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화
03. Giddy Up(2)
“그러네요. 양보하겠습니다.”
김지상의 결단은, 후퇴였다.
그럼 그럼. 쓸데없는 논란에 땔감 넣어주는 것보다는 안전한 길로 가는 게 백배 낫지.
물론 김지상이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과연 내 동생, 참지 않는 모습이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 하고 지지했을 거다.
김지상이 그렇게 깔끔하게 상황을 끝내 버리니까 김병석도 더 할 말이 없는지 어색하게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채호원까지 바닥을 보며 침묵했다. 이 싸늘한 분위기 속 즐거워 보이는 것은 카메라를 돌리는 제작진뿐. 나 참…….
* * *
그 사건이 발생한 당일, 저녁 연습까지 끝난 뒤 밤 시간.
“의헌이 형, 무슨 일이에요? 지상이 형 보려고?”
나는 김지상의 방을 찾아갔다.
“어, 지상이 때문에. 잠시만 자리 좀 비워주라.”
“그러면 저희 식당에 있을게요. 끝나면 불러주세요.”
“진짜 땡큐. 한 시간 내로 끝낼게.”
지상이랑 방을 같이 쓰는 연습생들에게는 자리를 비워달라고 부탁했다. 만난 지 하루 됐는데 애들이 말도 잘 듣고 참 착하다.
완전히 일대일 모드가 된 실내에, 카메라 각도를 확인한 뒤 방에 딸린 화장실 문을 열고 세면대 수도꼭지까지 틀었다.
이 정도로 철저하게 숨길 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냥 방송에 송출될 가능성을 영 퍼센트로 만들고 싶었다.
“이리 와봐.”
내가 화장실 문턱에 걸터앉으며 손짓하자, 지상이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서 나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는 바닥이고 김지상은 책상 의자에 앉은 덕분에, 나로서는 약간 상대를 올려다보는 각도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숨어?”
“별건 아니고. 그냥 오늘 있었던 일 어땠나 해서.”
나는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
지상이가 나를 따라 하듯이 팔을 접어 의자 등받이에 괴면서, 대답을 툭 던졌다.
“백덤블링 문제……. 별로 형이 신경 안 써도 돼.”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나 혼자 너무 걱정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설마?
“지금 속은 울고 있는데 겉으로는 애써 미소 짓는 중?”
“그래 보이냐?”
“겉으로는 미소 짓고 있으니까 나는 모르지.”
“누구 덕분에 그 미소도 잃을 것 같네요.”
충격…….
“무슨 잔소리를 하시려고.”
“잔소리라니. 걱정되니까 온 거지.”
데뷔 오디션 프로그램 속 ‘경력직’은, 스테리나인 해체 무렵 기준으로는 그다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안쓰러운 사연이라든지, 연장자 역할이라든지, ‘실력 보증수표’ 타이틀이라든지. 2020년대 방송에서는 경력직 아이돌들도 그런 식으로 좋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데프아〉는 그보다 훨씬 과거의 방송이기 때문에 문제였다.
지금은 아이돌 경력직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기 전.
게다가 스테리나인은 ‘왜 출연하냐’는 말도 많이 들은 만큼, 사실 김지상처럼 대응하는 게 옳았다. 나도 그 맥락을 아니까 얘를 따로 보러 온 거다.
지상이를 나무라려는 게 아니라, 혹시 우울해하고 있으면 위로해 주려는 목적으로.
“……걱정할 게 뭐 있어. 트러블 생기는 거 싫어서 양보했어.”
하긴 김지상은 카메라 다 보는 앞에서 ‘포기한다’가 아니라 ‘양보한다’고 말했다.
성질머리하고는. 절대 곱게 물러나지 않는다.
“어그로 끌리는 것도 싫고……. 피곤하다, 진짜.”
지상이가 몸을 이완해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내 시선도 같이 따라 천장을 향했다.
그 중얼거림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너는 〈데프아〉에는 왜 나왔냐.”
싫은 것이 참 많은 김지상이 피곤할 게 뻔한 서바이벌에 굳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 같이 모였을 때, 김지상은 〈데프아〉에 참가한 이유를 얼버무리고 정확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팀장님이 방송 출연을 강제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설득되었든 아니든 결국 본인 의지였다.
김지상은 몇 분 동안 침묵을 지켰고, 나도 독촉하지 않았다. 물 흐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방해했다.
“굳이 뭐, 반드시 말해야 하고 그런 건 아닌데.”
“…….”
“둘만 있는데 못할 말도 없지 않나……. 아니면 말고.”
내가 눈치를 보며 살살 꼬드기니까, 김지상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처음에 뭐라고 했더라?”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거의 아무 말도 안 했지.”
“그랬나.”
“안승준이랑 비슷한 이유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옆으로 조금 비켜나자 지상이가 새로 생긴 공간에 앉아, 우리는 화장실 문틀 양 끝에 거리를 두고 앉은 모습이 되었다. 이 럭셔리함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상황이 사실 나는 조금 웃겼다.
“그거 거짓말이야.”
“얼씨구…….”
“물론 나도 그룹 홍보 목적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그룹이 알려지면 좋긴 하니까, 그런데……. 솔직히 그게 1순위는 아니야. 난 아무리 해도 의헌이 형이나 승준이처럼은 못 하겠더라.”
수돗물이 흐르는 소리가 세차, 지상이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하였다.
“나는 나를 위해서 나왔다고 생각해, 형.”
지상이가 무릎을 세워 웅크렸다. 내가 그 사이에 편하게 다리를 뻗은 것과 반대되는 자세였다.
그리고 김지상은 잠시 정면을 보며 –내게 옆모습만 보여주며– 조용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질문하기를.
“사전 인터뷰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어…….”
사전 인터뷰. 사실상 〈데프아〉의 최종 면접 절차였다.
프로그램 지원 이력서와 영상 심사용 파일을 제출하자, 며칠 뒤에 사전 인터뷰 일시와 장소를 안내하는 문자가 도착했다.
인터뷰 자체는 한 명씩 순서대로 했지만, 같은 소속사는 같은 방에서 대기했다.
우리끼리는 인터뷰 질문과 답을 전부 공유했다는 소리다. 일주일쯤 지나서 모든 기억이 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촬영 현장에서도 자주 보이는, 둥근 안경을 쓴 제작진이 우리의 인터뷰 담당이었다.
우리에게 ‘그룹 활동 더는 못 하는 것처럼 말해달라’고 요청한 그분 말이다.
순서가 되어 우리가 자리에 앉았더니, 제작진은 카메라 위치를 알려주며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당연히 듣게 될 질문이었기에, 우리는 사전에 적당히 방송용 멘트를 만들어보자고 담합을 했었다.
마음을 모아 나온 결론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룹에 애정이 남았다는 사실은 숨기자’.
안승준은 적당히 방송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말을 골라서 했고, 나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계속 아이돌을 하고 싶어서요.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예컨대 내 대답은 그랬다. 반면 그때 김지상은 카메라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긴 대답을 내놓았다.
‘점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게 스스로 느껴져요. 욕심은 큰데,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까……. 저 자신을 자꾸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안 그러고 싶어도, 되돌아보기 시작하면 결론이 매번 자책으로 나요.’
그 말을 들으며 제작진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촬영 감독에게 손짓했다.
해석할 수 없는 수신호였지만, 긍정적인 반응임은 확실했다.
각도가 변한 카메라 렌즈를 곁눈질하며 김지상은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까, 그게 너무 서럽고 억울한 거예요. ‘어, 내가 지금 왜 나를 탓하고 있지?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깨닫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가 실패할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내가 보았던 〈데프아〉 방송에는 나오지 않은 인터뷰.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편집되었을 뿐인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은 그거 듣고 무슨 생각 들었어?”
김지상의 두 번째 질문이 나를 회상에서부터 현실로 끄집어내었다.
“김지상 말 잘하네.”
“아니…….”
“미안하다…….”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나 보다. 지상이가 나를 흘겨보면서, 발을 뻗어 내 무릎을 툭툭 밀어내었다.
화장실 문짝과 남의 발 사이에 끼어서 차는 대로 차여주는 게 내 작은 반성의 표시였다.
“그게 진짜야. 꾸며낸 말이 아니라고.”
“나도 사실만 이야기했는데.”
“형은 왜 자꾸 대화에 이상한 양념을 넣어?”
“어 미안…….”
“아무튼.”
그 타이밍쯤 되면 나는 거의 옆으로 넘어진 상태였다.
“내 마음이 그러니까, 강주찬 앞에서는 말하기 좀 그렇더라고.”
“주찬이도 솔직히 말하면 이해해 줬을 텐데. 둘이 화해는 했냐.”
“그냥 뭐. 걔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서, 대충 그렇게 끝났지.”
그렇게라도 대화했으면 됐다. 나머지는 둘이 해결할 일이지.
그때 김지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더니, 세면대 수도꼭지를 잠갔다.
“의헌이 형, 나도 궁금한 거 있는데.”
“응.”
사운드를 채우던 콸콸콸 물소리가 그대로 뚝 멈추었다.
소음이 멎은 탓일까, 김지상의 목소리가 전보다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형은 왜 백덤블링 지원 안 했어?”
……어, 이 지적이 들어오다니.
“형 아크로바틱 나랑 같이 배웠잖아. 형도 당연히 나설 줄 알았어. 나보다 훨씬 잘하면서.”
역시 김지상은 신경 쓰고 있었구나.
갑자기 무안해져서, 나는 다시 바닥에 앉는 지상이와 교대하듯 의자로 슬쩍 올라가 앉았다.
지상이 시점으로는 고작 몇 개월 전 일일 테니 기억하는 것도 당연한가?
‘너는 몸도 안 좋은 게 무슨 아크로바틱이야?’
‘그거 우리 부모님도 걱정 안 하는데 형만 매번 그러더라. 춤도 추는데 뭐가 대수라고. 검진 잘 받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 같이 배웠다. 저 때 마샬아츠 학원 등록하는 거 반대했다가 김지상 고집에 당해내지 못한 적도 있었고.
여담인데 나도 이것저것 세월 따라 많이 까먹어서 김지상보다 ‘훨씬 잘하는’ 수준까지는 아닐 거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이건 김지상의 예측대로였다.
첫 무대 2등에, 이래저래 분량도 많을 테고, 팀 미션 리더까지. 이 과정까지만 세어도 내 분량이 너무 많았으므로.
그러니 조금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김지상이라든가 채호원이라든가, 하다못해 김병석이어도……. 나보다 방송 분량이 필요한 사람은 많았다.
그것도 그렇고, 안 그래도 시간 돌려서 혼자 미래 정보 쏙쏙 빼먹으며 이득 보고 있는데……. 양심이 있다면 이타적으로 착하게라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미 역할이 많아서. 백덤블링까지 내가 먹을 수는 없지 않겠냐.”
“형, 그러면 안 돼.”
내가 멋쩍게 설명하는데 김지상이 단호하게 흐름을 끊었다.
“간절해야지.”
김지상은 강조하듯이 꾹꾹 소리를 눌러서 발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