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7화
02. Hello Future(4)
우리의 전략은 ‘실력을 보여주되 오버하지 말 것’.
래퍼 하나에 댄서 둘이라는, 이 라인업이면 보컬로 승부를 볼 수는 없고……. 댄스와 무대 매너가 주력인데.
너무 어려운 곡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쉬운 곡을 고르면 본새가 안 나는 법.
그러니까 우리 셋의 최종 선곡은 보이그룹 ‘레일록’의 데뷔 타이틀곡…….
〈트램펄린〉이었다. 부제까지 합하면 〈트램펄린(Fallin’)〉으로, 청량 및 소년미 콘셉트에서 섹시로 노선을 틀어 인기를 얻은 레일록의 청량 시절 여름 노래.
이 노래는 이른바 ‘숨겨진 명곡’으로 손꼽히기도 해서, 보이그룹 노래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음원 성적이 음반 성적보다 월등히 좋았다.
대중은 낯설어할 수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첫 회부터 챙겨보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케이팝 마니아니까……. 본방송 시청자들에게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노래일 것이다.
데뷔곡인 만큼 프로듀싱 완성도가 높고, 신인 노래답게 보컬 난이도가 낮다. 그것도 장점이었다.
시작은 가벼운 동작으로. 박자를 타며 미니멀한 리듬 구간을 넘겼다.
단순한 비트 위에 악기가 하나둘씩 더해지며 점점 촘촘해지고, 드디어 첫 벌스.
이거 안 될 거 같네 자꾸
나의 맘이 흔들리지 자꾸
네 손짓 하나 미소 말투 전부
내 머리 안을 뒤집어 거꾸로
시작은 안승준의 랩 파트로, 승준이가 핸드마이크를 쥐고 중앙으로 나서서 리듬감 있는 래핑을 선보였다.
연습했을 때보다 잘한다. 박자도 안 밀리고 표정도 자연스러웠다.
자기 파트를 끝낸 승준이가 오른쪽으로 빠지고, 오른쪽에 있던 나는 왼쪽으로 가고, 우리 셋은 회전하듯 동선을 바꾸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김지상이 중앙에 선다.
나 매일 널 바라봐도 네 마음 알 수가 없어
밀고 또 당겨보아도 너는 그 자리에 있어
긴장한 티가 났지만, 실수는 없었다.
이 파트에서는 나와 승준이가 좌우에서 복잡한 안무 스텝을 밟고, 지상이는 손 제스처와 함께 노래하며 카메라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한다.
왜냐……. 김지상은 잘생겼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얼굴에 클로즈업 들어가라는 의도다.
지상이가 중앙에 멈추어 등을 돌리고, 카메라를 살짝 돌아보았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내 파트.
두 사람이 자세를 숙이고, 왼쪽에 서 있던 내가 아예 대형에서 옆으로 빠져 후렴을 시작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이면 내가 메인보컬 역할을 맡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밸런스가 부당하다.
오늘도 내 맘은 Jump and Fallin’
널 보고 날아 Like Trampoline
나 나 높이 Ladi Dadi
Now I’m Falling Down Baby
소절이 끝나면 승준이, 지상이 순서대로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또다시 동선 변경. 지금까지 중앙 한 명이 앞으로 나오는 삼각형 동선이었다면, 이제 일자 모양이다.
마지막 소절은 우리끼리 토막토막 주고받기 때문에 에너지를 영혼까지 끌어올려 불러야 했다.
Oh, 올라가고 또 가라앉네
Oh, 너는 이 맘 모르지만
Oh, Oh, Oh, 나를 돌아봐 줘
내가 ‘Oh’ 소절을 맡아 한 음씩 올려 부르면, 승준이가 짧게 랩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조금 아련한 느낌이 들도록.
‘나를 돌아봐 줘’라고 소곤거리는 한마디는 김지상 담당이었다.
곡을 끝내며 지상이는 정확하게 중앙 카메라를 보고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김지상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자신의 신체 부위, 크고 동글동글한 눈과 새까만 눈동자가 잘 보이는 구도였다.
확대 스크린에 지상이의 상기된 얼굴과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어깨가 클로즈업으로 잡혔다.
역시 김지상은 명불허전. 얄미울 정도로 얼굴을 잘 쓴다. 아주 기가 막혔다.
“좋다, 좋다. 깔끔해.”
박수 소리가 쏟아지고, 심사위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 연습생들 실력이 전반적으로 다 좋네요.”
“데뷔한 커리어는 역시 무시를 못 하나 봐.”
칭찬이 이어졌다. 랩 트레이너가 마이크 전원을 켜기 전까지는.
“안승준 연습생.”
랩 트레이너, 원키드가 불현듯 엄한 얼굴로 승준이를 불렀다.
원키드는 래퍼 경연 〈웨이크 업 MIC〉에서도 심사위원으로 몇 번 나온 프로듀서인데, 아까부터 심사평이 독설 일색이었다.
‘스킬이 없네.’
‘개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노래를 못해서 랩을 하고 있는 거야?’
등등등. 대체 왜 아이돌을 싫어하면서 아이돌 오디션에서 심사를 보는 걸까?
원키드는 승준이 앞에서도 똑같은 레퍼토리를 꺼내놓았다.
“박자 맞추는 건 잘하는데, 뒤로 갈수록 호흡이 달리네. 그러니까 점점 발음이 무너지잖아.”
춤추면서 생 라이브로 안승준 수준이면 잘하는 편이다.
우리애 까지 마! (……세요!)
내가 속으로 투덜투덜 항의하든 말든 원키드는 뻔뻔스럽게 심사평을 끝냈다.
대기는 길지 않았다. 트레이너들은 신속히 비밀 회의를 끝내고 태블릿PC를 조작하였다.
“어나더뮤직 연습생들은 새로운 TOP10이 될 수 있을까요? 점수 공개합니다!”
우리 셋의 점수는 동시에 공개되었다.
「어나더뮤직 김지상 : 79.8점」
「어나더뮤직 안승준 : 83.6점」
「어나더뮤직 정의헌 : 90.5점」
순위로 따지면 안승준은 8위, 그리고 나는 2위였다. 점수로 보면 김지상은 11위쯤 되나.
반전…… 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고. 여기서 한두 계단은 내려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자존심은 지켰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우리는 한데 뭉쳐 서로를 한 번씩 꽉 끌어안아 주고 각자의 자리로 갈라졌다.
지상이는 원래 있던 자리로, 승준이는 TOP8로, 그리고 나는…….
하필 류희재 바로 옆 좌석으로.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며 짧게 인사를 건네는데 류희재가 내 말을 무시했다.
류희재는 조용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깔아보지만 않아도 이렇게 서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TOP10 좌석이 단차 있는 디자인이라 기분이 참 거시기했다.
내가 미움을 받고 있는 건지 이 자식 성격이 원래 안 좋은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100명의 후보생 여러분, 모두 고생했습니다.”
결말부터 이야기하자면 류희재는 끝까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소속사 촬영 끝날 때까지 세 번을 시도했는데 세 번이나.
하하하……. 뻘쭘하다. 중간에 누구 끼어서 자리라도 바뀌었으면 몰라, 끝까지 옆자리였으면서 말이다.
“그러면 오늘 지금부터는, 첫 번째 ‘데스 매치’에 앞서 ‘튜토리얼 경기’가 시작됩니다!”
오 분쯤 되는 휴식이 끝나고, MC가 무대 가운데에 서서 이번 합숙의 경연 규칙을 발표했다.
이번 합숙 주제가 ‘튜토리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연을 말아먹더라도 그 결과가 탈락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다음부터는 경연에서 패배하면 바로 탈락 후보가 된다. 각 라운드마다 조금씩 규칙 차이가 있긴 하지만, ‘데스 매치’라는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데프아〉의 세계관에 따르면, 탈락 위기에 놓인 연습생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브라운관 너머 ‘후원자’들의 투표다.
탈락 후보 중 득표 수가 많은 상위 몇 명은 생존하고, 나머지는 방출되고……. 대충 그런 식.
아무튼 지금 ‘튜토리얼’에는 해당되지 않는 규칙이다. 이번에는 패배해도 탈락하지는 않는다.
“튜토리얼 경기의 테마, 즉 두 번째 ‘A’ 키워드를 공개합니다. 바로 ‘덧붙이다’의 ‘Add’!”
모든 〈데프아〉 경연은 ‘아레나’의 머릿글자인 ‘A’로 시작하는 영어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아까까지 진행한 소속사 심사는 ‘Appeal’, 이다음인 첫 번째 데스 매치 제목은 ‘Ace’.
“이번 경기에 임하는 후보생 여러분은 주어진 시그널 송에 여러분의 재주를 더해, 무대를 완성해야 합니다.”
MC는 틈틈이 연습생들의 반응을 살피며 튜토리얼 경기 규칙을 공개해 나갔다.
“팀을 나누는 규칙은 간단합니다. 앞서 마무리한 ‘훈련’ 무대에서 받은 점수, 모두 기억하시죠?”
“네!”
“그 데이터를 토대로 1위부터 100위까지의 후보생 점수 순위를 매겼습니다. 화면 보이시나요?”
MC 등 뒤의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깔끔한 템플릿 디자인을 사용한 것 같은 PPT에, 백 명의 이름이 10행 10열로 적혀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2위, 안승준은 9위, 김지상은 12위에 이름이 올랐다.
“튜토리얼 경기에서는, 리스트 속 세로로 같은 줄에 이름이 적힌 연습생이 한 팀이 됩니다. 다시 말해 최종 순위의 일의 자릿수가 같은 연습생끼리 팀을 맺은 셈이지요. 10명씩 총 10팀입니다.”
내 팀은 2위, 12위, 22위……. 그리고 92위까지 묶인다는 소리다.
규칙이야 알고 있었고, 김지상과 같은 팀인 것은 좋다. 하지만 별개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게…….
“덧붙여, 각 팀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TOP10 후보생은 자동으로 팀의 리더가 됩니다.”
……이렇게 될 걸 알았으니까…….
〈데프아〉는 팀전이다. ‘데스 매치’로 다른 팀과 겨뤄서 모두 탈락이 면제되거나, 전원이 탈락 후보가 된다.
그러니 팀을 잘 이끄는 능력은 주목을 받고, 리더가 폭력적으로 독재하거나 트러블 중재를 못 하면 뭇매를 맞는다.
‘리더 역할은 모 아니면 도다. 아주 많이 칭찬을 받거나, 아주 많이 욕을 먹거나.’
시작도 안 했는데 두려워할 건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실 나 같은 타입은 남에게 휘둘리는 것보다 직접 통제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오케이, 생각 끝. 나는 다시 MC의 경연 규칙 소개에 집중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 하여간 팀은 TOP10 연습생을 중심으로 10명씩 10팀으로 구성된다.
* 주어진 시그널 송과 안무는 수정할 수 있다. 편곡, 안무 창작, 랩메이킹 등. 동점자 순위 조정을 통해 팀에 프로듀싱 가능 멤버를 한 명씩은 넣어두었으니 아이디어라도 낼 것.
* 합숙 종료 이틀 전에는 연습생 자체 투표를 통해 최고의 팀 퍼포먼스를 선발한다.
* 이때 최고의 퍼포먼스로 선정된 팀원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돌아간다.
덧붙여 여기서 말하는 혜택이 꽤 좋았다고 기억한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KMC 음악방송인 〈라이브 뮤직 채널〉 특별 무대 출연이라거나, 단체 안무 영상 촬영 때 특별히 높은 중앙 무대에 올라서게 해준다거나.
원래 승자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게 〈데프아〉 프로그램 콘셉트다.
“한 가지 추가로 알리자면, TOP10에게도 베네핏은 주어집니다.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베네핏을 받으면 더 좋겠지요?”
MC는 그 멘트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이게 ‘리더 제대로 안 하면 이기적인 놈!’이라는 압박이 아니면 뭐냐…….
뭐, 괜찮다. 그래도 나는 보이그룹 리더 경력 9년 차니까, 별로 리더 직책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안승준 힘내라!’
그러니까 우리 동생 힘내자.
나는 메인 카메라 불이 꺼지자마자 안승준에게 엄지를 얄밉게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