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7화
06. MAMMA MIA(3)
* * *
“아! 의헌이 형이 잘하는 게 우리가 욕먹을 이유가 되냐고요!”
다섯 번째 완곡 라이브 연습이 끝났을 때, 김병석이 바닥에 드러누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억울한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솔직히 제일 불성실하게 따라오는 녀석이 할 말은 아니었다.
“쉬었다가 하자. 나도 힘들다.”
“쉽시다, 쉬어요~”
김병석이 물꼬를 틀자마자 주태훈과 김병석 친구 강성진이 냅다 자리에 주저앉으며 연습 흐름을 끊었다.
‘이 녀석들이…….’
순간 머릿속에서 꼰대 마인드와 죄책감이 전쟁을 일으켰다가, 짧은 고뇌 끝에 죄책감이 승리했다.
아무튼 삼십 분 이상 논스톱으로 혹사시킨 건 사실이니까. 팀원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게 우리의 과업이라서 그만…….
소원 한 번 들어주는 셈 치자. 나는 모니터링 영상을 녹화 중이던 태블릿PC 전원을 끄고 선언했다.
“쉬고 잠깐 개인 연습하자. 궁금한 거 있는 사람 봐줄게.”
하지만 다들 지친 모양인지 섣불리 도와달라고 손을 드는 연습생은 없었다. 한 명 말고는.
“저 아까 틀린 부분 봐주세요.”
송수민. 의욕이 상당히 좋아서 하루가 멀다고 실력이 쑥쑥 성장하는 중이다. 좋은 말 양파처럼 칭찬을 마구 퍼부어서 키워놓았더니 춤출 때 자신감도 꽤 붙었고 말이다.
물론 양파는 좋은 말해준다고 해서 잘 자라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송수민은 잘 자랐다.
나는 송수민이 요청하는 대로 동작을 고쳐준 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시켜보았다.
“흠.”
“별로…… 인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춤추는 것을 보고 지금 막 생각 난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게 맞나 모르겠다.
‘확인해 보자.’
우선 개인 연습하라고 풀어놓았던 팀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내 요청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실전으로 한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봐요.”
“갑자기요?”
“예.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춤추고, 라이브랑 액팅도 같이 해주세요.”
그리고 음악방송 카메라처럼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한 명 한 명에게 지시했다.
말로만 겁을 준 게 아니라 촬영도 진짜로 했다. 저화질의 홈메이드 직캠 같은 거다.
“형, 뭔데요!”
“좀 기다려라, 짜식들아.”
촬영하는 이유를 캐묻는 질문은 가볍게 무시해 주고, 나는 녹화한 영상을 하나씩 돌려보았다.
모든 조건을 고려했다. 동작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지,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카메라를 잘 보는지, 그리고 표정 연기까지. 그렇게 세심하게 아홉 개의 영상을 살핀 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수민아.”
“네?”
“너 킬링파트 안 해볼래?”
내가 말하자 송수민의 두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송수민의 대답보다 김병석의 괴성이 빨랐다.
“왜요!!”
“너 내가 박자 밀린다고 연습하라고 한 파트 또 틀렸어, 안 틀렸어.”
그렇게 딱 잘라내며 나는 즉시 김병석의 말문을 막았다.
김병석은 저번 합숙에서 잘못한 게 있어서 요즘은 내가 강하게 나가면 바로 깨갱한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고, 고민을 해봐. 네가 제일 잘할 것 같아서 그래. 바꾸게 되면 동선 같은 것도 수정해야 하니까 연습은 당연히 더 필요할 거고. 그런 거 다 감안해서 생각해야 돼.”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송수민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었다.
우솔 쌤은 시선이 나에게만 향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에게 오는 주목도를 분산시키는 게 어떨까.
방송 규칙은 내게 킬링파트를 담당하라고 시키기도 했지만, 나에게 모든 결정의 최종 권한을 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룰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다. 내가 ‘파트를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면 바꿔도 규칙 위반은 아니었다.
“…….”
송수민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지금 당장 정할 필요는 없는데, 할 말이 있는 건가.
주변 눈치 때문에 말을 못 하는 눈치여서 재빨리 송수민을 데리고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 없는 빈 회의실. 카메라는 있겠지만 발에 채는 게 사람인 연습실 한복판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제 말할 수 있겠어?”
“그렇게 막 엄청난 말을 하려는 건 아닌데요…….”
송수민은 긴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혹시 형이, 제가 불쌍해서 그러시는 거라면…….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서요.”
헉.
흠.
아니다. 그래도 이런 감정 말해주는 애가 귀하다. 나도 조금은 우려하고 있었던 점이니까.
보아하니 계속 이것저것 받고만 있으니까 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 것 같았다.
“미안. 내가 설명을 제대로 안 하고, 너무 그랬네.”
나는 가까이 있는 회의실 의자를 아무거나 하나 빼서 앉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지금 나는 너희들 실력을 일정 이상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시간이 너무 없어.”
재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당연한 거다.
나는 춤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거의 이십 년 췄다. 닷새 만에 내 수준까지 따라오면 나 억울해서 쓰러진다.
“그런데 우솔 쌤이 말씀하셨지. 내가 너무 튄다고. 이게 밸런스가 안 맞는다는 뜻이잖아, 응?”
송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밸런스 무너지면 무대 완성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그냥 내가 둘 중에서 뭐가 나은지 혼자 계산을 해본 거야. 그냥 나 혼자 멋있는 거 다 할까, 아니면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까. 그러다가 후자가 더 낫다는 결론을 낸 거고.”
“……이해했어요.”
“아니야, 너 아직 이해 못 했어. 나 지금 내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해.”
의아한 표정이다. 거봐, 이해 못 했잖아…….
눈높이에 맞춰 다시 풀이해 주기 위해, 나는 느린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냥 나 혼자 하는 무대보다 팀원들이랑 조화로운 무대가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거야, 수민아.”
“…….”
“이번 무대에서 후렴 안 불러도 나는 기회 또 잡을 수 있어. 우리 어차피 이길 거잖아. 다음 경연에서 치고 올라가면 돼.”
허세가 조금 많이 섞인 말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송수민의 눈동자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서 나는 조금 더 설득을 시도했다.
“그런데 망한 무대는 평생 가. 너도 흑역사 남기고 싶은 마음 없을 거 아니야.”
물론 누군가는 내가 가운데에서 팀원들을 백댄서로 부리는 무대가 퀄리티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경연의 목적이 애초에 팀전이기도 하고.
송수민은 혼란 가득한 표정으로, 결국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저예요?”
“그냥 네가 제일 잘하던데.”
간단하게 말했지만, 보기보다는 이것저것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다.
일단 팀원 중에 나 빼고. 본인 개성이 너무 강한 팀원들은 중심을 못 잡아줄 것 같아서 제외. 아직 단체 안무 숙지도 안 되어서 새 파트를 주기에 애매한 녀석도 있었고, 체력이 약해서 마지막까지 곡을 끌어가기 어려울 것 같은 애도 탈락시켰다.
그렇게 한 명씩 이유를 달아 소거법으로 지우다 보니 마지막에 송수민이 남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듯 송수민이 중얼중얼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도 그렇게 되면 형 파트가…….”
“걱정이 너무 많다. 세 가지만 기억해. 하나, ‘나 너 편애하는 거 아니다’. 둘,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하고 있다’. 내가 너 편애한다 뭐다 시비 거는 놈들 있으면 데려와. 걔들하고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내가 단호하게 말을 끊어냈다. 손가락 하나, 두 개를 펴면서.
송수민이 조용히 숨을 삼키고 질문했다.
“……세 번째는요?”
“어. 세 번째. ‘다 방법이 있다’.”
이것도 허세인데 거짓말은 아니다.
제작진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킬링파트입니다’라고 정해준 부분은 송수민을 줄 거다.
‘하지만 그러면 왜 멋대로 파트를 바꾸냐고 비판도 나올 수 있어.’
따라서 나는 고민 끝에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한 파트를 둘로 나누거나, 새로운 파트를 추가하거나.’
최종 선택은 두 번째가 되었다. 그편이 파트를 분담하는 팀원에게 부담이 덜할 것 같았다.
‘댄스 브레이크를 넣으면 돼.’
난이도 문제로 편곡 과정에서 제외한 원곡의 댄스브레이크를 내가 소화하고, 후렴구 파트를 다른 멤버한테 주자는 결론.
이상의 논리적 흐름을 송수민에게 요약해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고민해 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때 말해. 나한테 밀리면 안 되거든.”
덧붙이자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 팀에서 나와 파트를 바꿀 수 있는 멤버는 송수민밖에 없었다.
영상까지 찍어서 확인해 본 결과 실력 자체는 모두 고만고만했다. 그러므로 승부처는 발전 가능성이었다.
경연 당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날까지 실력을 가장 높은 폭으로 펌핑해 올릴 수 있는 사람.
‘그게 송수민이다.’
성실하니까. 이 상황에서 근면은 재능보다도 날카로운 무기였다.
“혼자 더 생각해 봐. 연습실에 있을게.”
송수민을 두고 방 문고리를 돌려 여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뇨, 정했어요.”
송수민이 나를 똑바른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듣지 않아도 전해지는 대답에 슬 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 * *
두 번째 합숙 종료를 스물네 시간도 남기지 않은, 마지막 새벽.
한껏 날카로워진 모두의 신경과 별개로, 밤 시간 연습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마치 시험 전날에는 온 동네 학생들이 일찍 자러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다음날 컨디션 조절이라든가 더 이상 잠을 줄여 연습할 체력이 남지 않았다든가……. 원인은 각자 다르겠지만.
아무튼 몹시 오랜만에 나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혼자 춤 동작을 맞춰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으니까 심심하긴 하네.’
공간 여유가 넉넉해진 건 장점이었지만, 며칠 동안 옆에서 알짱거리던 애들이 없으니 사운드가 꽤나 비었다.
우리 팀이든 다른 팀이든, 헤매는 애들 도와주고 춤 봐주면서 그래도 다들 제법 친해졌으니까 말이다.
요즘은 남들에게 보조 선생님처럼 대해지는 게 또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더 도와주려고 했던 것도 같다.
파트가 변경 및 추가된 만큼 이래저래 추가 연습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겨서 나는 한시도 게으르게 보낼 수 없었다.
특히 내 경우 고난이도 동작을 무대에서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내적으로도 압박감이 상당했다.
‘아직까지는 머리랑 몸이 따로 논다고 해야 하나.’
오늘 제대로 끝내야 다음날 애들이랑 전체를 맞춰볼 수 있을 텐데, 동작 성공률은 아직 오십 퍼센트 정도.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벽걸이 시계의 짧은 바늘은 어느덧 숫자 3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를 소화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앞뒤를 유연하게 연결해야 한다는 새 숙제가 찾아왔다.
‘산 넘어 산이다.’
거의 열 번쯤 같은 동작의 이음새를 실패했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바닥에 몸을 붙였다가 팔과 발끝 힘으로 땅을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데, 점점 동작이 힘에 부쳤다.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다 보니까 팔에 체중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 진짜 다리 10㎝만 줄어들면…….’
…….
‘좋지는 않겠지……. 어휴, 됐다.’
그쯤 멈추고 바닥에 몸을 붙인 채로 몸의 앞뒤만 뒤집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틀어놓은 음악이 끝까지 재생되고 멈출 때까지 그 자리에 대자로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누구 오는 것 같은데…….’
노래까지 멎자 연습실은 조용해졌다. 문 너머 복도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