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40화 (4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40화

10. BLACK MIRROR(1)

스테리나인의 소속사, 어나더뮤직 자체가 신생 연예기획사는 아니다.

규모는 작지만 회사 자체는 현시점 기준으로도 십 년 넘게 굳건했다.

우리 그룹 위로 계보를 이루는 가수도 보이그룹이 하나, 여성 솔로 선배님이 한 분.

그룹은 케이팝 2세대 황금기의 물살을 자유롭게 가르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솔로 가수 선배님은 1세대 걸그룹 출신으로 굉장한 실력을 지닌 분이시다.

‘우리 데뷔 시기쯤 결혼하셔서 요즘은 쉬고 계시지만.’

한두 해 전부터 아예 외국에 나가 생활 중이고, 일정이 생길 때마다 귀국하신다고 알고 있다(그래도 여전히 우리 회사 아티스트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이름이 알려진 가수라고 하면 그 선배님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회사 역사와 이름이 있으니만큼 어나더뮤직을 거쳐 간 연습생이나 현직 아이돌도 그 수가 은근 많다.

예컨대 현재 어나더뮤직 소속으로 데뷔한 아이돌은 보이그룹만 둘이지만, 연습생 자체는 여자애들도 꾸준히 있었다. 누나도 많았고, 친구나 동생도 꽤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겠어……. 다른 회사로 옮겨가서 데뷔했거나, 데뷔 준비하거나, 열심히 자기 인생 살겠지.’

그리고 오늘 만나는 전(前) 연습생은 저 세 가지 타입 중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게 된 쪽이다. 누나는 아니고 형이지만.

이 형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는 일은 그만두고 홍대의 대형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기계를 만진다. 내부 청소에 돈 계산하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본업이 되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홍대는 매일 오가서 물린다! 생일만큼은 잠실로 가주마!’

……형의 주장으로 약속 장소는 1호선 서울역 기준 홍대입구역과 점대칭 위치에 있는 잠실로 결정되었다.

사람 머릿수가 조금 되어서 식당 예약이 아니라 호텔 파티룸을 빌린 것 같았다. 모인 사람 중 연예인이나 관계자도 없지 않으니, 프라이빗한 공간이 좋기는 했다.

물론 열 명이 넘어가는 인원 중에서 지금 가장 대중적 인지도 비스무리한 게 높은 사람은 단언컨대 나였다.

“연예인 왔네~”

“어서 와. 앉아, 앉아.”

일찍 도착한 줄 알았는데, 이미 사람이 많은 실내.

빈자리에 앉으며 모자와 마스크를 벗자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뭐 타고 왔어?”

“저 택시요. 진짜 요즘 밥값보다 택시비가 더 많이 들어서 큰일 났어요.”

“아니, 그 정도면 그동안 밥값으로 너무 큰 돈을 쓴 거 아니야?”

음식은 배달 어플로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나누는 잡담. 사람이 다 모이자 한바탕 돌아가며 자기소개까지 했다.

발라드 가수, 댄서, 아이돌 연습생, 실용음악과 학생, 그냥 일반인 친구, 공익근무요원 등 은근 사람들 직업이 다양했다. 전부 초면인 건 아니고 이래저래 얼굴 보고 통성명한 사람도 드문드문 있기야 있었다.

“나는 정의헌은 정말 떡잎부터 잘 될 것 같았어. 얘가, 어? 아우라 같은 게 있잖아.”

“너무 띄워주신다. 방송 막 시작했는데, 아직 몰라요.”

“아니야, 너 그거 클립 내가 이튜브에서 봤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으로.”

그러면서 형이 소속사 심사 때 부른 노래 〈트램펄린〉 가사의 일부인 ‘Now I’m falling down baby’를 과장되게 읊었다.

다 좋은데 중년 아저씨가 아들 자랑하듯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비행기 태워주니까 조금 민망하다. 이영하가 저 구석에서 살짝 질린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므로 더더욱.

‘그래도 생일인 사람은 기분 맞춰줘야지 어쩌겠어…….’

이후로는 평범한 파티가 진행되었다. 배달 음식이 도착하면 케이크 꺼내서 초 꽂고, 불붙이고, 자르고, 사진도 찍고.

내가 나오는 사진은 내 핸드폰으로만 찍고 나중에 인터넷에 풀려도 될 때쯤 전송해 주기로 했다. 방송 때문에 보는 눈이 많아져서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니, 기를 쓰고 안 된다는 사람은 없었다.

“화제의 정의헌 연습생이 사준 케이크라고 올리는 것도 안 되겠지?”

“인리얼에요? 모르는 사람이라고 공식 입장 올릴 겁니다~”

“그러면 선물 받은 거라고만 올리게 케이크 정보나 알려줘.”

“주문 제작도 아니고 저 앞에 백화점 식품관에서 사온 건데요…….”

저 형은 인리얼그램에 모든 신변잡기를 포스팅하기 시작하더니 성격이 살짝 이상해진 것 같다.

그래도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 사람이라, 적당히 알고 지내는 데 문제는 없다.

또한, 재밌게 노는 것 이상으로 이 모임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예상외의 인맥을 얻은 것이다.

“아까 소개했지. 이쪽은 내 고등학교 친구인데, 진형이. 손진형.”

볼살이 푹 들어가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은 사람이었다. 좋은 날 축하하려고 모인 자리에서도 안광이 없었다.

마치 며칠은 잠을 못 잔 것처럼 건강하지 못한 비주얼의 남자가, 인사 도중에 갑자기 문 앞에 모아 놓아둔 짐 더미에서 본인 가방을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그리고 가방 속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건네주는데.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에는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의 정보와 함께 ‘데일리엔터테인뉴스 손진형 기자’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안 무서운데 이상하게 기자라는 직업인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은 한 점 정도만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왔음에도) 본능적인 레벨에서 무섭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명함을 받았다.

‘연예 뉴스 기자라…….’

어쩌면 이것도 고려할 만한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 전에 서난영에게 내가 제시해 둔 방법과는 다른 길이지만.

잠시 손익을 계산해 본 뒤 나는 웃으며 손진형 기자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투표도 해주세요’, 그런 이야기도 나누고.

‘너무 질 나쁜 사람만 아니면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다 같이 뭉쳐서 같은 주제로 떠들기도 하고, 삼삼오오 흩어지기도 하면서 어울리던 사람들.

시장판 같던 사교 모임의 맥을 툭 끊어놓은 것은 누군가가 외친 큰 소리였다.

“지금 시간 몇 시야?”

“8시 20분?”

그리고 시간 알림에 파티룸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원래 예약 종료 시각이 오후 8시라나 뭐라나.

청소를 해야 한다느니, 2차는 술집으로 가야 한다느니, 시간 단위 대실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느니 정신이 없었다.

밖에 나가면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써도 사람들이 나를 대충 알아보는 이 시국, 유동 인구 많은 잠실에서 술집은 오바다.

“2차 술이면 저랑 영하는 빠질게요.”

혼자 빠지려다가 이영하가 정신을 못 차리고 주최자 옆에서 허둥거리고 있어서 같이 빼내 주었다. 술도 못 마시는 녀석이 저기서 뭐 하냐.

“요즘 분위기가 좀 그래서, 저희 있으면 형들도 편하게 못 놀지 않을까요. 저녁을 여기로 배달시켜서 먹고 가면 되니까, 프런트에 말해서 시간 연장하고 추가 요금 제가 계산하고 갈게요. 가기 전에 쓰레기만 좀 봉지에 모아주세요.”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사실 조금 재수 없는 연예인 발언이었는데, 돈을 내가 내겠다고 하니까 다들 적당히 수긍해 준 것 같다.

그다음에는 생일을 다시 축하하며 형들 가는 길 배웅해 주고, 직원분께 시간 연장 관해서 이야기도 하고…….

프런트에서 방으로 다시 돌아오니 실내 청소를 싹 해둔 이영하가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처럼.

“야, 너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어떻게 그렇게 잘 노냐. 나 힘이 하나도 없어…….”

“난 처음 보는 사람 몇 명 없는데.”

“그게 더 신기하다…….”

영하가 삐딱한 자세로 누워서 중얼거렸다. 당연하지만 이영하는 이렇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다.

따지자면 이영하를 끌어내 이런 자리에 나오게 한 게 인간승리 아닐까. 원래 본인 생일도 대충 넘어가는 성격인데.

‘영하도 사람이 싫은 건 아니니까 그렇겠지.’

저 형이 조금 모자라 보여도 연습생 생활을 할 때에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는 했다.

‘형이랑 연습생 때 얘기도 엄청 했어…….’

연습생 때 추억팔이는 언제 해도 길어진다. 남들은 술만 들어가면 군대 얘기와 고삼 때 얘기를 그렇게 한다던데, 우리에게는 이렇게 무한 리플레이 재생이 가능한 안줏거리가 바로 연습생 시절이었다.

멤버들과도 자주 이야기한다.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다 연습생 생활을 짧지 않게 해서 그런가.

제일 연습생 기간이 짧은 게 데뷔하는 당년에 입사한 김지상인데, 그렇다고 해도 반년은 연습을 했으니까. ‘극적으로 입사 3주 만에 데뷔 결정!’ 같은 사례는 스테리나인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테리나인에서 가장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것은……. 이영하.

‘그것도 어나더뮤직에서만 5년을 지냈다.’

다른 소속사에서 연습하다가 이직해온 애들도 있기야 있지만, 그 애들도 영하만큼 연습생 기간이 길지는 않다.

나도 그룹 내 연습 기간 2위로 연습생을 나름대로 오래 한 축에 속하는데……. 그래도 이영하와 일 년은 차이가 난다.

‘대단하지, 이영하. 인내심이나 의지나. 늘 그랬어.’

아무튼, 영하는 워낙 어릴 때부터 사회에 섞여 살았다 보니 오래 안 사람들에게는 유독 깍듯하게 대하는 구석이 있었다. 자기 말로는 ‘못난 중학생을 용서해 준 감사한 사람들’이라던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영하가 누운 위치를 피해 소파를 등받이 삼아, 소파와 테이블 사이에 끼어들어 앉았다.

“뭐 먹을래? 지금 시킬 건데.”

내가 부르자 이영하가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주문 네가 하게? 내가 해도 되는데.”

“됐어, 다음에 사.”

“그다음을 시방 거절하고 계시잖아요~?”

파티룸 위치를 주소에 입력하고 배달 어플을 둘러보는데, 이영하가 혼잣말로 한참 꽁알거리다가 주문사항을 말했다.

“뭔가 건강한 거……. 맵지도 않고, 기름지지도 않고, 튀기지도 않은 거.”

“헐. 여기 모구버거 배달 있네? 나 이거 시킬래.”

내가 매울 수도 있고, 확실히 기름지고, 세트로 주문하면 감자튀김이 같이 오는 메뉴를 고르자 이영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너는 햄버거집 아들이 어떻게 밖에서까지 버거를 먹어? 그게 가능해?!”

“어, 먹어서 효도하려고. 샐러드 메뉴 많으니까 먹고 싶은 거 불러.”

“난 수제버거 식당에 다이어트용 샐러드 메뉴가 있다는 게 진짜 네 어머님이 널 사랑하시는 증거 같아…….”

……원래 치즈버거 세트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말에 흔들려서 샐러드만 두 개 주문했다.

수제버거 브랜드 ‘Mogu Burger’. 브랜드 이름은 십 년 전에 아빠가 지어줬다는데 유래는 기억이 안 나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SNS에서 숨겨진 샐러드 맛집 프랜차이즈로 유행 중이다.

주문이 무사히 접수되었다는 메시지까지 받고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예상 도착 시각이 삼십 분 후라고 하니 지금 딱 좋았다.

“그래서, 영아.”

“응?”

“계속 나 피하더니만, 어떻게 잘 지냈냐.”

나 얘랑 일대일로는 거의 한 달 만에 얘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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