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29화 (129/141)

<-- 28. 새 술은 새 부대에 -->

흐릿해진 정신이 또렷해진다.

눈을 껌뻑이자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한다.

‘내가...’

푸른 하늘이 보인다. 마치 둥근 통을 눈에 대고 하늘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하늘의 주변은 단단한 바위로 감싸져 있다.

감각이 살아나며 주변의 소리가 들려온다.

드륵- 드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처컥- 처컥-

무언가가 겹겹이, 소리로 들어보면 금속이 쌓이는 소리.

“자, 폐기물은 이쪽이오! 이리로 오시오!”

누군가 소리친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인 것 같다.

[3번째로 사망하셨습니다. 3일이 경과하였습니다.]

글자가 떠올랐다.

프레이는 누운 채로 나타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이런...’

그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3번째 죽음, 그리고 3일.

‘결국 죽은 건가...’

특성이 사라지고, 극심한 피로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이라고는 볼크 뿐이었다.

‘하긴... 볼크가 사제도 아니고...’

그를 탓할 필요는 없다. 만약 자신을 치료할 능력이 있었다면, 타이룸도 살아있으리라.

프레이는 메탈코어의 부활 지점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드워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키나가 이끌었던 오토마톤과 인간들의 전투, 그 여파는 3일이 지나도 정리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파손당한 오토마톤의 부품들을 회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 전투로 무너진 건물들을 보수하고 있었다.

그래도 드워프의 마을이라는 것일까, 자신이 죽기 전 보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무척 양호한 수준이었다.

‘아! 오브는...!?’

프레이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다급하게 인벤토리를 뒤졌다.

‘없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는 곧 기억을 곱씹었다.

‘볼크... 볼크가 가지고 있었지!’

수리를 맡기고 자신은 마키나로부터 그를 지켜냈다. 그가 마지막에 도와주어 마키나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수리가 끝났다는 말, 오브를 받기 전에 자신이 죽었다. 그렇기에 소유권은 볼크에게 있을 터.

‘볼크를 찾아야겠어.’

그는 다급히 부활지점에서 나왔다. 그리고 볼크를 찾으려고 하는 순간 드는 의문.

‘근데... 볼크가 어디에 있지?’

어디부터 가야 할까? 마지막으로 죽었던 평가소로 가야 할까?

‘만약 볼크가 도망쳤다면...’

프레이의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간 보았던 볼크의 심성으로 보아 도망칠 인물은 아니었지만, 유저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켈라인의 오브, 그리고 타이룸에게 받은 그랜드마스터의 징표. 볼크는 한 번에 2가지 보물을 손에 넣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없던 욕심도 생겨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럴 시간에 움직이는 게 나을 터였다. 프레이는 일단 평가소로 가려 했다.

“프레이!”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형!”

바이런이었다. 그는 펼쳐 놓았던 노점을 황급히 정리하고 프레이를 향해 뛰어왔다.

프레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조금 미안함이 들었다. 그가 잠시 로그아웃한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화내지는 않을까...?’

비록 바이런이 스스로 나갔지만, 프레이는 그를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일하게 안전한 탈출 방법인 스크롤은 에밀리와 세이렌을 위해 썼다. 그리고 자신은 곧바로 타이룸을 찾았다.

만약 홀로 남겨진 그가 돌아왔다가 사망했다면?

프레이로서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

“인마! 드디어 왔구나!”

그러나 프레이의 걱정과 달리 바이런은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아...”

프레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혼나거나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반겨주다니?

“하, 자식. 그래도 칼같이 로그인하니 다행이다.”

“형, 미안...”

“프레이님!”

“프레이!”

프레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에밀리와 세이렌이 달려오고 있었다.

“오, 기세가 대단한데. 난 잠깐 빠져있을게.”

바이런은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말대로 세이렌과 에밀리의 기세는 남달랐다. 마치 서로 경주하듯 눈을 흘기며 속도를 낸다.

‘어...?’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추었다. 에밀리와 세이렌은 있는 힘껏 몸을 던져 그에게 안겼다.

먼저 안긴 승자는?

“세, 세이렌...!”

세이렌이었다. 그녀가 간발의 차로 프레이의 품에 먼저 안겼다.

“야! 왜 너만 남았...!”

세이렌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뒤이어 도착한 에밀리가 세이렌과 프레이를 동시에 덮쳤다.

“프레이 님!”

그는 내심 자세를 낮추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꼴사납게 엉켜서 넘어질 뻔했으니까.

“야, 너! 갑자기...”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어요!?”

세이렌이 발끈했지만 에밀리는 가뿐하게 무시했다. 바이런은 멀찍이서 고개를 흔들었다.

‘여복이라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

“내가 말하는 중이잖아! 프레이, 너만 그렇게 남으면 우리는 어쩌라고?”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가장 이치에 맞는 소리네요. 그건 동감이에요. 프레이 님! 너무 하셨어요!”

“뭐? 그럼 지금까지 내가 헛소리라도 했다는 거야?”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데요?”

세이렌과 에밀리의 시선이 부딪친다. 프레이는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서로 옥신각신하는 두 여자를 놓고 바이런이 슬쩍 다가왔다.

“항상 느끼지만... 일단 사람들 눈 좀 피하는 게 어떨까?”

“아... 네. 그래야죠.”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 부활 지점 앞이었다. 그나마 주변이 소란스러워 소음에 말싸움이 묻혔지만, 두 여자가 입씨름을 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두 여자를 말리기 시작했다.

* * *

“아무튼 간에, 프레이!”

“네, 네.”

“다음부터 허락도 없이 그렇게 멋대로 혼자 나서지 마. 알았어?”

세이렌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프레이 님. 저 여자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제 마법은 쓸 만하다고요.”

“뭐? 이게 진짜...!”

“자자, 또 싸우지 말고.”

에밀리의 말에 세이렌이 다시 성을 내자 바이런이 결국 손을 들었다.

세이렌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밀리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세이렌을 도발했다.

“흠흠, 아무튼 그건 제 잘못이니까요.”

“그래, 프레이가 잘못했네. 자자, 일단 볼크라는 유저부터 찾으러 가자고.”

프레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바이런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의 말에 세이렌이 표정을 풀었다.

“그 볼크라는 유저, 가디움이랑 있는 걸 봤어.”

“아, 그래요?”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볼크가 도망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응, 그런데 조금 분위기가 좋지 않던데...”

“왜요?”

“아, 그거 저도 들었어요.”

프레이가 되묻자 에밀리가 손을 들었다.

“엊그제였나? 세이렌이랑 제가 도착했을 때 책임자인 가디움 님을 먼저 만나러 갔을 때였어요.”

“엊그제요?”

“아... 베네피스 님이 좀 늦게 돌아오셨거든. 나는 널 찾는다고 곧바로 뛰쳐나갔는데, 에밀리는 책임자한테 묻는 편이 빠르다고 기다리더라고.”

프레이의 물음에 세이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프레이를 더 위한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미소였다. 그러자 에밀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무식하게 몸으로 밀어붙여서야 시간 낭비니까요. 프레이 님의 행방을 알려면 책임자를 찾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뭐? 지금 너 내가 무식하다는...”

“자자... 진정하고 일단 이야기를 듣죠.”

에밀리가 시비를 걸자 세이렌이 발끈한다. 프레이는 황급히 그녀를 달래고 에밀리가 이야기를 계속하게 했다.

“그때 들었는데,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로 문제가 있던 모양이에요.”

“징표...”

“네. 그 망치 때문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어요. 볼크는 유저니까 그 망치를 인벤토리에 넣고 버틴 모양이에요. 인벤토리에 들어간 물건을 우리가 어쩔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나도 NPC들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그 유저가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를 훔쳐간 도둑 취급을 하던데?”

“네? 도둑이라고요?”

바이런의 말에 프레이가 놀라 되물었다.

“어. 그래서 가디움이 징표를 돌려달라고 말했는데, 그 볼크라는 사람이 한사코 거부했다지? 아주 뻔뻔한 놈이라고 드워프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지.”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볼크가 그렇게 뻔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곧 드워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하긴... 정식으로 승계받은 거라고 하기는 어렵지...’

그랜드 마스터로 선출된 것도 아닌데 징표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드워프들의 시기는 어쩔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볼크는 타이룸에게 직접 받은 물건이니 억울하리라.

“게다가 지금 여기 있는 드워프 대부분은 다른 마을에서 온 거라서... 아마, 순수한 마음보다는 그랜드 마스터 자리가 공석인 걸 노리고 온 드워프도 많을 거야.”

“그래요?”

“그래. 네가 죽은 동안 내가 사람들을 따라서 근처 마을까지 갔거든. 구원군을 요청해서 왔는데 오니까 오토마톤이 다 정지했더라고. 그때 얼마나 허탈하던지...”

바이런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가디움도 당황하는 눈치였어. 구원군을 요청하러 갔을 때 주변 마을에 자존심도 다 버리고 사람들을 끌어모았으니까. 그런데 정작 오니 멍청하게 서있는 오토마톤만 있었으니... 그 표정은 진짜 잊을 수가 없다.”

“그랬군요...”

“그래. 그 와중에 볼크가 그랜드 마스터 징표를 들고 찾아와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니까. 아, 물론 네 이름도 나왔지. 네 도움이 없었으면 진즉에 오토마톤이 군단을 일으켰을 거라고. 그런데 그 당시 가디움은 볼크의 말을 듣고 오히려 성을 냈어.”

“네? 왜요?”

프레이가 놀라 물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한테 왜 도리어 성을 낸단 말인가?

“자세한 이야기는 몰라. 뭐...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약간 그런 느낌이 있지. 가디움은 자신의 공로를 빼앗긴 거야.”

“그건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볼크랑 네가 없었다면, 가디움은 구원군을 이끌고 돌아온 영웅이 되어야 할 상황이었어.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문제는 해결되어 있고, 구원군들은 오히려 가디움을 뒤에서 조롱했을 테지.”

“아...”

프레이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가디움의 심정이라면... 어쩌면 오히려 오토마톤이 날뛰는 상황을 바라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바이런이 탁하고 손으로 무릎을 쳤다. 그리고 양팔을 넓게 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메탈 코어는 무사하고 적은 무력화 됐지. 게다가 볼크는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까지 가지고 왔어. 이를 어쩌나? 영웅이 되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진짜 영웅이 나타난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프레이가 대답하려 하자 바이런이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며 대답했다.

“그래, 무슨 생각하는 줄 알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가디움은 볼크를 환영했어야지. 자신을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줬으니까.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NPC한테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게 아니거든.”

바이런이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프레이도 조금은 가디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무튼, 그 뒤로 볼크라는 유저는 보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가디움을 만나봐야겠네요.”

“음...”

에밀리의 말에 프레이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마땅히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가디움은 어디에 있죠?”

“아, 의회 건물에서 마지막으로 봤었어.”

세이렌이 소리를 높였다.

일행은 눈을 마주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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