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4화 (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4화

02. Hello Future(1)

‘김지상 문제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어.’

〈데프아〉 종영 몇 개월 후, 지상이는 어느 날 홀연히 우리와 인연을 끊었다.

탈퇴 과정에서 스나 멤버들 연락처를 일괄 차단했고 회사에도 정확한 탈퇴 및 계약 해지 사유를 고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다. 가족처럼 잘 지내던 멤버가 붙잡을 기회도 주지 않고 등을 돌려 버렸으니까.

방송이 직접적인 원인이든 아니든 그 시기에 지상이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나 사정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봉합하고 가야 하는 트러블이다.’

멀고 추상적인 목표가 ‘유명해지기’라면, 내가 개인적으로 품은 욕심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되도록이면 아홉 명 스테리나인으로 오래오래 같이 가고 싶다.’

요즘 아이돌은 멤버 한두 명쯤 빠져도 타격이 없다지만, 그것도 그 멤버가 말썽부리고 사고 칠 때 얘기다.

스나는 그보다 불미스럽지 않고 복잡한 사정으로 흩어졌으니까. 헤어진 멤버들도 나로서는 아까운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아홉 명이 함께 있었을 때, 그 화목하고 즐겁던 시간을……. 내가 아주 긴 시간 그리워했기 때문에.

다시 함께할 기회를 잡은 이상,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데프아〉에 멤버들을 출연하지 못하게 하여 원인 자체를 없애는 것, 또는.

‘……아예 나도 같이 출연해서 김지상을 보호하며 새로운 해결 방안을 내는 것.’

출연하지 않고 간섭하기에는, 당장 잡힌 해외 일정이 있었다.

티켓 판매에 프로모션까지 시작해서 아예 이쪽은 무르거나 절충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쯤 생각을 끊고 팀장님께 통보하듯이 말씀드렸다.

“저희 멤버들끼리 한번 이야기해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뒤에서 돌린 연락인데 이렇게 애들하고 대놓고 말하겠다는 건 반칙인가?

뭐 어때. 민감한 일일수록 그냥 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따지자면 애초에 이런 문제를 개별 연락한 것 자체가 매니저팀의 실책이기도 하고.

그런데 팀장님은 의외로 당황하거나 곤란해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그래. 아무튼 네가 방송에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건 사실이야, 의헌아. 선생님은 너를 알잖아. 이 일도 오래 했고. 내가 보기에 너만큼 성실하고 능력 좋고, 스타성 있는 사람도 드물어.”

그것도 아주 진솔한 말씀을 해주시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너를 알아주고, 정의헌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거야. 그리고……. 사실은 내가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래. 서포트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키우는 가수가 성공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거든.”

“……감사합니다, 쌤. 감동이에요.”

“다른 욕심으로 제안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야. 너도 천천히 잘 생각해 봐.”

나는 팀장님께 꾸벅 인사를 드린 다음, 곧바로 애들이 있는 연습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습실 중앙에 멤버들을 둥그렇게 모아 앉히고 가볍게 손뼉을 맞부딪쳤다.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전에 서바이벌 방송 섭외 받은 거 기억하지.”

이 뒤로 나는 애들에게 내가 무슨 제의를 받았는지와 팀장님이 설명해 주신 방송 출연의 메리트에 관해 알렸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에 관해서도.

“아직 어떻게 하겠다고 대답은 안 드렸거든. 나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너희가 무슨 생각으로 섭외를 승낙하거나 거절했는지가 궁금해.”

이 자리를 어색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대답은 술술 나왔다. 예컨대 이영하와 강주찬.

“난 그런 방송은 아무래도 무서워서……. 좀 그래.”

“그냥 싫어. 굳이 그럴 이유 없잖아.”

그리고 출연을 결정한 멤버 중 하나인 안승준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나 지원서 썼어. 정인 쌤이 그룹 홍보에 도움 될 거라고 하셔서.”

강주찬이 미간을 찡그렸다.

“왜?”

안 그래도 인상이 서늘한 녀석이 얼굴까지 굳히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진다.

“아니, 지금 말했잖아. 그룹 홍보 때문이라고. 난 서바이벌 경험도 있으니까.”

안승준이 대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서바이벌’이란 승준이가 중학생 때 참가했던 〈틴에이지 스타〉 방송을 가리킨다.

케이팝 영재 발굴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는데, 그 첫 번째 시즌에서 안승준은 최종 준우승을 했었다.

사족이지만 아마도 이 경력 때문에 얘 별명이 ‘콩’이 되었을 것이다.

“〈틴스타〉 잘 됐지, 〈구공드〉 잘 됐지. 난 서바이벌도 나쁘지 않다고 보거든? 그것도 결국 방송이잖아.”

“안승준.”

“왜, 강주찬. 내가 찾아보니까, 거기서 데뷔하더라도 초반에 일 년만 집중하면 된다던데? 그다음에는 개인 활동이든 기존 그룹 활동이든 병행 가능하다더라. 그러면 대충 내년 말에는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긴 시간은 아니잖아.”

강주찬이 대놓고 언짢음을 내비치든 말든 안승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 같아서, 그 타이밍에 내가 나서서 교통을 한번 정리했다.

“승준이는 알았으니까 거기까지 하고. 지상이는 어때.”

김지상은 모두 한마디씩 의견을 주고받을 때부터 조용했다.

아직 고민 중인가. 결정을 못 내린 단계라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나 왜?”

어떻게 보면 지상이는 멤버 머릿수에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한 것 같은데, 그 전략은 사실 제법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나도 미래를 몰랐다면 지상이를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냥, 물어보는 거지.”

김지상은 본래 생각이 많고 행동도 느리고, 낯을 가리는 데다가 상당히 내향적인 성격이다.

인물만 놓고 보면 서바이벌 방송에 참여하지도, 거기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타입.

하지만 〈데프아〉 속 김지상은 꾸준히 노력했고, 성실했으며, 욕심이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파이널 3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지상이는 눈동자를 굴려 분위기를 살피더니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뭐, 그래. 나도 해보려고.”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오는, 그런 건가.

지상이가 눈치를 보다가 우물쭈물 이어 말했다.

“아, 이유는……. 개인적인 문제라. 중요하지 않다고 봐……. 안승준이랑 비슷하긴 해.”

김지상은 ‘정인 쌤이랑 따로 이야기한 것도 있다’라거나 ‘지금이 아니면 그런 방송도 못 나갈 것 같다’고 부언했다. 반응이 즉각 돌아오지 않자 당황한 건지 안 그래도 작던 목소리가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아무튼……. 그렇다고.”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은 아니다.

몇 명은 여기까지만 듣고도 지상이를 이해해 주는 눈치였고, 나 역시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깨달은 게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예외로 한 사람만은, 얼굴을 구기고 김지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덕분에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이렇게까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데 못 알아챌 김지상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해, 강주찬.”

결국 지상이가 먼저, 서슬퍼런 표정의 강주찬을 콕 집어 말을 걸었다.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꼴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저격을 당한 강주찬은 쯧 소리가 나게 혀를 차고 대꾸했다.

“할 말 없어. 네 입으로 개인적인 거라며?”

그런데 하필 둘이 동갑이라 말투에 허물이 없어서, 한마디씩만 주고받아도 바로 말다툼이 되었다.

“야, 강주찬.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니야.”

“내 마음대로 듣는 게 억울하면 똑바로 말을 하든가.”

김지상이 그 타이밍에 입을 다물자, 강주찬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스윙을 날렸다.

“팀을 그따위로 생각한다는데 듣는 사람 기분 참 좋기나…….”

“주찬아. 야.”

하지만 막타는 반만 유효했다. 중간에 내가 끼어들어 저지했기 때문에.

“그쯤 해. 지상이가 그렇게 생각 안 한다잖아.”

“…….”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연습이나 하자. 나중에 다시 얘기하게, 둘 다 머리 좀 식히고 와.”

그렇게 두 사람을 연습실 밖으로 내보내고, 오 분쯤 지나 어느 정도 어수선한 분위기도 가라앉았을 때.

김지상은 돌아왔으나 강주찬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다. 하기야 그쪽이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찬이를 찾아 나섰다. 차라리 연습 끝날 때쯤 말을 꺼낼걸, 짤막하게 후회하면서.

‘작업실에 있나? 아니면 휴게실?’

그러나 굳이 머리를 굴려 추측해 볼 필요는 없었다.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마자 강주찬과 눈이 마주쳤으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핸드폰을 만지는 강주찬과 방화문 문고리를 잡은 내가 뻘쭘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안 오냐.”

“가야지.”

먼저 말을 걸자, 강주찬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무슨 중요한 연락이라도 하는 줄 알았건만 그냥 후다닥 정신 차리고 놀고 있었나 보군.

“기분은 좀 어떻고.”

“하…….”

그쯤 데리고 나오려는데 강주찬의 발이 멈췄다.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화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구나. 뇌리에 꽂히는 예감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계단 위아래를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듣는 귀가 있는지……. 다행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열고 들어온 문까지 닫으면 밖까지 목소리가 들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난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지상이가 나쁜 뜻 있어서 그럴 애는 아니잖아.”

“나도 알지, 그건. 알지만…….”

강주찬이 땅이 꺼지게 푹 한숨을 내쉬었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 지금 중요한 시기 아니야?”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그렇게까지 까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강주찬이 이렇게 감정적인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물어서 그런가.

“서드림 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걔는 아프니까. 하지만 남은 우리끼리는 뭉쳐서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찬이가 또박또박 느리게 말했다. 낱말과 낱말 틈틈이 흥분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최대한 고심하여 문장을 고르는 정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형도 계속 그렇게 말했잖아. 다 같이 잘되자고, 그룹으로 성공하자고……. 뭐든 서로 숨기지 말자고.”

“……그랬지.”

가만히 숨을 고르며 낯빛을 관리하는 강주찬의 모습을, 나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강주찬이 정확히 어떤 요소 때문에 이 상황을 불쾌해하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김지상이 그룹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혼자 유명해지고 싶어 하니까? 혹은 그룹이 이대로 분열될까 봐? 아니면, 지상이가 자기 의도를 다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진실이 어느 쪽이든 지금 강주찬이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인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냉정하게 생긴 얼굴이나 독립적인 성격과 달리 주찬이는 우리 그룹에 대한 의리가 남달랐다.

애초에 다른 멤버의 방송 출연에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팀을 각별히 아껴서일 테니까.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이제껏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형.”

“뭐야, 왜.”

무슨 말로 구슬려야 주찬이 속이 풀릴지 고민하는 중, 강주찬이 나를 불렀다.

“……미안.”

“갑자기 나한테?”

“형 출연 승낙하려고 우리한테 물어본 거잖아. 그런데 혼자 너무 짜증 낸 것 같아서.”

…….

음……. 이게 참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되냐, 느리다고 해야 되냐.

다른 애들은 내가 말 꺼낸 순간부터 발언을 조심하던데 어째 깨달음이 반 박자 늦다.

하지만 강주찬까지도 저렇게 생각했다고 하니까……. 나도 슬슬 복잡한 계산을 정리하고, 결론을 지어야 할 것 같다.

“확실히 결정된 건 아니야. 그런데 마음이 기울기는 했어.”

“형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지.”

“알았어. 솔직히 말하자, 솔직히. 나도 해보고는 싶어. 나는 그런 도전하는 거 좋아하니까.”

복잡한 계산을 다 떼어놓고 내 마음만 헤아려보자면, 욕심은 생긴다.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랬듯 도전 자체가 무섭지는 않다. 팀장님의 ‘설득’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외에도 뇌내 토론 ‘찬성 편’ 주장의 근거는 몇 가지 더 있었다.

‘무엇보다 1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거. 김지상.’

생각했던 것보다도 김지상의 결심이 확고했다.

물론 지상이도 내가 뜯어말리면 말을 들을 녀석이지만, 나도 미래를 아니까 양심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김지상은 방송을 통해 너무 잘되고, 너무 많이 사랑받았다.

방송에 출연하면 돌아올 성과를 알기 때문에 내가 억지로 내리누르고 싶지 않았다. 동생에게 못할 짓이었다.

‘둘, 가이드라인.’

과거로 돌아오기 직전에 ‘천사’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가이드라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곧 시작하는 방송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첫 단추로서 좋을 겁니다. 참가하는 편이.’

‘그러면 행운을 빌어요. 안녕.’

이런 조언……. 무시하면 큰일 나는 게 공포영화의 클리셰 같은데.

협박하는 투는 아니었지만, 묻어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려니까 묘하게 찜찜했다.

‘그리고 〈데프아〉의 화제성.’

국내 케이팝 시장, 특히 보이그룹 생태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대형 그룹이 대중적으로 떠오를 때, 주변 작은 그룹들까지 낙수 효과로 인지도를 얻으면 참 좋겠지만…….

오히려 작은 그룹의 팬들까지 대형 그룹으로 옮겨가고, 절대적인 파이는 커지지 않는 것이 ‘그사세’ 매니아 시장의 현실.

과거 〈데프아〉가 인기를 모으자 대형 연예기획사 신인 그룹들까지 런칭과 컴백 일정을 주르륵 밀었던 적이 있다. 대형도 그 정도인데 중소 회사 소속인 우리 미래는 사실상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겪은 바로는, 올해 하반기 케이팝 팬덤은 〈데프아〉로 대통합된다. 팬덤을 넘어 대중까지도 흡수할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리고 마지막 이유, 나는 앞으로 올 일을 알고 있으니까.’

이것도 까다로운 이슈다.

애당초 〈데프아〉 마지막 회에서 투표로 결정된 우승자들은, 한 그룹으로 데뷔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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