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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7화 (1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화

04. Goosebumps(4)

김 PD가 혼자 생각에 빠져 있자 허 작가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덧붙였다.

“PD님은 애들 연습할 때 많이 못 보셔서 그래요. 다음 합숙부터는 바로 보일걸요.”

“야, 윤아야. 그건 내가 지난주에 바빠서 못 본 거지. 말을 왜 그렇게 하냐.”

“누가 뭐래요, 우리 PD님 회의 준비하고 협찬사까지 불려가시고 엄청 바빴던 거 당연히 알죠. 그런데 제 말은 그게 아니구요.”

허 작가는 표현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현장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왜,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도 반장 잘 뽑아두면 선생님 입장에서 엄청 편하다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잘 뽑아둔다는 게, 말 잘 듣는 애 뽑으면 좋다는 건가?”

“그것도 그런데 좀 그런 애들 말이에요. 공부 열심히 하고, 친구 많고, 힘도 세고, 집이 잘살거나 보호자가 아이 교육 신경 잘 써주고, 애도 막 열정 있어서 반 친구들 싸우면 바로 나서서 중재하려고 하고……. 그렇게 똑 부러지는 애들이 반 분위기를 잡아주면 한 학기 가르치기가 그렇게 쉽대요.”

그런 이야기라면 김 PD도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 이건 스타성과 관련 없는 이야기인데…….

“너 이거 사심 아니야?”

“딱 걸렸네~ 저 진짜 지난 합숙부터 완전 무한 감사 모드예요. 의헌이가 제발 파이널까지 가주기를…….”

허 작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이 잡고 말했다. 현장 연출 담당 김 PD가 지난 합숙 내내 바빴던 관계로 사실상 현장에서 연습생을 홀로 총감독해야 했던 허 작가는 이미 자신의 ‘최애’를 정한 것 같았다.

허 작가는 이어 정의헌이 얼마나 사교성이 뛰어나고 통솔력이 좋은지에 관해 한바탕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저번 합숙 마지막 밤에 2조부터 5조까지 녹화본 싹 날아갔던 거 기억하시죠.”

정확히는 클로즈업 촬영본만 남고 풀 쇼트 촬영 파일이 소실된 일이었다.

“그거 FD가 아니라 촬영 감독이 저장 실수한 거라던데?”

“오……. 그거 정말 실망스럽지만 놀랍지 않은 일이네요. 어쨌든 그때는 우리가 FD가 잘못한 줄 알았으니까, FD가 다 덮어쓰고 그 한밤중에 애들한테 재녹화 당장 해야 한다고 안내하러 갔단 말이에요.”

“어우. 그 FD 친구도 안됐다, 정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좀 도와줄 생각으로 같이 가줬거든요. 나름 저는 애들하고 얼굴을 텄으니까, 애들이 제 말은 잘 듣지 않을까 하고.”

그는 마치 영웅담을 난세에 퍼뜨리는 음유시인처럼, 이야기를 리듬감 있게 이어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의헌이가 피곤한 티, 지친 티 하나 안 내고 알겠다고 하는데 되게 애가 의젓한 것 같더라고요. FD한테도 놀랐을 텐데 괜찮냐고 걱정해주던 것도 그렇고, 다른 팀 파일도 문제 생긴 거라면 자기가 말 전달하겠다고 먼저 나서주는 것도 그렇고, 한번 슥 둘러보더니 메이크업 풀어진 애들도 있으니 준비 좀 해달라고 바로 요구하는 것도 그렇고……. 진짜 대박이었어요. 겨우 대학생 나이 될 법한 애가 어쩜 그렇게 착하게 구는지.”

“사고 두 번 나면 아주 종교도 만드시겠어.”

“그것도 좋죠. 돈 많이 벌 수 있으면 만들래요.”

허 작가가 갑자기 돈 얘기를 꺼내 김 PD의 투덜거림을 허공에 흘려냈다.

그러나 김 PD의 불평도 거기까지였다. 막간을 이용해 한참이나 잡담을 떠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업무 시간이었으므로.

대화 흐름이 끊어지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자리를 정리했고, 길고 길던 잡담의 주인공을 불러냈다.

“정의헌 연습생, 들어오세요.”

김 PD가 신호하자 스튜디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불쑥 한쪽 다리부터 들어오는 움직임에 김 PD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키가…….’

……크긴 컸다. 장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개인 촬영을 하게 되니 은은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그 감상과 동시에 김 PD의 시야 안으로 낯선 물건이 포착되었다.

연습생은 손에 폭이 일 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랗고 까만 가방을 들고 있었다.

‘저게 뭐지?’

김 PD는 연습생이 씩씩하게 인사하는 순간에도, 허 작가가 리허설과 촬영 안내사항을 연습생에게 공지할 때에도 홀로 가방의 정체에 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리허설이 시작되고, 연습생이 가방 지퍼를 열자마자 김 PD는 깨달았다.

‘악기구나!’

정의헌 연습생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물건의 정체는, 디지털키보드였다.

철컥, 철컥.

연습생이 잘 접힌 보면대와 X자 스탠드를 꺼낸 뒤, 전기 코드를 정리하고, 의자와 페달을 설치한 다음, 그 위에 악기 본체를 올려놓았다.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연습생은 많았다. 연주하며 노래할 수 있는 연습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댄스 포지션을 고수하던 연습생이 갑자기 보컬이라니?

김 PD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꿋꿋하게 매뉴얼대로 스케줄을 진행했다.

“준비됐어요?”

“네, 바로 하겠습니다.”

연습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뷰파인더에 얼굴을 들이대고 초점을 세팅하던 카메라 감독도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 OK 표시를 했다.

“액션!”

김 PD가 외치자, 연습생이 건반 위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올렸다.

곡을 외워 악보 없이 펼쳐지는 연주, 짧고 부드러운 전주 끝에 바로 이어지는 후렴구. 느린 속도의 피아노 멜로디 위에 조심스럽게 목소리가 올라탔다.

고마워 너에게

이 밤이 되면 떠올라

전하지 못한 많은 말들이

더 늦기 전에는 말하고 싶어 너에게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고

노래는 싱어송라이터 공희준의 2000년대 초 히트곡, 〈Missing You〉였다.

이별을 주제로 한 발라드지만 달콤하고 잔잔한 구성으로, 남녀노소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다.

정직한 음을 내는 피아노 반주는 따지자면 기교를 부릴 실력이 되지 않아서겠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노래 가사의 바보 같은 고백과 스타일이 어울렸다.

한마디로 계산을 통해 완성된 ‘서툴고 성실한 사랑 이야기’ 같았다. 몽글몽글하게, 나직하게, 개인적이게.

‘허윤아, 제법인데?’

김 PD는 힐끔 옆자리에 앉은 허 작가를 곁눈질했다. 보는 눈이 참 놀랄 만했다.

정의헌 연습생은 바로 키보드를 옆으로 밀고 춤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그 춤의 퀄리티도 좋았고 따로 준비한 멘트 또한 정석적이고 공손했다.

‘다른 것보다도 스타일이 유니크해.’

이미 연예계 생활을 해봐서 그런가.

풋풋함보다는 능숙함이, 처절함보다는 여유가.

그의 노래와 춤에 묻어 있었다.

‘솔직히 오디션에서 잘 먹힐 캐릭터는 아니지만……. 아냐, 그건 어떤 모습을 주로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겠지.’

연습생이 퇴장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 김 PD는 허 작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괜찮긴 하네.”

“그렇다니까요! 아이돌 활동은 대체 어쩌다가 말아먹었는지 궁금할 정도예요.”

“왜겠냐. 얘들 소속사가 어나더뮤직이잖아.”

“아……. 세상에. 죄송해요, PD님.”

김 PD가 조금 씁쓸한 투로 자조하자 허 작가가 화들짝 놀라 사과했다.

젊고 센스 있다고 일컬어지던 김미진 PD가 제대로 승진해 총연출직을 달지 못하고, 여전히 남의 프로젝트 아래에서 연출 담당 중 한 명으로 일하는 까닭. 그 문제의 간접 원인 제공자가 어나더뮤직이었다.

‘솔직히 어나더뮤직 잘못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김 PD는 그때 상황을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보았다.

몇 년 전, KMC가 어나더뮤직 대표 가수를 콕 집어 접대를 요구하고 매몰차게 까인 사건. 그뿐만 아니라 어나더뮤직은 그 가수와 일반인 남자친구의 결혼마저 승인해 주는 강수를 두었다.

당연히 KMC 관계자들은 뿔이 잔뜩 솟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어나더뮤직 아티스트들의 방송 출연을 죄다 보이콧했다.

‘막 데뷔한 신인 음악방송 출연까지 막았으니까.’

그리고 김미진 PD는 KMC의 추하고 졸렬한 결정에 반기를 들어 사내에 대자보를 써 붙였다가 윗선에 찍혔다.

당시 기획 중이던 대형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고, 이튜브 웹 예능 프로젝트의 따까리 프로듀서로 불려 나가 2년을 구른 뒤 겨우 TV 예능으로 돌아온 김 PD. 그는 오늘날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진짜 퇴사하기 전에 노조 만든다, 개자식들…….’

그녀의 퇴사나 노조위원장 위임보다는 회사 문 닫는 게 빠를 테지만, 아무튼.

“그건 됐고, 캐릭터가 좋으니까 내가 다 아쉽고 그렇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문제였다. ‘경력직’으로는 치프 프로듀서를 포함해 다른 제작진들을 설득할 수 없으므로.

CP 편에 찰싹 붙은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저 연습생의 약점을 찾아내려 할 것이고, 없다면 만들 것이다.

“PD님 힘으로 어떻게 안 되려나요?”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우리 둘만 밀어서 될 게 아니야.”

허 작가도 그 이상 설득을 시도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야 김 PD의 말이 맞는 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 됐다, 쟤도.”

“그래도 전 기도할까 봐요. 의헌이가 제발 파이널까지는 버텨주길…….”

허 작가가 두 손을 다시금 모아 잡으며, 이미 닫힌 스튜디오 문을 바라보았다.

파이널 진출 인원은 단 스무 명. 허윤아가 판단하기에, 정의헌이라면 20퍼센트의 확률쯤은 어렵지도 않을 것 같았다.

* * *

어나더뮤직 | 정의헌 | 심쿵! 반전 매력의 파워 댄서 | 자기소개 100초 PR #데뷔프로젝트아레나 #DebutProjectArena #데프아 #ProjArena [EN/JP/CN]

[디지털피아노를 연주하는 썸네일]

댓글 213개 [인기 댓글순]

mae** 뭐야? 이 남자 귀엽다

pul** 전신 잡는다고 카메라 뒤로 빠질 때 어디까지 뒤로 가는건가? 했음 키가 얼마나 큰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y0** 기존 스테리나인 팬들도 본 적 없는 피아노 연주 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이런 거 언제 몰래 배운 건데 ㅠㅠㅠ 너무 잘 쳐 ㅠㅠㅠ 기특해 ㅠㅠㅠㅠㅠ

qwe** 보컬도 보컬인데 춤이 넘사네;

err** 여유 있고 차분한데 과하지도 않고 컨셉을 잘 잡은 듯

xhk** 나오기로 결정한 것도 쉬운선택이 아니었을텐데 멘탈이 진짜로 단단한 것 같다... 참 열심히 노력한다 싶음. 그 모습이 대단해 보이고 잘됐으면 좋겠네. 예전에 몇년전인가 예능에서 진흙탕에서 다 젖어가면서도 웃으면서 게임 끝까지 하던거 보고 놀랐는데 여기 나오는 것 보고 또 놀람...

ooo** 아이고ㅜㅜ 니가 여기 나올 짬밥이 아닌데... 굴욕이다 ㅜㅜ...

che*** 헌아, 허니야. 네 경력과 실력으로 여기서 평가를 받는다는 게 참 마음이 속상하다. 그렇지만 네가 더 넓은 세상에 나가 이름을 알리고 싶다면, 이 방송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 이 기회에 전국,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의헌이의 가치를 새겨보자. 스테리나인과 의헌이, 레디는 언제나 한편이잖아! ㅎㅎ 네 실력과 끼가 곧이곧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곧 올 거야. 그날까지 응원하면서 기다릴게. K-Pop의 역사를 새로 쓰자, 의헌아. 파이팅!!

tlc** 연예인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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