주만 음악방송을 돌았다.
그리고 그때 방송 목록에는 KMC의 〈라이브 뮤직 채널〉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딱 〈뮤직 채널〉만 빠졌다.
추가로 KMC의 연말 무대 〈뮤직 채널 플러스 콘서트〉에도 어나더뮤직 소속 아티스트는 아무도 출연을 못 했다.
회사 분들이 괜히 KMC 망했을 때 그렇게 좋아한 게 아니었구나. KMC가 남 괴롭힌 일이 너무 많아서 생각도 못 했다.
‘그래, 받았구나. 그 불이익. 그러면 김지상이 그룹 때려치울 이유는 또 뭔데.’
슬슬 머리에 과부하가 오는 기분이지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건……. 아, 하나 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작가님이 내게 합의를 걸어오며 하신 말씀이 그때 떠올랐다.
‘방송을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 멤버 두 명은 살려주겠다’라는 말. 실은 은근히 미심쩍었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 이 조건으로 흔들릴 사람이 어디 있냐…….’
나나 당황하지. 보통 사람들은 ‘친구 대신 네가 포기해라!’라고 말하면 코웃음이나 칠 거다.
다시 말해 작가님의 요청은 지나치게 내 성격이나 특징에 맞춘 티가 났다.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면 안승준에게는 안승준과 어울리는 제안이, 김지상에게는 김지상과 어울리는 제안이 들어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무난한 멘트를 생각해 보자면.
‘둘 중 한 명은 살려줄 테니, 둘이 합의해서 정하라고 통보했다든가?’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안승준과 김지상이 크게 다툰 것도 이해가 된다.
김지상이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안승준이 그 모습에 화가 나서 폭언을 하든 뛰쳐나가든 흥분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안승준 입장에서는 그룹을 위해 방송에 나왔는데, 멤버들도 그걸 몰라주고 같이 나온 애도 약한 소리를 하니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이후 멘탈이 터진 김지상이 기어이 안 하던 짓을 하고 말았다…… 는 어색한가? 아무튼.
‘둘이 싸운 이유 나한테 안 알려줬잖아. 본인이 잘못한 걸 알아서 숨긴 거 아니야?’
아니면 자신의 분노가 김지상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계산 오류와 정신승리 사이의 무언가를 저질렀을 수도 있고.
그 이상 가면 추측도 아니고 상상의 영역일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해두고 접자.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니까, 단지 결과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거니까.
“너희 윤아 작가님한테 무슨 얘기 들었는지 다 털어놔 봐.”
수습이 우선이다.
지금 우리 세 사람은 구내매점 옆 창고 겸 다용도실에 모여 있다.
합숙도 벌써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라, 녹화의 사각지대가 슬슬 소문으로 돌고 있거든. 그래서 주워듣고 편승했다.
손바닥만 한 공간,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 어두운 천장 조명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까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엄숙한 분위기를 배로 불려주는 양옆의 비장한 표정들에게, 나는 먼저 내가 알아낸 것들부터 고백했다.
“일단 나는 자진 하차 권유였고, 이런 제안은 우리만 받은 것 같아.”
조금 전 채호원을 찾아가서 슬쩍 떠봤는데 무슨 일인지 전혀 짐작도 못 하는 것 같더라고.
“나도 자진 하차하라는 얘기였어.”
“나한테는 멤버들한테 가서 하차하라고 설득하라던데?”
역시 내용이 다르군. 김지상은 지금 인기가 많아서 아예 방송에 못 나오게 하기에는 아까웠나 보다.
“대답은.”
두 사람이 유사한 박자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김지상도…….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고 있다.
이건 내 추측이 틀려서일 수도 있고 미래가 바뀐 것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따로 정리하자.
“잘했어.”
그전에 피드백부터. 우리끼리 의견이 갈렸다면 해결이 더 어려웠을 테고, 말랑말랑하게 생각해보면 제법 기특하고 고맙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 보고 싶다는 각오를 한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확인했다면 나도 불안할 게 없었다.
“그런데,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안승준이 카메라가 달려 있을 법한 자리를 힐끔 보며 물었다. 당연하지만 카메라는 없고, 시선 끝에는 빈자리뿐이었다.
“편집 이상하게 될 건 개인적으로 각오하고 있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웬만하면 어디 다닐 때도 두 명 이상 붙어 다니고.”
“그 정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합숙 끝나면 회사에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말해서 될까? 마음대로 결정했다고 뭐라고 하면 어떡해?”
“어떡하긴. 현장 직접 겪고 판단했다는데 어쩔 수 없는 거지. 우리가 나쁜 짓 했냐.”
안승준의 연이은 질문은 그 말로 물리쳤다. 문답을 김지상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냥 세상에 나쁜 놈이 너무 많은 거고, 그 나쁜 놈이 우리 좀 괴롭힌 거야. 걱정하지 마.”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하니 내 정신도 가다듬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혼날 가능성……. 사실 없지는 않다. 힘내자.
면담한 시각이나 대화의 디테일 등 몇 가지 정보를 추가로 크로스 체크 해본 뒤, 우리는 해산했다.
지금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는 데다가, 당장 사흘밖에 안 남은 경연 무대가 더 중요했으므로.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가려는데……. 문득 뒤에서 김지상이 나를 불렀다.
“의헌이 형, 잠깐 좀.”
“어? 왜 나 빼?”
내가 대답하기도 전, 안승준이 신속하게 되물었다.
“형이랑 관련 있는 거라서. 끝나면 말해줄게.”
“쳇…….”
김지상이 잡아떼자 승준이는 섭섭한 티를 팍팍 내면서도 더 말은 못 하고 먼저 다용도실을 나섰다.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잡는지 내적으로 덜덜 떨고 있는데 지상이가 표정 없이 문을 닫고 돌아왔다.
“무슨 일인데. 나 왜?”
“응? 그건 핑계지. 할 말 있어서.”
“너는 안승준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 것 같다…….”
김지상은 내 코멘트까지 뻔뻔하게 무시하고 선반이 없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안승준 앞에서 얘기하기에는 좀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가족 일이라.”
“걔는 남이 가정사 신경 써주는 걸 더 불편해할 것 같은데.”
김지상이 짧게 침묵했다. 안승준 집은 재혼가정인데, 그래서 지상이 입장에서는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보낸 애를 다시 부르는 것도 미묘해서……. 나는 말부터 해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그……. 전화를 받았어.”
지상이는 이어 자신이 작가님의 청을 거절하자 높은 직위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스피커폰으로 혼이 난 일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본래 김지상은 본인 가족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나로서도 가족 구성원과 그 직업……. 그 정도밖에 모른다.
‘방송 일 하시는 아버지, 무슨 강사이신 어머니, 나이 차가 약간 나는 형…… 이었나.’
가족과 사이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서 딱히 물어본 적도 없다. 어련히 때가 되면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때’가 지금인 것 같았다. 김지상은 망설이는 듯 입술을 어물거리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난 일에 부모님이 엮이는 게 좀 불편해.”
그건……. 나도일걸? 웬만한 사람이라면 보통 그렇지?
하지만 김지상의 불편함이란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렸다.
“반대를 조금……. 많이 하셨거든.”
“방송 나오는 걸 반대하셨다고?”
“아니, 아이돌 되는 거.”
그 말을 듣자, 번쩍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김지상의 목소리가 있었다.
〈데프아〉 사전 인터뷰에서, 지상이가 했던 말.
‘제가 실패할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아저씨 아주머니께서는 자식에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러니까 네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던 사람이.”
“……뭐, 그런 거지.”
김지상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삼 년 전 연습생 시작한 게 처음 반항해 본 건데.”
“…….”
“이번이 두 번째야.”
지상이의 까만 눈동자에서 희미한 불안이 읽혔다.
어떻게 두 번째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나로서는 결심의 뿌리를 짐작할 수 없었다.
“아……. 어떡하지? 이래도 되나?”
김지상이 혼잣말 같은 투로 헛웃었다. 냉정하게 대책을 생각하고 지른 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겁부터 먹지는 않았다는 거잖아.’
그래서 내게는 오히려 좋은 신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