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화
03. Giddy Up(4)
내가 멈추자, 채호원이 돌아보았다.
“왜?”
“너 잠시만……. 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떻게 하다니.”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 카메라 위치를 확인했다. 복도니까 녹음 없이 CCTV 옆에 달아둔 캠코더가 다일까?
“모르는 척하지 말고. 너 봤잖아.”
직구로 들어가는 물음에도 채호원은 코웃음을 쳤다.
웃음을 짓자 위로 솟은 채호원의 눈매가 능청맞게 좁아들었다. 마치 뱀처럼…….
“글쎄, 나 이상한 생각 안 했어.”
“모호하게 말하지 좀 말고…….”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 아니야. 그리고 생각 좀 한들 뭐 어때. 나 피해자야.”
아니, 물론 이게 맞는 말이긴 한데……. 이 밑도 끝도 없이 찜찜한 기분이란.
그래도 이미 발견해서 상황을 파악해버린 이상 대충 둘만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침착하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이게 만약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지…….
“병석이랑 얘기를 하거나, 스태프분들께 말씀을 드려보자. 개인적으로 그러지 말고. 내가 같이 가줄게.”
하지만 채호원은 고민도 하지 않고 내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야, 안 내켜. 너도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알게 된 게 있는데.”
“아, 진짜…….”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채호원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네 일이면 그렇게 네 마음대로 해. 나는 속으로 욕 좀 하고 짜증 좀 내고, 저 자식 엿 먹으라고 기도 좀 하고, 그냥 그러고 말 거니까. 이런 상황에서 대응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어려운 거 알지. 그래서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네 일도 아닌데 오지랖 부리지 마.”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돌려보고자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채호원은 마지막으로 거칠게 톡 쏘아붙이고는 먼저 걷기 시작했다. 나를 등 뒤에 덩그러니 남겨둔 채로.
‘……조금 이상하지 않나?’
거절할 수는 있는 건데, 싫어하는 반응이 과했다. 나한테 거의 화를 내고 갔으니까.
‘방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걸지도…….’
뭐,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 두자. 다른 이유가 있더라도 지금은 찾아볼 시간이 없다.
‘이건 김병석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게 최선이겠네.’
과연 대화를 할 만한 타이밍이 제때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 *
그런 타이밍은……. 안 왔다.
거의 만 하루를 김병석 주변을 맴돌며 불러낼 틈만 노렸는데, 김병석의 게으름은 상상 초월이었다.
대충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김병석에게 몇 번이나 직간접적으로 퇴짜를 맞았냐면…….
* 단체 연습 쉬는 시간에 잠깐 불러내서 말해볼까 → 연습 시간에 놀고 쉬는 시간에 혼자 하는 척해서 실패
* 나머지 연습 시간에 연습실 나오면 따로 대화하자고 해볼까 → 예상은 했지만 김병석이 밤까지 연습할 리가 없음
* 방에라도 찾아가자 → 연습하라고 제작진이 나눠준 태블릿PC에 게임 다운받아서 게임하느라 안 만나줌
카메라 때문에 무턱대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용건부터 말할 수도 없어서 곤란하던 차. 결국 ‘사고’가 먼저 발생했다.
때는 내가 채호원과 의미심장한 언쟁을 나눈 그다음 날.
합숙 종료 이틀 전이었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튜토리얼 경기 중간 평가’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김병석은 거하게 엿을 먹었다. 채호원이 하룻밤 사이에 기도를 조금 많이 했나 보다.
우선, 중간 평가는 트레이너들이 직접 와서 지금까지의 연습을 점검해 주고 피드백을 주는 자리다. 말이 ‘중간’일 뿐, 최종 촬영까지 남은 일자가 얼마 없어서 연습생들은 물론 완곡까지 준비를 끝내두어야 했다.
노래에 춤에 랩에, 라이브 연습 감독까지 하느라 힘들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나이와 경력 때문인지 어린 연습생들은 나를 경쟁자가 아니라 무슨 안무 선생님처럼 보더라. 그나마 김지상과 채호원이 도와줘서 준비를 다 해낸 거다. 난리도 아니었다.
백 명이나 되는 연습생이 바글바글하게 모인 대강당 안.
중간 평가는 10등 팀부터 역순으로 진행되어, 우리 팀은 남들의 무대를 구경하며 제법 오래 기다렸다.
다들 재미있게 원곡과 퍼포먼스를 수정하고 꾸몄지만, 생각보다 문제 ‘빈칸’을 정확하게 짚어낸 팀은 많지 않았다.
며칠 만에 본 트레이너들은 카메라를 의식한 듯 꽤나 자극적인 심사평을 쏟아냈다.
“1절에 유다현 연습생, 시작부터 박자 잘못 들어간 거 알죠? 집중 안 했어요?”
“라이브 상태 이 정도면 여기서 아무도 데뷔 못 해. 음정 안 흔들리는 사람이 없어.”
“박준서 연습생. 표정 쓰는 건 좋은데, 시선 처리가 어색해서 과한 느낌이야. 더 연습해야지.”
“잘하는 사람 모여 있다고 다들 방심했네. 처음 순위가 좋으면 뭐해, 이제 떨어지는 길밖에 안 남았는데. 다른 팀에 비해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는 거 알지?”
……이게 참, 내용만 놓고 보면 도움이 되는 충고인데 전달 방식이 너무 공격적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까 순위 낮은 애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심사평 하나하나에 몸을 벌벌 떠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말 걱정이 되는 건 이 팀원들이 아니었다.
‘못 뛰겠으면 그만둬.’
‘이제 와서 뭘 그만둬요.’
‘드롭하든가 아니면 그 파트 다른 멤버 주든가. 너 지금 자세 제대로 못 잡는 거 네가 알잖아.’
‘아니, 할 수 있다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김병석과 당일 오전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막말로 생떼에 억지에 편법에 반칙으로 얻은 역할이라면 노력이라도 더 하거나 남의 말을 듣거나 해야 하는데, 김병석은 그냥 거기서 두 배로 고집을 부렸다. 하마터면 나마저도 대화하다가 화를 낼 뻔했다.
다행히 내 인내심은 김병석을 한 번 더 타일러 줄 수 있을 만큼은 단단했다.
‘잘못되면 네가 다친다고, 병석아.’
‘형, 진짜! 됐다고요.’
하지만 그게 결론이었다. 시간이 모자라서 대화는 허리가 뚝 끊기고, 중간 평가가 시작되었다.
아마 우리 팀원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평가에 임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병석마저도.
“2조 대기하실게요!”
제작진의 호명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 중앙에 대형을 맞춰 섰다.
대기 사인이 끝나면, 곧이어 〈데프아〉 시그널 송 〈승전가(Victory!!)〉가 MR로 재생되었다.
One, Two, Three
Hey, Hey, Uh
짧은 추임새로 노래는 시작한다. 맨 처음 인트로를 맡은 것은 확신의 도입부 장인 김지상.
덧붙이자면 나는 메인보컬과 보컬1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보컬2 포지션이다. 진성으로 음이 올라가는 연습생이 몇 없어서 그렇게 됐다.
눈을 뜨면 새하얀 Shine
낯선 곳에 난 있어
시작되는 Countdown
One hunnit에서 Ten으로
많이들 틀리던 첫 음을 지상이는 실수 없이 정박으로 들어갔다.
무난하게 전개되는 비트와 멜로디. 음은 높아도 안무 동선이 없다 보니 막 바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난 새로 태어난 Soldier 이기기 위해 싸워
목표는 분명해 Way up 승리
다치고 아파도 무섭지 않아
그렇게 2절까지 끝나고, 우리 팀이 만든 마지막 안무가 시작되었다.
타협 없이 빠른 동작들이 예리하게 겹쳐졌다. 수십 수백 번의 반복 연습이 빚어낸 성과였다.
이제부터 My Turn
시간 됐어 Shut Down
어서 다 비켜 승전가 울려
댄스브레이크를 지나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 김병석을 제외한 아홉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등을 숙였다.
웅크린 대기 동작 탓에 소리로 퍼포먼스를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탁, 타다닥. 쿵, 타악.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도움닫기, 손으로 땅 짚고.
도움닫기와 이어지는 핸드스프링 동작의 박자가 약간 늦었다.
‘……이거 괜찮은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퍼억!
순식간에 사건이 일어났다. 음악이 이어지니 몸이 춤을 못 멈춰서, 모두가 조금씩 느리게 반응했다.
시선부터 먼저 소리가 들린 정면으로 향했다. 김병석이 강당 바닥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퍼포먼스가 중단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어떤 순서로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다. 음악이 멈추고, 트레이너들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촬영 스태프들도 달려왔다.
나 역시 발을 서둘러 부상자에게로 향했다.
김병석이 얄미운 것도 짜증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감정은 모두 지금 사건과는 별개였다.
“김병석!”
김병석이 제 발목을 감싸 잡고 낮게 앓는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땀을 뻘뻘 흘리는 그 모습을 보니, 고통이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듯했다.
“손 치워봐.”
나는 다급하게 김병석의 손을 밀어내고 상처를 살폈다.
다리나 발목이 아예 꺾인 건 아니었지만, 벌써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뛰고 내려설 때 착지를 잘못해서 발목을 접질린 것 같았다.
그때쯤 방송 스태프가 와서 김병석의 부상 부위를 진단해냈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저, 죄송합니다. 일어날 수가, 없어서.”
“천천히 해요. 걸을 수 있죠? 의무실로 가요.”
스태프가 김병석을 부축해 일으키는데 김병석이 털썩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움직임이 영 불안해서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김병석의 팔을 붙잡았지만, 바로 저지당했다. 남은 팀원들은 마저 촬영에 임해 중간 평가 심사평을 들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는 준비한 노래와 춤을 재개하지 못했다. 평가 무대는 그대로 중단되었다.
아무도 즐길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 팀원들도, 심사하는 트레이너들도.
“잘하고 있었는데. 안타깝네요.”
트레이너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위로했다.
물론 뒤이어 리더가 잘 돌봤어야 한다느니 연습을 잘 시켰어야 한다느니 혼이 나기는 났다. 일부러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강한 발언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말들이 꽤 의례적으로 들렸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참 쥐잡듯 잡은 직후에 바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 팀이 지금 한 애들 중에 제일 잘했어.”
거기서부터 우리 팀이 창작한 안무에 관한 칭찬이 시작되었다.
대단하다, 프로 방송인……. 제작진이 편집하기 좋도록 일부러 이러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우리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버전 하나, 그리고 우리가 잘한 것을 칭찬하는 버전 하나.
어리둥절 주위 눈치만 보는 연습생들과 달리 나는 너무 많이 눈치를 채서 소름이 돋았다.
“딱 문제 구간만 잘 잡아냈네. 사실 다들 모를 것 같았거든.”
오늘 중간 평가 내내 독설만 하던 댄스 트레이너 우솔이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일단 추측은 맞은 셈이었다. 역시 안무 창작은 방송 측에서 요구한 함정이었다.
매를 먼저 맞은 덕분에 우리의 심사는 나름대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다.
다 끝나갈 때쯤, 우솔 쌤은 우리가 이제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공론에 올렸다.
“백덤블링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부상 때문에 안 되겠다. 그렇지?”
“아니면 할 줄 아는 다른 멤버 있어요?”
이어지는 다른 트레이너의 물음에 김지상과 채호원이 고개를 들고 서로 눈치를 봤다.
“원래 세 명이 지원했습니다. 그러다가 김병석 연습생에게 기회가 간 거고요.”
“그러면 퍼포먼스는 이제 어떻게 할래?”
우솔 쌤이 나를 보며 물었다. 결정할 권한을 나에게 주는 건가.
하지만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