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43화
11. WONDERLAND(1)
걱정했는데! 걱정했는데……!
당사자는 인지조차 못 한 것을 괜히 안승준 혼자 화내고 불안해하고 신경 쓴 셈이 되었다.
“아니, 왜 밖이야? 방송 안 봐?”
- 보다가 나왔어. 뭐 문제 생겼냐.
“아니, 문제는 맞는데……. 아니, 무슨 일로?”
안승준은 현재 ‘아니’라는 도입 없이 문장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 왜 이렇게 흥분했어? 동생 학원 끝났는데 우산 없다고 해서.
“왜?”
- 진짜 왜 이렇게 흥분했냐. ‘왜’라는 건 뭘 물어본 건데?
그러니까 정의헌이 소리 내어 웃으면서 설명한 자초지종은 이랬다.
부모님은 지금 집에 안 계시고, 막냇동생은 일주일 동안 피곤했는지 저녁을 먹자마자 자기 방에서 잠들었고, 혼자 집에서 3회차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학원 간 첫째 동생이 우산이 없다고 톡으로 데리러 오라고 졸랐단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 사서 쓰고 오라고 했더니 빨리 오라는 말만 있고 이후 답이 없다나 뭐라나.
- 그냥 자기 학원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가 봐.
“형…… 을?”
- 어쭈, 내가 뭐 어때서. 나 요즘 완전 연예인이거든.
무심한 건지, 쿨한 건지, 다정한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건지……. 안승준은 혼란스러웠다.
그쯤 안승준은 주제를 돌려 조금 전의 방송 내용을 읊어주었다. 제작진이 정의헌을 어떤 이미지로 만들었는지 위주로.
- 이야……. 난리 났네.
“그렇다니까! 큰일이라고.”
- 알았다. 일단 회사에 연락 좀 해볼게.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무덤덤한 반응을 보면 역시 괜스레 걱정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승준이 다시 소파에 앉았을 때 정의헌 팀의 무대는 이미 전부 끝난 뒤였다.
‘반응이나 보자…….’
안승준은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 방문 기록에서 일전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찾아 터치했다.
무대는 일이 분 전에 끝난 듯했는데, 게시판은 여전히 그 반응으로 뜨거웠다.
- 정의헌 개사기네
- 너무 빨라서 제대로 못봤는데 방금 반바퀴가 아니라 한바퀴 반 돈 거지...? ㄹㅇ 그게 가능...?
- 와 현장 보고 온 사람들이 왜 다 정의헌 정의헌 했는지 알겠다...
- 이 노래 처음 들어보는데 되게 좋다!!
- 이 팀 컨셉부터 헤메코까지 대박인데 이거 편곡 누가 생각한건지 나옴?
단순히 칭찬하려는 발언도 보였고.
- 미친 무대 개잘해 그는 착한 독재자였습니다
- 아니 아까는 뭐야...? 했는데 솔직히 정의헌 얼굴 내 취향임...
- 뽑지말라고 홍보해놓고 이런 무대를 내보내면 어쩌란겨 ㅅㅂ ㅠㅠ
- 근데 난 중간에 싸비 파트 잘 교체한 것 같음 송수민이 소화 잘하기도 했고 이미지가 훨 어울림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조금 전의 험담을 무마하려는 발언들까지,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안승준은 또다시 혼란스러웠다. 논란이 떠오르는 동시에 가라앉고 있었다.
무대 하나로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건지 안승준으로서는 반신반의했으나, 당장 눈앞의 커뮤니티 반응은 서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번 회차 방송을 보고도 ‘그래도 잘생겼잖아’라면서 김지상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그건 잘된 일인데, 남 걱정할 때가 아닐지도.’
안승준은 깨달았다. 실은 깨달은 지 조금 된 일인데, 그쯤 되면 모를 수가 없었다.
〈데프아〉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데뷔 경력이 있는 연습생들의 상승을 배제하고 있다.
정의헌과 김지상은 본인 이미지와 실력으로 자력 구제를 하고 있지만, 안승준은 사실 그만한 자신까지는 없었다.
‘방송 분량 없이도 눈에 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지.’
그리고 그 몇 명 중 둘이 정의헌과 김지상이었다.
안승준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그 정도로 평가했다.
방송에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고 탈락하는 미래가 그의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려졌다.
지금도 팬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경력직 연습생’은 많았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
안승준은 본인의 소망이 ‘여기서 다시 데뷔하고 싶다’ 같은 간절함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런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을 수 있겠다고도, 그도 이따금씩은 생각했다.
그렇지만 안승준은 정말이지 혼자 낙오되고 싶지는 않았다. 정의헌과 김지상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두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자신도, 구질구질 아슬아슬하게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냥 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도 간절함이 될 수 있는 건가?’
생각하며, 안승준은 고개를 들어 다시 TV 화면을 보았다.
가족들이 방송 내용을 두고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그제야 귀에 들어왔다.
각자에게는 각자 다른 사연과 생각과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언제나.
* * *
[은하공주: 나 1층 김떡에 있어]
매니저팀 임정인 팀장님과 전화를 마치고 핸드폰에 새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떡’이면 ‘김밥떡볶이분식’ 가게를 말하는 듯했다.
안승준이 전화로 이야기해 주기는 했지만, 팀장님이 직접 확인한바 편집에 심각한 왜곡이 첨가된 듯했다. 첫 합숙 촬영분을 두 번째 합숙 촬영분에 합성하고 붙여서 이번 방송에 송출했다고 하니까.
팀장님은 내일 상황을 보고 고소 현황을 새로 공지한 뒤 (팬덤 여론을 먼저 가라앉히기 위함이다) KMC와 직접 컨택해 해명을 듣기로 러프한 결정을 내렸다. 후자는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시도해 본다는데 감사하고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영상을 확인하는 게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억지 편집은 대개 티가 나니까 대응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봐야겠지.
‘이건 제작진이 무리수를 두었다고밖에 못 하겠는데.’
영상 조회 수 두고 싸우는 건 개인전도 아니고 팀전인데, 여기서 팀 자체의 화제성을 올려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지금 ‘정의헌 대 김병석’이면 김병석 편드는 사람도, 내 편을 드는 사람도 〈늑대의 시간〉 영상을 스트리밍해야 한다. 영상 댓글에서 키보드 배틀을 뜬다면 당연히 영상 조회 수도 같이 올라가는 셈이고.
그리고 〈늑대의 시간〉 영상 조회 수가 높아지면 나도 김병석도 살아남아 다음 라운드에 확정적으로 진출한다.
‘이득 봤네. 머쓱하다.’
우산을 접고 학원 건물에 딸린 분식집에 들어가며 나는 머릿속으로 얼추 셈을 끝냈다.
직전 방송 내용이 엉망이었다 보니 동생 친구들 만나기는 조금 민망한데……. 은하가 알아서 나 변호해 주겠지?
분식집은 늦은 시간에도 은하 또래의 학생들로 가득했고, 정은하는 구석 네 명짜리 테이블에 자기 친구들과 모여 있었다. 후불 식당이기에 테이블 번호를 눈으로 확인한 뒤 애들이 주문한 몫을 대신 계산해 주고 들어갔다.
“야, 정은하.”
나는 다가가서, 뒤돌아 앉은 정은하의 등을 툭 두드렸다.
“내가 비 올 거니까 우산 들고 가라고 했지.”
“헉.”
“헐, 진짜 왔어…….”
반응은 정은하보다 은하 친구들에게서 먼저 왔다. 이런 퍼포먼스 하려고 나를 불렀나 보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오긴 와줬는데, 너무 노골적이라서 웃기다…….’
정은하 친구들에게 인사 돌리고, 옆에서 마저 밥 먹는 거 기다려 주고, 나 식단 중인 거 뻔히 알면서 이 시간에 밥집으로 부르다니 건방진 동생이라고 한마디 놀려주고, 잠깐 모자랑 마스크 벗어서 얼굴 보여주고(너무 기대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응원한다고 해서 감사히 받고……. 그런 순간이 휘리릭 지나갔다.
꽤나 의기양양해진 정은하를 마침내 데리고 나오는데, 시간이 그쯤 되니 내리던 비가 거의 그쳤다.
“어? 우산 필요 없겠는데.”
“나 왜 불렀냐?”
“훗…….”
“웃어?”
우산에 맺힌 빗물을 면전에 탈탈 튀겨주고, 동생과 둘이서 터벅터벅 걸어 집에 돌아가는 길.
“나 그런데 이번 주 방송 망했다. 이래놓고 너 친구들 봐도 되냐.”
“경연 나오는 날 아닌가. 뭐 실수했어?”
“무대는 잘 나왔을 것 같은데, 연습 장면 편집이 좀 나쁘게 됐다더라.”
“돌았네? 나라면 죽인다.”
“너는 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요즘 고등학생 과격하구나.
별개로 근래 들어 궁금하던 것을 이렇게 대면한 김에 물어보기로 했다. 웬만하면 얘랑 둘이 말할 일은 잘 없으니까.
“너 친구들이 방송 많이 본대?”
“내 친구들은 그럭저럭? 평소에 아이돌 관심 없다는 애들도 꽤 보던데.”
“투표도 해?”
“한다는 애들도 있고, 투표는 귀찮다는 애도 있고.”
하기야 투표 같은 참여는 안 할 사람은 절대 안 한다. 이 방송은 게다가 투표 절차까지 번거로우니 더 손이 안 갈 것이다.
뭐. 여기까지는 이미 있는 정황으로도 추리가 가능한 영역이고, 진짜 알고 싶었던 건 또 다른 논제였다.
“인터넷은 많이들 찾아보나.”
“아마도. 이튜브, 인리얼, 툿투……. 잘 아는 애들은 썰캐스트까지 본대.”
“썰캐스트가 뭐야.”
“연예계나 학교, 입시 이야기 위주로 루머 확산 많이 되는 익명 사이트. 투표까지 하는 친구들은 다 봐.”
모호한 듯 확실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은 것을 보면 10대 위주로 흘러가는 커뮤니티인 것 같았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대중의 여론을 신경 쓸 사건은 많이 생기지 않았고,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도 처음이다 보니 여러 면에서 조사가 필요했다. 매니저팀의 모니터링과 별개로 나도 사람들 시선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아, 그리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뒤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뜬금없이 궁금한 건데……. 학교폭력은 보통 증거가 다 남지?”
“어……? 너 뭐 했냐?”
‘학교폭력’ 네 글자가 나오자마자 정은하가 내게서 몇 걸음 멀리 떨어졌다.
“말을 막 깐다? 내 얘기 아니야.”
“그러면 친구? 그런 친구 사귀지 마.”
“친구도 아니고……. 됐다. 괜히 물어봤네.”
얘는 학생회에 교내 대표에, 이것저것 많이 참여하는 편이라 알 줄 알았는데 질문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질문한 까닭은 단순히 서난영이 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있고.
‘김병석이 편집 덕만 보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돌아가는 꼴이 곤란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들더라도 증언 이상으로 확실한 물증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지금으로서는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짜 그런 애들이 제일 싫어.”
젖은 아스팔트를 발끝으로 툭툭 차며 정은하가 말했다.
“작년에 같은 반에 일진 같은 새끼 하나 있었는데, 내가 수업 중에 반 애들이나 쌤들 영상 찍지 말라고 난리 치니까. 걔는 화나서 교실 창문에 핸드폰 던지고, 창문 깨지고. 그 이후로 진짜 상종을 못 하겠더라.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너는 대체 학교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냥 그러고 말았으니까 엄마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이런 건……. 부모님이 아셔야 하지 않나?
“아무튼 진짜 그런 친구 사귀지 마. 같이 싸잡혀서 욕먹는다? 그런 애들은 진짜 반성을 안 하거든.”
“친구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반성은……. 뭐, 할 수도 있잖아. 사람 따라서.”
“어휴. 또 이런다.”
어느새 도착한 아파트 1층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해 문이 열리면, 은하가 빠르게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빠 너는 누구한테 당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띠링, 엘리베이터 중앙 문이 좌우로 벌어져 열렸다.
“피해자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구.”
정은하가 몹시 의도적인, 얄미운 투로 말하며 엘리베이터에 홀라당 올라탔고……. 내 주머니에서는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 수신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인데도.
[스테리나인 서난영]
핸드폰 화면에는 그리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