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3화
05. What I Said(5)
“영빈이는 왜 아직도 안 와?”
안승준의 8조는 저녁 식사 시간 직후 단체 안무 연습을 시작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무렵 정의헌은 편곡 샘플 제작 문제로 머리를 쥐어뜯는 중이었다.
정의헌 팀과 비교해서든 객관적으로든 8조의 연습 진도는 빠른 편이었다. 〈속삭여〉는 편곡할 요소도 많지 않았고, 안무 구성도 거의 원곡을 따라가기로 팀원들끼리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안승준은 내심 다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저녁밥도 건너뛰고 홀로 안무를 따며 연습을 준비했는데…….
“형, 영빈이 아까 307호에 있던데요.”
“아……. 그러면 민찬이가 가서 영빈이 좀 데려와 줘. 부탁 좀 할게.”
그 상황에서 연습생 하나가 약속한 시간에 늦었다.
“형, 저희 단체 연습은 언제 시작해요?”
“……영빈이랑 민찬이가 안 오네.”
데려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놓은 연습생까지도 삼십 분 넘게 함흥차사였다.
어쩔 수 없이 안승준은 307호에 직접 가서 방에 눌러앉은 연습생들을 직접 픽업했다.
그러나 돌아온 안승준을 반기는 것은……. 조용한 연습실이었다.
연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졸거나, 서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왜 아무도 안 하고 있어?”
“노래가 꺼졌어요.”
“……뭐 고장 났어?”
“고장 난 건 아닌데…….”
기계는 멀쩡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도 태블릿PC도, 안승준이 확인하자 잘 작동했다.
그저 그가 연습실을 나가기 전에 음악 애플리케이션의 ‘반복 재생’ 버튼을 눌러놓지 않았을 뿐이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연습생들이 뮤직 플레이어 다루는 법을 모를 리 없었다.
어쩌면 사소한 실수라고도 여겨질 수 있는 일.
어쩌면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자고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일.
그러나 티끌 같은 트러블도 태산을 이룰 만큼 누적된 지 오래였다.
“얘들아.”
……안승준의 인내심은 거기서 끊겼다.
“열심히 안 할래?”
화를 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억누르기에는 너무 많이 쌓였다.
안승준은 도수가 약간 있는 안경을 벗고,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스산하게 내리깔린 음성에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너희 데뷔하고 싶어서 여기 나온 거 아니야?”
“…….”
“누가 강제로 시켰어? ‘방송 안 나가면 안 된다’, ‘아이돌 안 하면 안 된다’, 누가 너희한테 명령해서 방송 나온 거야? 아니잖아. 그냥 너희 꿈이 아이돌이니까 데뷔하고 싶어서 여기 나온 거잖아.”
‘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대답으로 듬성듬성 섞였다.
“나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야. 너희 뒷바라지하러 온 것은 더 아니고.”
“…….”
“그런데도 무대 한번 잘해보고 싶어서 힘든 거, 화나는 거 다 참고 있는 거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습생들을 돌아보며 안승준은 길게 심호흡했다.
“나 하고 싶은 거 많아, 얘들아. 아직 보여주고 싶은 거 너무 많아. 너희도 사실 그렇잖아. 무대 망치면, 좋은 무대 못 보여드리면 우리 다 백 퍼센트 후회해.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한 번만 열심히 해보자. 응?”
현실의 싸움은 소설이나 영화 속 전투 장면처럼 멋있게 흘러가지 않는다.
더구나 연습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멋대로 거기서 뛰쳐나갈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냥 그랬다는 썰이다. 안승준은 싸늘한 분위기를 억지로 수습하고 두 시간 동안 추가로 연습을 총괄했다.
그리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저녁을 컵라면으로 때우기 위해 식당에 내려온 것이다.
* * *
“별일이다.”
“이 리액션 최선인가요.”
“그런데, 형 말대로 진짜 별일이잖아.”
김지상이 내 의견에 동의하며 나와 엄지를 주고받았다.
안승준도 그 이상 할 말은 없는지, 식은 라면 국물을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그리고 잠깐 말이 없었다. 지상이가 뾰족한 투로 말을 걸 때까지.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네가 졌어.”
“아니, 아직이거든?”
그러더니 김지상과 안승준은 한참을 둘이서 투닥거렸다.
나는 그 사이에서……. 영문을 모르고 송수민이 준 커피 맛 과자를 씹었다.
“형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거 맞아?”
“야, 안승준. 그렇게 다 말하면 반칙이지.”
“너희 뭐 때문에 그러는데?”
내가 질문하자 안승준은 쓴 한숨을 짓고, 김지상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이 씨……. 진짜 모르네.”
“몰라. 내가 뭐랬어. 의헌이 형 절대 몰라.”
“너희 지금 나 따돌리는 거?”
승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쓰레기통 방향으로 저벅저벅 향했다.
그리고 남은 음식 쓰레기는 잔반통에, 포장 용기는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돌아왔다.
이 틈을 타서 나는 김지상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지상이는 고개를 저었다.
“안승준 도망간다.”
“갈 걸 그랬다. 아니……. 형, 진짜 기억 안 나?”
지상이의 빈정거림은 가볍게 응수하고, 승준이가 내게 물었다.
“뭔데.”
“의헌이 형이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어? 아, 미친.”
헉.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서, 나는 즉시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이거 욕인가?
어떻게 지금까지 잊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른 깨달음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둘 다 바보도 아니고…….”
김지상이 보충 설명하기를, 내가 그 말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로 둘이서 내기를 했단다.
‘정의헌이 기억을 못 할 거다’에 김지상이 걸고 그 반대에 안승준이 걸었다나 뭐라나.
“안승준이 아직 정의헌을 파악 못 한 거야. 저 형이 기억할 리가 있나.”
“지상아……. 혹시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냐. 오늘 공격이 세네.”
“아니. 스트레스받는 일 속에 안 담아두니까, 형은.”
음, 내 말은 맞는 말도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아무튼 안승준이 팀원들한테 퍼부은 발언을 곰곰이 되짚어보니, 옛날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안승준, 열심히 안 해? 너 데뷔하고 싶어서 연습생 된 거 아니야?’
‘내가 너 뒷바라지하려고 리더 하겠다고 한 줄 알아?’
……그냥 잊고 있을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심하게 굴었던 것 같아서, 미안한 것을 넘어 부끄럽다.
그런 때가 있었지. 지금이야 권위 따위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지만…….
“그때 진짜 대단했어. 정의헌 암실 미친개 시절.”
“헐, 김지상. 나 ‘미친개’ 진짜 오랜만에 들어봐.”
“하하하, 얘들아…….”
쪽팔려 쓰러지겠다.
우선 ‘암실’이란 우리가 연습생 때부터 사용한 어나더뮤직 사옥 지하 연습실을 의미한다.
천장이 낮은 지하 연습실은 새까만 흡음재로 사방을 도배한 구조라서 그 별명이 암실이 되었다.
당연히 지하 환경은 엉망. 빛이 들기는커녕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 데뷔한 선배님들은 다른 연습실을 사용하였고, 암실은 서열이 낮은 연습생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장소였다.
물론 스테리나인은 인원 문제로 데뷔하고 나서도 암실에서 연습했다.
‘덕분에 데뷔 초 안무 영상 콘텐츠 보면 영상 명도가 가관이다.’
하여간 우리는 연습생 시절 그 지하 암실에 틀어박혀 살았다.
스테리나인으로 데뷔하게 된 멤버보다 전체 연습생 수가 배는 많았으니, 손바닥만 한 골방을 스무 명 남짓한 청소년이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는 내 이야기보다 안승준의 경우를 먼저 짚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팩트를 다시 체크해 보자면.
안승준은 중학생 때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 〈틴에이지 스타〉 첫 번째 시즌의 최종 2위를 거머쥔 인물이다.
그전에 〈틴에이지 스타〉, 약칭 〈틴스타〉.
당시 난립하던 일반인 대상 ‘대국민 오디션’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히트한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전에 없어서 흥행한 게 아닌가 싶다.’
참가자 기준은 만 나이로 10대일 것, 그리고 음악적 재능이 있을 것.
자극적인 포맷과 편집, 어린애들과 진심으로 싸우려고 하는 다양한 빌런의 등장, 그리고 실력 있는 예술 중‧고등‧대학교 출신 엘리트들과 그 외 개성이 다양한 언더독 참가자들까지.
여러 요소를 발판 삼아 〈틴스타〉는 성공했고 KMC를 유명 방송국으로 만들어주었다.
‘솔직히 스테리나인 멤버 중 제일 대중적으로 성공을 경험해 본 건 누가 뭐래도 안승준이지.’
그다음은 당연히 〈데프아〉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김지상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안승준은 〈틴에이지 스타〉라는 커리어를 바탕으로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
‘처음에는 큰 소속사에서 시작했지만.’
단기적으로 회사를 옮기기를 여러 번.
결국 승준이는 열아홉 살이 되며 어나더뮤직과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우리 이번에 들어오는 연습생, 〈틴스타〉 출신이래.’
‘〈틴스타〉 우승자들 익스나 원엔터에서 데려가지 않았나? 왜 우리 회사에 온 거지?’
‘나도 몰라. 원엔터에서 잘렸다는 말이 있던데.’
‘쉿! 조용히 해, 의헌이 형 온다. 저 형 이런 얘기 싫어해.’
TV에서 본 사람이 눈앞에 등장하자 기존 어나더뮤직 연습생들은 매일 그 주제를 입에 올렸다.
그것을 두고 분위기가 들떴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음험해졌다고 해야 할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들 기대 반 조소 반으로 저들만의 기준을 만들어서 새로운 연습생을 재단하고 싶어 했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연습생으로 들어온 안승준입니다……. 네, 잘해봐요.’
하지만 우리가 만나게 된 안승준은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제멋대로인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텃세나 따돌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승준이는 스스럼없이 금방 다른 연습생들과 친해졌고, 연습생들 사이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친구를 잘 만들고 남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문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안승준이 어나더뮤직에 입사하고 일주일 뒤, 안승준이 ‘ONE엔터테인먼트’에서 태도 불량으로 방출되었다는 루머는 거의 정설이 되었다.
‘녀석의 태도를 보면 그 루머를 믿게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야 ‘사교성이 뛰어났다’고 좋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나는 안승준이 물을 흐린다고 생각했다.
현재 〈데프아〉에서 안승준의 8조 연습생들이 저지른 행동을 그 시절 승준이도 똑같이 했다고 보면 된다.
연습 빼먹고, 지각하고, 노느라 과제 안 해오고, 단체 연습 시간에 다른 연습생들이랑 장난치고.
‘야, 안승준.’
그러다가 내가 두고 보지 못하고 안승준을 따로 불러내서 주의를 주었다는 게 결론이다.
오늘날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여기며 좋게 웃으며 타이를 수 있는 정의헌이 태어나기 전의 어느 날.
‘너 오늘 끝나고 남아.’
……솔직히 인간이 덜된 시기였다.
무슨 만화 같은 별명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그때의 나는 성질머리가 더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