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20화 (2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0화

05. What I Said(2)

조금 더 깊게 팀원을 파고들어 보자면.

주태훈은 100명 중에서도 거의 최연장자고, 열여섯 살 멤버는 100명 중 최연소자에 가까웠다.

김병석은 외양이나 이미지나 꽤나 거친 스포츠맨 타입인데, 아예 귀엽고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는 연습생도 팀에 많았다.

겉모습만 대충 봐도 우리에게는 한 팀 같은 느낌이라든지 서로 어울리는 느낌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겨우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연습생 개개인의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래퍼가 약간 많은 감은 있었으나 그 외의 밸런스는 얼추 서로서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가하고 제외할 곡부터 골라볼게요.”

선곡 기준은 팀원을 모을 때부터 반복해 이야기했던 그대로.

나는 경연 계획서를 제작진에게 받아온 뒤, 회의 시작을 겸해 한 번 더 강조했다.

“기회가 여섯 번이니까 세 곡 추가하고 세 곡 제외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빼는 곡은 댄스가 들어가기 힘든 곡 위주로 빼는 게 좋을 것 같고, 추가하는 건……. 제가 보컬이나 랩으로는 남을 봐줄 실력이 아니라서, 퍼포먼스 좋은 댄스곡을 최우선으로 고를게요.”

나는 인쇄된 곡 목록을 힐끔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나온, 그러니까 2010년대 보이그룹 노래가 경연 취지나 의도에는 제일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스트 속 조건에 맞는 노래 제목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보이그룹이 아닌 가수들 노래를 제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큰롤이나 발라드, 포크 등 장르 색이 강하면 편곡과 안무 창작에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춤을 메인으로 해야 하니까 가창력이 많이 요구되는 노래는 골라봐야 자기 꾀에 발 걸려 넘어지는 꼴이 될 테고.

덧붙여 걸그룹 노래는 전반적으로 콘셉트를 제대로 살리기가 힘들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른바 ‘걸크러시’의 유행으로 걸그룹 퍼포먼스도 보이그룹 퍼포먼스 못지않게 강렬해질 테지만……. 이 시점에서는 아직이다. 적어도 그런 노래가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정석적인 오디션 경연에 걸맞은 음악이 필요해.’

조금 진부하더라도 스테디셀러와 클래식에는 이유가 있는 법.

다 비슷비슷한 보이그룹 댄스곡을 노릴 것은 솔직히 불 보듯 뻔했다.

어차피 무작위라면 전생에 인기가 많았던 노래를 노려봐도 좋을 것 같았다.

지팡이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안무가 특징적인 끈적한 섹시 콘셉트 히트곡, ‘마이스터’의 〈Fraction〉.

그 외 ‘여심 자극’ 콘셉트로 유명하거나, 빠른 템포의 활동적인 곡들도 경쟁력이 있었다.

‘레일록’의 〈다디단〉이나, ‘칸타빌레’의 〈Want it〉이라든가.

‘VIK’의 〈속삭여〉라는 곡은 안승준이 지난 생에서 1차 경연곡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청량이 잘 어울려서, 청량한 거 하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

없었다.

나는 곡 제목 옆에 펜으로 체크 표시를 그리며 발표를 이어갔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니 일렉트로닉 팝 스타일의 댄스 음악이 열 곡쯤 남았다.

“저 프랙션 엄청 좋아해요!”

“다디단 어떨까요? 수트 같은 거 입으면 좋을 것 같은데.”

“칸타빌레 선배님들 노래 하고 싶어요. 약간 마피아 느낌 나게 연출해서.”

떡밥을 던지니 팀원들은 자기들끼리 희망 콘셉트를 영업하며 생산성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대화를 나눴다.

태블릿PC로 모르는 노래를 들어보기도 하고, 퍼포먼스를 검색하기도 하고.

“그러면 이렇게 목록 만들어서 올리겠습니다.”

결정은 생각보다 이르게 끝났다.

손발이 그렇게 잘 맞은 건 아니지만, ‘어차피 후보’라고 말해주면 다들 적당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가하는 것은 힙합 베이스 댄스곡 세 곡.

원곡이 교복 콘셉트라 10대 팀원들과도 잘 어울리는 곡이라든지, 동선 이동이 복잡한 데 반해 안무 하나하나는 쉬워 눈속임이 잘되는 곡 같은……. 누가 잡아가도 꽝은 아닌 노래로 골랐다.

제외하는 곡은 후보가 워낙 많아서, 겹칠 때를 대비해 넉넉하게 선택했다.

“15분 뒤에 촬영 재개해요! 그동안 연습생들은 다트 던지는 대표 뽑아주세요!”

제작진이 외치고, 팀원 몇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짧은 휴식 시간.

나는 제작진에게 받은 ‘경연 계획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1차 데스 매치, 즉 1차 경연 계획서에는 경연 준비 및 본 무대 촬영 안내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경연 심사는 현장 투표와 플레이피 동영상 조회 수 및 추천 수를 합산해 집계하며, 트레이너는 심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플레이피’는……. 이 프로그램 제작 지원하는 그놈의 동영상 플랫폼 ‘Play:P’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어지는 ‘무대 프로듀싱의 모든 책임은 참가자에게 있다’는 항목이었다.

좋게 말하면, 특이한 시도를 해도 제작진이 나서서 감점하지는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경연 준비가 미숙해도 제작진 일동은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놓고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되고, 편곡이나 가사 창작도 마음대로 해도 좋단다.

‘리더가 팀을 제대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군.’

‘자유롭게 수정 가능’이 우리에게 호재인지 악재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수정이 필요 없는 곡으로 경연하게 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대충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렸을 때쯤 자리를 비웠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이제 다트를 던질 대표 한 사람을 정해야 할 때.

아무도 자원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팀원 한 명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왔다.

“형…….”

“어, 지웅아.”

열여섯 살, 중학교 삼 학년 되는 팀 막내였다. 이름은 박지웅.

말갛게 생긴 녀석이 다른 팀원과 제작진들 눈치를 슬쩍 보면서 내게 귓속말했다.

“다트 제가 해도 돼요?”

“……해도는 되는데, 왜?”

“그게…….”

녀석은 안절부절못하고 내 눈치를 한참 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한마디를 필사적으로 덧붙였다.

“방송 분량이…….”

“……아, 그래. 오케이.”

박지웅은 오늘 촬영 내내 ‘자연스럽게 멋진 장면’을 못 뽑아냈는데, 그게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모든 연습생을 통틀어 최연소는 또 아니라서 캐릭터가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좋은 곡을 뽑아와서 잘 보이려는 건가.’

큰일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고민이라, 나는 팀원들을 불러 박지웅을 대표로 추천했다.

“자신 있는 거야?”

“아, 그러다가 망하면 어떡해요.”

“맞아, 망하면 책임질 수 있냐고요.”

목소리 큰 친구들이 이번에도 불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줄 수 있었다.

“그러면 직접 하실래요?”

침묵.

본인들도 성공할 자신이 없으면서, 덮어놓고 우선 비난만 던지고 본 것 같았다.

어차피 다트는 실력 위에 운이 존재하기에 누가 던져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잔소리꾼들은 허를 찔리자 거짓말처럼 사이좋게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다트는 막내의 단독 무대가 되었다.

* * *

휘익.

다트 핀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 얼룩덜룩하게 칸이 나누어진 돌림판에 꽂혔다.

먼 거리에서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서, 모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

팀원 중 누군가가 누구보다 빨리 소리쳤다.

짜증이 잔뜩 섞인 탄식이었다.

“아…….”

다트를 던진 막내도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핀이 꽂힌 위치는 두 개의 넓은 칸 사이의 얇은 틈이었다.

“네, 5조 선곡……!”

아무도 ‘추가’하지 않았지만, 채 ‘제외’되지도 않은 노래.

그 누구도 선호하지 않음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 낯선 곡.

얇디얇은 칸의 넓이가 그 곡의 입지를 증명했다.

“그룹 ‘가솔린’의 노래, 〈늑대의 시간〉입니다!”

제작진이 돌림판에 적힌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팀원 반응이 다들 어리둥절했다.

‘헐’이라며 놀라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하고, 헛웃거나 혀를 차는 반응까지.

아직 어린 애들이나 외국인 멤버는 노래 제목을 듣고도 몰라서 얼굴에 물음표만 띄우고 있었다.

모를 만도 하다.

이 노래, 〈늑대의 시간〉은……. 1994년 2월 노래다.

일단 너무 옛날 노래였다. 심지어 그 시절 유행했던, 거물 히트곡이었다.

‘아이돌 경연에서 이제까지 〈늑대의 시간〉으로 무대에 선 사람은 없어.’

그 이유는 너무 전설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연말 가요무대에나 어울리는 노래라서.

아마 실제로 〈리턴 8090 특집〉 같은 제목으로 후배 가수들에게 커버 자체는 많이 되었을 거다.

‘그리고 이튜브 업로드로 40대, 50대의 혹평 댓글을 한 바가지씩 받았겠지.’

그 꼴 안 봐도 비디오, DVD, 블루레이, 아이맥스 특별관이다.

– 흠. 못 추는 건 아니지만…… 어째 2% 부족하네요. 역시 가솔린은 비교불가 원톱.

– ㅋㅋㅋ가솔린이랑 비교하면 재롱잔치네요ㅋㅋㅋㅋ

– 가솔린 형님들이 그립습니다 ㅜㅜ 그 누가 따라해도 절대 가솔린 느낌이 나지 않아 ㅜㅜ

– 이분들도 잘 추시는데…… 박력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힘내세요. 이분들이 못하는 게 아니라 가솔린이 넘사벽인 거임. ㅠㅠ흑흑. 그 시절 가솔린은 정말 아무도 못 따라오는구나ㅠㅠ

– 이 영상 보고 가솔린 무대 보고 오니까 속이 편안하다!

으윽……. 2015년 QBS 연말 가요대축제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스테리나인으로 ‘전설 리메이크 특집’ 무대 한 번 했다가 억지 욕을 얼마나 바가지로 들어먹었는지.

그야 당시 스나는 어나더뮤직에서 신인 푸시를 아끼지 않는 바람에 온갖 곳에서 견제를 받았으니까……. 이것도 옛날얘기지만.

‘아무튼.’

어떤 의미로는 이런 것이 톱 아이돌 무대를 망쳤을 때보다 매서운 반응이 아닐까 싶다.

아이돌 팬 중 일부는 잘하면 기특하다고 칭찬이라도 해주는데, 이 사람들은 잘해도 욕을 하니까 문제다.

연령대나 성향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커버 무대 본 김에 관련 영상 찾아보고 투표해 주는 집단’도 아니고.

‘너무 오래전에 발매되었고, 지금의 아이돌 팬덤을 노리는 노래가 아니다. 단점이 너무 커.’

즉, 남들이 희망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곡이었다.

다트를 던진 박지웅은 사색이 되어 파트 분배 기록용 종이와 가사지 묶음을 제작진에게서 받아왔다.

종이를 내게 건네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죄송해요…….”

울먹울먹 사과한 박지웅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내 등 뒤로 숨었다.

그렇지만 빈정거리는 녀석들은 내가 앞에서 가로막고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허, 참 나…….”

“지웅아, 제발~”

“잘 좀 하지 그랬어.”

조금 전은 휴식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대놓고 돌아가는 시간.

스태프의 시선을 의식해서 다들 험한 말을 던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듣는 사람 마음에는 콕콕 박히고도 남을 만한 면박이었다.

나서지 않는 팀원들도 대개 얼굴에 실망감이 선명하게 어려 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나빠졌군.’

튀어나와서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덜덜 떠는 막내를, 나는 팔을 들어 슬쩍 뒤로 밀어냈다.

“노래 나쁘지 않아요.”

……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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