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31화 (3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31화

07. 직진(3)

함성의 파도가 무대에 닿아 부서지고, 열 명으로 채우는 라이브가 타이트하게 이어졌다.

군무가 끝나자마자 나는 중앙에서 비켜나 도입부를 담당하는 보컬과 교대해 옆으로 빠졌다.

회색빛깔 바람 부는 광야

시선은 정면에 걸어

음정 안 흔들리고, 박자 잘 맞고. 이 정도면 합격선이다. 두 번째 파트를 맡은 멤버가 치고 나온다.

사냥감을 찾아 헤매어 나

늘 배 주리고 있어

그런데 연습할 때도 생각했지만, 이 노래 가사가 묘하게 투쟁적이란 말이지…….

거대한 꿈을 지니고 쟁취해 내기 위해 돌진하는 노래의 화자 ‘나’는, 자신의 뜻을 아무도 이해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삶. 그는 고독하고 굶주린 자신을 한 마리 야생의 늑대에 빗대어 노래한다.

곡 해석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말도 못 한다. 노래를 이해하고 우리 팀과 어울리게 만들기 위해 다들 노력깨나 했다.

……아, 헛생각하지 말자. 여기 내 파트다.

야생의 본능이 날 깨워

이대로 살아가라고 하는걸

보컬을 길게 뽑아내듯 부르는 프리코러스. 리듬과 비트가 점진적으로 고조된다.

이 다음에 오는 킬링파트는, 송수민이다.

꿈을 일으켜 세게 외쳐

몸을 움직여 이빨을 세워

솔직히 말하자면 송수민은 눈에 띄는 특징이 없고 무난한 녀석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본판이 순하고 모난 데 없는 인물.

하지만 지금은 녀석의 그 평범함이……. 노래가 지닌 위험하고 극단적인 분위기를 훌륭히 중화해주고 있었다.

하필 송수민이 담당하는 후렴구 가사도 전체 분량 중 가장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좋았다.

대의도 고독도 없는 사람이라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싶은, 간절히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있을 테니까.

To Be 혹은 Not To Be 죽는가 사는가

사막에 정글 빙판 뒷골목을 누비던 시간

난 잊지 않겠지만 지난 시간은 처절해

송수민이 밸런스를 맞춰주어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후렴구가 지나가고, 래퍼들의 순서였다.

호흡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두 명이 한 소절씩 가사를 주거니 받거니 부르도록 했다.

내 뜻대로 외길 인생 먼동은 튼다

심장은 빠르게 소리친다 탕탕탕

래퍼 둘이 뒤로 빠지면, 텐션이 높아진 무대는 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 노래는 고음 파트가 따로 없고 송수민의 후렴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가 토스를 올려줘야 한다.

첫 벌스에서는 멜로디가 들어가는 보컬이었다면 이번에는 리듬을 우선한 랩에 가깝다.

함께 걷던 형제들 모두 어디에 있을까

Why 언젠가는 태양이 나를 비출까

카메라를 보고, 주먹을 쥐는 제스처. 소절을 마무리하면서는 송수민과 눈을 맞췄다.

마지막 코러스다. 내가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송수민이 나와 동등하거나 나를 능가하는 에너지로 받아쳐 줘야 한다.

‘오버해도 돼. 네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보여줘.’

연습할 때는 그렇게 디렉팅을 해줬는데, 과연 실전에서도 송수민은 활약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그런 의문을 제대로 곱씹을 시간조차 없었다.

꿈을 일으켜 세게 외쳐

몸을 움직여 발톱을 세워

꿈을 일으켜 빛을 삼켜

난 더 크게 소리쳐

넓게 퍼져 있던 멤버들이 일제히 동작을 정리하고 송수민 근처에 좁게 모여들었다.

아웃트로가 아주 짧은 곡 구조상, 우리가 엔딩 동작을 취하고 홀드한 뒤 거의 바로 음악이 멈추었다.

심장은 터질 듯 요동치고 세찬 함성이 귓가에 빗발쳤다. 이제 한 명씩 엔딩 잡아줄 텐데 호흡이 진정이 안 되네.

‘파트 바꾸길 잘했다…….’

이렇게만 해도 힘들어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후렴까지 했으면 분명 대형사고 쳤을 거다.

반쯤 영혼이 나간 채로 양손으로 하트 만들면서 하나 더, 추가로 생각했다.

‘이겼다.’

투표 결과 볼 것도 없다. 그리고 이기지 않아도 상관없을 만큼 원 없이 불태웠다.

‘……잠깐, 그건 아니지. 그래도 이겨야지.’

승패 결과는 방송이 끝나고 동영상 조회 수 심사까지 끝나야 알 수 있단다. 기다려 보자.

* * *

[오픈채팅] ????????평생레디하겠다는피의연합???????? || 6명

[아임: 끝났어?ㅠㅠ 어케댐???]

[아임: ㅠㅠㅠ어케됐어 아직도 안끝났어?? 애들잘햇어??]

[아]

[ㅈㅅ 아까 끝났는데 버스타느라;; 막차 겨우탐 하]

[강석이: ㅃㄹㅃㄹ 여기기다리고있는사람들 안보이십니까]

[아임: 고생해썽 ㅠㅜㅠㅠ 하루온종일을 길바닥에처불러대네 방송국**들]

[어일단]

[승준이마린룩입음]

[강석이: ㅁㅊ 어떻게 그런짓을 외간방송나가서하냐 안씨청년 상도덕이없다]

[뉘: 웅니 고생많앗엉 지상이얘기도해줘]

[아임: 어허 공주 말씀하시잖아 승준이얘기부터 들어주자]

[안승준... ㅣㅁ친놈]

[그그그 비크 속삭여햇음]

[뉘: 헐 먼가 어울리는듯아닌듯]

[김빵: 와 속삭여 의외다 좀더 센거해주지 ㅜ]

[ㄱㄴㄲ 아쉽긴한데 팀원들이 다 애기들이라 어쩔수없엇던거같음]

[암튼 진짜존나개잘해 안승준,, 존나잘해 걍 잘해 ㅁㅊ넘이야]

[아그리고 지상이 프랙션함]

[뉘: 아씨발]

[뉘: ㅅㅂㅅㅂㅅㅂ김지상프랙션]

[삼새두: ,., ㄹㅇ? 마이스터노래?]

[아임: 허니ㅣ도 헌이도]

[와진짜 지상이가 잘생기긴햇더라 얜진짜 방송1위할듯...]

[그리고의헌이]

[아뭔가... 먼노랜지 모르겟음 소개해줬는데 못들어서 ㅜ]

[뭔가 멜로디는 익숙했는데]

[꿈을 일으켜 ?? 뭐 이런 가사 있었어]

[강석이: 어]

[강석이: 이거아냐? 늑대의시간]

[강석이: 꿈을일으켜 세게외쳐 몸을움직여 <]

[헐 이거맞는듯]

[헐... 뭐이런노래를 했대]

[근데 되게 편곡잘됨 ㅋㅋㅋㅋ 막옛날에 그 복고ㅋ스타일로 개신낫음]

[아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궁ㅠ그뮤ㅠ해ㅠ]

[그리고 정의헌진짜 춤 개잘춤 인트로에 솔로댄브했는데]

[아니그냥.. 어케그런?동작을? 할수있는거지 인간의영역이x]

[강석이: 정의헌진짜 개잘한다니까...]

[삼새두: 솔로댄브 서바에서 그걸 시켜준것도 신기하고 한것도 신기하다]

[김빵: 근데 노래진짜 아쉽다 뭔 이십년전노래를 했네]

[강석이: 하진짜 정의헌없이 해투어케도는데 ㅜ 어나더미친쌔끼들]

[아글고 뭐 투표를 팀대팀으로 다섯개 vs로 했는데]

[ㄴㄴ 그렇게 올드한느낌 안남 그냥 2세대남돌 노래같았어]

[뉘: ㅇㅇㅇ]

[그니까 일대일을 다섯번붙였는데 애들끼리는 안붙엇어]

[강석이: 어우잘됐다]

[아임: 글게 다행]

[지상이가 그 류희재라고 지금 인기개많은애랑 붙어가지고 그게좀 걱정인]

[뉘: 아냐난 지상이믿어~^^]

[뉘: 프랙션을햇는데ㅋㅋ질수가없지^^]

[삼새두: 아 방송언제해 오늘부터 케엠씨 해킹전법으로간다]

[강석이: 난 승준이속삭여도 개궁금]

[김빵: 근데 애들셋중에서는 누가 이길것같아??]

[어 음]

[그거를 순위를 매길지는 모르겠는데]

[사심빼고]

[아임: 사심을빼다니]

[난 갠적으로]

[아임: 그거 빠질수잇는거였어?]

[의헌이]

+ + +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가 방송을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바빴다. 제작발표회도 불려 나가고, 제작진이 준비한 1회 방송 상영회(라는 이름의 리액션 촬영)에도 참석했다.

제작발표회에서는 별일 없었다. 예쁜 옷 입고 맨 뒤에서 병풍처럼 서 있다가 카메라나 구경하고 왔다. – 서고 싶어서 맨 뒤에 선 게 아니라 앞에 서면 작은 애들이 가려져서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첫 회차 방송이었다. 방송을 시작하고 삼십 분이 지나가고 한 시간이 지나가도 우리 분량이 거의 없었다.

‘……끝날 때쯤 잠깐 나왔지.’

끝날 때쯤 나왔다는 것은, 기승전결의 전과 결을 담당했다는 소리다.

연속 시리즈 방송은 ‘결’보다는 ‘전’으로 끝나는 게 불문율이니 대충 1회차 방송의 최종 보스처럼 나왔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소속사 평가 무대는 예고편으로 잘렸다.

애초에 무대 자체를 후반에 했으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고편에까지 나올 줄은.

[훈련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TOP10을 향해 도전하는 아레나의 소년들!]

예고편은 그런 자막과 누덕누덕 이어붙인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 솔직히 화가 났어요.

- 승부가 안 되겠구나, 나는…….

-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혹평을 받은 뒤 이루어진 인터뷰가 음성만 발췌되어 다른 연습생 영상에 덮어씌워졌다.

목소리부터가 언밸런스하니까 이 정도는 왜곡된 편집이 아닐지도 모른다.

[TOP10 순위에 이변은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무대 평가와 트레이너들의 심사평 모음.

- 와, 연습생이 이렇게 잘할 수도 있구나.

- 너희는 무슨 자신감으로 방송에 나온 거야?

여기서 문제의 장면이 등장했다.

- 이렇게 나온 애들 다, 나는 너무 안쓰러워.

트레이너 중 한 분이 나와 두 멤버의 자기소개를 듣고 눈시울을 붉힌 장면.

……자막까지 붙었다.

[체리본 트레이너가 눈물 흘린 이유]

트레이너를 지켜보는 우리 모습도 짧게 스쳐 지나갔다.

삼십 초도 채 되지 않는 예고편이다 보니 인터뷰나 무대 장면까지는 안 나왔지만.

[드디어 시작되는 튜토리얼 경기]

그리고 후반 오 초쯤은 첫 합숙에서 겪은 트레이닝과 심사 에피소드 예고였다.

- 두 번째 ‘A’ 키워드를 공개합니다. 바로 ‘덧붙이다’의 ‘Add’!

MC가 그렇게 외치고…….

[두 번째 A 키워드, Add의 의미는?]

놀라는 연습생들 얼굴 아래로 ‘충격’이라는 자막이 입혀져, 예고편은 마무리되었다. 〈데프아〉 공식 로고와 협찬사 로고들이 화면에 잡혔다.

그리고 마치 쿠키 영상처럼 한 연습생의 코멘트가 맨 끝에 슬쩍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참.

-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와……. 의헌아 반갑다.

원샷 잡혔다.

‘그보다 주어가 다 날아갔잖아?’

내가 받은 질문은 분명 ‘팀원들 이끄는 거 어렵지 않아요?’였는데. 답변은 대충 팀원들이 다들 에너지가 넘쳐서 통제가 어렵다는 내용이었고.

아주 악의가 담긴 편집은 아니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제멋대로였다. 황당하네.

내 멘트가 지나가자마자 바로 광고가 시작되는데, 아는 연습생 중에서는 나를 보며 배를 잡고 웃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 한 사람에게라도 웃음을 주었다면 됐다.

아무튼 그렇게 첫 회 방송이 지나가고, 그 다음 주 주중에는 특별 콘텐츠 촬영이 진행되었다.

순위 발표식에 사용할 영상 확보를 위해서였다.

물론 순위를 벌써 발표한다는 것은 아니고, 경연 무대 없이 순위 발표만으로는 두 시간쯤 되는 방송 분량을 채울 수 없으므로……. 순위 발표식 사이사이 들어갈 콘텐츠 추가 촬영이 목적이었다.

집합 장소랍시고 도착한 주소는 서울 강남의 한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야 서울 살지만, 지방 거주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른다는 건 아니고…….’

아니, 모르는 게 맞나?

음…….

밑밥부터 깔자면 〈데프아〉 트레이너는 다섯 명이다. 보컬 두 분, 댄스 두 분, 그리고 랩 한 분.

실제로는 촬영이 없을 때 도와주시는 보조 선생님, 편곡이나 안무 창작 등을 돕는 선생님들이 몇 분 더 계시긴 한데, 이분들은 카메라에 안 잡히시니까. 트레이너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저 다섯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하는 장소는 트레이너 다섯 분 중 한 분의 작업 공간이다.

……이거 힐링 콘텐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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