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3화 (3/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3화

01. MIROH(3)

“어우, 누군가 했네. 의헌이 형?”

“정의헌 숙소 간 거 아니었어? 혼자 뭐 해.”

연습실로 들어온 그 주인공들은 안승준과 강주찬. 둘이 동갑 친구고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참고로 강주찬이 가끔 나를 형 호칭 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애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다.

그리고 함께 들어오신 직원분은 매니저팀 소속인 것 같고……. 이 라인업이면 예상이 갔다.

“너희 위라이브 하려고?”

“응.”

강주찬의 대답은 한결같이 무뚝뚝했다. 그래도 한참 어려 보여서인지 틱틱거리는 말투가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위커넥션 라이브 방송’……. 일명 ‘위라이브’, 더 줄여서 ‘위방’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도 좋게 들렸다. 정신 환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원래 사람을 좀 만나야 머리가 돌아간다. 팬들 에너지를 받고 싶기도 했고, 방송 주인들도 따로 있으니까 내가 조금 버벅거려도 티가 안 날 것 같았다.

“나도 그러면 잠깐 인사하고 갈게.”

두 명도 동의하고, 바로 회사 직원의 허락도 떨어지고.

나는 승준이가 들고 있던 회사 태블릿PC를 받아와 방송을 틀었다.

「라이브 시작???? : 런앤런 막방 고생했어요 ????????????????」

「라이브 방송이 19:40 시작될 예정입니다.」

음? 화면이 전환되는데 느낌이 싸하다.

댓글 읽는 용도로 켜둔 핸드폰을 보니까, 얼굴이 가로로 나왔다.

“어, 뭐야. 방향 설정 잘못했어.”

“망했다. 형, 그거 다시 시작해야 돼.”

승준이가 끼어들었다. 자기가 라이브 설정 다 해서 건네줬으면서…….

댓글 창은 물음표와 키읔 초성의 향연.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레디 미안해요!! 진짜 금방 다시 올게요!”

분명 제정신 차리려고 방송하기로 한 것 같은데? 더 정신이 없어지지 않았나?

나는 불안함을 안고 위커넥션 어플의 실시간 스트리밍 버튼을 다시 눌렀다.

「라이브 시작???? : 런앤런 막방 ㅠㅠ 다시 켰어요 ????????????」

「라이브 방송이 19:43 시작될 예정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방송 방향 설정을 잘못해서 껐다가 다시 시작했어요. 이거 왜 할 때마다 헷갈리지?”

“레디, 미안해요. 저희 형이 좀 그래요.”

안승준이 옆에서 깐족거렸다.

살면서 위라이브를 세 자릿수는 했는데 아직도 헷갈리다니 나도 내가 바보인가 싶다…….

“네네. 제가 승준이의 조금 그런 형입니다. 레디, 막방은 잘 봤어요?”

시청자 수는 계속 늘어가고, 댓글도 일 초에 몇 개씩 쌓였다.

와. 그래도 이때는 우리 팬이 생각보다 꽤 있었네.

해체할 때의 몇 배, 몇십 배는 될 만큼 많은 사람이 우리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러고 있는 순간이 좋기는 좋다.

“아무튼, 이번 활동도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일요일 저녁인데 한 주 준비 잘하고.”

잠시 얼굴만 보여주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한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방송을 종료할 시간.

그때, 방송 내내 대화를 주도하지 않고 툭툭 장단만 맞춰주던 강주찬이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번 활동도 레디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좋았을까 모르겠는데…….”

강주찬은 맞은편에 쥐죽은 듯 앉아 있는 직원분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한마디 말을 짧게 끼워 넣었다.

“다음에는 꼭 완전체로 돌아올게요. 기대해 주세요.”

주찬이가 카메라를 들지 않은 손을 옆으로 흔들어 인사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직원분 당황하신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강주찬은 혼날 걸 알고도 저지른 것 같긴 하지만.

‘대놓고 완전체라고 말했다.’

그도 당연한 게, 이 무렵 멤버와 직원을 포함한 회사의 모든 이들은 스테리나인의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했다.

‘멤버의 활동 중단은 탈퇴로 이어질 것이며 곧 스테리나인은 8명이 될 것이다’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주찬이 지금 팬들이 보는 앞에서 ‘완전체’를 입에 담았다. 그렇게 입단속을 당부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스테리나인은 시작할 때처럼 아홉 명이 한 팀이다.

강주찬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라이브 방송이 나에게 준 깨달음은 명확했다.

바로, 현재 스테리나인 앞에 들이닥친 이 상황은 절대 최악이 아니라는 것.

아직 사람은 한 명도 떠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우리, 아니, 나의 앞에 남은 과제도 확실해졌다.

‘세상에 우리를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과거로 보낸 그 팬분을 위해서.

단순히 ‘이번 생에는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싶다’라는 욕망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직 우리를 모르시겠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것은 나뿐. ‘천사’도 이것은 나만의 기회라고 했다.

위라이브 실시간 채팅에서도 나를 과거로 보내준 팬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편지에서도 스나를 좋아한 지 2년 차라고 하셨으니까. 한참 남았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빳빳한 편지봉투를 꾹 쥐었다.

그분께서 다시 내 팬이 되어야만 나는 보답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해드릴 수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에 잠시나마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드리는 것 말이다.

‘과연 그분이 이번 생에도 우리를 좋아하시게 될까?’

뭐, 이것도 충분히 들 만한 의문이지만.

‘됐어. 이런 걱정은 안 할래.’

안 되면 되게 하면 되니까.

그냥 내가 더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면 된다.

어차피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사람은,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결코 한 명이 아니다.

보편적인 호감을 얻자. 아주 많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아이돌이 되자.

누구보다 크게 성공해서 내가 받았던 것을 전부 돌려주자. 그들 모두에게.

‘뭐가 양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십 대 초반 피지컬은 책임지고 보여드릴 테니까요.’

음. 이렇게 요약하니까 조금 구차해지는 것도 같군.

그렇지만 덕분에 장•단기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스테리나인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

딱 기다려 보세요. 정씨 장남이 갑니다.

+ + +

이래저래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과거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몇 년 동안 달라진 게 생각보다 많지 않기도 했고, 옛날 안무와 노래도 조금만 연습하면 몸이 바로 기억해서 팬 사인회나 자잘한 행사 스케줄쯤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회귀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스물세 번째 생일이 찾아와 두 배로 정신이 없었지만……. 아무튼 나는 이것도 저것도 잘 넘겼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아는 것을 되짚고 과거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2주 정도 시간이 흘러, 바쁜 일정 사이 기적처럼 찾아온 일 없는 평일.

“의헌이 있으면 잠깐 나와볼래?”

어나더뮤직 매니저팀 대장, 임정인 팀장님이 단체 연습 중인 나를 따로 불러냈다.

‘올 게 왔구나.’

나는 온몸으로 궁금해하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팀장님을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묘하게 긴장되는 게, 빈 회의실이 마치 일대일 매치 격투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팀장님은 A4 용지를 몇 장 묶어 철해놓은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설득을 하나 해보려고 하거든.”

봅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일단 서류철 맨 상단 종이에 적힌 제목이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지원서 양식’.

줄여서 〈데프아〉라고도 불리는 이 방송은, 남자 아이돌 연습생 100명을 모아 상위 10명을 최종 선발해 한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기획의 프로그램이다.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유행을 만들어낸 방송인데, 이 시점에서는 녹화 시작이 이제 한 달 남았으려나.

“알아, 의헌아. 네가 저번에 거절한 거. 그런데 쌤이 네가 아까워서 그래.”

여기서 팀장님이 말씀하신 ‘저번’이란 내가 체감하기로는 대략 5년 전.

내 기억으로는, 〈Run and Run〉 활동 직전에 우리 회사에 방송 출연 섭외가 하나 들어왔다.

팀장님은 그날도 우리가 다 같이 모인 연습실에 슬쩍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작년에 OTV에서 방송한 〈구공드〉라고 알지.’

〈90’s Dreamers〉. 공식적으로는 ‘나인티스 드리머스’라고 부르는 제목이다.

1990년대에 태어난 여자 연습생 90명 중 상위 9명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드는……. 꽤 흥한 오디션 서바이벌 방송.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는 대중들도 방송을 꽤 시청해서였을까. 우승자들을 모아 결성한 그룹은 데뷔하자마자 음악방송 1위를 휩쓸고, 연말에는 신인상까지 받았다.

‘그거 비슷한 프로그램을 KMC에서 제작하고 있대. 방송 콘셉트는 거의 같고, 그냥 남자 버전인 거야. 사실 이미 공모 기간은 끝났거든? 그런데 방송사 측에서 활동 경력이 있는 기성 아이돌 출연자가 필요한가 봐. 대형 기획사에서 좀처럼 연습생을 안 내보내려고 해서……. 마케팅을 하려면 이름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나는 그때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4월에서 6월이 되었다.

녹화 크랭크인을 코앞에 두고 나를 ‘진짜_진짜정말_최종.last’ 막차에 태우기 위한 팀장님의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의헌아, 너도 한 번만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 될까?”

그러니까 오늘 나를 불러낸 팀장님의 용건은 이것.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에 출연해 주지 않겠니?’

하지만 솔직히 말해 〈데프아〉 문제는 쉽게 ‘Yes’ 혹은 ‘No’로 결정할 게 아니었다.

과거에도 오랜 고민 끝에 불참 의사를 결정했고, 지금도 출연이 좋은 방법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그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

우선 과거에 스테리나인에서 〈데프아〉에 출연한 멤버는 둘.

둘 다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고, 최종 데뷔조에 들었다. 하지만 둘 다 그 뒤로 제대로 스나에 재합류하지 못했다.

한 명은 칼같이 탈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룹 활동 잠정 중단 후 긴 시간 솔로 가수 및 연기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두 명의 유명인을 배출한 스테리나인에는 ‘버려진 그룹’ 혹은 ‘이미 망한 아이돌’ 이미지가 붙었다.

– 스테리나인 그러면 ㄱㅈㅅ은 탈퇴한 거야?

– 하 업깅이 드디어 탈스나하는구나 근데 얘는 진짜 더 일찍 탈퇴했어야함

– 콩준이 망테리 다시 들어가고 같이 망돌됐긔 ㅡㅡ 콩준이 돌려줘 빻나더놈들아

– 백날 추팔해봐라 스나가 7명이지 9명이냐 ㅋㅋㅋ 9인그룹 보고싶으면 심스켜서 아바타그룹이나 만드세영 ^.^

〈데프아〉 종영 한참 후에도 ‘스테리나인’ 인터넷 검색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였다.

팬덤 안에서도 그룹 인원 때문에 주기적으로 다툼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큰 문제였다.

‘만약 아무도 〈데프아〉에 출연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팀장님이 너‘도’라고 표현하신 것을 보면 이 시점 최소 한 명은 출연을 확정지은 것 같지만, 이리저리 설득하면 취소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데프아〉 출연이 스테리나인에 미칠 나쁜 영향이라면 그 외에도 많았다.

일단 〈데프아〉에서 데뷔를 하든 말든 방송에 출연하는 동안에는 팀 활동을 병행할 수 없다. 바로 탈락한다고 해도 최소 한두 달 텀은 생긴다.

실력에 점수가 매겨지고 경쟁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겠다. 참가자 본인뿐만 아니라 팬들도 스트레스를 꽤 받게 될 테고.

무엇보다 기존에 내가 이 문제로 오래 고민한 까닭은, 만에 하나 방송에서 ‘너무 잘 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새 그룹으로 데뷔하면, 몇 년이나 스테리나인을 떠나 활동해야 하니까.

과거의 나는 정확히 그 가능성이 두려워 〈데프아〉에 도전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멤버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다. 처음 팀장님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응도 모두 소극적이었다.

기어코 매니저팀에서는 몰래 한 명씩 불러 물밑에서 컨택을 했었고, 그렇게 두 명이 긍정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모르는 만큼 멤버들 사이 역시 괜히 잠깐 서먹해졌다. 추측건대 지금이 딱 그 과정일 거다.

“KMC 방송들이 해외 팬들에게도 인기 많다는 건 알지?”

내가 단번에 싫다고 거절하지 않으니까, 팀장님은 기세를 몰아 설득을 이어갔다.

“게다가 연습생 트레이닝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라인업이 꽤 좋아.”

팀장님이 준비한 자료를 하나씩 보여주시면서 〈데프아〉에 참가하는 것이 내게 가져올 이득을 설명했다.

〈데프아〉에 얼마나 거대 자본이 들어갔는지, 시청률이나 화제성은 얼마나 예상되는지, 〈데프아〉의 총책임자가 얼마나 유명한 방송을 만들었는지 등등. 책만 안 들었지 거의 수업 시간이었다.

“〈구공드〉 최종 데뷔하지 못한 멤버들도 올해 방송 여기저기 많이 나오잖아. 잘만 하면 스나 팬도 새로 많이 생길 거야.”

팩트를 따지면 물론 방송으로 생긴 개인 인지도를 그룹 인지도로 흡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속으로는 태클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팀장님의 말씀에는 나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참가하겠다고 한 멤버가 지상이랑 승준이야.”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말.

이번에는 왠지 팀장님도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굳게 결심하신 모양이었다.

〈데프아〉에 출연하는 멤버가 저렇게 둘이라는 것쯤은 안다. 예전에도 그랬으므로.

하지만 김지상 이름을 직접 들으니까 타격이 뭔가 직접적으로 아프게 온다. 안승준은 비교적 걱정이 없는데…….

김지상은 유달리 일찍 스테리나인을 탈퇴했기 때문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나 다름없는 멤버였다.

“네가 같이 참가하는 편이 지상이나 승준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으으음,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원래 그런 곳에서는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리프레시가 되니까. 응?”

팀장님은 그걸 놓치지 않고 눈을 빛내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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