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35화 (35/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35화

08. DO or NOT(4)

* * *

내 감상은 간단했다.

‘잘됐다!’

그리고 드는 생각.

‘그런데 어쩌지?’

피로로 뇌가 안 돌아가나 싶어서 마른세수도 해보고 뺨도 두드려 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침착하게 머리를 굴려보자. 채호원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장롱에서 매트를 끌고 나오며, 나는 잠시 혼자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겨보았다.

일단 정현이 형과 채호원 사이에 생긴 문제는 둘이 대화를 해야 뭐든 풀릴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황정현은 그렇게 단칼에 팀 버리고 도망갈 사람은 아니거든. 긴장을 잘하고 멘탈이 쉽게 흔들리는 건 단점이지만, 나이도 있는데 중요한 일 앞에서 그렇게 막 감정적으로 행동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내가 개입할 게 아니라, 둘이서 오해를 푸는 게 최선이다. 군인 상대로 당장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 오지랖도 잠시 미뤄두자.

‘쟤도 좀 성공하면 좋을 텐데.’

……이것도 오지랖인가?

아니, 이 정도는 누군가에 관해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이라고 본다.

측은지심일 수도 있고 친밀감일 수도 있고. 채호원 상황이 나보다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매트를 연습실에 깔아주고, 스튜디오에 딸린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양치를 하면서도 나는 채호원의 일을 계속 생각했다.

‘채호원이 〈데프아〉 최종 순위 10위였나.’

이런 오디션 서바이벌에서는 최종 데뷔 인원이 10명이라면 10위를 맨 나중에 발표한다.

9위부터 3위까지 올라가며 발표한 다음에 1위와 2위를 놓고 ‘광고 후에 발표합니다!’ 하고, 10위부터 13위까지를 화면 4분할로 보여주면서 13위부터 12위, 11위를 떨어뜨리는 게 나름의 방송 공식이라고나 할까.

그때 보았던 생방송 기억이 난다. 4개로 쪼개진 화면이 하나가 되고 그 자리에 채호원의 얼굴이 잡혔을 때, 채호원은 하늘이 무너진 사람처럼 펑펑 울어댔다.

‘안쓰럽더라.’

연습 장면에서도, 그전 순위 발표식들에서도, 경연에서 패배하거나 승리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마지막 회차 마지막 장면에서 숨이 넘어갈 때까지 서럽게 우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런 감상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고…….’

천재지변으로 〈데프아〉 최종 데뷔 인원수가 변하지 않는 한 이번에도 데뷔 인원은 10명일 것이다.

실제로 데뷔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 승자가 되는 열 명에 관해서는 생각을 다소 소홀히 한 감이 있는데, 이제는 되짚어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나는……. 객관적으로 지금 꽤 잘나가고 있다.’

방송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촬영 자체는 제법 좋은 모습 위주로 찍혔다.

물론 제작진이 악의적으로 편집의 마법을 부리거나 내 분량을 먼지만 하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아이돌 경력이 있는 참가자를 제작진이 좋아할 리 만무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방송국은 뭐든 할 수 있다. 투표수 조작은 왜 안 하냐?’

그러니까 이 부정적인 가능성을 차치하고 보면, 아직은 상승세라는 소리가 된다.

사전투표 결과도 좋았고……. 첫 경연 무대 자체도 괜찮게 해냈으니까.

현 상황에서 연습생 98명의 인기 순위를 매기게 된다면, 나는 1위까지는 아니어도 10위 안에는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는 건, 데뷔조 자리 하나를 내가 차지한다는 거다.’

내가 등장해서, 커트라인에 걸렸던 채호원은 최종 10위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앨범은 한 장도 발매하지 못했으나……. 최종 승자 10명은 한 그룹으로서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짧게나마 숙소 생활을 했고, 소수였겠지만 개인 팬이 아닌 그룹 팬들도 생겼다.

‘10위와 11위의 차이는 크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가 자신을 승자로 인식하게 되느냐, 패자로 인식하게 되느냐의 문제였다.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세면대를 손으로 짚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내 입장을 정리해 봐야 한다.

나는 데뷔권까지 올라가고 싶다. 하지만 채호원에게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남은 방송을 이렇게 찝찝한 상태로 임할 수도 없고……. 뭐 알고 있는 것 없나.

‘음.’

방송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은 비하인드를 전달해 줄 사람은 안승준밖에 없었으므로, 승준이가 물어왔던 정보를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일단……. 방송사가 손을 놓고, 그 자회사인 데뷔 그룹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소속사가 폐업하고, 연습생을 데리고 있는 소속사들은 모여서 그룹의 미래를 논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러 소속사의 각기 다른 입장은 좀처럼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고, 논의만 반년을 하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끝에 〈데프아〉 데뷔조는 최종 해산했다.

‘그런데 그거, 조정 기간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내가 묻자, 안승준은 깊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많은 일이 있었다, 형.’

‘차근차근 말해봐.’

‘완전히 확실한 정보는 아니니까 적당히 걸러서 들어. 데뷔하기로 한 멤버 중 한 명이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걔 소속사에 메일이 왔대. 데뷔할 때 걔 안 빼면 공론화도 할 의향 있다고. 그래서 사실 여부 대조하느라 시간 질질 끈 거래.’

‘일개 연습생이 이 대외비를 어떻게 다 아는 거지? 너 스파이냐?’

‘아니, 그거.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방송을 그렇게 해놓고 이렇게 긴 시간 활동을 안 시킬 수 있냐고 엄청 화내서 내가 회사에 물어봤어. 나도 당사자인데 알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고.’

‘기 세다…….’

‘그래도 누가 범인인지는 몰라. 진짜 학폭이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안승준은 그리고 ‘애초에 협상 결렬에 해당 연습생의 학폭 여부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의서를 받고 보니 기어코 돈 문제가 갈라선 원인이었다나 뭐라나.

사족을 붙이자면, 그렇게 길어진 공백기 때문에 〈데프아〉 데뷔조 멤버들은 방송 때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막말로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래도 아예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는 홀로서기에 성공하거나 신인 그룹으로 데뷔해 훌륭히 전성기를 누렸다. 김지상과 안승준만 봐도 스테리나인 안에서와 달리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아무튼, 그놈을 잡자.’

진짜 폭력 가해자라면 방송 하차하는 게 맞고, 아니면……. 아니겠냐?

공론화라면 일부러 엿 먹으라고 루머를 퍼뜨렸을 가능성도 0.1% 정도는 있지만, 소속사에 조용히 연락했을 수준이면 루머일 가능성은 0.001%급으로 줄어든다.

‘민감한 문제니까 조심히 접근해야 할 텐데.’

우선 열 명에서 김지상이랑 안승준 빼고. 안승준은 아이돌 되고 싶어서 어려서부터 인간관계를 관리한 녀석이고, 김지상 친구들은 내가 한번 봤는데 다 숫기가 없다.

그보다 얘들이 사고의 주범이었다면 회사가 뒤집어졌을 테니까 몰랐을 수가 없다

‘채호원도 일단은 빼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래도 되나?’

혼자 전문성 없는 관상학을 근거로 들며 망설이는데, 거울에 갑자기 시꺼먼 인영이 비쳤다.

“어어, 의헌이 형이다.”

“김병석, 인마. 내가 너 애들 있는데 술 마시지 말라고 했지.”

제 딴에는 반가워서 인사한 것 같은데 나는 할 말이 많았다.

말은 더럽게 안 듣는데 한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사고를 친다. 얼굴이 발그레한 게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지금 카메라 없는 게 다행이었다.

김병석은 세면대를 붙잡고 몇 번 헛구역질을 하더니, 내가 뽑아준 휴지를 입에 물고 헤실헤실 웃었다. 덕분에 나도 삽시간에 집중이 깨졌다.

“아으……. 좋다. 형 뭐 하고 있었어요.”

“세수하고 양치했다. 너도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 자.”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그러면 전 뭘 합니까?”

“양아치처럼 생긴 게 술은 약해 가지고…….”

김병석이 웃다가 우는 소리를 냈고, 그러다가 다시 웃어젖혔다.

화장실 밖에도 들릴 만큼 ‘하하하!’ 큰 소리로 웃더니 타일 바닥에 휴지를 퉤 뱉었다.

“너 저거 나가기 전에 치우고 가라.”

“옙! 그래도 저는 형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난 너 뒷바라지하면서 부처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사람 레벨이야?”

“……형, 저 난영이 친구거든요?”

어?

걔 이름이 왜 갑자기 여기서 나와.

“그래서, 어. 서난영도 개 착했으니까. 형도 처음부터 좋은 사람일 것 같았어요. 흐흐.”

“너 효명이야, 계화야.”

“네? 효명이요.”

우선 서난영은……. 우리 스테리나인 멤버다.

춤이 주력인 앤데 나보다 한 살 어리고, 김지상이나 안승준이나 강주찬과는 동갑이다.

그리고 난영이는 ‘효명고등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년 겨울에 ‘계화연기고등학교’로 편입을 했다

“난영이 효명에 친구 없는데.”

“저 친구였는데요.”

“……너냐?”

“예?”

“아니다, 슬슬 자러 가자.”

학교를 옮긴 사유는 연습생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서난영이 2학년일 때에는 우리 데뷔조도 제대로 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계화예고 편입 자리 나기를 서난영은 반년 넘게 기다렸다.

서난영 효명고에 친구 없다. 농담이 아니라 팩트다.

나는 화장실 밖으로 김병석을 내보내고, 클렌징과 칫솔을 챙기며 생각했다.

‘골치 아프게 됐다.’

용의자가 너무 가까이에 있잖아. 놀랍게도 저 친구도 파이널 상위 열 명 중 한 명이라서 말이다.

궁금해하자마자 정답을 찾은 건 좋은 일이지만, 쾌재를 부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다름이 아니라……. 피해자도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 + +

[플레이피에서 같이 놀자!]

[Let’s Play:P!]

그 주 금요일, 오후 10시.

방송 시작 시각은 이미 지났는데 TV 화면에는 아직도 광고가 재생 중이다.

그리고 이 TV가 위치한 장소는 스테리나인 2층 숙소 거실이다.

아, 우리는 같은 건물 1층과 2층으로 숙소를 나눠서 지낸다. 여기는 그중 2층이다.

‘단톡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하다가 다 같이 본방 보기로 해서…….’

원래는 나랑 김지상, 안승준 세 사람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팀 단톡에서 해버린 바람에, 여러 사람의 이 얘기 저 얘기가 의식의 흐름대로 덧붙어 이 결론이 났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정확한 예시다.

막상 초대받아서 오니까 몇은 휴가받아서 지방 본가에 내려갔고, 한 놈은 본방송 챙기기 귀찮으니 나중에 클립이나 검색해서 보겠다며 1층에 틀어박혔다.

그래서 이 거실에 모인 인원은 고작 다섯이다.

손님인 나, 안승준, 김지상, 그리고 집주인 강주찬과 서난영.

“얘들 이럴 거면 숙소에는 왜 불렀냐?”

“내 말이.”

“진심, 나 한 시간 반 걸려서 왔는데.”

내가 투덜거리자 안승준과 김지상이 맞장구를 쳤다. 오는 데 한 시간 반 걸린 쪽이 김지상이다.

“내쫓아줘?”

“바람과 비 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도록~”

그러자 강주찬과 서난영이 순서대로 대답했다. 비난과 유머의 비율이 적절하다.

한 줄 요약하자면 이건 스나 95년생 친구 라인에 내가 슬쩍 끼어든 모임이다.

그래도……. 방송 끝나고 서난영을 따로 불러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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