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44화 (4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44화

11. WONDERLAND(2)

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자, 조금 들뜬 듯한 서난영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 형, 주말에 시간 돼?

타이밍이 좋다. 동생을 먼저 손에 우산 들려 집에 들여보내고, 나는 계단 쪽에 남아 통화에 응답했다.

“어떻게 됐어.”

- 다 찾았고……. 필요한 거 프린트도 해뒀어.

“잘됐다, 고생했네. 서울 올라와서 연락해.”

- 으응.

서난영의 대답 뒤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직접 질문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난영아.”

정은하가 말하기를, 피해자의 사정은 또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이래저래 따져보자면 나는 이 일에서 관련 없을 테니까. 편집 이슈는 김병석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작진의 소관이다. 그러니까 난영이한테 내 일 처리 방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무쪼록 무신경한 행동이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만 물어볼게. 어떻게 하고 싶어.”

기자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하는 방법은 이미 서난영에게 설명한 바 있다. 지금 내가 묻는 것은 그 문제가 아니다.

“이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는데……. 너는 복수를 하고 싶은 거냐.”

그 이상으로, 추가적인 액션을 바라는지 여부.

스피커에서 ‘아……’라고 숨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서난영은 싱거운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가 그친 심야에 걸맞은, 축축하고 깔끔한 수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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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데프아’ 김병석 태도 논란… “학폭 의혹” 새로이 점화

KMC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김병석(21세•UIT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의 방송 내 발언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예의 없는 행동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논란이 되고 있을 때, 데일리엔터테인뉴스는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나는 김병석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 A씨는 구체적인 사연을 밝히지 않고, 김병석의 ‘학폭위’가 열린 자료와 생활기록부, 김병석이 교복을 입고 흡연•음주를 하는 사진, 당시의 정신과•외과 내원 기록 등을 제출했다.

대개 연예인의 학폭 논란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폭로, 즉 피해자의 진술에 의지한다. 본래 ‘학폭’과 같은 수년 전 사건은 진술의 신빙성 검증이 어렵고, 피해 사례를 입증할 물적 증거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A씨가 제출한 증거는 명백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건이 ‘의혹’이나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예감한 데일리엔터테인뉴스는, 피해 사례의 사실 확인을 위해 김병석의 출신 고등학교를 찾았다.

다음은 (이름 혹은 성을 밝힌) 실명 제보자 12인의 증언을 정리한 내용이다.

@ 데일리엔터테인뉴스 = 손진형 기자

* * *

[단독] ‘데프아’ 학폭 제보자 A씨의 증거, 전문가 검증 완료… “합성, 위조 가능성 없다”

‘데프아’ 김병석, 빵셔틀, 새치기, ‘핫스팟’ 강제 사용, 휴대폰 훔쳐 유료 결제도… “학폭” 사례 분명해

[공식입장] ‘데프아’ 김병석 학폭+일진설 → 제작진 “소속사 답변 기다린다”

[스크랩] 김병석의 효명고 동창입니다.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ssulcast

‘데프아’ 김병석, 학폭 피해 추가 폭로 → 피해자 ‘2차 가해’ 위험 커져

[김기자의 이슈포커스] ‘데프아’ 학폭 논란… 여론은 어떨까 “제보자 A씨를 보호하라”, “가해자 퇴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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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건이 조금 커졌다. 그야 커질 줄은 알았는데 내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서난영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에게 정보를 풀었다.

몇 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데이터의 양과 질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안 터뜨리면 억울해서 어쩔 뻔했냐.

더불어 제보 연락은 몇 다리 걸쳐 메일 주소를 알아낸 척, 메일만을 사용했다.

‘전화 통화도, 대면도 하지 않았지.’

추적이 된다면 내 지인이라 내가 생일 모임에서 받은 연락처를 전해줬다고 하기로 말을 맞췄다. 어차피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아 지인이 곧 멤버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우니, 걱정은 미리 하지 말고 일이 틀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것이다.

기사가 나오기 전에 서난영과 함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실명 제보자 12인’도 대개 본인이 당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사람, 2학년이나 3학년 때의 급우, 그냥 같은 학교, 같은 학원 등등, 경우의 수 역시 다양했고.

‘스나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다행인 점도 있네.’

난영이가 덜미 잡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얘는 개명도 한 번 했고, 도중에 전학 가서 졸업 앨범에도 없고, 심지어 역변까지 했지만…….

만약 걸리게 되면 그때 가서 발뺌하거나 서난영이 하고 싶은 대로 진행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기사 외에 떡밥 던진 것도 잘 돌아가는 것 같고.’

대단한 건 아니고, 회사 홍보팀과 매니저팀 도움을 받아서 김병석이 학창 시절 SNS에 남긴 게시물 캡처라든지 몇몇 이미지에 타격이 될 만한 사진을 여러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살짝 돌렸다.

그 사진들은 서난영이 보존한 자료 중 일부였는데, 이런 자잘한 내용은 기자에게 넘기는 것보다는 커뮤니티를 사용하는 게 나은 것 같아서 그쪽을 통해 풀었다. 원래 SNS는 사적인 접점 없는 사람도 찾아낼 수 있으니 이런 익명 사이트에 곧잘 유출되고는 한다.

‘일단은 팩트와 물증 위주로 승부하기로 했으니까.’

더불어 자극적인 한편 와닿기 쉬운 사례 위주 게시물은 10대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비교적 객관성 있게 상황을 분석해 놓은 칼럼이나 뉴스 기사 등은 성인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에 확산해 화제의 크기를 눈덩이처럼 불렸고.

본격 바이럴이라고 부르기에는 주먹구구에 작은 규모의 활동이었지만 이슈는 나름대로 잘 번졌다.

‘서난영이 원하는 그림이 나왔을지 모르겠네.’

기사를 푼 것은 주말이 지난 뒤 화요일, 화제를 던지자마자 인터넷은 이 논란으로 불탔다.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 지나자 상황이 조금 웃기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미리미리 자진하차 권한 정의헌 재평가 시급 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솔직히 저저번주에 쟤한테 어그로끌려서 아기 욕먹은거 생각하면 개속상해 진짜 깡패가 누군데 ????

- 진짜 당장 주말만 해도 김병석 사이다 실력캐라고 올려친 애들 많았는데 ㅋㅋ 까놓고 말해서 실력도 별로지 않나

- 병석아 ✌도저히 안되겠으면 자진하차도 된다던데✌ 어떻게 생각해

- 미래를 예지하고 병석이 파트 다 죽여놓은 정의헌이야말로 팀과 방송을 위하는 참리더다...

김병석을 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쩐지 김병석과 대립했던 나랑 김지상의 이미지가 반대급부로 좋아지고 말았다.

이런 결과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좋은 게 좋으니까 뭐 잘되었나. 악편이 유쾌한 밈이 되다니 기분이 묘하군.

나는 은근슬쩍 그 흐름을 빌어 ‘썰캐스트’ 여론전에 올라탔다.

서난영은 끝까지 엑셀을 밟기를 원했고, 나도 이미지 수복이 되면 나쁠 게 없었으니까.

- 김지상 정의헌 둘 다 악편 맞지 증거 있음

글 업로드와 편집은 회사 영상팀과 홍보팀이 도와주셨다. 영상을 초 단위로 캡처해 ‘옥에 티’를 찾아내고, 자막이 잘못 들어가거나 음성을 합성한 부분을 짚어내고, ‘다른 날 촬영분을 이어붙인 것은 선 넘은 거다’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 순식간에 벽지 디자인, 신발 색, 옷 입은 거, 끝에 앉은 트레이너 의상까지 다 달라짐

그런데 저 체리본 쌤이 입은 옷이 언제 옷이냐면 2화에 입고 나온 옷임 (원래 1~2회 합숙 / 3~4회 합숙 따로임)

그니까 김병석이 다친게 3화 합숙때가 아니라 2화 합숙때 = 첫합숙때ㅇㅇ일수도 있다는거

2화에서도 김병석 어그로끈거 다음에 김지상 대답은 방송에 안나왔잖아 그냥 김병석 다쳐서 김지상이 한걸수도 있지

- 그리고 공개된 영상 다 보면 원래 싸비 파트는 리더가 다 하던데 정의헌 팀만 ㅅㅅㅁ이 함

(= 김병석 파트 잘라서 다른 연생 준 게 아니라 자기 파트를 다른 연생한테 줬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

나도 억측이고 넘겨짚은 거 아는데 지금까지 방송 편집이 논리적으로 앞뒤 안 맞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

진짜 있었던 사건을 ‘억측’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 꽤나 억울했지만, 글 반응이 나름대로 좋았다.

우리가 업로드한 글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되고 나중에는 ‘악마의 편집 논란’이라고 뉴스 기사까지 떴다.

- 진짜 제발 ㅠㅠㅠㅠㅠㅜㅠ 알아라도 줘 애들 옹호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 와 진심 개짜증나 ㅜㅜㅜㅜ 애들 가지고 뭐하는 거야 안 그래도 힘들었던 애들인데 의헌아 지상아 꼭 데뷔하자 ㅜㅠ

- 쓰니 정리 진짜 잘 했다 이게 어떻게 악편이 아니야 애들 맘고생 너무 심했겠다 ㅠㅠㅠ

- 개소름;; 진짜 트레이너 옷이 아예 다르네;; 본쌤은 매 촬영마다 옷 다 다르게 입고 오는데 제작진이 생각 없는것도 없는 거고 애 보내버리고 싶어서 억지 부린 것 같아 ㅋㅋ 대체 왜 열심히 하는 애한테 그러지 얘 팬도 아닌데 속 답답하다

- 아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구나 피디 ㅅㄲ 더 두고보면 흙을 빚어 인간도 만들겠네

그 와중에 나는 댓글 사이에서 이런 글도 발견했다.

- 정의헌 진짜 인성 개좋은데 방송에서 저렇게 나온 이유를 모르겠음 ㅠ 나 정의헌 동생이랑 친구인데 이 오빠가 비오는 날 동생 우산 챙기러 나와주고 우리 밥먹은 거 다 계산해주고 말도 스윗하게 하고 진짜 착했음 실물도 얼굴 진짜 요따만하고 키 엄청 크고 비율 장난 아님 그날 싸인받은 거 첨부함... ㅠ [사진_사인된_문제집_표지.jpg]

정은하는 자기 친구 혜인이가 저런 글 온라인에 익명으로 쓰고 다니는 거 알까…….

틈틈이 인터넷을 체크해 본 결과, 나는 추가로 김병석이 얻은 논란도 발견할 수 있었다.

- 너희 김병석 연습노트 이거는 봤어?

그 내용은 첫 번째 합숙에서 김병석이 제출했다가 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쓰이지 않게 된 창작 가사였다. 교복 치마 어쩌고 그거…….

이것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가 조금 복잡한데, 본래 〈데프아〉 공식 SNS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연습생이 합숙 도중 쓴 ‘연습일지’를 촬영해 소소한 콘텐츠로서 업로드해 주고는 했다.

한번 김병석의 연습일지도 언젠가 SNS에 게시가 되었고, 논란이 생긴 뒤 어떤 사람이 사진의 명도와 대비를 조정하고 색을 반전하고……. 아무튼 프로그램으로 만져서 무려 배경에 적힌 눌린 펜 자국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회상하자면 정확한 문장은 ‘Win Win 잘 봐 나의 폼 넘사벽, 교복 치마 펄럭 Shout out But 넌 오빠를 못 막아’였다.

- 눈을 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병석아... 너는 남돌 주 소비층이 누군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구나

- 댓글 내려보는데 이상한 애들 많네 상식적으로 다른 연생이 쓴 거겠어? 저게??

- 방송에서 안 쓰였다고 괜찮다고 하는건 뭐임 학폭범죄자 쉴드에 너희 인권 팔지 마

- 진짜 얘는 정신을 못 차렸네 사람 참 안 바뀐다 하차해

대한민국 네티즌의 집요함과 발언이 무시무시한 것과 별개로, 왜 싫어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처음 보고 눈살을 찌푸린 노랫말을 ‘주 소비층’이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건 김병석 업보다.’

물론 지금 상황은 업보가 아닌 게 없긴 하다만.

일이 크게 번져 김병석 이미지가 박살이 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니, 고작 몇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보 용도로 서난영과 함께 만들었던 임시 메일 주소로 새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 안녕하세요, 유아이티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입니다.

김병석의 소속사가 전송한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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