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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2화 (2/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2화

01. MIROH(2)

- 당신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겁니다. 힘내세요. 머리는 조금 아프니 조심하시고요.

“아니, 잠깐만요.”

제대로 설명된 게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초스피드로 진행한다고?

내가 당황하고 있으면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일을 저지를 기세여서, 나는 순간 머리를 굴려 외쳤다.

“……그러니까! 좀 더 확실히 해주세요. 왜 저를 골랐는지 그 이유라든가.”

일단 던지고 본 거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궁금할 만한 지점이었다.

왜 하필 나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분께서 정말 스테리나인의 팬이라면 모르실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욕심이 많거나, 늘 야망으로 이글거리는 멤버는 아니라는 것을.

당장 우리 멤버 중에서도 나보다 욕심 많고, 손익 계산도 빠르고 꼼꼼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애초에 나는 무슨 일이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극적으로 절망하지 않고, 미친 듯이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스테리나인을 있는 그대로도 사랑할 수 있어.’

그룹이 망하든, 성적이 안 나오든, 누가 뭐라고 손가락질하든…….

‘스테리나인은 자랑스러운 내 팀이니까.’

그러니 나는 흔들리지 않고, 이런 사소한 불행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

그런데 그 팬분은 무엇을 믿고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걸까.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서?

단순히 그룹 내 제일 좋아하는 멤버라서 그분이 나를 선택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것도 애매하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계속 살아가도 언젠가는 그럭저럭 다시 행복해졌을 테니까. 즉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 음.

짧은 음성과 함께 피부로 느껴지던 약한 바람인지 압박감인지 모를 것이 멈추고, 무대에 다시 조명이 켜졌다.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깰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갑자기 드는 빛에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 소원의 목적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다만 정의헌 씨가 선택된 이유라면 알긴 하지요. 크게는 다섯 가지인데…….

“알려주세요.”

- 예. 이해할 수 있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하나씩 직접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인용이라니? 뭔가 표현에서 불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눈치챘다고 해서 목소리가 자제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 첫 번째, ‘정의헌 탈 인간급 다이아몬드 멘탈 생불 그 자체라 그 난리랑 사고들 다시 겪고 고생해도 정신병 안 걸릴 것 같음’.

아…….

이런 기준?

- 그리고 두 번째, ‘우리 애 사회성 만렙에 성격 개 좋아서 남이 억지로 과거로 돌려보내도 화 안 낼 것 같음’.

……진짜 이런 기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어이가 없어서 분노도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도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던데, 실체 없는 목소리는 태클을 싹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 ‘회귀하면 동생들 어리다고 더 잘해줄 것 같아서 그거 생각하면 좀 흥분됨’.

- ‘그냥 내가 20대 초반 정씨 장남 양기 흐르는 피지컬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음’.

- ‘솔직히 스나 정의헌 위주로 돌아가는 거 팩트고 애들은 리더 없으면 애초에 뭉치지를 못한다고’.

목소리는 거기까지 말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듯 침묵했다.

정신이 혼미하네…….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게 느껴진다.

“끝에 세 개는 사심에 주접에 전혀 객관성 없는 말이잖아요.”

심지어 마지막은 남들이 들으면 위험할 정도로 나를 고평가하고 계시는데.

남들이 뭐냐, 왠지 내가 들어서도 안 될 것 같은 내용이다. 안 알려주고 싶어 하실 것 같다.

그 와중에 목소리는 뻔뻔하게 응수했다.

- 아는 것을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그 외에 ‘아니, 객관적으로 못 뭉치는 게 다가 아님 오로지 정의헌만이 그 아가들을 길들일 수 있음’, ‘실력 좋은 건 말해 뭐해 춤짱 음색 깡패 비주얼 압살 본투비 웃수저 이건 된다’ 같은 의견도 있었네요.

“정말 완벽하게 과대평가되고 있군요…….”

이거 생각보다 원색적인 욕망이었잖아?

그 순간 우지끈 바닥이 무너지는 감각이 발밑에서부터 느껴졌다.

- 자,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내 말이나 행동보다 ‘천사’의 처리가 더 빨랐다.

나는 무대 밑으로 넘어지듯이 빨려들어 갔고, 귀에서는 삐이익 이명이 울렸다.

아,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뒤늦게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처음부터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그리고 그때,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먹먹한 귓속으로 목소리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 원래 사람은 살면서 두세 번쯤 기적을 일으키고는 하니까요. 정의헌 씨도 보아하니 두어 번은 기회가 남은 것 같네요.

- 세상에는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터무니없이 특별하고 대단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해요. 편지를 보낸 정의헌 씨의 팬처럼요.

- 하지만 이 사람에게도 기적은 일생일대의 사건.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겠지요.

- 그런데도 그 사람은 당신을 위해 기적을 바란 겁니다. 자신 스스로가 아니라. 이건 기뻐할 일이라고요.

- 이것은 정의헌 씨에게만 주어진 기회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세요, 당신이 무엇을 받았는지.

- 소중한 기적을 헛되이 소모해서는 안 되니까.

-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정의헌 씨가 더 잘 알고 있겠지요. 한 번 더 강조드립니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목소리는 내내 침착한 태도로 나에게 속삭였다.

- 잠깐, 정의헌 씨에게는 이 이상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군요.

- 그러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가이드라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 그러니까…….

점점 작아지는 음성을 들으며, 내 몸은 점점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아홉 명의 소년들, 스테리나인.

나의 20대.

춤추는 것이 좋다. 노래하는 것은 재미있다. 무대에 서면 들뜬다.

나는 그게 문제였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너희를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너희는 다들 좋은 애들이니까, 앞으로 뭘 해도 잘할 거다. 계속 욕심내서 하고 싶은 일을 해.’

어느덧 일곱 명밖에 안 남은 멤버들을 불러모아 놓고, 어나더뮤직 대표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한 가지.

‘아니, 지금이야말로 욕심을 버려야 할 때니까요.’

반항적으로 투덜거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였으니까. 누구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해체를 공식 입장으로 발표한 날, 나는 멤버인 이영하와 둘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영아, 그래도 너는 노래 계속할 생각이지? 잘하잖아.”

젓가락을 깨작이며 내가 대뜸 묻자 영하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나는 잘하는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거지.”

“좋아하기도 하지 않냐.”

“좋긴 좋지만…….”

이영하는 잠시 말이 없다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래 노래하겠다고 너무 주변에 말을 많이 했어. 인제 그만두지도 못해.”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네.”

그렇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거다.

처음부터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거였는지, 영하는 웃으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하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영하뿐만이 아니었다.

‘애들한테 전화해 보자’라며 그 자리에서 멤버들에게 하나씩 전화를 걸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메인래퍼 강주찬은 무덤덤하게, 핸드폰 너머로 계획을 풀어놓았다.

- 그래도 나는 작업해 둔 게 있으니까, 믹스테이프부터 풀어야지. 음반 내기 직전에 엎어진 거니까 완성도 거의 되어 있고. 주변에 나 피처링으로 쓰고 싶다는 사람도 되게 많아. 할 수 있을 때 해봐야지.

그리고 강주찬은 내년 초에는 유명 힙합 경연 방송, 〈웨이크 업 MIC〉 여덟 번째 시즌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농담을 덧붙였다.

- 본선 못 들어가면 바로 군대로 튀려고.

“잘 생각해 봐. 우승하더라도 바로 가야 된다.”

- 아이 씨, 끊는다.

그 말을 끝으로 강주찬은 진짜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또……. 누구랑 무슨 대화를 했더라.

솔로로 홀로서기 위해서는 노래도 춤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두렵다고 하는 멤버도 있었다.

배우 활동으로 우리 중 그나마 얼굴이 알려진 멤버는, 음악을 그만두고 배우 매니지먼트로 소속을 옮겨야 되는 현실이 부담스럽댔고.

탈퇴한 멤버들에게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어차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도 수년 전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막내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애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 제법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둘 중 비교적 멀쩡한 한이주가, 자기 친구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를 배경으로 내게 물었다.

- 형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그냥 미래 고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 별일이다. 의헌이 형이 미래 걱정을 다 하고.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이주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 형, 나는 계속 노래하고 무대 설 거야. 얘도 작곡이랑 프로듀싱 더 공부해 보겠대. 좋아하는 거 못 하고 살면 병 나. 형도 당연히 계속 춤추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형 무대 체질이잖아.

처음 듣는 동생의 진심. 이주가 내게 부탁하듯이 말했다.

- 그만두지 마, 형도. 그리고 꼭 다시 다 같이 콘서트 하자. 언제가 되어도 괜찮으니까.

멤버들은 서로 다른 것에 관해 말하는 척했지만, 결국 우리의 욕심과 미련은 한 뿌리였다.

다 함께 계속 무대에 서고 싶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고, 우리의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

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우리 팀’ 스테리나인이 소중해서, 단체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열망.

‘……왠지 미안해지네.’

그 팬분께서 걱정하신 것과 달리, 나는 분노보다는 죄스러움과 책임감에 사로잡혔다.

속상함과 안타까움을 느꼈을 멤버들과 팬들에게 미안했고, 책임감은……. 내가 리더였으니까.

나는 우울감을 잠시 곱씹다가 곧 고개를 저어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냈다.

‘아니, 지금은 고마워할 때야. 기회라고 생각하자.’

스테리나인을 참 좋아했다.

좋아해서 20대를 다 바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좋아했으니까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니까 그 노력, 처음부터 다시 한번 더 하라고 해도 한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발버둥 쳐야 한다고 해도 당연히 할 거다.

‘여전히 좋아하니까.’

내가 여전히 소중히 아끼니까. 우리 팀을.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지금 기분은 어때. 기쁘냐?’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야 아드레날린이 도는 것 같다.

대답은 명쾌했다.

‘……물론이지.’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사실이다.

끝이 아니다.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

우리, 계속할 수 있다.

* * *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장소는 연습실이었다.

한참 청소하던 신(新)사옥이 아니라, 연습생과 데뷔 초 시절을 보낸 옛날 연습실 말이다.

나는 밀려오는 두통과 동시에 의식을 되찾았다. 몸은 거울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였다.

‘와, 머리 진짜 아프다.’

두통이 가라앉으며 정신이 로딩되기까지 몇 초. 그 뒤에는 바로 벌떡 일어나 거울로 내 모습을 살폈다.

검은 티셔츠, 트레이닝 바지, 실내용 운동화, 손에 든 하늘색 편지봉투……. 그리고 놀라울 만큼 어린 얼굴.

왜인지 풀 메이크업이다. 눈썹은 올려 그렸고, 적갈색 머리카락에, 앞머리는 이마가 반 보이게 깠다.

‘……나 이미 데뷔한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언제로 돌아간다는 안내를 전혀 받지 못했다.

황당해하기도 잠시, 나는 그 즉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전부 털어서 정보를 모았다.

발송인 미상의 편지는 그대로 손에 들려 있었다. 핸드폰은 몇 년 전 기종, 핸드폰에 표시되는 날짜는 6년 전 5월이었다.

정말 시간이 돌아갔다. 인터넷에 그룹 이름과 내 이름을 검색해 본 뒤에야 나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인정했다.

「STARRYNINE 2014년 7월 24일 데뷔 – 데뷔일로부터 +669일」

이 시기가 언제냐면……. 데뷔 1주년은 이미 지났고, 2주년은 아직인가.

마지막 활동 곡은 〈Run and Run〉. SNS를 확인해 보니 하필 오늘이 마지막 음악방송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 오후에 방송을 끝내고, 퇴근하지 않고 그대로 회사에 와서 이 얼굴인 듯했다. 연습실이니까 연습하러 왔겠지.

그건 그렇고, 툿투 어플을 켠 김에 하나 더.

나는 이상한 공간에서 보았던 계정, ‘HONEY9BIBI’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내 별명과 스테리나인의 9, 그리고 본인 닉네임으로 이루어진 듯한 아이디였다.

화면을 두드리며 초조하게 로딩을 기다리던 내 손은, 결과 페이지가 보이게 되자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검색 결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툿투가 아닌 다른 SNS와 포털 사이트에도 아이디를 검색해 보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인터넷에는 ‘검색 결과 없음’이라는 페이지뿐.

밀려오는 허망한 마음에 다리 힘이 풀렸다. 나는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잡았다.

‘이 시점이 과거인 것은 확실해. 왜 지금인지는 모르겠지만.’

6년 전, 2016년 5월이라면……. 우리가 힘든 시기로 꺾어든 직후였다.

공황장애로 그룹 막내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탈퇴마저 고려하던 그때.

‘일 년 넘게 쉬었지. 스나 단톡도 나가고, 본가로 돌아가서.’

막내는 칩거해 두문불출했고, 다른 여덟 명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팀에 생긴 결원은 우리를 주눅 들게 했으며 그 무렵 전후해서 겪은 여러 사건도 우리 멘탈에 타격을 좀 주었다.

방송이나 콘텐츠에서의 텐션도 낮고, 멤버는 물론이고 팬덤까지 예민하던 시기.

그리고 이 삐걱거림이 수습되지도 않은 마당에 발매된 신곡이 바로 〈Run and Run〉이다.

곡 좋고 컨셉도 좋았는데, 에너지가 어중간하게 부족한. 그게 딱 지금이다.

‘……그러니까 한 번 더 요약하면.’

현재, 스테리나인은 이미 하락세다.

과연 무슨 이유로 나는 이 시점으로 돌아왔는가.

어떻게 나는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는가.

나를 돌려보낸 ‘팬’은 누구인가.

복잡한 의문으로 한참을 혼자 고민하는데, 문득 등 뒤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정면 거울을 통해 연습실로 들어오는 멤버 두 명이 보였다. 뒤따라 오시는 회사 직원 한 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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