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6화
06. MAMMA MIA(2)
“지웅이…… 를? 내가?”
주태훈의 머리가 한 박자 느리게 돌아갔다. 여기서 말하는 ‘지웅이’란 분명 중학생인 이 팀 막내 박지웅이었다.
박지웅은 열여섯 살 나이에 연습 경력도 짧고, 툭하면 집중력이 해이해지거나 배운 부분을 다시 묻고는 했다.
끈기도 부족하고 회의에서도 특별히 자기 의견을 내는 일이 없던 연습생. 애가 나쁘거나 게으른 건 아니었지만.
‘박지웅 행동이 곤란할 정도인가?’
주태훈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냉정하게 박지웅의 단점을 손꼽아보라고 하면 열 손가락도 넘어가겠지만…….
지금까지 정의헌은 박지웅을 다루며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 요구는 돌연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주태훈의 의구심을 이해한 건지 정의헌이 조용하게 상황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부터 단체 연습 위주로 가잖아요. 그런데 지웅이가 아직 어리고 연습도 오래 안 해봐서 혼자 힘으로는 따라오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걱정은 되는데 제가 다 봐주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형이 지웅이한테 붙어서 적당히 몰래 잘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건 주태훈에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계획이었다. ‘뒤떨어지는 팀원을 챙기는 자상한 형’이라면 그가 처음부터 바라마지 않던 그림 아니던가.
이제껏 왜 모두를 뒤에서 도울 생각을 했는지 후회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부터 한 명만 붙잡고 봐주었으면 됐을 것을. 주태훈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몰래 하라는 거지.”
“네, 제가 부탁드린 것도 티 내지 말고요. 특별히 신경 쓴다는 거 알면 지웅이 기분도 좀 그럴 것 같아서요.”
정의헌은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해 주었으나 주태훈에게 드러낼 생각 따위 처음부터 조금도 없었다. 스스로 나서서 동생을 챙겨줘야 자연스럽게 멋있지, 리더가 시켜서 억지로 선행하는 놈이 될 수는 없었다.
주태훈은 카메라의 존재를 기억해 내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상한 부탁을 한다, 의헌아.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어.”
“와아. 다행이네요.”
주태훈만큼이나 정의헌도 연기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안 다행인 티가 났지만(그리고 아마 일부러 티를 내는 것이겠지만), 주태훈은 무시했다.
“당연하지. 그게 형으로서 해야 할 일인데.”
“감사합니다. 잘 좀 부탁할게요.”
그렇게 은밀한 거래가 성사되었다.
주태훈은 정의헌과 함께 연습실로 들어간 뒤, 박지웅의 어깨에 슬그머니 팔을 올렸다.
어리둥절하게 올려다보는 박지웅의 시선에 주태훈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단체 연습이 마무리되고 개인 연습을 시작할 때쯤.
“그러면 병석이가 성진이 가르쳐 주면 되겠다. 성진이는 병석이 랩 좀 봐주고.”
정의헌은 팀원 두 명을 정확하게 짚어서, 주태훈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지시를 내렸다.
강성진이라는 연습생은 랩은 잘했지만, 춤에는 영 실력이 없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고 배우고 싶어서 합류한 팀원이기도 했고.
주태훈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기시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 아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둘을 붙이는 게 괜찮나? 끼리끼리 놀다가 게을러질 것 같은데.’
김병석과 강성진은 캐릭터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시쳇말로 연습 분위기 망치는 주범들이었으니까.
주태훈은 지난 합숙 중간 점검 도중에 김병석이 넘어졌던 사건을 기억해 냈다.
‘맞다, 그때 범인도 김병석이었지? 쟤는 용케도 저런 놈을 다시 팀에 받아주네. 그것도 웃으면서.’
사실은 정의헌이 거부하든 말든 김병석이 팀에 들어온 것이었지만, 주태훈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의 눈에는 그저 정의헌이 김병석의 ‘실수’를 용서한 것처럼 보였다.
연습하던 동작도 멈추고 주태훈은 정면 거울을 통해 정의헌의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병석이랑 성진이는 내가 주기적으로 체크할 거니까, 너희 농땡이 피울 생각 하지도 마.”
“아니, 저희 잘할 수 있다니까요!”
“의헌이 형이 우리를 못 믿네.”
“어. 못 믿으니까 제발 잘해서 한 방 먹여봐라.”
왁왁 시끄럽게 항의하는 두 청년을 무심하게 넘기는 그 모습을 보며, 주태훈은 깨달았다.
‘아하. 그냥 잔반 처리하듯 망나니들 묶어놓은 거군.’
나쁘지 않은 결론이었다. 아까부터 주태훈은 삐딱한 통찰력으로 무심코 진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태훈은 강 건너 불구경에 심취한 나머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주태훈의 취급 역시 묶음 서비스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정의헌이 지금 마음속으로 박지웅에게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는, 정말이지 주태훈이 모르는 게 나은 진실이었다.
* * *
“5조 AR 한 번만 들어봐도 될까요?”
며칠 시간이 더 흘러 어느덧 2차 경연 중간 평가 당일.
내가 미리 제출한 연습 일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댄스 트레이너 우솔이 AR을 요청했다.
연습 일지와 악보만 보아서는 편곡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일까.
스태프가 기계를 조작해 AR을 재생하자, 빈 공간이 많은 연습실에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회색빛깔 바람 부는 광야
시선은 정면에 걸어
사냥감을 찾아 헤매어 나
늘 배 주리고 있어
편곡은 우리가 희망한 대로 아주 잘 되었다. 즉 안승준과 김지상이 좋다고 한 B버전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팀은 정통 힙합에 가까운 ‘블랙 뮤직’을 빠른 속도의 디스코 스타일로 바꾸었다.
노래에 살짝 ‘뽕끼’가 더해져 있다는 의미다.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어떤 콘셉트로 진행하려고 이렇게 편곡한 거지?”
일 분쯤 지났을 때, 우솔 쌤이 손을 들어 음악을 멈추게 하고 나를 보며 물었다.
우솔 쌤은 말투 자체가 빈정거리는 느낌이 드니까……. 그 특징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반응 같았다.
바라던 질문이다. 나는 너무 자신만만하게 들리지는 않도록, 들뜬 기분을 내리누르며 공손하게 답했다.
“네, 저희가 정한 콘셉트는 ‘복고’입니다.”
복고. 레트로. 대충 ‘과거의 스타일을 모방하려는 경향’. 사실 그렇게 낯선 소재는 아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복고’는 이미 여러 드라마나 예능 기획 콘셉트로 등장해왔다.
트렌드에 올라타려는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식상함을 느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좋다.
낯설지 않으니까. 우리는 진짜배기 복고가 아닌 복고 감성 스타일만 가져가고자 하니, 더더욱.
애당초 슈트나 교복이나 마린룩, 한복 같은 스타일도 생소하거나 신기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보다 실재하는 70년대, 80년대를 추억하려는 게 아니라 그때의 예쁜 것들을 재해석해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게 우리 목표다.
이 콘셉트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샘솟아 난 게 아니다.
합숙 첫날 〈늑대의 시간〉 편곡을 시작하기 위해 곡 구성을 톺아보았을 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울 뻔했다.
그 어떤 가상 악기 소스를 원곡에 끌어와 붙여보아도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분명했다.
‘노래가 엄청 세련됐어.’
괜히 전설이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가 아니었다.
몇십 년이 흐른 비트인데도 전혀 촌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사운드 디자인은 촘촘했고 악기 사용 역시 현대적이었다.
그래서 오래 고민했으나, 송수민의 포스트잇 편지에서부터 떠올린 ‘옛날’ 키워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예 오래된 노래라는 것을 강조하자.’
그렇게 ‘옛날’을 추구하는 노선이 확정되었다. 이 노래에 억지로 오늘날의 유행을 덧칠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부러 노래의 시간대를 80년대로 되돌려 원곡이 가진 미래적인 세련됨을 강조하는 전법이었다.
“그 말 듣고 생각해 보니까 그런 레트로 느낌이 들기도 하네.”
“좋은 것 같아. 팀 분위기하고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트레이너들의 칭찬에 나는 고개를 돌려 팀원들과 열띤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중간 점검 라이브 역시 실수한 사람도 없이 잘 진행되어서 마음을 놓았는데.
마지막 파트를 끝내고 정면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굳은 표정을 한 트레이너들을 마주 보게 되었다.
“흠…….”
“……무슨 느낌이지, 이게?”
조금 전에 화기애애하게 콘셉트를 호평해 주었던 것이 무색하게 냉랭한 반응이었다.
트레이너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웃으며 라이브를 마무리했던 우리 팀원들도 삽시간에 긴장하고 차렷 자세로 섰다. 본 방송에 반전을 주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해도 직접 겪으니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삘’이 안 느껴져요.”
무슨 이런 평가가 다 있어.
우리 또 원곡자의 전설적인 실력과 비교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워 보이는 파트를 지나치게 잘라내고 편곡한 게 문제인가? 어느 쪽이 ‘삘’인 거냐.
나는 뇌 절반으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고찰하고, 다른 절반을 써서는 표정 관리를 했다. 머리 너무 써서 식은땀 난다.
“정의헌 연습생.”
“네!”
그때 내 이름이 불렸다. 우솔 트레이너였다.
“리더랑 킬링파트 맡은 거 맞지. 메인댄서고.”
“네, 그렇습니다.”
내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우솔 쌤은 자기 턱을 쓸어내리며 심사의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정의헌 연습생이 지금 이 팀에서 독주하는 상황이야. 그게 문제인 것 같아.”
우솔 트레이너는 내 이름을 불렀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력 차이도 나고, 정의헌 연습생이 키도 크고 비주얼이 좋으니까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만 끌려. 이대로 가면 ‘정의헌과 백댄서들’처럼 보일 것 같다. 너희가 열심히 해서 리더 하는 거 따라가야 돼. 이대로면 한 명 빼고 다 묻혀.”
나를 옆에 세워놓고 ‘이렇게 되어야지’라면서 다른 팀원들을 혼내는 느낌.
목적이 나를 칭찬하기 위한 게 아니다 보니 인정을 받으면서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우솔 쌤은 이어 다른 연습생들의 안 좋은 버릇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평가를 종료했다.
“너희들 경연 누구랑 붙지?”
“10조 채호원 연습생 팀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우솔 쌤은 큰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오버스러운 할리우드 액션.
“이대로면 절대 못 이겨, 너희.”
연습생들의 기를 죽이다 못해 자근자근 밟아놓기 위한, 오로지 그 목적뿐인 호된 언사였다.
슬쩍 살피니 이를 악물거나 낯빛이 창백해지거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팀 구성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주눅 들라고 한 말이겠지. 아니면 도발이거나. 이왕이면 나는 후자에 걸려들고 싶었다.
‘괜찮은 밑밥이다. 오히려 좋아.’
남들이 무엇을 예측했든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나를 쳐다보는 채호원과 눈이 마주쳤다. 줄지어 선 10조의 맨 앞줄. 마치 자신이 혼나는 것처럼 굳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였다. 새삼스레, ‘라이벌 대결’이라는 이번 경연의 소제목이 돌이켜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