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38화 (138/141)

<-- 29. 사냥을 시작하지 -->

팀버의 애원에 다른 일행들도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 저는 봤어요. 다, 다른 엘드리안들은 붙잡은 건 사냥꾼이 아니에요.”

팀버가 벌벌 떨며 말을 내뱉는다.

“사냥꾼이 아니다?”

“역시 모르테미안인가?”

프레이의 설명을 들었던 세이렌이 추측했다. 그러나 팀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건 어, 언데드도 아니었어요.”

“뭐...?”

“처음 보는 괴, 괴물이에요. 누, 눈이 없고... 입이 엄청 큰...”

프레이는 팀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건...!’

더스틴 마을의 최후에서, 어머니와 도망갈 때 만났던 괴물과 생김새가 유사했다. 다시금 그날의 광경을 떠올릴 때, 바이런이 쐐기를 박았다.

“그거... 마인이잖아!?”

“마인이요?”

세이렌이 고개를 돌렸다.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조스가 생겨나고 초반에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죠. 하지만 마인이 어떻게 여기에...”

“마인... 마계의 주민이라는 자들이 아닌가요? 책에서나 본 건데...”

에밀리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팀버는 하나뿐인 팔로 프레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누구에게라도 갔어야 했어요. 하지만... 사냥꾼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프레이, 이건 너무 위험한...”

바이런은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지금것 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명백한 적의와 분노.

‘어머니의 원수가...!’

유저들이 도와주지 않은 건 부차적인 이유였다. 마인의 창에 꿰뚫린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어머니의 가슴을 꿰뚫고, 기쁘다는 듯 웃고 있던 그 괴물의 얼굴은 아직도 악몽에서 나타난다.

유저들에 대한 복수,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 마인이라는 족속들의 씨를 말리고 싶었다.

“형...”

“어, 어?”

“다른 사람들이랑 마을로 돌아가세요.”

“뭐?”

바이런이 놀라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세이렌과 에밀리도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프레이님, 또 혼자서...”

“무슨 말이야? 너는!?”

세이렌이 고개를 저으며 프레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프레이는 매몰차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충격받은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프레이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근데 왜!?”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프레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바이런은 마른 침을 삼켰다.

“프레이, 진정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형, 부탁해요.”

충분히 진정한 상태였다. 프레이의 마음속에서 들끓었던 분노는 차갑게 식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차가운 분노는 곧 냉정한 살의로 변했다. 프레이는 검을 쥐고 일어섰다.

“프레이! 나도...!”

“따라오지 마세요.”

세이렌이 일어나자 프레이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리고 팀버를 붙잡고 몸을 돌렸다.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그대로 굳었다.

자신은 언제나 보호 대상이었다. 다시금 그 현실을 깨달았다.

다른 일행들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프레이는 팀버에게 속삭였다.

“안내해.”

“가, 감사해요.”

팀버는 감사를 표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프레이에게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 *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헤피르 라이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남동생의 무례한 행동에 클램 라이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건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기회라고요?! 도대체 갑자기 왜 제가 우조스 전선으로 향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헤피르의 반박에 베르핀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전선에서 구원군을 요청하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필 제가 가야 한단 말입니까?”

그가 외치며 자리에 모인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헤피르의 눈을 피했다.

베르핀은 슬쩍 눈을 돌렸다.

비어있는 권좌와 그 옆에 자리를 잡은 클램의 모습이 보였다.

“보시다시피 다른 대신들은 모두 노쇠하여 전선은커녕, 침대에서 일어날 수나 있을지 걱정하는 판국 아니겠습니까?”

베르핀의 말에 늙은 신하들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베르핀의 눈을 마주치면 허허롭게 웃을 따름이었다.

“베르핀 대공... 그런 농을 던지실 때가 아닙니다.”

보다 못한 클램이 목소리를 높였다. 베르핀은 살짝 목을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분위기가 너무 굳은 것 같아 농을 던진 것인데...”

베르핀은 다시 고개를 돌려 헤피르를 바라보았다.

“전선에서 리반 경이 다급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다른 대신들은 국정을 다루어야 하는바, 그대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여 내가 추천했습니다.”

“대공...! 그런 얄팍한 설명이...!”

헤피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분명 정치적인 수작질이었다. 지금 자신이 떠난다면 황궁 내 정통파의 입지가 흔들린다.

“대신들이 심사숙고하여 황제께 올린 청입니다. 폐하께서도 우리의 판단을 존중해주셨지요.”

“황제폐하께서요...?!”

클램이 놀라서 물었다. 베르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여기, 황제께서 친히 서명하신 명령서가 있습니다.”

베르핀은 단을 올라 클램에게 명령서를 전달했다.

이쯤 되니 당황한 건 헤피르였다. 자칫 잘못하면 황제의 명을 거역한 모양새가 되었으니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누이를 바라보았다. 클램은 명령서를 읽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큭...!”

헤피르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반박하는 건 곧 황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니 중대한 범죄였다.

“그럼 이 안건에 대해서는 해결된 것으로 알고... 조속히 준비를 부탁합니다.”

베르핀이 웃으며 돌아보았다. 헤피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몸을 돌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 외에 모든 안건이 처리되고 대신들이 흩어졌다. 베르핀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황성을 나와 사저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제트람을 고문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가장 깊숙한 곳, 비어있는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간 베르핀은 벽면을 더듬었다.

달칵- 드륵-

벽돌 하나가 밀려 들어가며 소리를 냈고, 동시에 숨겨진 문이 열렸다.

“만족스러운 성과인 것 같군요.”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둠에 먹힌 것처럼 목소리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베르핀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대단한 솜씨야. 그 암캐가 전혀 눈치도 못 채더군.”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재주에 불과합니다.”

베르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클램에게 건넨 명령서에 적혀 있는 서명은 위조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정통파 쪽 귀족들은 바쁘게 움직이게 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변방으로 밀어내고, 황성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헤피르 라이언까지 쫓아냈다.

“황제의 상태는?”

“의식불명으로만 만들어 두었습니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좋아, 하지만 서둘러 주게. 데일이 돌아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 모르니...”

베르핀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목소리는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십시오. 적어도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준비가 끝날 것입니다.”

“알았네. 그럼...”

“오늘도 보고 가실 겁니까?”

베르핀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목소리의 주인도 더 묻지 않았다. 그가 장치를 조작하자 내부의 발광석이 밝혀졌다.

마치 기둥처럼, 거대한 유리관이 세워져 있었다.

꾸르륵-

유리관 안쪽은 먹물처럼 검은 용액으로 채워져 있었다. 베르핀은 천천히 다가가 유리관을 어루만졌다.

“조금 더 자세히 보여주게.”

“알겠습니다.”

꾸르륵-

거품 소리와 함께 유리관 안에서 무언가가 드러났다. 안을 채우고 있는 용액과 상반될 정도로 새하얀 나신.

헐벗은 여성은 의식을 잃은 듯 유리관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베르핀은 모든 정신을 그녀에게 쏟은 듯,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온화한 미소와 달리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황제의 자리도, 너도, 그리고 이 제국까지. 모두가 나의 것이 될 테니까.”

그렇게 잠시, 곧 발광석이 빛을 잃었다. 유리관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아시다시피...”

“아아, 알고 있네.”

베르핀은 차가운 유리의 촉감을 느끼다가 몸을 돌렸다.

“신성교단 쪽에 들키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목소리가 단언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베르핀은 들어왔던 입구로 가며 입을 열었다.

비밀 문이 다시 열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기 전 말을 마쳤다.

“모르테미안과 같이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예,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베르핀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 * *

“재생력이 대단하네.”

“아... 숲에 돌아와서 그런 것 같아요.”

프레이의 말에 팀버가 쑥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팀버의 팔은 벌써 팔꿈치까지 자라나 있었다.

“그 괴물에 대해 아는 걸 알려줘.”

프레이의 말에 멈칫한 팀버는 곧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건 많지 않아요. 저보다 큰 엘드리안들에 가려서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사소한 거라도 괜찮아.”

프레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팀버로서도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악몽에 시달렸던 프레이는 조금이나마 팀버의 마음을 이해했다. 시간을 충분히 주고, 대답을 다그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사냥꾼들을 피해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다행히 숲은 넓었으니까...”

팀버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프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마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토를 달지도 않았다.

“큰 엘드리안이 먼저 앞장섰어요. 저 같은 작은 엘드리안은 쉽게 잡히니까요. 처음에는 순조로웠어요. 사냥꾼이 설치한 덫도 큰 엘드리안에게는 소용이 없었으니까.”

“그랬군...”

“물론 사냥꾼들이 많이 올 때에는 잡히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죠. 사냥꾼들도 우리들 중 하나를 잡으면 무리해서 쫓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조금씩 숫자가 줄었죠.”

프레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을 만난 건... 숲의 북쪽 끝자락이었어요. 숲 너머로 산이 있어 그곳을 넘으려 했는데...”

“건너지 못한 건가...”

“네... 그 괴물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먼저 붙잡힌 엘드리안이 순식간에 말라버렸어요. 그리고 괴물은 썩은 엘드리안에게서 구슬을 꺼냈어요.”

“구슬?”

프레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맞아요. 괴물은 그 구슬을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품에 넣었어요. 그리고 그 일을 반복했어요. 덕분에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도망쳐야했어요.”

“음...”

“그런데... 사냥꾼들도 점점 올라오고 있었어요. 우리는 어떻게 죽을지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았죠. 산채로 뜯기는 쪽이 나을까? 아니면 바싹 말라서 구슬이 되는 쪽이 좋을까?”

팀버는 우울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요...”

“왜 스스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프레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나 오히려 팀버는 프레이에게 물었다.

“왜 싸워야 하는 거예요?”

“너를 죽이려고 하잖아?”

“하지만... 나도 아프듯이 다른 존재들도 아프잖아요.”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프레이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팀버의 옹이구멍이 옆으로 벌어졌다.

“우리는 쉽게 재생해요. 그러니까 참을 수 있어요.”

이것 보라는 듯 팔을 흔든다. 숲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회복이 빨라지는 걸까?

이미 팀버의 팔은 손목까지 자라났다.

‘작은 엘드리안이라 그런가...’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난 어떻게 구해준 거야?”

“네? 어...”

팀버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것 같았다.

프레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러한 행동은 조금 전의 팀버가 한 말과 상반된다.

“설마... 언데드는 고통을 못 느껴서 그런 건가?”

“어... 그런 걸까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프레이는 팀버에게 눈을 흘겼다. 당사자가 모른다는 데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예 싸움 자체를 못 하는 건 아닌가...’

그가 생각에 빠져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촤아악-!

“웃...!”

갑자기 시야가 뒤집어지며 몸이 솟구쳤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더, 덫이에요!”

“나도 알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프레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팀버는 굵은 나무에 매인 밧줄을 풀기 위해 다가갔다.

문제는 한쪽 팔로는 밧줄을 풀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내 검을 써!”

프레이는 자신의 발목을 휘감은 밧줄을 풀려 했지만 자세가 불편해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 하지만...!”

팀버는 무섭다는 듯 떨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무기라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듯했다.

프레이가 재차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였다.

우우웅-

떨림이 느껴졌다.

프레이는 인벤토리를 바라보았다. 몸을 들어 인벤토리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이런 제길...!”

짧은 바늘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것도 360도로.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4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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