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45화
11. WONDERLAND(3)
연락이 올 줄은 알았다.
미리 기자님이 UIT엔터테인먼트 측에 메일 주소를 알려줘도 되냐고 질문해 왔고, 그에 우리가 허락했으니까.
메일 본문도 예측 그대로. 기절초풍할 만한 반전은 없었다.
- 현재 김병석 연습생도 반성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소속 연습생의 과거 행적을 철저히 확인하지 못한 점 역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김병석이 고등학생 시절 저지른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만나 뵙고 사과를 하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저쪽에서는 제보자를 일반인으로 알고 있을 텐데도 글은 낮잡아보는 투 없이 공손한 문체로 적혀 있었다. 그 톤 앤 매너만은 의외였다.
‘발뺌을 안 하네.’
증거가 지나치게 다 나와 있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연습생이라서 저자세로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기본 윤리는 지키려는 회사일 수도 있고.
“이제 플랜을 다시 세워보자.”
“이거 형 나름의 ‘어떻게 하고 싶어’의 활용형인 거지? 똑같은 말만 계속하면 이상하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냐고.”
메일을 받았을 때 마침 회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서난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저쪽 입장에서는……. 잘 마무리하고 하차하려는 것 같은데. 형 보기에는 어때.”
“어,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버틸 생각이었으면 입장을 더 빨리 내야 했어.”
서난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이 이렇게 지천으로 퍼졌는데도 묘하게 태도가 침착했다.
평소에 느긋하고 엉뚱한 성격이라는 건 알지만, 무서웠다는 말을 들은 이래로는 나도 계속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쩔래. 난 네가 굳이 직접 얼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조심스레 권했지만, 서난영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난영이가 내 핸드폰으로 메일 내용을 다시 천천히 읽어본 다음 대답했다.
“아니야……. 만나 볼게.”
그렇게 말하는 서난영은 제법 괜찮아 보였다.
* * *
시간은 또 흘러 금요일이 돌아왔다. 오늘 〈데프아〉 4회 방송이 끝나면 ‘첫 번째 데스 매치’ 투표가 열리고, 주말이 지나면 탈락자 발표 녹화와 더불어 세 번째 합숙이 시작된다.
인터넷에는 김병석이 방송을 자진하차 할 것이라는 찌라시가 나돌고(이영하가 모니터링하고 알려줬다), 김병석의 소속사 UIT엔터테인먼트와 일정 조정이 다 되어 서난영은 김병석을 만나러 갔다.
우리 팀 무대는 3회차에 이미 방송된 만큼 어차피 이번 주 회차에 김병석 분량은 없을 테다. 다만 소문을 듣기로는, 투표 혼선을 문제 삼아 방송국 측에서 UIT엔터테인먼트를 살짝 압박했다는 것 같다. 되도록이면 빨리 결정하라는 식으로.
‘그래서 UIT도 서둘러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고, 우리야 뭐 빨리 끝나면 좋으니까.’
서난영은 상대 측에 자신이 연예인이라는 사실은 따로 밝히지 않았으나, 법률대리인이 있음을 알리고 연락을 위임한 뒤 만남을 가질 때에도 그와 대동하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대리인이란 당연히 어나더뮤직에서 붙여주신 분이다.
‘그것도 지연에 혈연으로.’
우리 회사와 (대표 사이의 혼인으로서) 연결된 법무법인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고생해 주셨다.
서난영이 그쪽으로 가든 김병석에서 우리 사옥으로 오든 소문이 새어 나갈 가능성이 있기에 약속 장소는 법인 사무실로 잡았다는 듯했다. 다시 말해 서난영은 회사 직원 몇 분이랑 오붓하게 회사를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아니, 남겨졌다는 말은 부적절한가?’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난영이도 딱히 원하는 눈치가 아니었고.
뭐,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나는 지금 회사 휴게실에 앉아 밥 먹고 커피나 마시는 중이었다.
오늘의 점심 친구들은 이영하와 김지상. 안승준은 아직 안 왔고, 다른 애들은 투어 콘서트에 사용할 게 있어서 녹음하러 갔단다.
“요즘 정의헌, 식단 꽤 빡세게 하네.”
“어. 밀가루 안 먹는 것만으로 사람 성격이 여기까지 나빠질 수 있구나……. 생각 중.”
이영하가 포장 용기와 포크만 남은 내 닭가슴살 샐러드를 보며 한마디 하기에 피폐하게 대꾸해 줬다.
근육 붙일 때나 앨범 활동할 때에도 이렇게 안 먹고 감량하지는 않는데, 요사이 어디서 뭘 하든 내 모든 행적이 사진과 영상과 움짤이 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대충 그런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 잡담을 잠시 나누다가, 화제가 슬슬 옆으로 빠졌다.
“서난영은 언제 와.”
해외 투어 멤버들의 단체 연습 스케줄 이야기를 하던 김지상이 문득 그 난영이 얘기를 꺼냈다.
얘도 지금 물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대충 안다. 김지상뿐만 아니라 단톡에 있는, 막내를 제외한 멤버들은 전부 공지를 받았다. 회사를 끼고 진행하는 일이기도 하고, 서난영의 의사도 멤버들에게는 알리고 싶어 하는 쪽이었다.
그러니까 서난영은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 갑작스럽게 비밀을 공개했다.
데일리엔터테인뉴스가 기사를 최초 보도했을 때.
서난영은 뉴스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하면서 딱 한 줄로 말했다.
[스테리나인 서난영: 이거 제보자 나야]
지나친 생략과 급발진에 멤버들은 즉시 애정 어린 비난을 쏟아냈다.
[스테리나인 안승준: ?]
[스테리나인 안승준: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미친]
[스테리나인 김지상: 대체 뭐가 문제냐 너는]
[스테리나인 강주찬: 진짜 넌 평생 면허 딸 생각은 하지도 마라]
평소 단톡에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김지상까지 불러내고……. 감동적인 동갑내기들의 우정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그로부터 이틀 후 오후, 연습실에서 이루어졌다.
여덟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난영은 꽤 담백하게 고등학생 때 이야기를 해주었다. 뒷사정을 알리자 안승준은 통쾌하다고 좋아했고, 김지상도 티를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기쁜 기색이었다.
아무튼 김병석 소속사에게서 메일이 온 날 우리가 모여 있었던 까닭은 이 일 때문이었다.
‘이 틈에 타임라인 정리를 한번 하자면.’
8월 마지막 주 금요일: 〈데프아〉 3회 방영. 안승준 무대는 순서 밀려서 ‘여름 청량’ 콘셉트면서 기어코 9월 방송 확정. 자정 무렵 서난영 준비 완료.
주말: 나, 서난영, 회사 직원분들이 모여서 계획에 관해 이야기함. 어나더뮤직 고소 현황 공지. 기자님께 연락. 온라인 조회 수 심사를 위해 플레이피 사이트에 ‘1차 데스 매치 풀캠’ 영상이 (아직 방송하지 않은 팀까지) 일괄 공개됨.
월요일: 나는 이날 저녁에 〈데프아〉 스케줄이 있어서 촬영하러 갔다(라이벌 경기 우리가 이겼다더라). 기자님은 취재 중.
화요일: 학교폭력을 화두에 올린 데일리엔터테인뉴스의 최초 단독 보도. 서난영이 멤버 단톡에 제보자 A씨 정체를 공개.
수요일: 인터넷 난리 났음.
목요일: 연습실에서 멤버들끼리 대화. 김병석 소속사가 우리에게 메일을 보냄.
9월 첫째 주 금요일: 오늘. 서난영이 법무법인 끼고 김병석 소속사와 담판 지으러 감.
‘……이 정도가 되겠네.’
바쁘게 돌아간 일주일이지만, 사실 하나하나 셈해보면 기적적으로 일정 주차가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다른 것보다 뉴스 기사가 〈데프아〉 촬영 스케줄 후에 나와서 다행이었다. 기사가 내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니, 기사 공개 이후에 나서 촬영했다면 주변 눈치가 약간 보였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날, 즉 월요일 촬영은 1차 데스 매치 경연 승패 발표를 위해서였다. 탈락자 발표 말고 경연 성적 발표만.
동영상 조회 수, 추천 수, 현장 투표수 집계를 완료해 라이벌 대전의 승패가 공개되었고…….
‘그냥 이겼지 뭐.’
김병석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은은하게 어깨가 올라가 있었고, 송수민은 부담감을 많이 느꼈는지 결과가 발표되자 눈물까지 터뜨렸다.
사족으로 주태훈이라는 팀원 형은 이기고도 그냥 조금 억울해 보였다. 하긴 이 형은 방송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었을 텐데, 제작진이 김병석 얘기만 꼬박 두 주를 방송에 내보냈으니…….
채호원은 결과를 접하고 아쉬워 보였지만 나중에 와서 내 기분을 살폈다. ‘너 악편 당했던데 괜찮냐’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내가 너무 괜찮아서 투덜대며 떠나갔다.
아, 김지상은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안승준도 의외로 선방했다. 김지상은 팀 조합이 좋았고, 안승준 팀은 안승준이 캐리한 게 아마도 맞을 듯싶다.
패배한 팀 멤버들은 ‘후원자’ 분들께 보낼 영상 메시지를 따로 찍고, 그렇게 월요일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이 경연 승패 공개는 오늘 촬영분 끝에 덧붙여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시 오늘로 돌아와 보자면.
“출발한 지 이제 겨우 두 시간 되지 않았어?”
“두 시간이면 슬슬 끝날 때 아닌가.”
“잘 끝내고 오려나 모르겠네…….”
두 사람이 잡담을 통해 염려를 내비쳤다. 김지상은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그 내용에서 초조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영하가 허공을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중얼거렸다.
“그쪽에서 먼저 숙이고 들어오는 게 신기하긴 해.”
“회사 이미지라도 챙기려는 거겠지. 방송 나온 UIT 다른 연습생도 있으니까.”
“진행되는 거 보니까 하차하면 전속 계약도 해지할 각이더라고.”
나도 대화에 한마디 얹었고. 사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문제시되는 것은…….
나는 다 마신 커피 컵 바닥에 남은 얼음을 와작와작 씹어먹고는 덧붙였다.
“난영이 마음이 어떨지가 제일……. 좀,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시간이 지난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당했는데 가해자 얼굴 보고 얘기하기가 쉽겠나.
내가 소리 낮춰 말하자 김지상이 나와 이영하 사이의 분위기를 조심스레 살피더니 질문했다.
“그렇게 심했어?”
“좀 그랬지. 자세한 건 본인한테 물어봐.”
“솔직히 진짜 심했어……!”
김지상은 스무 살에 어나더뮤직 연습생으로 입사했고, 그렇다는 것은 그때 서난영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얘는 그때 상황을 이제야 처음 알았겠지만, 연습생으로 오래 지냈던 나와 이영하는 입을 모아 답할 수 있었다.
자신감 없는 태도라든가 사람과 어울리기를 힘들어한다든가, 후유증으로 드러나는 피해도 있었고……. 멍들고 까진 상처 때문에 여름에도 긴소매를 입고 다녔으니까. 김병석 무리가 애한테 손댔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혈압이 오른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열받는 것은 마찬가지인지, 소리를 높였던 이영하가 손부채질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원래도 목소리가 얇은 편인데 흥분해서인지 더 하이톤이 되었다.
“난영이 성격이 은근 허술하잖아……. 몰라,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와야 되는데.”
“그러니까. 걔 안 그럴 것 같아서 좀 여려.”
“……난 스물둘이나 먹은 애를 여리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아.”
형들이 걱정하고 계시는데, 서난영 동갑 친구 되시는 분만 단호하게 반대했다. 우정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 * *
한편 서울 모 법무법인 사무실에 도착한 서난영.
멤버들의 원격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사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과장 한 방울을 더해 말하자면!
……몹시도 멀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