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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37화 (3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37화

09. Left & Right(2)

영상 속 인터뷰 세트에 앉은 김지상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엄청 어려워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한 건지 모르겠어요.

누가 봐도 김병석이 백덤블링을 돌 만한 실력이 안 된다고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방송 화면은 연습이나 중간 평가 장면 하나 없이 바로 〈뮤직 채널〉 리허설 장면으로 넘어갔다.

김병석한테 톡을 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더니, 정확히 김지상이 드라이 리허설에서 실수하는 장면이 송출 중이었다. 들어가는 박자를 놓쳐 아예 뛰지 못하는 것을 집요하게 반복 편집했다. 연습복 위에 붙인 이름표에 ‘김지상’ 석 자가 너무 잘 보였다.

저 때 리허설 총 다섯 번 찍었고, 중간 평가나 카메라 리허설, 녹화 때에도 실수한 적 없는 애다. 딱 한 번 동선이 꼬여 실수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악의적으로 우려먹다니…….

- 그래도 잘했으니까.

김지상과 김병석의 인터뷰가 또 같이 나왔다. 이번에는 김지상이 먼저였다.

- 아쉽긴 한데, 결과가 좋으니까 한번 참아보려고요.

그리고 웃는 표정 그림을 넣어 재치 있게 편집한 자막까지.

이거 그거다. 김지상은 본인 능력 믿고 까부는 오만방자한 인물로, 김병석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불의를 참지 않는 악동에 ‘사이다 발언’을 일삼는 안티 히어로로 제작진이 캐릭터를 만들어준 것이다.

‘난리 났군.’

그래놓고 우리 조 연습 분량이 끝났다. 안승준 조는 아예 방송에 나오지도 못했다.

이후 자투리 영상 몇 개 지나가고, 다음 주 내용을 소개하듯 ‘첫 번째 데스 매치’ 규칙 안내가 주절주절 나왔다.

“저거 다 어쩌다가 나온 말이냐.”

그 틈을 타서 내가 묻자, 김지상이 안광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어렵다고 한 건 형이 짠 안무 얘기였고.”

“내가 ‘말한’ 내용은 뭔데?”

“자막이 잘못 달렸어. ‘말한’이 아니라 ‘만든’.”

“리허설 다음에 나온 인터뷰는?”

“앞에 ‘긴장 많이 했는데’, 뒤에 ‘안심했어요’가 잘렸네.”

이건 확실히 출연진 하나 보내 버리겠다는 악의가 들어간 것 같은데.

조금 골치 아프게 일이 돌아갈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이 시기 지상이는, 악마의 편집까지는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인기가 많기는 했지만……. 진정한 인기는 첫 경연 〈Fraction〉 킬링파트 이후 시작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위기가 김지상의 얼굴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위기인지 아닌지 감이 안 잡힌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긴 하겠지. 대응 방향은 주말에 회사 가서 말해봐야겠다.

안 그래도 지금 매니저팀이 방송 보고 연락 주는 것 같은데……. 지상이한테도 따로 이야기해 줬다.

“일주일만 인터넷 보지 마라.”

“노력한다고 될지 모르겠어.”

“내가 그러면 회사에 얘기해 둘까?”

“무슨 얘기?”

“악플러 고소 공지 띄워달라고…….”

우리 소속사 어나더뮤직이 특히 잘하는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소속 가수 모니터링이고, 다른 하나는 민사소송이다.

전자는 보이그룹을 하나 키워본 경험이 낳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정신에서 비롯되었고…….

후자는, 음. 그냥 이 회사 창립부터 그럴 운명이었다.

‘대표님께서 사람을 잘 만나셨지.’

대표님이 결혼하신 분, 그러니까 사모님 직업이 변호사라서 말이다. 회사에 무슨 문제 생기면 섭섭하지 않게 잘 처리해 주시는 데다가, 사실 형사소송도 잘하신다.

대형 로펌 소속까지는 아닌데, 법무법인을 직접 운영할 만큼은 유능하고 경력이 있으셔서……. 추정컨대 현시점에는 대표님보다 연 수입도 많으실 거다.

“일단 정인 쌤이랑 전화부터 해봐. 톡 계속 온다.”

“알았어. 공지 얘기는 내가 말씀드릴게.”

내가 매니저팀과의 연락을 권하자, 김지상이 핸드폰을 들고 빈 방으로 들어갔다.

법적 대응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당장은 고소할 거라고 동네방네 말해두는 게 낫다. 그래야 댓글 다는 사람들도 조심하게 되고, 그렇게 해야 팬덤 분위기도 안정이 된다.

‘논란이 해명 없이 길어지면 스트레스받는 건 팬들이니까.’

논란을 즐기는 팬은 없고, 피로감이 심해지면 애정도 시들시들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미봉책이긴 하지만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공지를 띄워두는 게 좋을 것이다.

“셋 다 자고 간다고 했지?”

“아, 나 칫솔 사와야 돼.”

지상이가 잠시 빠져나가고, 서난영의 질문을 신호탄으로 남은 셋은 숙소를 정리했다.

벌써 자정이 넘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안승준은 편의점 가는 길에 일반 쓰레기를 버렸고,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내 담당, TV 근처와 소파를 포함해 거실 청소는 서난영이 맡았다.

……사실 이 타이밍에 난영이랑 대화를 했어야 하는데 싱크대 하수구 뚫다가 깜빡했다.

“너희는 나 없으면 하수구 청소를 아예 안 하는구나?”

“응, 우리 형 없으면 비행 청소년처럼 살아.”

“제발 이 말이 순도 100프로 농담이기를…….”

대신 이런 잡담이나 주고받았다. 결국 1층 청소까지 약속하고 숙소에 있는 애들이랑 다 모여서 놀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내 생활 패턴은 이제 완전히 망했고 서난영과의 둘이서 시간을 내려면 자기 직전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룸메이트라서 다행이다.’

그전에 먼저 2016년 현재 스테리나인의 숙소 사정에 관해 짚어보자면.

그룹 막내의 활동 중단 시기가 월세 계약 시기와 적절히 맞물려 막내는 아예 숙소에서 짐을 뺐고, 남은 멤버들은 근처 더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당시에는 새집이 너무 좁다고 불평했는데, 사람이 더 빠져서 선구안이 대단하다 싶었지.’

하여간 새로운 집, 새로운 활동 반경, 새로운 룸메이트……. 여덟 명은 네 명씩 두 층에 분리되어 생활을 시작했다. – 층은 생활 소음 데시벨을 기준으로 나눠서 시끄러운 놈들을 1층에 가뒀다(물론 나는 갇힌 쪽이다). 룸메이트는 두 명씩 대충 자기들끼리 합의해서 결정.

같은 층 쓰는 애들이 둘이서 방 쓰겠다고 이미 정하고 들어와서, 나는 서난영과 같은 방이 되었다.

“남의 침대에 옷 걸어두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

“……치울게.”

“네 사진 액자는 왜 여기 올려둔 건데?”

“좋은 건 공유하는 거랬어……. 아! 치울게!”

거의 두 달 만에 방문한 내 방은 엉망진창이었다.

위생적인 문제까지는 없어 보였지만, 정리 정돈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고 해야 하나. 내 책상 위에는 출처 모를 전단지나 영수증 같은 게 쌓여 있고, 침대에는 여름옷이 상•하의 구분 없이 여기저기 널린 모습. 본인 액자는 내 사진 액자로 가려두려고 하니까 그제야 가지고 간다.

방 정리까지 얼추 해놓고 난 뒤에야 우리는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나마 좋은 점은 2층 침대가 아니라는 거다. 비록 병원 스타일의 철제 프레임 침대라고 해도.

“자기 전에 갑작스럽겠지만 할 말 있다.”

“불 다 껐는데……. 지금 말해야 돼?”

“애들 없을 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으음~”

파앗. 서난영이 침대 밖으로 기어나가 형광등을 다시 켰다.

그냥 누운 채로 천장 보고 떠들 생각이었는데……. 이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게 막 좋은 얘기는 아니거든……. 난영아.”

“응.”

“너 고등학교 다녔을 때 기억은 나냐. 전학 전에.”

서난영이 지금 스물둘이니 효명고등학교 다닐 때라면 4년 내지 5년 전이 되나. 잊진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눈치를 챘는지, 서난영은 입을 꾹 다물고 눈웃음을 슬슬 치며 시선을 피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게 일부러 장난스럽게 구는 것이다.

“진짜 미안한데, 나 이런 거 배려해서 말해야 할 때 눈치를 잘 못 봐. 협조 좀 해주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 그래. 김병석이 효명에서 너랑 친구였다고 하더라. 아니지?”

그냥 스트레이트로 말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말하기 방법’ 같은 책이 있다면 나쁜 예시로 나올 것 같다.

서난영은 그대로 굳어서 잠시 말이 없었다. 짧은 침묵 후에 녀석의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친 새끼네…….”

거친 욕설과 함께 싸늘하게 바뀐 표정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난영이가 다시 미소 지었다.

“내가 걔 친구는 아니지.”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효명고 다닐 때 서난영은 친구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상황이 살짝 안 좋았다.

‘그때 난영이가 어땠더라.’

스테리나인 멤버 서난영.

1995년 7월 29일생으로 얼마 전에 생일이었고, 래퍼 포지션에 리드댄서.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어나더뮤직 입사.

성격 밝고 춤 잘 춘다. 조정되긴 했지만 2년 연습해서 나랑 같이 투메댄, 그러니까 메인 댄서 두 명으로 데뷔할 뻔했으니 습득력도 좋고 실력도 꽤 좋은 축에 든다.

하지만 서난영이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그 누구도 녀석이 무사히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 분들도, 같은 연습생들도, 아마도 본인마저도.

‘앙상하게 마르고, 두꺼운 안경에, 까맣고 키 작고.’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춤을 추거나 노래할 때는 물론 일상생활 중에서도 전혀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막말로 그 당시에는 이런 애가 어떻게 아이돌 오디션을 통과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 서난영은 키도 많이 컸고, 라식도 하고 근육도 키워서 그야말로 긁은 복권이요 진흙에서 꺼낸 진주가 되었지만…….

‘그때는 소질도 의욕도 없어 보였지.’

그래도 서난영은 연습생 생활을 그럭저럭 잘해나갔다. 실력은 점점 늘었고, 나중에는 같이 노는 친구들도 생겼다.

사실 연습생들은 웬만큼 본인이나 상대가 양아치가 아닌 이상 남이 이해 안 되고 마음에 안 들어도 적당히 선을 지킨다. 어차피 훗날 데뷔하면 7년을 좋든 싫든 같이 엉켜서 지내야 하니까.

그러나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는 그런 계산이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애가 왜소하니까 만만해 보였을 수도 있고.

‘아니, 이유가 뭐가 중요하냐.’

까닭이 무엇이든 서난영은 효명고 시절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좀 당했다.

이게 내 기준 강도가 은근히 셌는데, 남고라는 환경상 문제가 잘 은폐되어서 일 년 넘게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병석은 주동자든 아니든 그 폭력과 관련이 있다. 본인 입으로 나한테 말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서난영 반응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김병석이 단순히 방관자일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친구였는지 아닌지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닐 거고, 왜?”

서난영의 질문을 듣고, 나는 그대로 일어나 가구를 뛰어넘어 난영이가 앉은 침대로 건너갔다.

바디필로우가 많아서 자리가 없었지만, 아무거나 팔꿈치로 뭉개면서 아슬아슬 눕듯이 기댔다.

어쩐지 거리를 좁혀서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왜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은 애매했지만.

“궁금해서. 너 어떻게 하고 싶어.”

내가 해줄 말이 기실은 없었다. 나는 외부인이고, 당사자는 따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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