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6화 (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화

02. Hello Future(3)

노이즈 마케팅의 주인공이 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아이돌 경력직’은 실제로 내게 이점이 될 테고,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우리의 방송 분량이므로.

나는 완전 괜찮다. 문제는 우리 애들이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느냐인데.

물론 아까 촬영장 오는 길에 차에서 애들한테 미리 당부해 두긴 했다.

‘처음 시작하면 다른 연습생들이 우리 안 좋게 볼 수도 있어.’

‘왜?’

‘인기투표로 승자를 뽑으니까. 팬이 있으면 유리하잖아.’

승준이가 내 옆에서 고개를 기울였고, 지상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너라면 어떨 것 같은지.’

‘오……. 잘은 모르겠지만 이해했어. 좀 재수 없는 느낌인가?’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너희 멘탈 관리 잘해.’

내가 경고까지 해주었는데 김지상은 벌써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걱정된다. 지상이가 매사를 우직하게 잘 버티는 성격은 아니라서.

‘김지상, 집중해.’

나는 지상이의 팔을 툭 두드리고, 카메라에 안 보이게 입 모양을 움직여 말했다.

그제야 시간 차를 두고 김지상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지상이가 한 박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김지상, 웃음기를 잃은 안승준, 그리고 덩달아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나까지.

무대 망치기 딱 좋은 조합이군. 나라도 정신 줄을 잘 붙잡아야 한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조명이 어두워지며 정면 LED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VCR로 MC를 소개하고, MC 입장, 트레이너진 소개, 입장, 뒤이어 MC와 트레이너가 방송에 임하는 다짐을 한 마디씩 발표하는 과정이 지나갔다. 아무튼 길고 긴 리액션 시간이 지나 비로소 본 경연.

“자, 그러면 이제 소속사별 훈련 경기를 시작할 텐데요.”

MC를 맡은 청순한 스타일의 여자 배우가 세트 중앙에 서서 멘트를 쳤다.

방송 MC는 처음이라던데, 처음치고는 진행이 제법 자연스럽다.

“모두 고개를 돌려 옆에 준비된 TOP10 좌석을 봐주세요.”

세트장 가장자리에 놓인 TOP10 좌석은 마치 중세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왕좌처럼 럭셔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MC가 말하기를, 저게 트레이너의 심사 점수가 높은 사람이 앉는 자리란다.

MC의 설명과 동시에 스크린에 자막이 표시되었다. 심사는 무대 하나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루어지고, 100점이 만점인 점수는 평균을 내서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까지 띄워주는 규칙이다.

“TOP10은 점수가 높은 후보생이 등장할 때마다 변합니다.”

첫 순서 연습생은 30점을 받든 50점을 받든 무조건 1등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두 번째 연습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두 번째 연습생이 1등이 되고, 기존 1등은 밀려나는 식.

“그러니 TOP10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안심하면 안 되겠지요?”

MC가 짧게 뜸을 들였다가, 웃으며 말했다.

“후발 주자들도 앞 순서를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

“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소속사별 훈련 경기!”

앞뒤 장면 배치를 편집하기 까다로운 규칙이니만큼, 경연 순서는 처음부터 세심하게 짜였을 것이다.

실력도 있고 화제성도 있으니, 우리 순서는 내 기억보다 더 뒤로 밀리면 밀리지 초반일 가능성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남의 무대를 구경하면서 호응하다 보니 다들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연습생 생활을 8년이나 했다고 적혀 있네요?”

“캐나다에서는 몇 년 살았어요?”

“랩은 잘 들었는데, 춤도 보여줄 수 있나요?”

“EX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있었어요?”

수많은 질문(트레이너들은 편하게 공식 명칭을 무시하고 ‘연습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중이다), 수많은 대답, 그리고 끊임없는 춤과 노래. 무대는 다양하게 재미있었고 시간은 잘 흘러갔다.

확실히 사람을 많이 모아두니까 별의별 캐릭터가 다 등장했다. 장수생, 유학파, 한쪽 능력치만 높은 연습생, 대형 기획사 출신 연습생까지.

TOP10도 금방금방 변했다. 단번에 1등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도, 10등으로 들어가 바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대략 팔십 퍼센트 정도 평가가 진행되었을 때,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심사를 마친 연습생들과 스쳐 교대하듯 무대 세트 뒤로 향하면, 입구 틈새로 앞 순서 참가자의 모습이 보였다.

각각 벽의 거울과 카메라를 쳐다보는 승준이나 지상이와는 달리 나는 한참 진행 중인 무대에 집중했다.

이렇게 뒤따르게 순서를 붙여 놓았군……. 정면에 설치된 LED 스크린에 연습생의 소속과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CK미디어 – 류희재」

긴 팔다리와 샤프한 인상, 그리고 애쉬블론드로 염색한 헤어스타일이 특징적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따로 없는 연습생이 그러기 쉽지 않은데, 염색이 본인 톤과 신기하리만큼 잘 어울렸다.

심장 소리 들려 나 이제 눈 감아

난 준비가 됐어

다시 한번 날아 너의 손을 잡아

네 옆에 서겠어 Yeah

이삼 년 전 유행 가도를 전속력으로 달렸던 보이그룹의 타이틀곡으로 홀로 채우는 무대.

이 노래 〈하늘을 타고〉는 기본적으로 빠른 박자에 숨 쉴 틈이 거의 없어서, 혼자서는 소화하기 힘든 곡인데…….

무대가 심심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춤도 노래도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아온 티가 나는 솜씨였다.

류희재가 흘려보내는 노래 가사를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확실히, 잘하긴 잘한다.’

……과연 〈데프아〉 1위 실력이라고 해야 하나.

좋게 말하면 내가 라이벌로 삼아야 할 인물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수상하다.

김지상이 사유를 알리지 않고 팀을 탈퇴한 후, 한때 나는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지상이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었지만, 그전까지는 나름 성실하게 단서를 모았고, 당연히 안승준에게도 〈데프아〉 촬영 중 있었던 일을 질문한 적 있다.

‘형 연락도 안 받는구나. 아니다……. 의헌이 형이라서 피하는 건가.’

‘그러게, 안 받네.’

‘걔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첫 합숙 끝났을 때만 해도 멤버들이랑 다 잘 지냈잖아. 태도 이상해진 건 2차 경연이랑 3차 경연 때거든. 어, 스나 딱 한국에 없었을 때.’

‘응.’

‘그때 팀원이나 주변 사람들이랑 트러블이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며 안승준은 류희재를 정확히 짚어 언급했다.

‘둘이 좀 안 좋게 많이 엮였어. 그쪽에서 지상이를 싫어하는 티를 좀 냈거든.’

‘왜?’

‘왜 싫어했는지는 나도 모르지. 아무튼 김지상도 그래서 좀 불편해하고, 그랬어.’

‘…….’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건 확실해. 그때 우리 좀 싸웠거든, 그것도 조금 심하게……. 나한테 말하기 싫었을 거야.’

미스터리가 존재하는 한 류희재를 주시해서 나쁠 건 없다.

더구나 이 정도 실력자니까. 그런 문제가 없어도 신경은 쓰였을 것이다.

「CK미디어 류희재 : 93.2점」

중앙 스크린에 류희재의 점수가 공개되었다.

최고점. 우렁찬 박수 소리를 들으며 류희재가 1등 자리에 올랐다.

“TOP1 축하해요, CK미디어 류희재 후보생! 소감이 어때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MC가 묻자 류희재는 마이크에 대고 고저 없는 투로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1등이었던 연습생과 5점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무덤덤한 반응이다.

“포스 장난 아니네.”

언제 왔는지 안승준이 무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익스 출신이래. 그 느낌 나지 않아?”

EX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제일의 대형 연예기획사다.

얼마나 대형이냐면, 거기 연습생들은 굳이 이런 프로그램 안 나온다. 과거에 소속된 적 있는 연습생은 쿨타임이 돌 때마다 튀어나오고 있지만…….

류희재의 과거 소속사쯤은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에, 승준이에게는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어나더뮤직 들어갈게요!”

스태프의 지시대로 무대에 오르니, 많은 연습생이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 게 보였다.

우리 셋이 중앙 카메라 앞에 한 줄로 서자 곧바로 MC의 질문이 들어왔다.

“다들 스타일이 좋네요. 자기소개 해주시겠어요?”

스타일 좋은 건 순전히 우리가 방송에 나오겠다고 새벽같이 샵에 가서 얼굴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들 메이크업 없이 나올 줄 알았으면 우리도 아침잠이나 더 잤을 텐데…….

하지만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 나도 눈치는 있다.

“안녕하세요, 어나더뮤직 연습생 스물세 살 정의헌입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마이크를 받아 비슷한 대답을 이어갔다. 스물두 살 김지상, 안승준.

인사가 끝나면 바로 트레이너들의 질문 타임이 시작되었고, 마이크가 내게로 되돌아왔다.

“아이돌 활동을 했었네요?”

“네, 스테리나인이라는 그룹에서 3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없으면 서운했을 질문. 나는 미리 제작진에게 주의받은 대로 과거형으로 대답했다.

사전 인터뷰가 있던 날, 제작진은 이력서 사본을 읽으며 우리에게 통보했다.

‘그룹 활동은 이미 끝난 것처럼 말해주세요.’

‘그게……. 무슨 느낌으로요?’

‘방송이잖아요. 여러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데프아〉 없으면 이제 연예인 못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좋아요.’

마치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그 스태프는 둥그런 안경을 손끝으로 올리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페어플레이예요. 여기 데뷔 경험 없는 연습생 중에서도 이미 자기 소속사 데뷔조 들어가 있는 애들 많아요. 그 애들도 이 방송 아니면 데뷔 기회 없는 것처럼 말하고 다닐 거란 말이죠. 여러분도 그 정도는 해줘야 경쟁할 수 있어요.’

과연 맞는 말인지는 의심이 되었지만……. 당장은 시키는 대로 했다.

숨만 쉬어도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는데, 반항까지 하면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갈 사람 소굴이다. 조심하는 게 나았다.

“여기 적혀 있네요. 김지상 연습생은 리드댄서, 안승준 연습생은 리드래퍼. 그리고, 오.”

“정의헌 연습생은 리더……. 포지션이었다고 하는데. 리더였어요?”

“네, 리더와 메인댄서 맡았습니다.”

“어떡해. 리더였으면 마음고생 특히 더 심했겠다.”

그리고 트레이너 중 한 분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렇게 나온 애들 다, 나는 너무 안쓰러워.”

……우리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 싫지 않았다.

쇼맨십인지, 진짜 감정인지. 어느 쪽이든 우리 방송 분량과 이어지는 이벤트였다.

악의는 없고, 선의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기니 조금 감사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뒤로는 우리를 시험하는 듯한 질문도 몇 개 받았지만 말이다.

“키가 큰데 메인댄서를 맡았네요?”

“네, 키가 단점이 되지 않게 평소에도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력이 있는 만큼 우리는 더 엄격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어. 각오는 되어 있지? 김지상 연습생, 대답해 봐.”

“……준비한 것 모두 보여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이제 준비한 무대 먼저 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무대 방향 조명이 몇 개 켜졌다.

놀고 내려오는 무대가 아니라 심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에게 몰리는 견제의 시선 때문인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나도 이 정도인데 우리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긴장하면 근육부터 굳을 텐데 큰일이군.

‘이야기를 해둘까.’

전주가 깔리기 전 나는 이어셋 마이크를 톡톡 두드려 두 사람에게 신호했다.

둘은 시작 대형으로 자세를 고정한 채, 고개만 돌려 내 쪽을 보았다.

“표정.”

내가 속삭였다.

“긴장 풀고.”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지상이와 승준이가 표정을 바꾸었다.

‘이제 조금 자연스럽네. 좋아.’

자신 있어 보이는 미소와 동시에 MR 전주가 시작되었다.

딩동댕동.

청량한 피아노 반주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그래, 이 노래는 웃는 얼굴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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