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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25화 (25/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5화

06. MAMMA MI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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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훈은 이번 ‘데스 매치’에서 만들어진 팀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 Q. 아니……. 갑자기 누구신지?

– A. 상상엔터테인먼트 주태훈, 25세 남성. 정의헌의 새 룸메이트 겸 정의헌이 리더인 5조의 최연장자다.

어쨌든 그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고, 이유는 간단했다. 한탕 해먹으려던 그의 계획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어느덧 올해로 아이돌 연습생 6년 차였다.

데뷔하기에는 한참 늦은 나이에, 상상엔터테인먼트는 중형조차 되지 못하는 소기업.

그에게 매너리즘과 무기력함은 오랜 친구였고 냉소는 습관이었다. 주태훈은 올봄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의 메일 주소로 자기소개 영상을 전송하며 다짐했다.

‘이 방송이 마지막이다.’

이 방송에서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로 아이돌의 꿈을 접기로.

하지만 그렇게까지 간절하다거나 아이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하루에 몇 시간씩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은 이제 질렸고, 이 나이에 누군가의 후배가 되려니 막막함이 앞섰다.

물론 〈데프아〉 예선 합격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도 뛸 듯이 기뻤다. 순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생각은, 상상엔터 지하 연습실에서 어린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자 바뀌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같은 춤 동작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는 아이들.

하지만 상상엔터테인먼트는 절대 이 애들을 띄울 수 없을 것이다. 일 년에도 몇십 그룹에 몇백 명씩 근사하고 돈 많이 투자한 신인이 쏟아지는 세상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되겠냐?’

머리가 좋으면 몸이 덜 고생해도 되는 법. 주태훈은 잔머리를 굴렸고, 한 가지 방송용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른바 ‘멋진 형’ 캐릭터. 그에게는 연차가 있었고, 나이가 있었으며, 붙임성 좋은 성격이 있었다.

그러니 모두가 의지할 만한 멋진 형이 되어서 사람들 눈에 띄어보자.

시청자 투표로 상위권이 결정되는 방송이니까 세울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주태훈은 이를 악물고 방송이 시작할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합숙에서도 뒤떨어지는 꼬꼬마들을 열심히 챙겼고, 두 번째 합숙에서도 심사숙고 끝에 팀을 골랐다.

‘정의헌 정도면 만만하지.’

방에서 이야기해 본 결과 묘하게 사람이 어수룩해서 잘만 하면 휘어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태훈으로서는 너무 기초도 모르는 애를 가르칠 자신은 또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점도 좋았다.

‘데뷔한 놈 부럽다. 이런 밋밋한 애도 5위를 하네.’

물론 주태훈의 선입견이 씻겨 나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정의헌은 팀원을 잘 이끌고, 그의 안무 지도는 프로페셔널했다. 심지어 작‧편곡도 할 줄 안단다.

그런데도 주태훈은 기존 리더의 권위를 깎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렇게 합리화해야만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형, 들었어요?”

정의헌이 태블릿PC에 메모하던 손을 멈추고 말끝을 높여 물었다.

그가 형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여기서 주태훈뿐이다.

시선이 몰렸고, 퍼뜩 정신을 차린 주태훈이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어. 그래. 콘셉트 그거. 좋은 것 같다.”

“그러면 편곡 쌤하고 이야기해서 이대로 픽스할게요.”

정의헌의 멘트를 끝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한 명씩 무선 스피커와 유인물 따위를 챙겨 일어나는데, 연습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방송 스태프 한 명이 들어왔다.

“왜 아직 여기 계세요?”

“네?”

“저희 다섯 시에 촬영 있다고 어제 말했는데. 전달 못 받았어요?”

당황한 정의헌의 눈동자가 빙 돌아 팀원들에게로 향했다.

“어, 깜빡했다.”

어제 정의헌이 편곡 작업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스태프가 주태훈에게 찾아와 이야기해 줬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잊고 있었다.

팀원들과 함께 서둘러 지하 촬영장으로 향하며 주태훈이 간단히 설명했다.

“대진표 정하는 촬영이라고 하더라.”

지하 세트장 문이 열렸다. 꽉 찬 촬영장을 보면, 이 팀이 마지막인 것 같았다.

정의헌이 먼저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쩌렁쩌렁 외친 덕분에 주태훈과 남은 여덟 팀원들은 대충 고개를 조아리며 무리에 스며들 수 있었다.

표시된 자리에 서서 조명과 음향과 촬영 장비 세팅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고, 오늘도 출근한 MC가 큐카드를 손에 들고 외쳤다.

“안녕하세요, 후보생 여러분! 첫 번째 데스 매치의 대진을 결정하는 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MC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규칙을 설명했다.

“이번 데스 매치의 규칙은, 팀 VS 팀 ‘라이벌 대결’입니다. 두 개의 팀이 한 라운드를 구성하며, 라운드 별로 승리한 다섯 팀은 베네핏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라이벌을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연습생들이 환호했다. 모두 유도하는 대로 호응하는 실력이 점점 능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면, 먼저! 대진을 정해보겠습니다. 여기 이 바구니에 리더 열 명 이름이 적힌 공이 들어 있는데요.”

MC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스태프가 바구니가 올라간 카트를 밀고 등장했다.

그리고 MC가 표면이 불투명한, 상자 비슷하게 생긴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일명 ‘너 나와!’ 규칙!”

MC가 공을 뽑아 리더를 추첨하면, 그 리더가 마이크를 잡고 대결하고 싶은 팀 리더 이름을 외치면 되는 규칙이었다.

주태훈은 하위권 팀 리더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룰의 본질이 너무 쉽게 이해되었다.

‘만만한 사람부터 아웃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서 강적과 싸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리더는 없을 것이다.

주태훈은 혼자 속으로 정의헌이 어떤 팀과 싸우고 싶어 할지 대진표를 그려보았다.

왠지 정의헌이 쉽게 지목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팀의 리더는 겉모습도 선이 날카로운 편이라 친해지기 어려워 보이고, 다른 리더들에 비해서는 나이도 있는 쪽이니까.

주태훈은 흐름에 몸을 맡기고 기다렸다. 긴장감 없이.

“정의헌……. 너 나와.”

그런데 첫 번째 순서로 그 리더의 이름이 불렸다.

주태훈은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하고 조금 놀랐다. 물론 그가 아무리 놀라도 호명당한 정의헌 본인보다는 아니겠지만.

“네, 10조의 ‘에이스’ 채호원 후보생. 5조 에이스 정의헌 연습생을 지목했네요!”

MC가 하이톤으로 상황을 중계했고, 정의헌은 스테이지 위로 올라섰다.

이어 MC는 두 리더를 마주 보는 대결 구도로 세워두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채호원 후보생, 무슨 이유로 정의헌 후보생을 지목했나요?”

“제가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의헌 후보생은, 채호원 후보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사람 잘못 봤다고 대신 전해주시겠어요?”

의례적이고 진부한 대화에도 연습생들은 까르르 웃어젖혔다.

짧은 심리전이 끝나고 두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주태훈은 잽싸게 그들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채호원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고, 정의헌은 놀란 듯했으나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어 네 번의 추첨. 작대기가 이리저리 움직여 라이벌이 정해지고 촬영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채호원 다음으로 뽑힌 1위 김지상이 바로 2위인 류희재를 지목한 것 외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없었다.

“저는 류희재 연습생이 처음부터 제 라이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MC가 라이벌을 결정한 사유를 묻자 김지상은 마이크를 붙잡고 그렇게 선전포고했다.

주태훈은 그 모습을 보며, 스테리나인 멤버들에게서만 느껴지는 묘한 여유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다들 방송을 아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주태훈은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피어나려는 것을 애써 아닌 척 억눌렀다.

그리고 머리를 탈탈 털고 MC가 발표하는 공지사항에 집중했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어요, 후보생 여러분!”

MC는 알록달록 대진표가 완성된 우드락 보드를 손에 들고 외쳤다.

“승리 베네핏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죠.”

그래 봐야 투표에 몇 점 추가해 주고, 그런 거겠지. 주태훈은 예상했다. 천 점이든 만 점이든 십만 점이든 그래서 얼마나 실질적 이득인지 짐작이 어려운 숫자를 말하겠지.

주태훈은 벌써부터 지루함을 느꼈으나, 제작진의 계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승리 베네핏은 바로, 1차 순위 발표식의 방출 면제입니다.”

헉. 주태훈은 숨을 삼켰다. 파격적인 발언에 촬영장도 순식간에 쑥덕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아레나’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기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린 바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방출 위기에 처하는 것은 오로지 ‘데스 매치’에서 패배한 후보생들입니다.”

MC가 차근차근 이번 경연의 점수 계산 방식을 알렸다. 무슨 플랫폼에 올라가는 동영상 조회 수랑 추천 수, 현장 투표수를 3:3:4 비율로 합산한다는 듯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더해질수록 주태훈의 입이 당혹감으로 서서히 벌어졌다.

‘이 제작진들은 진심인가?’

어플을 통해 이루어지는 투표는 오로지 ‘방출 위기 후보생’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경연에서 패배한 연습생 중 개인 투표 수 상위 연습생 소수만이 추가로 생존하는 규칙.

“심사 대상 동영상은 3회 방송 후 ‘무편집본 선공개’로 일괄 공개되며, 경연의 승패는 종합 집계가 완료되면 즉시 공개합니다.”

‘1차 데스 매치’는 3회차와 4회차에 걸쳐 방송될 테지만, 3회차가 끝나고 무대 분량 영상만 미리 공개한다는 이야기였다.

MC는 예상 집계 결과 공개 촬영 날짜를 설명에 덧붙였다. 모두 방송에는 잘릴 말이었지만, 편의상 지금 알려두는 듯했다.

주태훈은 인터넷에서 본 투표 방법을 상기하고, 곧 투표 시스템의 구성 의도를 파악했다.

‘그러니까. 경연에서 패배하면 시청자들한테 싹싹 빌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구걸하는 모습까지 별도 촬영하겠다고?’

지나치게 단순하고도 삐딱한 요약이었지만, 본질을 꿰뚫은 정답이었다.

MC가 마무리 멘트를 몇 마디 추가로 남기고 촬영 감독들이 촬영장을 돌며 연습생 리액션을 찍어갔다.

“컷!”

PD의 호령을 끝으로 메인 카메라의 초록색 라이트가 붉게 변했다.

MC가 웃는 얼굴로 먼저 퇴장했고, PD는 현장을 갈무리한 뒤 연습생들에게 말했다.

“연습생분들은 저녁 연습 이제 마저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생하셨어요.”

스튜디오는 금방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지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북적북적했다.

그리고 주태훈도 다른 연습생들의 틈바구니에 섞여서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올라 배정받은 연습실로 향했다.

“태훈이 형, 연습 들어가기 전에 잠시만요.”

한데 그때 주태훈의 어깨를 뒤에서부터 누가 툭툭 두드려왔다.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눈치채기도 전, 주태훈은 시야에 드리운 그림자로 상대가 정의헌임을 알아냈다.

주태훈이 돌아보자 정의헌은 자연스레 연습실과 외떨어진 복도 구석을 가리키며 주태훈을 이끌었다. 잘못한 것도 없건만 주태훈은 공연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상하게 제발이 저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되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형한테 하나 부탁할 게 있어서요.”

그러나 정의헌의 용건은 그렇게 대단하거나 날 서려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어차피 카메라에는 잡힐 소리고,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텐데 그는 목소리를 낮춰 청했다.

“혹시 형이 지웅이 좀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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