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21화 (2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1화

05. What I Said(3)

“뭐?”

주태훈이 인상을 찌푸렸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겨우 표정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행동을 보면 이 형은 카메라를 상당히 의식하는 듯했다.

나는 다시, 조금은 고집스럽게 의견을 주장했다.

“이 노래로 경연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우리에게 주어진 곡은 ‘가솔린’의 〈늑대의 시간〉.

수록 앨범 이름은 《Gasoline》. 이 그룹의 첫 번째 앨범이었다.

〈늑대의 시간〉은 3인조 남성 트리오 힙합‧댄스 그룹 가솔린의 데뷔곡이었다.

절제 없이 콸콸 흐르는 남성미는 제목부터 가사, 콘셉트까지 주르륵 이어진다.

구성적 특징은 긴 전주로 시작해서 보컬 멤버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연결되는 매끄러운 흐름.

그리고 당시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했던 ‘뉴 잭 스윙’이라는 장르 비트에 힙합을 입힌 고유의 스타일이다.

가솔린은 이 거물 히트곡 덕분에 데뷔 직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한다.

곡 발매 당시 난 세포 상태였으므로, 나로서는 어디까지나 들은 이야기지만…….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기였다는 것 같지.’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영화 및 드라마 OST나 예능 BGM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후배 그룹들이 이 노래를 커버하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까닭은 다른 게 아니었다.

‘진짜 시대의 역작이니까.’

노래가 지나치게 좋았다.

퍼포먼스도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그 좋은 평판과 완성도는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었지만, 사실 장점이기도 했다.

다른 팀이 뽑은 노래와 비교해 보아도 이만큼 구성적으로 훌륭한 곡이 없었다.

‘그리고 꽤 오래된 곡이라, 〈데프아〉 팬들은 바로 원곡을 연상할 수 없을 거야.’

나는 태블릿PC로 이튜브의 〈늑대의 시간〉 영상을 검색해 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노래 들어보시면 알 거예요.”

아는 노래여도 분석하기 위해 듣는 것과 그냥 듣는 것은 다르다.

즉 곡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습실 한구석에서 저음질로 퍼지는 90년대 히트송.

후렴구가 시작되자 대여섯 명의 감탄이 동시에 울렸다.

“아아!”

김병석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외쳤다.

“따라따라 따라라 딴딴, 옥수수! 옥수우~라면!”

“어어. 그래, 그거. 그 광고에 나오는 노래.”

정답이긴 한데, 방송에서 상호명 막 말해도 되는 거?

완곡을 통으로 들려주니까 그래도 다들 노래가 뭔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다만 주태훈은 여전히 좋지 않은 표정으로 투덜투덜 질문했다.

“그런데 이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파트나 콘셉트 같은 건 이제부터 정해봐야죠.”

“노래 좋다면서?”

“좋잖아요.”

여기서 부정해 봐야 까마득한 선배님을 무시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늑대의 시간〉은 힙합 스타일 댄스곡이니까, 경연에 부담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집중하며 노래의 구성적인 특징과 요즘 노래와의 공통점을 짧게 더 설명해 주었다.

결론은 몇몇 부분만 제외하면 〈늑대의 시간〉도 어려운 노래가 아니고, 그 정도 어려운 부분은 모든 곡에 다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편곡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지웅이도 곡 잘 골라온 거예요. 이제 회의합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편곡 회의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곡 그대로 갈 수는 없고, 고치자니 아이디어가 한 꼭짓점으로 모이지 않았다.

“……자, 우리 아직 파트만 나눴어요. 다시 집중하죠.”

;파트 분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정비례하여 팀원들의 집중력은 점점 고갈되었다.

가사지는 모두의 손을 떠나 바닥에 널브러진 지 오래고, 처음 동그랗게 모였던 대형도 어느새 삐뚤빼뚤 흐트러졌다.

그 상황에 한술 더 떠서 다들 점점 집단적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예 느리게 편곡하는 건 어때? 섹시하게.”

“우리 앞으로 회의에서 ‘섹시’라는 단어 한 번 나올 때마다 100원씩 걷기로 하죠.”

아직 미련을 못 버렸는지 섹시 광기에 잡아먹힌 주태훈도 문제였고.

“저 예전부터 뱀파이어 콘셉트를 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농담인 것도 같았지만, 말도 안 되는 무리수 콜라보레이션을 원하는 김병석도 심각했다.

“예능에도 많이 쓰이는 노래니까 아예 코믹하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 고인이 계신 그룹이니까. 진지하게 해야지.”

몰랐을 수도 있으니까 이 제안은 그렇다고 치자.

“흐아암…….”

그리고 2분에 한 번씩 하품을 하는 중학생 막내도 힘든 환경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고.

“저 그런데 춤 잘 못 춰요. 안무 창작할 거면 쉽게 해주시면 안 돼요?”

“뭐라고?”

“이왕 나온 김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려고 하는데, 형이 잘 가르쳐 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듣자 듣자 하니 기가 막히는 발언까지 나왔다.

문제 발언의 주인공은 아까부터 김병석이랑 죽이 잘 맞아서 내가 불안하게 보고 있는 연습생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이 연습생은 머쓱한 듯 헤헤 웃으며 제 뒷덜미를 긁적였다.

‘더 이야기하다가는 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모르겠군…….’

나는 그쯤에서 회의를 중단했다.

“원곡보다는 빠르게, EDM으로 리믹스해서 편곡하기. 앞부분 댄스 브레이크는 들어내고 포인트 안무는 살릴게요. 동선 이동은 아예 싹 창작하고요.”

그나마 단편적인 아이디어라도 툭툭 던져준 애들 덕분에 여기까지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곡과 안무 방향에 관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스타일링 콘셉트가 좀 애매하네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이디어 나온 대로 편곡 샘플을 만들어보고, 콘셉트를 그다음에 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나온 콘셉트는 라틴 팝, 호러, 고전 한국풍, 재즈 록, 여기까지는 리믹스를 콘셉트 맞춰서 새로 만들어야 하고……. 그 외에 스타일링 아이디어는 수트, 교복, 남친룩, 반항아 콘셉트. 이렇게가 되겠네요. 아이디어 새로 생기면 언제든 저한테 따로 알려주세요.”

발표를 그렇게 일단락하고 나서야 나는 그 무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무도 편곡도 다 나오지 않았으므로, 연습은 우선 멜로디와 각자 파트 가사 외우기부터 하기로 합의했다.

“저 편곡 쌤이랑 상담 좀 하고 올게요.”

그렇게 나는 자리를 또 옮겼다. 편곡 선생님께 부탁드려 몇몇 장르의 편곡 샘플을 받아오기 위함이었다.

“장르가 뭐 이렇게 많이 필요해. 안 그래도 일 많은데.”

“하하……. 아직 결정이 안 나서요. 일단 하이라이트 한두 마디만 샘플로 만들어볼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라틴 음악이나 재즈 같은 건 제가 잘 모르겠어서, 그쪽만 어떻게 잘 부탁드릴게요.”

“어휴, 알았다. 그래도 네가 작곡할 줄 안다니까 다행이지. 빨리 결정해야 너희들한테도 좋아.”

내가 웃으며 어깨를 주물러드리자 편곡 선생님도 결국 못 이기는 척 도와주셨다.

모르는 영역은 맡겼으니, 남은 건 아는 부분을 내가 직접 건드려 보는 일이었다.

‘작곡 배운 것을 여기서 써먹네.’

아이돌이 연차 차면 너도나도 작곡 배우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확고하게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두 번째는 좋은 작곡가에게서 좋은 곡 받아오기 점점 어려운 환경이 되어서.

내가 어느 쪽이었는지는 노코멘트하련다. 아무튼 미리 배워둬서 다행이다.

회의실에 노트북 하나 들고 저녁 내내 갇혀서 어느 정도 작업을 마쳤을 때, 내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장르적 시도는 안 하는 게 낫겠는데?’

어떻게 리믹스를 해봐도 원곡이 가진 에너지 넘치고 야성적인 느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EDM만 섞어서 요즘 댄스곡 느낌을 내는 것이 정말 ‘그나마’ 최선이었다.

특이한 장르 색을 넣는 것 자체가 무리해 보였으므로, 내 정신은 스타일링 콘셉트로 쏠렸다. 수트, 교복, 남친룩, 반항아 콘셉트……. 내 회의록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곡 이미지상 제일 어울리는 것은 교복이나 반항아 스타일.’

하지만 이런 스타일링은 백 퍼센트 다른 팀과 겹친다. 단순 예측이 아니라 경험이 낳은 추론이다.

교복 스타일 정도라면 여러 팀이 있어도 괜찮긴 하지만…….

‘비교적 오디션 경연 경쟁력이 낮은 곡을 들고 그렇게까지 정면승부를 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아이디어 부족으로 혼자 고뇌하고 있는데, 그때 누가 회의실 문을 밖에서 똑똑 두드렸다.

“정의헌 연습생, 여기 있었네요.”

“아, 윤아 작가님.”

회의실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들이민 이는, 내게도 이제 얼굴이 많이 익숙한 스태프 허윤아였다.

둥근 안경을 쓰고 앞머리가 곱슬곱슬한 그분.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되셨을까.

이름도 트고 잡담도 꽤 했는데, 되게 재밌고 좋은 분이시다.

“연습실에 없어서 어디 간 건가 했어요. 인터뷰 촬영 있으니까 바로 지하로 와주세요.”

“인터뷰룸 말고 지하로요?”

“네, 플레이피 특별 콘텐츠 촬영이라.”

참 시키는 일도 많다. 나는 작가님을 따라 지하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지하에는 인터뷰 세트와 비슷한 듯 조금 덜 꾸며져 있는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카메라 앞에 의자는 하나. 그리고 세로로 접힌 종이쪽지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원통도 하나 보였다.

내 앞에서 기다리는 연습생도 꽤 수가 되었고, 대개는 팀 단위로 데려온 것 같았다.

“이거 무슨 촬영이에요?”

“개인 인터뷰예요. 보면 알겠지만 어려운 건 아니고…….”

윤아 작가님이 인터뷰 콘텐츠의 규칙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쪽지를 열어보면 연습생 이름이 하나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통에서 쪽지를 뽑아 나온 연습생을 30초 동안 대신 소개해 주면 될 뿐인 인터뷰.

본인 나오거나 인연이 없어서 도무지 소개할 수 없다면 패스하면 된다. 한 번 사용한 쪽지는 폐기한다.

24~25명씩 네 조로 진행하여, 15분 이내 분량의 영상 네 개가 첫 방송 후 플레이피 플랫폼에 올라갈 예정이란다.

“이런 단체 마니또 같은 생각은 누가 했어요?”

“그야 제가 했죠.”

“……저 진짜 처음부터 칭찬하려고 말한 겁니다.”

어느덧 내 순서가 찾아오고, 나는 연두색 쪽지를 원통에서 뽑아 올렸다.

쪽지에는 ‘넥스트레코드 채호원’이 적혀 있었다.

“네, 저는 넥스트레코드 채호원 연습생이 나왔는데요.”

……뭐라고 말해?

창의력을 쥐어짜 봤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고, 연습에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는 중학교 생활기록부 같은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대략 여기서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도 덧붙여줬다.

“너도 나도 열심히 해서 〈데프아〉에서 같이 데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호원아. 잘 부탁해.”

데뷔는……. 못 하겠지만,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더 할 말이 없었다.

의자에서 내려오며 나는 대기 중인 작가님께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이거 누가 저 했는지는 영상 나올 때까지 비밀이에요?”

“굳이 비밀로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송수민 연습생이었어요.”

송수민이면……. 98위로 팀에 합류한 연습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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