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9화 (19/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9화

05. What I Said(1)

“그렇습니다. 첫 번째 데스 매치는 사전투표로 ‘아레나’의 후원자분들께서 직접 골라주신 열 명의 상위권 연습생, 즉 새로운 ‘에이스’가 각 팀의 중심이 되는 미션입니다.”

MC가 설명한 데스 매치 골조에 따르면 새로운 TOP10인 ‘에이스’가 각자 그룹에서 받는 혜택은 이 정도나 되었다.

* 그룹의 리더가 된다.

* 선곡과 경연 콘셉트를 결정할 수 있다.

* ‘킬링파트’를 담당한다.

* 그 외 모든 결정의 최종 권한을 가진다.

일단 한 명씩 한 팀을 맡으니, 이번 경연에서 나오는 무대는 총합 열 개.

킬링파트란 카메라 원샷을 받을 수 있는, 곡에서 중요한 아주 짧은 구간을 말한다는 듯싶었다. 후렴일 수도 있고, 나레이션일 수도 있고, 짧은 댄스일 수도 있다. 〈구공드〉에서 사용한 ‘센터’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기 애매해서 선택한 용어인 것 같았다.

그래 봤자 표절 의혹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엄밀히 말해 케이팝 퍼포먼스는 자리를 고정하지 않고 계속 동선을 바꿔가는 방식이라, 센터라는 단어가 어중간한 건 사실이다.

아무튼 제작진의 의도는, 무대 위에서 가장 강렬한 조명을 받는 구간까지도 이 에이스한테 준다는 거다.

“대신 한 가지.”

MC는 부드러운 완급으로 대본을 읽어나가다가, 강조를 위해 한 박자 쉬었다.

“팀 구성원을 팀의 에이스가 직접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팀을 정하는 건 리더가 아니다. 거꾸로 리더는 팀원들에게 ‘선택되어야’ 한다.

즉 11위부터 98위까지의 멤버는 스스로 들어가고 싶은 팀을 고를 수 있다.

정확히는, 98위부터 11위까지의 순서로.

“……일명 ‘밀어내기’ 규칙입니다.”

MC가 연습생들에게 겁을 주려는 듯 연기력을 담아 말했다.

‘밀어내기’는 원하는 팀이 이미 만석이라면, 팀에 있는 멤버를 다른 팀으로 보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규칙이다. 80위는 79위에 의해 밀려날 수 있고, 14위는 10위에 의해 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밀려날 위험성이 아니었다.

‘그 반대야…….’

그러니까 〈데프아〉의 사전투표 제도에는 참 묘한 부당함이 존재했다.

투표수 조작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악마의 편집 같은 것도 아직 시동이 안 걸렸지만……

이러나 저러나 투표가 너무 일렀다. 지금 첫 방송도 안 들어가지 않았나. 공식적으로 공개된 연습생 정보도 얼굴, 이름, 간단한 프로필, 그리고 개인 영상이 다였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라면 더 있다.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기존의 커리어.

‘반드시 상위 몇 명으로 표가 몰린다.’

비주얼이 되거나, 기존 팬덤이 있거나, 커리어로 실력이 보장되었거나, 귀엽게 생겼거나, 잘생겼거나, 스타일이 유니크해 이목을 끌거나, 아무튼 비주얼이 호감이거나……. 대충 그런 장점이 있는 사람에게로.

투표 방법이 쉽기라도 하면 분산이 되었겠지만, 찾아보니까 투표도 엄청 귀찮게 만들어뒀더라. 그 정도면 백 퍼센트다.

“5위는 정의헌 후보생입니다. 축하합니다!”

이렇게 될 거 백 퍼센트.

레디……. 고마워요. 이번 응원도 잘 받았어요…….

차라리 첫 방송이라도 해서 편집이나 실력 덕을 봤다면 기분이 이렇게 애매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할 만큼 기존 팬덤의 승리란 말이지.

더구나 안승준은 8위에, 김지상은 1위라는 전에 없던 기록까지 세웠다. 여기에 채호원도 10위니까…….

‘미움 좀 받겠는걸.’

잘 안 되어서 서바이벌에 나왔다고 해놓고, 초장부터 너무 좋은 결과를 얻으면 그림이 좀 그렇다.

동정할 여지가 없어진다고나 할까, 오히려 안티가 붙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내가 걱정한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과분한 등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어쩔 수 없나.

‘이 등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해 내면 욕은 덜 먹겠지.’

나는 옮겨 받은 마이크에 대고 소감을 한마디 발표한 뒤 5위 ‘에이스’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두 번 연속해 리더 역할을 맡게 되어 부담스럽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까…….’

따지자면 나도 사실 남 밑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리더가 편하니까.

MC의 ‘밀어내기 미니게임’을 안내를 귀로 들으며 나는 짧게 마음을 다잡았다. 강당 정중앙에서는 맨 꼴찌인 98위 연습생부터 그룹 선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98위 송수민 후보생부터 출발합니다!”

키가 작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습생 한 명이 빈 강당에 던져지다시피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내가 별다른 어필 없이 5위까지 올라왔듯, 최하위 연습생도 특별히 사람에 흠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1회차 방송도 하지 않은 화제성이라면 투표 참여자부터가 많지 않았을 테고.

하위권에서는 몇백 표, 작게는 몇십 표 차이로 순위가 갈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는 너무한 거지.

“……어, 어어…….”

수십 개의 카메라, 수백 개의 눈동자가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 한 사람을 세워놓고 손가락질하는 양 싸늘하고 무거운 정적.

송수민이라는 연습생은 발바닥에 본드라도 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어디로도 이동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동자만 빙글빙글 돌렸다.

창피함이나 당황스러운 심정도 느껴졌고, ‘어차피 어디 들어가도 밀려날 테니까 좋은 선택지를 골라봤자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무슨 팀이 어떤 노래와 콘셉트를 선택할지 아직 밝혀진 것도 없으니까.

뭐, 그러므로 송수민 본인이 부담감에 허덕이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보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상황이 너무 이상해진다.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송수민이 어깨를 크게 떨더니,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등을 돌려 나를 보았다. 도대체 긴장을 얼마나 했으면 이렇게 화들짝 놀라는 거냐고.

하지만 용건이 있는 건 내 쪽이니까, 먼저 말을 걸어야겠지. 이를테면…….

“무슨 콘셉트 하고 싶어요?”

이런 질문. 내가 씩 웃으며 물었다.

카메라 감독의 움직임은 송수민의 대답보다 빨랐다. 카메라 렌즈 하나가 스르륵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린다.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송수민을 기다리자, 짧은 침묵 끝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그, 콘셉트보다, 댄스 퍼포먼스 위주로……. 유명한 곡……. 하고 싶어요.”

“딱이네. 같이 할래요?”

“네, 예!”

그렇게 송수민은 표정이 바로 확 밝아지며 내 뒤에 섰다.

그다음부터는 제작진이 서너 명씩을 한 번에 내보냈다.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송수민이 하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제작진은 손을 휘저어 에이스 일동의 호응을 유도했고, 안승준 같은 애들부터 눈치 빠르게 팀원 불러들이기에 동참했다.

강당은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졌다. 사실상 1위부터 10위 등수 순서대로 그룹 인원수가 채워지며 본격적인 ‘밀어내기’가 스타트를 끊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밀어내기는 제작진의 첫 의도 이상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것 같았다. 밀고 밀린 당사자가 마음이 조금씩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치열한 신경전은 연출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팀 구성원 역시 빠르게 추가되고 또 변경되었다.

“의헌이 형도 저 기다렸죠?”

“오해야.”

“에이, 거짓말.”

“진짜 오해야.”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 다시 만난 김병석이라든가.

“의헌아, 형 왔다.”

“안 기다렸다고요.”

“에이……. 거짓말.”

“하하…….”

고민하는 척하다가 내 뒤에 줄을 선 주태훈도 있었다.

몰랐는데 내가 약간 양아치들이 좋아하는 얼굴인가 보다.

그렇고 저런 우여곡절 끝에 열 명 정원을 채워 정의헌 에이스의 5조가 완성되었다.

“자, 이제 선곡 규칙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제작진 대신 MC가 스크린 앞에 섰다.

그 옆에 커다란 천에 뒤덮인 ‘무언가’가 보였다. 실루엣으로 보면 화이트보드 칠판 크기였다.

‘돌림판이다.’

나는 예측…… 은 아니고,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내 예측이 정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MC가 천을 벗기자마자 큰 원형 돌림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림판은 얇게 칸이 나뉘어, 칸마다 곡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선곡은 이 돌림판에 팀 대표 한 명이 다트를 던져 결정합니다.”

MC가 돌림판을 돌리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트를 던지기 전, 여러분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백 퍼센트 랜덤으로 돌아가는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MC가 설명한 선곡 규칙은 복잡하다면 복잡했지만, 오락 같은 면이 있었다.

* 선곡은 돌림판에 다트를 던져서.

* 중복 곡에 핀이 적중하거나, 핀이 돌림판 밖으로 날아간 경우 즉시 다시 던진다.

* 각자 팀은 합의하여 ‘제외’하거나 ‘추가’할 노래를 선택할 수 있다.

* ‘제외’는 특정 곡을 목록에서 삭제해서 칸을 비우는 것.

* ‘추가’는 희망하는 곡의 돌림판 칸을 넓히는 것.

* TOP1의 팀은 10곡을, TOP2의 팀은 9곡을……. TOP10 팀은 1곡만 추가 및 제외 가능.

한마디로 원하는 노래의 당첨 칸 면적을 크게 키우거나, 폭탄 곡을 목록에서 없앨 수 있다는 말.

기본적으로 ‘다트 게임’을 이용한 무작위 선곡이지만, 머리를 써서 확률 조정이 가능한 규칙이었다.

“한 곡을 여러 번 선택할 수도 있지만, 다트는 TOP10 팀부터 순위 역순으로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추가 규정 때문에, 어느 정도는 모든 연습생이 서로 협력해야 했다.

빈칸이 있어야 희망하는 곡의 칸을 넓힐 수 있고, 원하는 곡만 주장해 봤자 남이 뺏어갈 수 있으니까.

‘원하는 곡을 넣는 것보다 나쁜 곡을 빼는 일이 더 중요하겠군.’

오락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다른 팀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요소도, 랜덤 요소도 큰 규칙이었다.

5위니까 여섯 곡을 추가하거나 제외할 수 있고, 다트를 던지는 순서도 중간.

어떻게든 중앙에 끼어서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였다.

‘제외할 노래는 앞 팀들과 겹치면 바꿀 수 있게 해준다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각자 팀 ‘에이스’들이 무슨 곡을 희망했는지 떠올리며 우리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인원 파악부터 필요하겠어. 초면인 사람도 많으니까.’

우선 나. 어나더뮤직 정의헌.

이어 저번 합숙 때부터 알고 지낸 몇 명. 대표적으로 김병석. 이 친구들은 콘셉트든 선곡이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나랑 같은 그룹 하고 싶어서 온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의기양양한 나의 새 룸메이트 주태훈.

아, 운 좋게 끝까지 살아남은 98위 송수민. 얘도 아직 우리 팀이다.

그 외에는 래퍼처럼 생겨서 진짜 래퍼 포지션인 멤버도 몇 명 있고, 제일 어린 연습생은 열여섯 살이었다.

‘보통 혼란이 아니네.’

노래조차 정하지 않고 사람을 모아서 그런가, 통일성이 전혀 없었다.

한 번 무대 올라가고 헤어지는 경연은 본디 다 섞어찌개라지만……. 이 정도면 심했다.

이 인원으로는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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