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40화 (140/141)

<-- 30. 사냥감의 반격 -->

프레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버린 건가...’

어둠에 적응한 눈은 윤곽으로나마 사물을 구별할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르듯 솟아오른 나무들 중에서 팀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심하게 대했나...’

혼자서 걸으며, 찬 밤바람을 맞으며 머리가 식었다. 애꿎은 팀버에게 화풀이를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프레이는 기분이 착잡했다.

‘아니... 처음부터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마인이 이 숲속에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팀버를 길잡이로 삼아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팀버는 연약했고, 길잡이로도 쓰기 어려웠다.

‘함정에서 구해준 건 고맙지만...’

만약 팀버가 없었다면, 프레이는 그대로 좀비 사냥꾼에게 발각되어 사망했을 것이다. 한 번 당한 이상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이미 지난 일인데...’

프레이는 마음을 먹었다. 길잡이는 나침반으로 대신하고, 함정은 주의하면 될 것이라고.

실제로는 팀버의 도움으로 목숨을 2번이나 빚졌지만 그는 사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음?’

우웅-

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프레이는 나침반을 꺼내 확인했다.

‘뭐지?’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이 동시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혹시...?’

팀버가 오다가 방향이 엇갈린 건 아닐까? 도중에 놈들과 맞닥뜨린 건 아닐까?

프레이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였다. 물론 함정이 있을까 경계를 해야 했기에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함정을 피하는 데 활용한 스킨은 바로 추적이었다. 숲에 사는 짐승들의 발자국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면 이동 경로가 표시된다.

‘여기 하나 있군.’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이어진다. 그중 발자국이 끊긴 곳이 있었다. 분명 함정에 걸려 위로 솟구친 것이리라.

프레이는 그런 식으로 함정의 흔적을 발견하고, 안전해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숲으로 나아가기를 잠시, 프레이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저건...?’

코끝으로 느껴지는 악취는 좀비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보였다.

처음에는 윤곽만 보였기에, 일반적인 나무라 생각했다. 조금 더 다가가자 그것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바싹 마른 엘드리안이 묶여 있다. 팀버와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큰 엘드리안들을 마치 엮어서 세운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엘드리안의 벌어진 옹이구멍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인간의 표정과 같았다.

까맣게 변색된 껍질은 마치 화형이라도 시킨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그 기괴한 모습에 프레이는 소름이 돋았다.

‘사냥꾼은...’

나침반을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나 바늘은 죽은 엘드리안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프레이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좀비 사냥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침반이 이상한 건가?’

그는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기척이 느껴지리라.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결국 프레이는 엘드리안의 사체로 다가갔다.

‘도대체...’

프레이는 고개를 올렸다.

엘드리안의 사체들은 마치 연리목처럼 서로에게 이어져 있었다. 윤곽만 본다면 일종의 작은 탑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좀비 사냥꾼 혹은 마인은 의도적으로 이런 짓을 벌였으리라.

‘마인이 왜 엘드리안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프레이는 일단 검을 꺼내 들었다.

이들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이것이 있는 한 나침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편히 잠들기를.’

프레이는 힘껏 허리를 비틀었다. 단번에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는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이 박혔다.

그 순간.

끼아아아아-!

사체의 옹이구멍이 크게 벌어지며,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비명이 귀를 때렸다.

“크악...!”

프레이는 그 굉음에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머리가 울리고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구토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는 간신히 참았다.

‘이건 또 무슨...!’

프레이는 비틀거리며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가장 먼저 본 것은 그가 만들어 놓은 사체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검은 진액이었다.

사체의 틈 사이에서 흘러나온 불길한 액체는 점차 땅으로 스며들었다.

퍼석- 퍼석-

‘젠장...’

메마른 땅이 들썩이면서 더 심한 악취가 느껴졌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검을 들었다.

주변 곳곳에 구멍이 생기고 그 틈으로 죽은 짐승을 비롯해 언데드가 일어났다. 프레이는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놈들을 공격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역병에 걸린 늑대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메시지는 어지러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프레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머리를 들이미는 언데드를 족족 내려쳤다.

그러나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다. 해골병사들과 가죽만 간신히 걸친 듯한 짐승들이 그를 포위했다.

“움직이는 숲이라더니... 움직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움직이는군.”

프레이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중얼거리며 달렸다.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사방에서 공격을 당할 테니까.

가장 만만한 해골병사를 노렸다. 이퀄라이저 특성상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가장 강한 적의 스테이터스를 가져온다.

그러나 숫자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일단 약한 적들을 상대해서 숫자를 줄일 생각이었다.

프레이가 다가오자 멀쩡한 부분보다 녹슨 부분이 더 많은 검을 들었다. 방어는 포기하고 반격을 할 셈인지 곧장 검을 내리친다.

‘쯧...’

가소로웠다. 켈라디움으로 만든 검을 상대로 저런 부실한 장비라니.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빈틈을 노릴 필요도 없었다.

캉- 콰득-

짧은 쇳소리와 동시에 검이 반 토막 나고 그 뒤에 관자놀이가지 박살 냈다.

‘하나.’

처리한 놈은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의 뒤에서 늑대들이 구더기가 섞인 액체를 흘리며 달려온다.

그 전에 최대한 주변을 정리해야 했다.

프레이는 잔상을 따라 움직이며 주변 일대의 해골병사를 모두 파쇄 했다. 그리고 곧장 돌아서서 덤벼드는 늑대를 장갑으로 후려쳤다.

파삭-!

은장갑과 부딪힌 늑대의 피부에 불꽃이 튀며 주위를 밝혔다. 얻어맞은 늑대는 옆으로 고꾸라졌다.

바로 뒤에 다른 늑대 무리가 덤벼들었다. 프레이는 잔상 사이에 주먹을 휘두르는 동작이 있음을 깨달았다.

‘격투술 때문인가?’

아무래도 검술과 격투술이 상호 호환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놈의 턱을 검으로 올려쳤다. 엎어치기를 하듯 뒤로 넘기며 등을 보인다.

절호의 기회라는 듯 뒤 따라 오는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덤빈다. 역병에 걸린 놈인지라 한번 물리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고통을 겪을 터였다.

그러나 프레이는 이미 잔상으로 놈의 움직임을 읽어냈다. 빠르게 몸을 돌려 놈의 머리를 손등으로 쳐낸다. 그와 동시에 미리 충전한 마나핑거를 겨눈다.

‘터져라!’

옆으로 날아가는 놈을 향해 조준한 마나탄이 쏘아진다. 늑대의 썩은 몸통에 정통으로 마나탄이 박힌다.

썩은 피부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터지며 내장을 대지에 흩뿌린다.

만약 살아있는 놈들이라면 동족의 최후에 겁을 먹고 달아났겠지만, 되살아난 늑대들에게는 오로지 살의만 남아 있었다.

남은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러나 최후는 똑같았다.

찌르고, 베고, 치고, 부순다.

단순한 동작이며, 그동안 해왔던 일이다.

프레이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늑대는 다시 안식을 얻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정리는 금방 끝났다.

“후우...”

프레이는 더 움직이는 놈들이 없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진액은 더 나오지 않았다.

‘완전히 베어내야겠어.’

어차피 없애 버릴 생각이었지만, 프레이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팍- 팍- 팍-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엘드리안의 상처가 깊어진다. 나무 파편이 튀기고 끈적한 액체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다행히 되살아나는 언데드는 없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을 투자하자 썩은 엘드리안의 허리가 완전히 잘려 넘어졌다.

‘된 건가?’

프레이는 다시 나침반을 꺼내 확인했다. 바늘이 다른 곳을 가리킨다.

그는 다시 발을 옮겼다.

* * *

[태초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태초를 목격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나는 현재 신으로 알려진, 그러니까 여러 종족들이 믿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를 연구하기로 했다. 각 신도들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물론 그들이 한 이야기는 여기에 적지 않겠다. 괜히 이 연구의 내용을 늘리고 싶지는 않으니.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 중 누구도 똑같은 태초를 이야기하는 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난해하군...

베네피스는 인상을 쓰며 아공간에서 꺼내온 낡은 서책을 넘겼다. 선조, 켈라인이 남긴 신에 대한 연구서.

그가 당한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모르템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앞뒤 문맥 없이 모르템에 대한 부분만 읽는 건 불가능했다.

‘선조도 참 괴짜셨단 말이지...’

베네피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연합 내에서 괴짜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켈라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여러 일화가 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연구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는 것.

‘연구가 누출되는 걸 걱정하신 것인지...’

베네피스는 고개를 저었다.

‘5번 만에 다 읽어야 하는 책이라니...’

책이 덮이는 순간 페이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자신이 읽던 부분, 혹은 뒷부분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쉴 수 있는 부분이 딱 5곳 존재했다.

생명과 태양의 신 솔리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의 신 이그니스, 바다와 물의 신 리퀴두스, 그리고 지금은 문서에만 남아있는 대지의 신 페트람, 마지막으로 죽음의 신 모르템까지.

각 신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는 초입 부분에서만 연구서를 덮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각 분량이 방대하여 시간이 더 필요할 듯싶었다.

[그렇다면 신은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거나, 혹은 그 신도들에게 이야기가 전부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나는 전자가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믿는 신은 우리를 위하는 신이다. 그들은 언제나 은총을 내려주고 기도에 응답한다. 그런 이들이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을 남겨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그 미지의 영역을 신경도 안 쓰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으나, 그런 자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즉, 알 수 없다는 것은 곧 고통이며 고통은 신이 신도에게 내려줄 것이 아니다. 신도를 고통스럽게 하는 신을 우리는 왜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신이 아니라 신을 사칭하는 악일지니.]

‘웃...!’

베네피스는 책장을 넘기다 역류하는 검은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빠르게 마나를 제어해 날뛰는 기운을 다시 억눌렀다.

‘이거... 거슬리는군...’

그는 슬쩍 눈을 돌려 검게 변색된 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바라보다 덮었다.

어차피 초입부라 덮어도 미련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푸르른 녹음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는 풍경에 관심이 없었다.

“있는 거 압니다. 장로께서 절 감시하라고 보내셨겠지요.”

베네피스의 말에 숨어있던 4명의 제자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결국 4제자 중 서열이 높은 란이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스승님께서는 알려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붉은 도복을 입은 엘프가 나타나자 베네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제가 부탁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약소한 부탁이 있어 말을 건넸습니다.”

“무엇입니까?”

“장로님께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말씀하시지요.”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제자인 자신을 고작 심부름꾼으로 생각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었다.

“오퀸에는 죄인의 마나를 제압하는 구속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좀 빌려주실 수 있을지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흡마석 족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란이 놀라서 물었다. 베네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군요.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음...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란이 경공을 펼치며 사라졌다. 베네피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81%)]

[초급 단검술 Lv9 (27%)]

[초급 격투술 Lv1 (52%)]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5 (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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