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사냥을 시작하지 -->
프레이는 땔감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으러 숲으로 들어갔다.
‘으음... 마땅한 게 없네.’
간간이 보이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웠지만 양은 그리 많이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하나...’
슬쩍 돌아보니 나무들 사이로 모닥불이 보였다. 아직 멀지 않았으니 조금 더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닥을 살피며 들어가기를 잠시, 그의 허리춤에 알 수 없는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인벤토리에서 느껴지는 진동.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당황한 프레이는 얼른 인벤토리를 열었다.
‘뭐가...’
솔리스의 나침반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프레이는 얼른 나침반을 꺼내 살폈다. 혹시 나침반이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닐까 해서였다.
‘이건?’
긴 바늘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마치 살아 움직이듯,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 좌우로 연신 움직였다.
‘어, 어떻게 된 거야?’
프레이가 당황하는 사이 흔들리는 좌우의 간격이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떨림 자체는 점점 더 강해졌다.
“저기다!”
“다 몰았어!”
성난 외침이 들렸다. 프레이는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냥꾼들인가?’
고개를 돌렸다. 빛이 없어 숲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검은 나무들 사이로 모닥불이 점처럼 보였다.
‘돌아가야...’
나침반을 들킬 수는 없었다. 놈들이 쫓고 있는 건 분명 엘드리안이리라.
그러나 프레이가 엘드리안을 구할 의무는 없었다. 그가 받은 의뢰는 어디까지나 상황 보고일 뿐, 구출하라는 의뢰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돌아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일행들에게로 돌아가려 했다.
문제는 그보다 쫓기던 엘드리안이 그를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아... 아아...!”
허겁지겁 달려오던 엘드리안이 발을 멈추었다. 프레이를 사냥꾼으로 오인한 것일까.
돌아서는 것도, 엘드리안 쪽을 막고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프레이는 발을 멈추었다.
휘리릭-
“잡았다!”
그와 동시에 엘드리안의 발이 묶이며 앞으로 넘어진다. 프레이는 그 도구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이른바 ‘볼라’라는 이름으로 튼튼한 밧줄 양쪽에 무거운 추를 달아 단번에 다리를 얽매는 사냥도구.
프레이가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아버지가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후아, 어린놈이 참 재빠르...”
“이제야 한 건 했... 누구야?”
곧 뒤이어 사냥꾼 2명이 도착했다.
둘 다 빼빼 마르고 얼굴이 모난 게 외모만 봐도 성질이 더러워 보였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얼굴에는 흙먼지로 더럽혀 있었으며, 입고 있는 가죽옷은 흠집이 가득했다.
시야 확보를 위해서인지 허리춤에 발광석을 매달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엎어진 엘드리안을 곧바로 짓눌렀고, 다른 하나는 발광석을 들어 프레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누구요? 동종업계 사람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게다가 곱상하게 생긴 게 영...”
프레이의 얼굴을 확인한 사냥꾼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 살려 주세요...!”
“어허, 조용히 있어!”
바닥에 엎드린 엘드리안이 몸부림치자 사냥꾼이 재차 억눌렀다. 공포에 바들바들 몸을 떠는 모습에 프레이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소? 벙어리인가?”
“아니, 아닙니다.”
프레이는 불쾌함을 감추고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찌푸려지는 눈살은 막을 수 없었다.
“뭐, 같은 사냥꾼이라도 상관없지. 이놈은 우리가 잡은 거니까.”
“어휴, 요즘에는 이런 작은 놈들도 찾기가 힘들어. 그쪽도 한 몫 챙기러 온 거면 마음 단단히 먹으쇼.”
사냥꾼이 엘드리안의 손목을 단단히 묶는다.
“거 당신도 조심하쇼. 요즘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냥꾼들이 늘고 있어서, 몇몇 놈들은 엘드리안에 손에 잡혔다는 소문도 있소.”
“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겁에 질린 엘드리안이 앳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마치 인간의 것과 같아 프레이는 소름이 돋았다.
“그래, 솔직히 이런 놈들이 반항이나 할 줄 알겠어?”
“사냥감들은 도망가는 게 일이야. 안 그려?”
사냥꾼들이 다시 낄낄거린다. 그 사이 손목의 결박을 마치고 다리에 묶인 볼라를 풀어준다.
엘드리안은 그때까지도 반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숲의 엘드리안과 다른 건가...’
사냥꾼이 엘드리안을 일으켰다. 엘드리안의 옹이구멍이 빠르게 움직인다.
“우, 우리는 조용히 숲에서 살고 있었다고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듯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그저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
“일이야 우리가 다 하니까. 너는 그저 얌전히, 응? 봉사만 하면 돼. 마법사님께서 널 살살 요리해주실 거다.”
엘드리안을 놀리는 게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는 꼴에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어머니시여...”
옹이구멍이 수축하며 오그라든다. 마치 동공이 축소되는 것만 같다.
그러나 프레이는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사냥꾼들과 맞서 싸워서 얻을 건 없었다.
엘드리안이 불쌍하다고 구해줄 수는 없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한때 사냥꾼이었다. 그랬던 그가 저 사냥꾼들로부터 사냥감을 빼앗을 자격이 있을까?
그동안 그와 그의 가족이 잡아 왔던 사냥감들은 무슨 죄로 잡혔단 말인가?
지금 저 사냥꾼들을 막는 건, 자신과 아버지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가는 거요?”
“냅둬. 거 사냥하려면 부지런해야 해. 우리처럼 말이야. 저렇게 깨끗한 얼굴로 있으면 놈들이 멀리서 보고 도망간다니까.”
사냥꾼들이 뒤에서 소곤거리지만, 고요한 숲이었기에 전부 들렸다. 프레이는 묵묵히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간 걸어 다시 어두운 숲으로 몸이 녹아들 때쯤이었다.
“누구야?!”
“오늘따라 동종업자들을 많이 만나는 고만.”
고요를 깨고 사냥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 무슨 짓이야?”
“잠깐! 이건 우리가 잡은 거라고!”
사냥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비릿한 냄새와 악취가 느껴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자세를 낮추고 다시 그들이 있던 곳으로 움직였다.
“크아아악!”
“페돈! 도... 도대체 워, 원하는 게 뭐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상대방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콰득-
“끄억...!”
파육음과 함께 낮은 비명이 들렸다.
‘저건...!?’
사냥꾼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다. 발광석으로 비춰진 곳은 한정되어 살인자들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시체로 놈들이 다가왔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놈들이었다.
숫자는 총 셋.
‘뭘 하려는 거지?’
그들 중 하나가 시체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무엇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어깨가 들썩인다.
다른 2명은 엘드리안에게 다가왔다.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 때문이었을까.
엘드리안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벌어져 있던 옹이구멍도 닫혀 있었다.
‘기절이라도 한 건가?’
엘드리안이 기절을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엘드리안을 가로채려는 건가?’
이제는 주검이 되어버린 저들이 한 말에 따르면, 엘드리안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사냥감을 노리는 자들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놈들은 동족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돈에 눈이 먼 작자들일 터.
만약 자신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목격자를 살려둘 리 없었다. 불필요한 전투는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프레이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우웅-
진동과 함께 그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프레이는 떨리는 인벤토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다급하게 나침반을 꺼냈다. 이번에는 긴 바늘뿐만 아니라 짧은 바늘까지 파르르 떨린다.
바늘이 가리키는 건 명확했다. 나침반은 쓰러진 엘드리안과 저들을 향하고 있다.
크르륵-
‘뭣...’
들려오는 소리에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검을 들었다.
콰드득-
그가 숨어있던 나무를 꿰뚫고 화살촉이 튀어나온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부패한 엘드리안 사냥꾼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특성이 발현되며 밝혀진 적의 정체.
프레이는 눈을 크게 뜨며 로브 사이로 보이는 놈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언데드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잇몸이 보이는 얼굴, 가죽 갑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썩어버린 상처, 그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와 느껴지는 살의.
‘언데드가 어떻게...?’
프레이가 놀라는 사이 좀비가 되어버린 사냥꾼이 석궁을 장전했다. 엘드리안을 향해 다가가던 놈들은 곧바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제길...!”
특성으로 알게 된 놈들의 스탯은 만만치 않았다. 일반적인 좀비를 상대할 때와 달리 몸이 무겁지도 않았다.
‘일단 처리하고 생각하자!’
검은 로브를 휘날리며 놈들이 다가왔다. 프레이는 석궁을 든 놈을 향해 뛰었다.
언데드인 놈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칫 상대하는 언데드의 몸을 뚫고 석궁 화살이 날아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무를 꿰뚫을 정도의 관통력이니 미리 석궁부터 처리하는 쪽이 옳다고 판단했다.
쏴아악-
달려드는 프레이를 향해 화살이 날아간다.
‘믿습니다!’
곧바로 나타난 잔상을 따라 프레이는 팔을 들었다. 볼크가 만들어준 장갑을 믿었으니까.
캉-!
쇳소리와 함께 화살이 튕겨 나간다. 프레이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프긴 아프네...!’
얼얼한 팔목을 내리고 검을 내질렀다. 석궁은 재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무기였기에 놈은 무방비 상태였다.
놈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지만 켈라디움으로 만들어진 검은 그대로 팔을 꿰뚫었다.
썩은 살을 찢고 뼈를 가르며 검이 관통하고, 그 뒤에 가슴까지 박혀 든다.
놈이 뒤로 주춤거리며 밀려난다. 프레이는 얼얼한 왼팔을 들어 놈의 턱을 후려쳤다.
장갑의 은도금 때문인지 턱에 불꽃이 튀긴다. 프레이는 그대로 놈의 허리를 밀쳐내며 검을 빼냈다.
‘뒤...!’
바람을 가르며 단도가 날아든다. 프레이는 옆으로 몸을 비틀며 검을 피하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손등으로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불꽃이 튀기며 놈이 고꾸라진다. 하지만 쓰러진 놈을 처리할 시간은 없었다. 또 다른 놈이 횡으로 단도를 휘둘렀다.
“큭!”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아냈다. 간신히 막아낸 덕에 단도가 옆구리에 박히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은 사슬갑옷을 강타했고, 프레이는 옆구리에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단도를 쳐내고 놈을 걷어찼다. 그리고 돌아서서 일어나려는 놈의 뒤통수에 검을 내리꽂았다.
‘나머지 둘...!’
석궁을 들었던 놈이 일어서며 단도를 꺼냈다. 하지만 프레이는 그보다 앞서 놈의 손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단도와 함께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프레이는 어깨로 놈을 밀치고 곧바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목뼈가 절단되며 머리와 몸이 분리된다. 떨어진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 엘드리안 옆에서 멈춘다.
‘마지막...!’
프레이가 몸을 돌리자 놈이 달려든다. 질세라 그도 달려갔다.
그의 머리를 쪼개려는 듯 높이 단도를 치켜든다. 프레이는 검을 올려쳐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엇...!?’
갑작스럽게 다리가 엉키며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다행히 놈의 단도도 빗나갔지만 프레이는 놈의 앞으로 쓰러졌다.
놀란 프레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런...!’
그의 다리에 밧줄이 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 발목 옆에 놓인 무게추.
프레이는 볼라에 붙잡혔다. 그리고 누가 볼라를 던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언데드가 된 건가!’
볼라를 던진 사냥꾼이 천천히 다가왔다. 분명 가장 먼저 죽은 사냥꾼이었으리라.
그와 동시에 몸에 석궁 화살이 박힌 사냥꾼도 일어났다.
‘제길...!’
적의 숫자는 다시 셋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프레이의 머리 위에 있던 놈이 단도를 높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32%)]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