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사냥을 시작하지 -->
페이완의 진지한 얼굴에 베네피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예. 제가 꽤 강한 편이라, 모르테미안이 되면 꽤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그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페이완 장로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농을 던질 정도면 걱정은 없겠소.”
“네. 일단 그 동굴을 빌릴까 합니다. 거기서 이걸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볼까 합니다.”
“알겠소. 이미 그곳 주변에는 접근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오.”
페이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물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은 어디서 알아낼 것이오? 모르템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신이거늘...”
“저도 남들이 아는 만큼만 압니다. 하지만 제 선조께서는 다르죠. 선대로부터 전해져 오던 연구서가 있습니다.”
“연구서라?”
“예, 신에 관한 연구를 하셨었죠. 물론 마무리를 짓지 못하셨습니다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일이라...”
베네피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언젠가 그 연구를 이어받아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진득하게 해볼 요량이었는데 말이죠.”
“하여간 그대들, 마법사라는 자들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구려. 몸이 그렇게 됐는데도 온통 연구 생각이라니...”
페이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시오. 오퀸에 또 다른 검은 피를 흘리고 싶지는 않으니.”
“감사합니다. 장로님.”
베네피스는 웃으며 한 손으로 주먹을,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 주먹을 감싸며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페이완은 그가 엘프의 인사법으로 인사를 하자, 곧 진지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비록 장난스러운 태도로 대화했지만, 자부심이 높은 그가 다른 종족의 예법을 따라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낮출 준비가 됐다는 걸 의미했기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소.”
베네피스가 창밖으로 사라졌다. 페이완 장로는 잠시 창을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란, 진, 카, 민.”
“예!”
장로의 부름에 자리를 비웠던 그의 제자들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한 몸이라도 된 듯 일시에 대답하며 무릎을 꿇었다.
“사정은 밝힐 수 없지만...”
페이완 장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베네피스가 나선 창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하는 장소를 교대로 감시하여라. 수상한 기미가 보이는 즉시 내게 보고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붉은 도복을 입은 엘프가 대표로 대답을 했다. 그와 동시에 4명의 엘프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페이완 장로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엘프가 다시 대륙으로 가야 할 때가 온 걸지도 모르겠군...’
* * *
시야가 천천히 돌아온다.
짠내가 서린 바다 바람이 코를 스친다.
프레이는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으...”
“어우...”
바이런과 세이렌이 인상을 쓰며 무릎을 부여잡고 허리를 숙였다.
“다들 괜찮으세요?”
에밀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었다. 프레이는 그런 그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다른 이들을 챙겼다.
그라고 속이 괜찮은 건 아니었다. 장거리 순간이동 때문인지 속이 메슥거리고 안에 있는 걸 게워내고 싶었다.
다행히 토악질은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이 그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프레이는 바이런과 세이렌의 등을 두드려 주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마법지부 공식 인증, 순간이동 전문점의 사츠입니다. 이동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매우 사무적인 어투, 프레이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용했던 곳이었다.
그는 프레이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으니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 네. 속이 좀 안 좋은 것 빼고는...”
사츠는 슬쩍 그들을 훑어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멀리서 오셨군요.”
“아, 네.”
“고생하셨습니다. 장거리 순간이동의 부작용은 금방 사라지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이제 자리를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다른 손님들도 기다리셔서...”
“실례했습니다.”
사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에 프레이는 일행들을 데리고 빠르게 광장으로 나왔다.
“어후... 죽겠네.”
“으... 불편해... 저 여자는 왜 멀쩡한 거야?”
바이런이 주저앉고 세이렌은 에밀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저야, 어릴 때부터 마나를 접했으니까요. 그만큼 익숙해진 거죠. 장거리 순간이동쯤이야...”
약간의 우월감이 엿보이는 미소와 함께 그녀가 대답했다.
“잠깐 쉬었다가 신성제국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보죠.”
“어우... 야, 어차피 일 찾아야 해. 5골드 밖에 없는데.”
프레이의 말에 바이런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5골드로는 신성제국까지 무리일까요?”
“음... 뭐 최대한 안 먹고 안 씻고 그러면 어떻게든 가겠지. 배도 타고 바다 건너서... 근데 4명이라 말은 2마리 빌려서 나눠 타고 가야 할걸? 아닌가?”
바이런이 손을 꼽으며 셈을 하다가 머리를 헝클었다.
“으... 아무리 그래도 안 씻는 건 좀...”
“황족인 내가 가만히 있는데 왜 유난이야...”
에밀리가 미간을 찌푸리자 세이렌이 중얼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프레이는 또 둘이 말싸움을 할까 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련하고 가죠. 형은 항구 쪽으로 가서 배편을 알아봐 주세요. 저는 조합을 돌아보면서 일자리를 찾아볼게요.”
“그래. 최대한 흥정해서 싸게 가는 편으로 알아보마.”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는?”
“저는요?”
두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프레이는 별달리 생각해둔 바가 없었기에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일자리.”
“마찬가지입니다.”
두 여자의 대답에 바이런은 슬쩍 프레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결 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고생해라. 해가 지면 저 사츠라는 마법사 가게 앞으로 다시 모이자고.”
“네.”
바이런이 손을 흔들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 가볼까요.”
프레이는 곧바로 사람들을 헤치며 빠져나갔다. 조합 건물이 몰려 있는 거리로 들어서자 인파는 더욱 많아졌다.
‘정말 많군...’
프레이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두 여자는 서로를 힐끗힐끗 곁눈질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잘 따라오세요.”
“알았어.”
세이렌이 프레이의 소매를 잡았다. 살짝 상기된 그녀의 표정에 프레이는 왠지 부끄러워져 눈을 돌렸다.
그러나 곧 반대쪽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자, 그는 흠칫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잘 붙잡고 갈 테니까 놓지 마세요.”
에밀리가 웃으며 말했다. 세이렌이 그 꼴을 보고 있을 리 없었다.
그녀도 빠르게 프레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 에밀리를 노려보았다.
“그, 그럼 갈게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인파를 벗어나면 이 곤란한 상황도 해결되리라.
프레이는 가장 먼저 전사 조합 건물로 향했다. 그러나 대기하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이거 기다리다가 날이 다 가겠네...’
“자자, 대기표 받아가세요. 번호 3번 불렀는데 없으면 다음 번호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조합측도 그 상황을 알고 있는 듯 앞에서 대기표를 배부하고 있었다. 프레이는 대기표를 받아들고 건물을 나왔다.
“그런데 여기는 마법지부가 없네?”
“아, 따로 지부라고 할 게 없어요. 마법사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서죠. 관리하는 조직은 있긴 하지만.”
에밀리의 대답에 프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공식 인증을 하는 거지?’
물론 돈과 관련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걸 굳이 에밀리 앞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연합의 주축인 베네피스가 그녀의 아버지니, 왠지 딸 앞에서 아버지를 욕하는 모양새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프레이는 옆에 떨어진 상인 조합 건물로 들어갔다. 전사 조합 건물과 다르게 인원수가 적었다.
“금방 순서가 돌아올 것 같아요. 기다리죠.”
“알았어.”
프레이가 대기석에 앉자 세이렌이 얼른 그의 옆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에밀리는 다소곳한 자세로 앉았다.
‘불편하다...’
다른 유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세이렌은 외모 자체로 육체적인 매력을 과시하였고, 에밀리는 그녀와 반대로 청순한 매력을 뽐낸다. 그런 여자를 양쪽에 끼고 있으니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빨리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프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그의 바람은 금방 이루어졌다.
“들어오십시오.”
프레이는 곧장 일어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외눈 안경은 상인 조합 직원의 필수조건인 것일까. 프레이는 외눈 안경을 쓴 남자의 앞에 앉았다.
“의뢰를 구하려고 합니다.”
“의뢰라...”
직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프레이를 훑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사냥꾼입니까?”
프레이는 흠칫 놀랐다. 한눈에 자신의 옛 직업을 파악하다니, 그만큼 안목이 있는 걸까?
“네?”
덕분에 놀라서 되물었다. 직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엘드리안 사냥꾼이요.”
“아... 아닙니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사냥꾼이라는 의미가 엘레타스에서는 엘드리안을 사냥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흠... 혹시 솔리스를 부정하십니까?”
직원은 조금 프레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갑자기 솔리스는 왜...?’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가 온 곳은 상인조합이지, 교회가 아니니까.
“그게 의뢰와 관련이 있습니까?”
“음... 이번에 받은 의뢰가 신성교단 쪽에서 나온 것이라서 말입니다. 상부에서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몰라도 여기는 신성교단이 의뢰를 독점하고 있어서요.”
“독점이요?”
“네. 엘드리안과 관련된 일인지라, 반(反) 솔리스 교도라거나 사냥꾼에게 일을 줬다가는 제 목이 날아갈 판입니다.”
“어... 근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않나요?”
뒤에서 듣고 있던 에밀리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나 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어휴, 처음에야 까다롭게 했죠. 그런데 그렇게 나오니까 사람이 안 옵니다,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 그냥 두루뭉술하게 물어보고, 재량으로 판단해서 의뢰를 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걸릴 게 없네요.”
“그렇습니까?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직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묵은 의뢰 하나를 처리할 생각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신성제국으로 갈 예정이 있습니까?”
“네?”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세이렌이 되물었다. 직원은 그녀의 즉각적인 반응에 웃으며 대답했다.
“있으신가 보군요. 가장 보수가 좋은 의뢰가 교단에 직접 보고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아무래도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니... 아, 물론 여비는 교단 측에서 지원해줍니다.”
프레이는 놀라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이게 왠 횡재냐는 눈빛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입니까?”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도시 북동부에 숲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움직이는 숲’이라는 곳이지요. 매우 울창한 숲이고, 엘드리안의 주 서식지입니다.”
“그렇군요.”
“신성제국은 엘드리안의 상태를 보고받기를 원합니다. 최근 숲의 규모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으니까요.”
“그게 왜...”
프레이는 말을 멈추었다. 숲의 규모가 감소하는 이유가 곧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엘드리안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군요.”
“네. 아무래도 사냥꾼이 가장 득세하는 곳이 여기니까요. 사냥감이 많은 곳에 사냥꾼이 모이는 거야 당연한 일이죠.”
직원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는 엘드리안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마법연합 때문에 신성제국은 엘레타스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통해 상황을 진단하고, 외교적으로 엘드리안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저희에게 일을 받고 솔리스 교를 가장해 엘드리안을 속이는 사냥꾼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네, 신성제국에서 준 물건이 있습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엘드리안이 쉽게 경계를 풀거든요.”
직원은 안경을 닦으며 말을 멈추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사냥꾼들과 싸우는 겁니까?”
“싸워요? 아휴, 그랬다가는 마법사들도 적으로 돌리는 꼴이 됩니다. 엘드리안이 내놓는 부산물에 마법사들이 얼마나 혈안인데요.”
에밀리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직원은 다시 외눈 안경을 쓰고 말을 이었다.
“일은 간단합니다. 교단에서 준 물건을 이용해 엘드리안을 만나서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걸 직접 신성제국에 가서 보고하시면 끝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직원의 물음에 프레이는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살아있는 숲에서 당한 일이 있었으니, 엘드리안과 관련된 일에는 거리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아요?”
대답은 에밀리에게서 나왔다. 그녀도 바이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으니 쉽게 말할 수 있었다.
세이렌은 잠시 머뭇거렸다.
“괜찮겠지...?”
확신이 없는 목소리였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직원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지나고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단, 이 물건은 절대로 사냥꾼에게 빼앗기면 안 됩니다.”
직원은 일어서서 뒤에 있는 함을 열었다. 함을 뒤적이던 그는 책상 위에 꺼낸 물건을 올려놓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