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31화 (131/141)

<-- 28. 새 술은 새 부대에 -->

프레이와 일행들은 볼크가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먼저 반응한 건 바이런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건 우리 거예요!”

에밀리가 뒤이어 소리를 높였다. 세이렌은 눈살을 찌푸리며 볼크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볼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프레이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그가 막아서자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무엇을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다들 성격이 급하신 분들이네요... 그, 갑옷 돌려주시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볼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프레이가 입은 사슬갑옷을 가리켰다.

“어? 그거 빌린 거였어? 나는 네가 습득한 건 줄 알았는데...”

“아, 이건 이 분이 제작해주셨던 거예요.”

바이런의 말에 프레이는 얼른 갑옷을 벗었다. 볼크는 웃으며 갑옷을 받아들고 오브를 건네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볼크는 갑옷을 들고 모루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없이 망치질을 시작했다.

깡- 깡-

망치 소리가 울린다.

“뭐지?”

“볼일 다 본 거 아니야?”

바이런과 세이렌이 묻는다. 볼크는 금방 다시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프레이는 그가 내민 갑옷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건 왜...”

“메탈코어의 구원자를 위한 선물입니다. 저 밖에 드워프들은 시기로 가득 차 있으니, 저라도 드워프를 대신해 감사를 드려야죠.”

프레이는 그가 내민 갑옷을 받았다. 파손된 부분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송합니다. 메탈코어 상황이 여의치가 않기도 하고... 다른 드워프들의 협력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나중에라도 보답할 기회가 있으면 제대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볼크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아닙니다. 이걸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프레이는 손사래를 치며 곧바로 갑옷을 착용했다.

“그러면, 계속 여기에 계실 겁니까?”

바이런이 끼어들었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배척하는 NPC들이 뭐가 좋다고 여기에 남겠는가?

“예? 아, 네. 그래야죠. 저는 그랜드 마스터니까요.”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는 다른 드워프의 인정이 필요한 게 아닌가요?”

에밀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말에 볼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인정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가 저를 인정할 자격이 있습니까?”

“자격이라니요?”

세이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얼핏 들으면 오만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평가소에 있던 심사위원들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지금 이 도시에 있는 드워프들은 대부분 전투 직종과 다른 도시와 마을에서 온 드워프들입니다. 그들이 그랜드 마스터를 선출할 자격이 있을까요?”

“음, 하긴. 대회도 무산되었으니까.”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호응하자 볼크가 말에 힘을 실었다.

“그래요. 지금 상황에서 원래의 제도대로 하자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거죠. 지금은 징표를 가진 제가 그랜드 마스터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프레이는 묵묵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아니야. 오히려 명예를 원한다면 원했을 사람이지.’

볼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다른 드워프는 이 상황에서 옛 관습에 얽매이고 있습니다. 마키나로 인한 피해와 복구 비용을 하루빨리 충당해야 하는 상황인데도요.”

“아... 가디움도 그 걱정을 하던데.”

세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움을 만나기를 기다리며 문밖에서 부관과 그의 이야기가 다 들렸으니.

“하지만 가디움은 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광산채굴을 재개하고 양질의 장비를 생산해 재건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드워프를 이끌 그랜드 마스터가 필요하고요.”

“그게 당신이라는 말입니까?”

바이런이 묻자 볼크는 고개를 끄덕인다.

“흠...”

프레이는 잠시 그를 지켜보았다. 볼크는 떳떳하다는 듯 눈을 피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메탈코어의 재건을 위해 힘쓴다...’

프레이는 머리를 굴렸다.

볼크가 진심으로 메탈코어를 생각하고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권력은 악마와도 같다는 말.

‘정말 그가 순수하게 메탈코어를 위한다면...’

생각을 마친 프레이가 볼크를 향해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가 침묵을 깨자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모인다.

“뭘 어떻게 말입니까?”

“무너진 걸 다시 세우려면, 일단 깨끗하게 치워야겠죠.”

프레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다들 그의 말에 저마다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은 세이렌이 놀라서 되물었다.

“오히려 반발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

볼크도 동감이라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확실히 좋은 방법입니다. 조금 과격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바이런과 에밀리가 동의했다. 프레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가 선택할 권리는 없어요. 그저 하나의 길을 제시한 거죠. 선택은 볼크의 몫입니다.”

“으음...”

볼크는 턱수염을 연신 쓰다듬었다.

프레이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정말 그가 권력에 뜻이 없다면 수긍하리라.

이리저리 서성이며 헤븐스미스를 훑어보던 볼크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요. 해봅시다.”

* * *

가디움은 연신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도대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지?’

그의 앞에 쌓여있는 서류에 적힌 숫자들은 모두 앞에 마이너스 기호를 붙이고 있었다.

본래 도시의 사업과 관련된 부분은 그랜드 마스터가 처리해야 할 일이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그랜드 마스터가 공석이니 모든 업무는 책임자인 그에게 오고 있었다.

그는 생소한 숫자로 가득한 종이들을 보며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마키나의 습격으로 파손된 건물들과 중단된 대장장이와 기계공 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

다행히 현지 상황을 파악한 고객들이 납입 기한을 늦추어 주었지만, 현재 실력 있는 대장장이와 기계공이 너무나 부족했다.

‘다른 도시에서 끌어오려고 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기술자들을 데려오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할 터, 도시 재건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버거운 상황인데 그럴 자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세금을 올리면...’

세금을 올리면 당연히 물가가 뛴다. 그렇게 되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방문자의 감소는 곧 수입의 감소로 직결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광물만으로는 부족한데...’

덕분에 가디움은 애꿎은 머리털과 턱수염을 뜯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불꽃이 된 드워프들을 생각하자. 포기할 수는 없어!’

도시를 지키고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미친 오토마톤들의 추격을 피해 어떻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겠는가. 지금 포기하는 건 그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가디움님!”

벌컥 문이 열리며 부관이 뛰어 들어왔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던 그가 머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그, 그게...!”

부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달싹였다. 가디움은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 상황이었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설명하게!”

“보, 볼크가 일을 냈습니다.”

“뭐라!?”

볼크라는 이름에 가디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관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직접 보시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알았네! 안내하게!”

* * *

가디움은 부관과 함께 평가소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유저들의 대부분은 광산에서 채굴 중이었기에 수는 많지 않았다.

“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거 유저지?”

“퀘스트라도 하는 게 아닐까?”

유저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 길을 내주시오!”

부관이 황급히 다가가며 사람들을 밀쳐냈다. 유저들은 얼굴을 찌푸렸다가 가디움의 얼굴을 확인하고 길을 터주었다.

“이게 도대체...!”

사람들 사이로 평가소의 모습을 확인한 가디움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쿠구궁-

“조심해요!”

“네 받았어요!”

무너지는 평가소 문 밑으로 작은 돌풍이 일어났다. 에밀리는 중얼거리며 연신 수인을 맺었다.

천천히 바닥에 떨어진 문 위로 볼크가 올라섰다.

깡- 깡-

그는 곧바로 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의 양쪽에서 바이런과 세이렌이 작은 조각이라도 흘릴까 조심스럽게 파편을 모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가디움이 버럭 성을 내며 달려갔다. 그의 목소리에 볼크가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메탈 코어를 살릴 작정입니다.”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하는 말이오!? 이 밑에는...!”

가디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볼크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 설마입니다. 헤븐스미스의 입구도 이미 해체했어요.”

쿠구구궁-

나머지 문 반쪽이 떨어졌다. 프레이는 그 위에서 천천히 상황을 살폈다.

에밀리의 마법으로 사뿐하게 착지한 그는 가디움에게 다가갔다.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다, 당신...! 어쩌자고 이 파렴치한 도둑을 돕는 거요!? 이 자가 당신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지 않았소!?”

가디움은 소리치다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도끼를 빼 들었다.

“그렇군! 네놈들은 처음부터 이곳을 노렸던 것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상했었어!”

그는 도끼로 볼크와 프레이를 번갈아 겨누며 소리쳤다.

“가디움님. 진정하세요.”

프레이는 내심 이런 상황을 예상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거두고 손을 들어 올려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였다.

그 사이 세이렌과 바이런은 묵직한 자루를 한 곳에 쌓아 두었다.

“진정하라고!? 자네라면 진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신을 모시는 성역을 침범했는데?!”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세요.”

“뭐!?”

“사람이 없으면 신도 없는 것 아닙니까? 모두 이곳을 떠나면 여기가 멀쩡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프레이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에밀리를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네, 알았어요.”

에밀리는 자루가 쌓여있는 곳을 향해 손짓했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이자 자루가 두둥실 떠올랐다.

“이그니스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가디움이 더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듯 앞으로 박차고 나서려 할 때였다.

그의 앞에 여러 개의 자루가 떨어졌다. 그리고 자루를 묶고 있던 끈이 스르륵 풀리며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켈라디움.”

프레이가 짧게 말했다.

가디움이 우뚝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 정도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평가소와 헤븐스미스의 입구는 켈라디움으로 만들어졌다. 그 광물의 가치를 생각하면 가격이 상당하리라.

그런데 이 파편들은 섬세하게 조각까지 되었다. 예술품으로 팔아도 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

프레이는 가장 먼저 메탈 코어의 자금난을 해결할 방법으로 문을 해체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도, 돈이 중요한 게 아닐세!”

순간 혹한 가디움이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왜 평가소의 문을 켈라디움으로 만들었겠는가?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해체하면 어쩌겠다는 의미일까?

“평가소와 헤븐스미스는 모두에게 공개할 것이오.”

볼크가 망치를 들고 프레이의 옆에 섰다.

“뭐... 뭐라...!?”

“들은 그대로요.”

볼크는 망치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헤븐스미스는 모두의 것이라는 말이지.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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