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새 술은 새 부대에 -->
가디움은 눈앞에 놓인 켈라디움 자루와 볼크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헤븐스미스가 모두의 것이라고?’
볼크의 말을 한 차례 곱씹었다. 가디움은 곧 얼굴을 굳혔다.
“비록 유저라고는 하나, 드워프라면 헤븐스미스가 어떤 곳인지 알 것 아니오!”
그가 노성을 내질렀다.
“헤븐스미스가 뭔데?”
“드워프 그랜드 마스터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닌가?”
“근데 저 드워프가 유저였어?”
유저들이 수군거린다.
볼크는 가디움을 잠시 쳐다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어떻게...!? 헤븐스미스는 이그니스 신의 은총을 받는 곳이오! 오로지 선택받은 기술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란 말이오!”
가디움이 말하는 선택받은 기술자라는 건 그랜드 마스터를 의미하리라. 프레이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후의 이야기는 볼크와 가디움, 드워프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였으니.
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했었다고...?”
가디움이 점점 더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드워프에게 있어, 헤븐스미스가 어떤 곳이었는가?
최고로 인정받은 드워프가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헤븐스미스였다.
이그니스의 온기를, 더욱 밝게 불타는 불꽃이 될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은 드워프에게 성역이며, 특권이자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모두에게 공개한다고!?’
가디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고, 곧 그 감정은 분노로 변했다.
“그대가 우리의 신을 능멸하려 하는가!”
다시금 그가 도끼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볼크는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가디움을 바라보았다.
“나는 유저요. 당신이 말하는 신을 당신들처럼 열렬하게 믿지는 않습니다.”
“네놈! 감히...!”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럼에도 볼크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중요성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헤븐스미스에서 대장장이는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더 훌륭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죠.”
이그니스의 보살핌으로 스킬이 대폭 상승한다. 볼크도 직접 경험했기에 욕심이 났다.
그랜드 마스터가 된다면 그곳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도 사람인지라 좋은 건 자신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입장을 바꿔 봅시다.”
“뭐라?”
볼크의 말에 가디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와 나의 입장을 바꾸면 뭐가 달라지지?”
“아니,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볼크가 손사래를 쳤다.
“이그니스와 드워프의 입장을 바꿔보자는 말입니다.”
“뭐...?!”
가디움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볼크는 손에 쥔 망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 사태의 주범인 오토마톤을 기억할 겁니다.”
그의 말에 모인 사람들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건 가디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를 거짓 신이라고 지칭했죠. 왜 그랬을까요?”
“갑자기 오토마톤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건가!?”
볼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드워프는 그들의 창조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토마톤을 그저 노예로 취급했을 뿐입니다.”
“원래 그들은 노예로 태어났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게 문제인 겁니다.”
볼크는 망치를 탁탁 치며 말을 이었다.
“창조자는 피조물에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드워프라면 알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는지.”
“그건...”
가디움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가지지 않는 드워프를 본 적이 없었기에.
“만약 우리가 오토마톤에게 애정을 가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친 기계의 반란이었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제가 말하는 요점은 이겁니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드워프의 창조자인 이그니스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겠죠.”
“그거야...”
가디움은 볼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부정하면 오히려 신성모독이 될 테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성역을 더럽히는 걸 막아야 하기 때문이지.”
볼크는 가디움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더럽다는 건 누가 정하는 겁니까?”
“뭣...?”
“성역이 더러워진다? 이그니스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자격이 없는 자들이 헤븐스미스에 들어오면 문제가 될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볼크는 슬쩍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힘을 받는 자들이 있는 이상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관점을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신을 모시는 자들이 말하는 신의 모습과 진짜 신의 모습은 다를 것이라고.
볼크는 프레이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고쳤다. 헤븐스미스를 한 사람이 독점하는 건 그랜드 마스터를 비롯한 드워프들의 규칙이다.
“제가 만약, 자비로운 신이라면. 자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힘을 나눠주고 싶을 겁니다. 오로지 단 한 사람, 그랜드 마스터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요.”
가디움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규칙에 순응하며, 예부터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개념이었다.
“하, 하지만 우리 드워프는 예로부터...!”
“가디움 님.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볼크가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가디움은 도끼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 메탈코어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돈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볼크는 굳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헤븐스미스를 지키던 이 문은 메탈코어를 살리는 양분이 될 것입니다.”
가디움이 침을 꿀꺽 삼키며 켈라디움 자루를 살폈다. 저 정도 양이면 재건은 물론이고 다시 부흥까지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헤븐스미스가 모두에게 공개된다면... 다른 도시의 기술자들이 수염이 빠지도록 달려올 겁니다.”
헤븐스미스에서의 스킬 상승치를 생각하면,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저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수준이 올라가는데 마다할 이가 있을까?
“상상해보십시오. 밤낮없이 울리는 망치질 소리, 그리고 이 켈라디움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명작들을.”
볼크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디움은 홀린 듯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아...”
볼크가 말한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메탈코어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기술을 꽃피울 것이다.
가디움은 천천히 도끼를 내렸다.
“잊지 마십시오.”
볼크는 그를 포옹했다.
“우리는 철의 주인입니다.”
가디움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드워프의 수도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다른 드워프들의 기대, 그러나 그건 모두 그에게 부담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유저가, 도둑이라고 비난받던 그가 자신이 겪는 부담에서 헤어나올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도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만약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저주를 하면 했지 상황을 타개하려 고민하지 않았으리라.
마음속 차오르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그는 황급히 눈물을 훔쳐내었다.
“미안하오. 그대의 마음을 의심했소. 그대의 능력을 의심했소. 그러나 어리석은 건 나였소. 그저 징표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 욕심을 부리는 유저라고 생각했소.”
가디움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가, 가디움 님.”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오히려 당황한 건 볼크였다. 그러나 가디움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대는 진정으로 메탈코어를 생각하고 있었소. 옛 관습과 규칙에 얽매여 무엇이 중요한지 보지 못했습니다.”
가디움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붉어진 눈시울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리오. 그랜드 마스터, 볼크.”
“아...”
볼크는 기대하지 못한 호칭에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그는 환한 웃음과 함께 가디움의 손을 맞잡았다.
* * *
“프레이.”
“네, 형.”
“이제 작업은 다 끝난 것 같은데.”
바이런의 말에 프레이는 상황을 돌아보았다.
가디움이 데려온 병사들이 켈라디움이 가득 담긴 자루를 들고 돌아갔다.
이제 평가소 입구는 훵하니 뚫려 있었고, 가디움과 볼크의 대화를 구경하던 유저들은 헤븐스미스를 구경하러 안으로 사라졌다.
“대충 우리 일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자고.”
“아, 드디어 가는 거야?”
세이렌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자루를 옮기며 힘을 좀 쓴 모양이었다.
“그래야죠.”
오브도 완전히 수리했고, 대여비도 빌렸다. 이제 베네피스에게 돌아가 비용을 지급하고 신성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지?’
프레이는 매지카로 돌아갈 방법을 떠올렸다. 베네피스가 준 스크롤은 이미 사용했던 터였다.
“에밀리.”
“네.”
“혹시 베네피스 님께서 스크롤을...”
프레이가 부활하고 에밀리와 세이렌이 돌아왔다. 스크롤을 이용해 돌려보냈었으니 다시 베네피스의 도움을 받았을 터.
“아, 그게 아버님이 그냥 차원문만 열어주셨어요. 그날따라 몸 상태가 안 좋으셨는지... 차원문도 조금 힘겹게 여시더라고요.”
에밀리가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프레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베네피스가 준 스크롤을 멋대로 사용한 건 자신이었으니.
“프레이!”
“아, 볼크. 아니,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러드릴까요?”
달려오는 볼크에게 프레이가 슬쩍 농담을 던졌다.
“아유, 아닙니다.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볼크가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네, 그래야죠.”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네? 아... 그러죠.”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그가 황급히 평가소 안으로 사라졌다.
“왜 저러지?”
“글쎄요...”
바이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레이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에밀리, 에밀리 님!”
“누가 저를...”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워프가 아니었다.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는 얼핏 봐도 마법지부의 사람이었다.
“베네피스 님의 전갈입니다.”
“아버님께서?”
“예. 여기...”
그가 종이 하나를 건넸다.
“뭐야?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데?”
세이렌이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에밀리의 손에 있는 건 내용이 하나 없는 백지였다.
“아, 이거... 마법 편지에요.”
에밀리가 웃으며 종이 위를 손바닥으로 훑었다. 그러자 곧 빈 종이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의 편지를 훔쳐 읽는 취미는 없었기에 프레이는 곧 눈을 돌렸다.
“흠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 그제야 입을 헤 벌리며 쳐다보고 있던 세이렌이 고개를 돌렸다.
“신기하네...”
바이런은 멋쩍게 웃었다. 에밀리는 빠르게 편지를 읽고 다시 손바닥으로 훑었다.
그러자 종이가 푸른빛을 내며 공중에서 타올랐다.
“무슨 내용이었어?”
“아버지가 연구할 것이 있어 자리를 비우신다네요. 기한을 정할 수가 없어서 오브 대여 비용은 마법지부를 통해 지급해달라고 하네요.”
“뭐야... 그러면 끝나고 받던가.”
세이렌이 입을 내밀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해는 간다. 워낙에 거금이니까.”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뒤져 편지를 건네 사람에게 대금을 전했다.
“이 분에게 드리면 되는 거지?”
“네. 마법 편지는 위조가 불가능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던 남자는 돈주머니를 들고 곧바로 사라졌다.
“자, 비용도 냈고. 오브도 있으니 문제 될 게 없네. 그럼 이제 가볼까?”
“볼크가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아, 맞네. 이 양반은 뭘 하는 거지?”
바이런이 툴툴 거리며 평가소로 고개를 돌렸다.
“아, 저기 오네.”
마침 볼크가 짧은 다리를 연신 움직이며 뛰어오는 중이었다.
그는 일행 앞에 멈춰 서며 숨을 골랐다.
“다행입니다. 그냥 가시면 어쩌나 했네요.”
“그런데 왜 기다리라고...”
“아, 그래도 도시를 구해주신 은인인데. ‘그랜드 마스터’로서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볼크는 자신도 모르게 그랜드 마스터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는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프레이에게 준비한 물건을 건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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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