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사냥감의 반격 -->
프레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주변의 시체들을 살폈다.
움직이는 놈들은 없었다.
‘이걸로 3번째...’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에는, 바싹 마른 엘드리안이 있었다. 공격하면 여지없이 땅에서 시체들이 일어난다.
‘이건... 토템이다.’
프레이는 쓰러뜨린 엘드리안의 사체를 보며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알고 있는 토템은 해골이 장식되어 있다. 해골은 곧 죽음이자 사체를 상징한다.
엘드리안의 사체로 만든 모르테미안 토템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 자신이 쓰러뜨린 이것과 같으리라.
‘그 말은 마인과 모르테미안이 관계가 있다는 뜻일 테고...’
프레이는 이를 으득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
‘우리 마을에 덮친 재앙 역시 모르테미안과 관계가 있겠지.’
더스틴 마을에 덮친 마수들과 마인이 처음부터 그곳에 숨어있을 리는 없었다. 리반을 비롯해 떠오르는 태양 길드가 뭔가를 저질렀고, 그 결과 놈들이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분명 떠오르는 태양은 모르테미안과 관련된 의뢰를 받았으리라. 그리고 그중에 뭔가 어그러진 게 분명했다.
‘일단 마인을 잡는다.’
그 마인이 당시의 일과 관련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관련이 없더라도 프레이는 마인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를 분노케 한 건 리반을 비롯한 유저들이지만, 마을을 멸망시킨 마인과 마수들 역시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나저나 이 토템은 몇 개나 있는 거지?’
프레이는 나침반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이며 생각했다. 어두운 숲을 헤쳐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한 차례 더 토템을 발견했을 때였다.
‘사냥꾼인가?’
악취가 느껴진다. 썩은 내가 코를 찌를 정도였다.
주변에 사냥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 먼저 처리하는 편이 좋겠군.’
토템을 공격하면 언데드가 일어난다. 굳이 적의 숫자를 늘려 싸울 필요는 없었다.
프레이는 냄새의 근원을 쫓아 움직였다.
사냥꾼 셋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중 유독 하나는 덩치가 컸다.
‘인간이 아닌가?’
나뭇잎 사이로 살짝 비친 달빛이 덩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인간이다. 그러나 몸집은 일반 남성의 배는 되어 보였다.
‘상대하기 까다롭겠군...’
겉보기에도 강해보인다. 프레이는 일단 다른 놈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사냥꾼들은 떨어져서 배회 중이다. 가장 가까운 놈에게 다가갔다.
크륵-
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더 가까이 가면 눈치를 챌 터.
프레이는 숨을 멈추고 검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혔다.
끄륵-!
뒷목이 꿰뚫리며 피 끓는 소리가 들린다. 프레이의 검 끝이 놈의 입 밖으로 빠져 나왔다.
머리를 관통당한 놈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와 동시에 다른 놈들이 몸을 돌린다.
‘온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부패한 사냥꾼 우두머리 ‘갈바릭’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이름이 있는 놈이다.
덩치 큰 놈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반적인 사냥꾼이라면 낼 수 없을 힘이다.
‘우두머리라...’
프레이가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 놈이 땅을 박차며 다가왔다. 다른 사냥꾼과 달리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다.
사냥꾼이라기보다 벌목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긴, 엘드리안을 잡는 놈이니...’
갈바릭의 뒤에서 달려오던 놈이 석궁을 꺼내 겨눈다. 프레이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놈과 자신 사이에 갈바릭이 있도록 했다.
‘쉽사리 쏘지는 못하겠지.’
프레이의 예상대로였는지 놈은 그대로 석궁을 내리고 돌아갔다. 그사이 다가온 갈바릭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도끼를 휘둘렀다.
“흡...!”
급하게 숨을 들이키며 바닥을 굴렀다. 머리 위로 무서운 바람이 지나갔다.
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가 쓰러진다. 그러나 숲이 울창한 탓인지 기울어진 나무는 다른 나무에 걸쳤다.
부웅- 부웅-
갈바릭은 다시금 허리를 돌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나무 2그루가 넘어진다.
‘이 일대를 평지로 만들 셈인가!’
쏴아악-
몸을 굴리는 사이 날아온 석궁 화살이 바닥에 박힌다. 프레이는 돌아서서 석궁을 든 놈을 쳐다보았다.
‘저놈부터!’
프레이가 달리기 시작하자 갈바릭이 성이 난 듯 뛰어온다. 그 사이 재장전을 하던 놈이 고개를 치켜든다.
크르륵-!
갈바릭의 울음소리가 지척이다. 프레이는 석궁을 든 놈을 공격하려다 말고 급하게 몸을 날렸다.
프레이를 노리고 날아든 도끼가 애꿎은 놈의 허리를 반 토막 낸다. 그것만으로 멈추지 않았는지 또다시 나무가 넘어진다.
“후우...!”
숨을 내쉬고 곧바로 일어선다. 마나핑거를 들어 갈바릭을 향해 쏜다.
크워-!
충격에 밀려난 갈바릭이 기우뚱거린다.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고 뛰었다.
놈이 근처 나무를 짚으며 넘어지려던 몸을 일으킨다.
프레이는 검으로 놈의 무릎을 찔렀다. 썩은 살을 헤집으며 검이 들어간다.
크륵-!
고통스러운 신음이 아니다. 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높이 도끼를 들었다.
‘언데드란 것들은...!’
프레이는 갈바릭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갈바릭의 도끼가 벼락처럼 떨어진다.
깡-!
마나핑거를 들어 올려 막았다. 장갑과 부딪치며 쇳소리가 났다. 그러나 자세 때문인지 자연스레 무릎을 꿇게 되었다.
“크윽...!”
다른 손으로 검을 비틀어 무릎 옆으로 빼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갈바릭과 프레이의 팔, 승기를 잡겠다는 듯 갈바릭이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무식한 놈!’
프레이는 팔을 비틀어 도끼날을 옆으로 흘렸다. 갈바릭은 자신의 주먹으로 도끼를 친 셈이 되었다.
그 힘 그대로, 프레이는 옆으로 밀려나 바닥을 굴렀다.
“쿨럭...!”
근처에 있던 나무뿌리에 부딪치며 프레이가 기침을 내뱉었다. 갈바릭은 곧장 일어서려 했지만 너덜거리는 무릎 때문에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했다.
‘승기는 내게 있다.’
프레이가 곧장 일어나서 무기를 들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그의 앞을 막았다.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아, 아버지. 아니, 큰 주, 주인님 다치게 하지 마라!”
“겔록?”
검극이 가까스로 겔록의 턱 앞에서 멈추었다. 프레이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겔록을 바라보았다.
“비켜!”
“안 된다! 게, 겔록은 큰 주, 주인님 편이다!”
크르륵-
겔록의 뒤로 갈바릭이 다가왔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겔록의 멱살을 잡았다.
“비켜!”
갈바릭의 힘으로 겔록을 옆으로 집어 던지고 검을 들어 도끼를 막아냈다. 바닥을 구른 겔록이 얼굴을 찌푸렸다.
“게, 겔록 아프다!”
“어서 도망쳐!”
프레이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갈바릭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불안정한 자세에서 날린 검은 놈의 팔을 스치는 데 그쳤다.
“큰 주, 주인님!”
겔록이 놀라 소리쳤다. 일어서서 달리지만 닿지 않는다.
프레이는 겔록을 무시하고 놈의 기둥만 한 팔뚝을 바라본다.
‘자른다!’
마음을 먹자 잔상이 빠르게 나타난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최적의 검로를 선택했다.
높이 들린 도끼, 프레이는 잔상을 따라 품으로 파고 든다.
검을 높이 쳐올려 팔꿈치에 박는다. 단단한 뼈가 걸린다.
온 힘을 다해 팔을 내린다. 뼈가 갈리고, 썩은 살점이 갈리며 검은 피를 바닥에 흩뿌린다.
날아들던 도끼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크르륵-!
놈의 울음소리가 울린다. 겔록은 황급하게 갈바릭을 향해 뛰었다.
‘뭣?!’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갈리는 건 없었다.
팔을 잃은 갈바릭이 도망치고 있었다.
‘언데드가 도망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눈앞의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대로 놈을 쫓아야 했지만, 문제는 겔록이었다.
“큰 주, 주인님이 다쳤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겔록을 붙잡았다. 그 사이 갈바릭의 모습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겔록!”
“치료해야 한다!”
말로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프레이는 겔록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크억!”
“멈추라고!”
그의 외침에 겔록이 몸을 움찔 떨었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큰 주, 주인님이...”
“저건 언데드라고!”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겔록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지 눈을 굴렸다.
“어, 언데드 모, 모른다.”
“뭐? 이런...”
프레이는 다시 소리를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미 갈바릭은 도망을 갔으니까.
일단 겔록이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혹시 사냥꾼 캠프 쪽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됐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른 주, 주인님들은 마을로 간다고 했다. 큰 주, 주인님이 위험하다고 들어서 왔다.”
“위험? 이미 죽었다고. 언데드는 다 죽은 거라고!”
프레이의 말에 겔록의 눈이 흔들렸다.
“죽는다? 아니다. 아,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방금 팔을 다쳤다. 게, 겔록이 가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지 겔록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는 겔록을 다시 붙잡았다.
“너...”
“아, 아버지는 죽지 않는다. 아, 아버지가 없으면 게, 겔록은 혼자다. 그럴 수는 없다. 호, 혼자는 싫다.”
덩치 큰 겔록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인다. 몸만 컸지 지능은 애와 다름이 없었다.
프레이는 그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겔록, 그 언데드... 아니, 갈바릭. 그 인간은 네 아버지가 아니야.”
갈바릭은 겔록을 훔쳐다 키웠을 뿐이다. 그를 노예로 삼기 위해, 가족이라는 멍에를 걸고 소처럼 부려먹었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프레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핸슨과 함께 사냥하던 때가 떠올랐다.
잡은 사냥감을 들고 오는 건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행동에서도 느껴지는 부정(父情)이 있었으니까.
반면 갈바릭과 겔록의 관계는 뒤틀려 있다.
“키웠다고 다 아버지는 아니야.”
프레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겔록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 게, 겔록의 아, 아버지는 어디에...”
말을 하다가 멈춘 겔록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프레이를 밀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겔록!”
그가 달리는 방향은 갈바릭이 사라진 쪽이었다.
‘제길...’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겔록의 몸도 어둠 속에 먹혔다. 그는 빠르게 추적 스킬을 이용했다.
갈바릭과 겔록은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발자국을 가지고 있었다. 뒤따라 가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프레이는 겔록을 따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겔록을 돌려보내고 갈 생각이었지만...’
언데드가 자의로 도망갈 리는 없다. 분명 명령을 내린, 사령술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령술사는 높은 확률로 마인과 같이 있을 터.
갈바릭을 추격하면 마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령술사는 갈바릭이 당하는 걸 막으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인이 없더라도 그놈을 붙잡으면 되겠지.’
푸른 발자국 사이에서 큰 걸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프레이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이런 제길...’
지금까지 오면서 겔록과 갈바릭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은 동일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멈춘 지점에서 갈래가 나누어졌다.
‘발가락이 남아 있는 건 겔록의 것일 테고...’
겔록은 신발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바닥에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발가락 없이 끝이 둥글게 난 발자국은 갈바릭의 것이리라
겔록은 무작정 달린 모양이었다. 갈바릭의 발자국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젠장...’
프레이는 갈등했다.
겔록을 쫓아 무사히 돌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갈바릭을 쫓을 것인가.
우웅-
나침반이 미친 듯이 떨린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나침반을 꺼냈다.
마치 갈림길에 왔다는 걸 알리듯, 나침반의 바늘은 양쪽을 향해 몸을 뻗는다.
겔록이 간 방향은 짧은 바늘이, 갈바릭이 이동한 쪽에는 긴 바늘이 가리키고 있었다.
‘제길...’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97%)]
[초급 단검술 Lv9 (27%)]
[초급 격투술 Lv1 (52%)]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5 (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