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34화
08. DO or NOT(3)
‘앤섬’은 예명이다. 본명은 황정현. 그는 채호원이 현재 소속된 보이그룹 ‘스픽스’의 리더다.
아니, 리더였다. 이제는 그룹을 탈퇴해서 민간인 –정확히는 군인– 신분. 채호원이 알기로는 회사와 전속 계약도 종료되었다고 한다.
채호원은 몇 주 전 정의헌과 대화했을 때, 정의헌이 제법 친근한 태도로 황정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 여전히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질문을 듣고 정의헌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평소와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연습생 들어가기 전에 같은 학원 다녔어.”
그의 목소리는 일부러 장난기를 담지 않으면 곧잘 무뚝뚝하게 들리고는 했다. 적어도 지금 채호원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정의헌은 눈으로 사무실 장식장을 훑다가, 탁상 액자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몇 초 동안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은 일 년에 두 번 연락한다. 내 생일, 형 생일.”
그렇게 말한 정의헌은 액자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대신 채호원에게 건네주었다.
채호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색이 노랗게 바랜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진 중앙에 선 인물은 댄서 김산(못 알아보기에는 너무 유명한 안무가였다), 그 주변을 예닐곱 명의 어린 학생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황정현과 어린 정의헌도 있었다. 황정현은 금색 트로피를 들어 올린 김산 옆에서 다른 모양 상패를 흔들고 있고, 정의헌은 턱에 손가락 브이를 붙이고 웃는 모습으로 사진에 담겼다.
액자 뒷면에는 포스트잇에 볼펜으로 적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UAA 국제 스트릿댄스 경연 대회
심사위원 특별상, 관객상
– 200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메모를 읽은 채호원은 시선을 돌려 사무실 장식장을 확인했다. 전시된 트로피 중 두 개는 사진 속 것들과 모양이 같았다.
어쩐지 낯선 기분이 들어 사진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보고 있자, 정의헌이 액자를 다시 뺏어갔다.
이미 포스트잇 메모를 통해 시기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채호원은 괜스레 질문했다.
“언제 사진이야?”
“나 중학생 때.”
정의헌이 액자를 다시 제자리에 올려두며 답했다.
채호원은 조금 더 고민했다. 그 사이 정의헌은 서랍에서 장롱 열쇠를 꺼내 사무실을 나갈 기세였다.
“……잠깐, 정의헌.”
정말 나가 버린다면 타이밍을 놓칠 게 뻔해서, 채호원은 다급하게 상대를 불러세웠다.
“왜.”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뭔데.”
“…….”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려고 보니 생각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됐다.
채호원이 타이밍 좋게 답하지 못하고 침묵하자, 정의헌은 기다릴 심산인지 대충 사무실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더니 몇 분 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깜빡 조는 것처럼…….
“……잠이 와?”
황당해진 채호원이 핀잔하듯 묻자, 정의헌은 겨우 눈을 떴다.
“나 요즘 열두 시 되면 잔다고……. 피곤해.”
“나 말 안 해.”
“아니, 쏘리. 나 정신 차렸어. 깼어. 내가 잘못했다.”
정의헌이 눈가를 꾹꾹 누르며 상황을 수습했다. 내용과 달리 말하는 투가 횡설수설했다.
덕분에 용건을 정리하며 마음 졸이던 채호원도 덩달아 허무하게 긴장이 풀렸다.
채호원은 정의헌의 앞자리 의자에 앉으며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현이 형 어땠어? 네가 기억하는 모습이 있을 거 아니야.”
“솔직히 나 그때 중딩이었고……. 형이랑 나이 차가 좀 나니까, 막 친하지는 않았지? 나도 내 친구 따로 있고, 형도 그렇고. 그래서 잘 몰라. 그 형은 그런 거 좀 지키는 편이었거든. ‘애들은 애들끼리 놀아라’ 같은 느낌.”
회상 때문인지 정의헌의 말이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채호원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별다른 정보 가치가 없는 말도 귀 기울여 들었다.
“왜, 너랑 있을 때는 또 달랐냐.”
“아…….”
질문이 들어왔다. 채호원은 대답하기 전에 자문해 볼 수밖에 없었다.
황정현에 관해서, 리더 앤섬에 관해서.
……아니, 스픽스라는 팀에 관해서.
‘이야기하다’의 ‘Speak’와 ‘정하다’의 ‘Fix’를 억지로 합성하여 ‘우리가 정하는 이야기대로 가요계를 바꾼다’.
그렇게 그룹 이름 스픽스(SPIX)와 그 포부가 탄생했다.
2012년 데뷔, 7인조, 5년 차 보이그룹 아이돌.
디지털 싱글 넷, 미니앨범 둘, 일본 싱글 두 개. 정규 앨범 없음. 발매곡은 인스트루멘털(Inst.) 트랙을 포함해도 서른 곡이 채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인원수도 탈퇴와 입대로 두 명이 줄었는데, 일본인 멤버는 한국을 떠나 본가로 돌아간 지 오래다.
물론 한국에 남아 있는 네 명도 이제 숙소 생활을 하지 않는다. 작년 가을, 숙소를 해산하자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예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간 멤버도 있지만, 채호원은 의정부로 향했다. 부모님 집이 거기 있었으니까.
그리고 의정부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 그가 소속사 건물이 있는 압구정에 방문한 횟수는 0회.
회사가 그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이 없었다. 작년 가을 이후로.
“우리 망했어. 망돌이야.”
채호원은 본인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정의헌이 질문한 것은 분명 이게 아니었지만, 채호원으로서는 왠지 그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지막 앨범이 작년 이맘때인데……. 그것도 투자 없이 나온 싱글이었거든. 4주 동안 활동했는데 지상파에 딱 두 번 나왔어. 그 외에는 ‘팝 초이스’, ‘뮤직 웨이브’, ‘가야 티브이온’, ‘케이팝 투어’ 이런 것만 돌았고.”
이 말인즉 공중파나 음악 위주 케이블 방송이 아닌, 인지도가 낮은 케이블 방송과 해외를 겨냥해 영어로 진행하는 녹화 방송, 이튜브 스트리밍 콘텐츠 위주로 활동을 했다는 의미다.
소속사 선배 하나 없고, 사장에게는 노하우가 없는, 신생 기획사 출신 스픽스는……. 스테리나인 같은 중견 기업의 루키와는 입장이 달랐다.
스테리나인은 적어도 한 번 떠오를 뻔하기는 했다. 여러 사건이 겹쳐 제대로 날개를 달지 못했을 뿐.
하지만 스픽스에게는 그럴 기회나 희망조차 없었다.
“망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 사실을 채호원은 조금 늦게 알았다.
넥스트레코드의 ‘스픽스’로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면 비관에 빠질 것 같아 채호원은 오랜 시간 제 위치를 외면해 왔다. 또한 그 도피에는 황정현이 언제나 큰 역할을 해주고는 했다.
“그런데 정현이 형은 계속 우리가 1위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줬거든.”
채호원은 그 말을 믿고 싶어서 믿었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목표라도 세워야만 본업 면에서든 팬들에게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의헌을 보면 때때로 황정현의 그런 모습이 떠올랐다.
‘남들이 상황을 어떻게 보든 자기 생각대로 모두를 이끄는 게, 닮았어.’
물론 황정현과 비교하면, 정의헌은 꽤 뺀질거리기도 하고 독선적으로 굴기도 한다.
지금은 그 둘의 차이를 알지만…….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렇게 닮아 보였더랬다.
아무튼 채호원은 본인의 콤플렉스 때문에 두 사람을 겹쳐 보고 정의헌을 피했다. 오래전 정의헌이 대충 해낸 추리가 적중했다는 뜻이다.
채호원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괴로운 기억이었다.
“우리는 망돌인데……. 내가 그 형 거짓말을 너무 믿었던 거야.”
“……갑자기 미안한데, 나 잠깐 부탁 하나만.”
“갑자기 뭐?”
“아니……. 그 망돌이라는 단어 안 써주면 안 되냐.”
“왜?”
채호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반사적인 경계심이었다.
“……단어가 세서 좀……. 타격이 나한테까지 와…….”
“아……. 알았어. 미안.”
의혹은 순식간에 흐려졌다. 상상 이상으로 싱거운 사유.
흐름이 뚝 끊겨 버린 분위기 탓에 채호원은 그냥 짧게 요약하고 말을 끝냈다.
“그 형은 팀 두고 탈퇴 안 할 줄 알았어. 믿은 내 잘못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다 같이 잘해보자고 하는 사람만 보면 짜증 나.”
중간 과정은 전부 생략했지만, 정의헌 정도 눈치가 되면 숨겨진 의미도 다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차적으로는 배신감이었다. 그다음에는 실체 없는 달콤한 희망을 믿었던 자신을 향해 혐오감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다 함께’를 믿어? 나는 왜 그랬지? 다 거짓말이잖아.’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은 불신과 냉소였다.
‘다 같이 망할 수는 있어도, 다 같이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남에게 미래를 맡기면 안 돼.’
황정현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떠났을 게 분명하다.
어차피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자신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이타적인 말은 위선이다.
그래서 채호원이 듣기에는 팀을, 그룹을, 동생들을 위한다는 말이 다 거짓말 같았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뻔해.’
채호원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정의헌은 대답 대신 눈만 느리게 깜빡였다.
“왜 그러는데.”
“생각을 좀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졸리다.”
“아예 가서 잘래? 애들 기다릴 텐데.”
“늦을 거라고 톡 보냈더니 자기들끼리 2차 중이라고 늦어도 된대.”
“……언제 연락했어?”
“아까 너 혼자 생각할 때.”
빈정거림 따위 단칼에 잘라내며, 정의헌이 기지개를 켰다.
“뭐, 둘 사이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일이 아니고.”
“……음.”
“그러니까 애꿎은 나한테 화풀이했다는 건 인정하는 거지?”
거두절미하고 날아오는 직구에 채호원은 순간 당황했다. 대꾸하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 그게. 중요해?”
“사과하라고 버티는 게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건지 묻는 거야.”
“어떻게 할 건지?”
“체리본 쌤이 그랬잖아, 방송은 끝난 뒤도 고려해야 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우리 이거 끝나고도 알고 지낼 거 아니냐.”
정의헌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정리했다.
“음, 그냥 이렇게 묻자. 너는 내가 아직도 짜증 나냐.”
채호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감정이라면 분명히 처음과 같지는 않다.
첫 번째 ‘데스 매치’ 경연. 관객 앞에 선 정의헌의 모습을 무대 뒤에서 보고, 채호원은 생각했다.
‘다르다.’
그보다는.
‘……닮을 수 없다.’
애초에 저 사람은 누군가를 닮을 수가 없다.
정적, 새까만 무대, 하얀 스포트라이트, 모두의 시선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선, 무대 위의 주인공.
그 순간을 혼자 부담하겠다는 것 자체가 연습생으로서 가능한 발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완성형으로, ‘아이돌’이었다.
삼십 초가 되지 않는 아크로바틱에, 관객석이 아닌 곳에서 보는 채호원까지 정신을 빼앗긴 것은 그 춤이 춤꾼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라이벌로 괜히 골랐어.’
진심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을까.
채호원이 판단하기에, 본래 정의헌에게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동작을 맺을 때 약하게 팝을 준다든가, 강약을 주는 리듬이 있다든가.
그리고 정의헌은……. 군무에서는 그 습관을 전부 버렸다.
그래서 〈늑대의 시간〉 무대에서의 독무는 더 특별하고 자유롭게 보였다.
자제하지 않을 때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었으니까.
채호원이 기억하는 황정현은 춤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가 선생님처럼 깐깐했고, 틀을 벗어나는 동작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그는 능력이 출중했음에도 센터에 서서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했고, 부담감을 드러냈다.
스킬은 정확했지만 자유롭게 즐기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현이 형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야.’
몇백 관객과 수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홀로 무대를 아우르는 일은.
카메라에 잡히는, 정의헌의 열기 어린 웃음을 보며 채호원은 깨달았다.
……두 사람은 결코 같을 수 없다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황정현이 쌓은 원망을 정의헌에게 갚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예민했어……. 미안해.”
채호원은 첫 번째 경연 이후로 계속,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한 뒤에는…….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감정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