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헤븐스미스 -->
볼크는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눈앞에 있는 켈라인의 오브로만 향했다.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지금...!’
그는 손을 높이 들고 망치를 내리쳤다. 망치질할 때마다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나는 철의 주인이다...!’
타이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그는 재차 망치질을 했다.
붉게 달궈진 오브, 그리고 그 오브에 생겨난 균열이 점차 메꿔진다.
마치 상처가 아물 듯, 오브는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볼크는 직감적으로 마지막 망치질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해냈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망치를 내리쳤다.
깡-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의 고요를 일깨운다. 그와 동시에 볼크는 무아지경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캉- 카칵- 캉-
가장 먼저 들리는 건 서로 맞부딪치는 쇳소리였다. 볼크는 고개를 들고 경악했다.
“이게...!?”
주변에 흩어진 오토마톤들의 파편,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모루.
그보다 놀라운 건 그 모루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두 명의 남녀였다.
“프레이!”
볼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프레이는 날아드는 레이피어를 피해 바닥을 구르고 일어서며 고개를 돌렸다.
“볼크! 수리는요!?”
“끄, 끝났습니다!”
“알았어요! 물러서요!”
볼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끼어들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고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이곳에 있는 한 내 마력은 무한하다!”
마키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팔을 뻗었다. 프레이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소리쳤다.
“엎드려요!”
그의 외침을 들은 볼크는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날렸다. 프레이도 동시에 몸을 굴렸다.
콰앙-
마키나의 손끝에서 나온 마나탄이 벽에 적중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볼크의 머리 위로 파편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프, 프레이!”
‘이런!“
프레이의 팔에 푸른 선이 차오른다. 그는 다급히 떨어지는 파편을 노렸다.
정확하게 조준할 틈이 없었다. 그는 소리치며 마나탄을 쏘았다.
“피해요!”
“우아아악!”
볼크는 다급하게 앞으로 몸을 굴렸다. 그 사이 마키나는 프레이에게 접근했다.
“너희들이 살아나갈 가망은 없다.”
“큭...!”
프레이는 지척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가까스로 레이피어를 쳐냈다.
가슴팍으로 날아오던 레이피어는 옆으로 비껴나가 프레이의 사슬갑옷에 걸렸다.
‘지금...!’
프레이는 레이피어가 빗나감과 동시에 발을 들었다. 마키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신에게...!”
발에 걷어차이며 뒤로 물러난 마키나가 분노했다.
‘조금 베였군...’
사슬 사이로 흘러나오는 핏물을 보며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마키나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었다. 미치광이 기계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대의 모습으로 그대가 아는 모든 이들을 죽이겠다.”
“결국 떠올린 게 내 흉내를 내는 거야?”
프레이가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마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부터 붉은 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프레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키나의 변화는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전신으로 흘러들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힘이 느껴졌다.
감각이 예리해지고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이건...!’
보이드를 상대했을 때와 같은 느낌, 마키나는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마키나가 움직였다.
“조오시이임!”
볼크의 목소리가 녹은 치즈처럼 늘어졌다. 마키나의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보였다.
물론 프레이가 일반인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볼크의 눈에는 마키나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프레이는 마키나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온다!’
마키나가 달려오며 레이피어를 내지른다. 프레이는 멈췄던 몸을 움직였다.
잔상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잔상을 무시했다.
모든 잔상은 레이피어를 피하고 마키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큽...!’
프레이는 조금 몸을 트는 것으로 치명상을 피했다. 예리해진 감각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레이피어가 사슬에 걸리도록 몸을 움직이게 했다.
“어떻게...!?”
마키나의 표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레이피어가 사슬 사이를 꿰뚫고, 살을 찢는다.
느껴지는 고통에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핏방울이 허공에 흩뿌려진다.
프레이는 검으로 레이피어를 쥔 손목을 내리친다. 그리고 마나핑거로 마키나의 갑옷 가슴 부분을 움켜쥐었다.
우지직-
손목이 잘려 물러나는 마키나, 그리고 그가 물러나며 뜯기는 갑옷.
‘저기...!’
마키나의 가슴에 드러난 붉은 마정석. 프레이는 재차 검을 내지르려 했다.
그러나 마키나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프레이의 검을 피한다. 시간은 다시 원래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다.
캉-
잘려나간 손목과 갑옷이 떨어지며 쇳소리를 낸다.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며 상처 부위를 바라보았다.
‘제길...’
혈관이라도 찔린 건지 피가 울컥 솟는다. 마나핑거로 막아보지만 손가락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마키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려나간 손목에서는 붉은 액체가 떨어진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어떻게... 그대가 내 속도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과였다. 마키나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붉은 심장이 맥동하듯 빛을 발한다.
“신조차 모를 일이지.”
프레이가 대답했다.
그의 특성은 신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더 원에게 받았던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그대의 정보는 기록했다. 똑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키나는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프레이가 자신과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걸 안 이상 같은 실수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
프레이는 출혈이 더 심해지기 전에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곧바로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나섰다.
“어리석은...!”
마키나는 곧 자신이 무기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리온은 그녀가 다른 오토마톤과 다르기를 바랐기에, 별다른 무기를 장착하지 않았다.
“원거리로 상대해야겠어.”
프레이가 붉은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마키나는 뒤로 물러나며 마나핑거를 준비했다.
‘제길!’
다급하게 몸을 굴려 피한다. 마나탄으로 생겨난 풍압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차례, 술래잡기를 하듯 공방이 이루어졌다.
“후우...”
스탯이 같으니 둘의 간격은 계속 평행하다. 프레이가 다가가면 마키나는 그만큼 물러났으니.
무한한 마나를 바탕으로 마키나는 연신 마나탄을 쏜다. 프레이도 마나핑거를 사용할라치면, 마키나는 더욱 멀어진다.
‘제길...’
다른 점이 있다면, 프레이는 고통을 느끼고 출혈이 있다는 점이었다. 오토마톤인 마키나는 가짜 혈액을 잃더라도 마나는 잃지 않는다.
그러나 프레이는 점차 피를 잃고 있었다. 같은 조건이라면 프레이도 지치지 않았겠지만, 출혈량이 늘어나며 프레이는 지쳐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이제야 그 나약한 육체가 쓸모없다는 걸 알겠는가?”
마키나의 말에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몸은 진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제 거짓 신의 시대가 저물고, 기계들의 세상이 온다.”
마키나는 승리를 확신한 듯 기세등등했다.
프레이는 슬쩍 볼크를 돌아보았다. 그는 인벤토리를 뒤적이다가 슬쩍 들고 있는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프레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메탈코어, 나아가 아이오티스를 모두 점령하고 우리는 기계 제국을 만들 것이다.”
“제국... 웃기지도 않는군.”
프레이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결국 한다는 게 또 인간 따라 하기네.”
“그대의 머리만을 남기고 우리의 시대를 목격하게 하는 것도 좋겠군.”
마키나는 손을 들어 프레이를 겨누었다. 그는 검을 쥐고 달렸다.
“어리석군.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마키나는 마나탄을 쏘고 뒤로 물러났다. 프레이는 바닥을 박차고 마나탄을 피했다.
“차라리 자살을 택하는 건가?”
하늘로 떠오른 프레이를 향해, 마키나는 손을 높이 들었다. 공중에서라면 피할 수 없으리라.
예상외의 움직임에 당황하긴 했지만, 승리는 확실했다.
마키나의 팔을 따라 붉은 선이 차오른다. 공중으로 마나탄을 발사하기 바로 직전.
그때.
콰직-
마키나는 가슴으로 전해지는 작은 충격에 무언가 잘 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볼크를 바라본다. 끝자락에서 볼크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증기소총을 잡고 서 있었다.
붉은 심장에 균열이 생겼다. 팔을 타고 차올랐던 붉은 선이 희미해진다.
“끝이다.”
어느새 마키나의 앞에 착지한 프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학습능력이 없나?”
프레이는 마키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검을 내질렀다. 붉은 심장의 균열을 비집고 검이 들어간다.
“아...”
마키나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쓰러진다.
“하나... 이상... 우리의... 시대...”
입에서는 떨리는 목소리가 흐른다.아직 마나가 남은 모양이었다. 프레이는 천천히 마키나를 쓰러뜨렸다.
“나는... 기계의 신... 생각하는 기계...”
“아니, 그건 네 생각이 아니야.”
프레이는 마키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깨진 붉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하긴... 어쩌면 인간도 너와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
콰드득-
프레이는 마키나의 몸에서 붉은 심장을 완전히 뜯어냈다. 그와 동시에 떨림이 멈추고 마키나의 사고도 정지했다.
쿵- 쿠쿵- 쿵-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작동을 멈춘 오토마톤들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이, 이긴 겁니까!?”
볼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소리가 들렸다.
‘끝인가...’
프레이의 몸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피로감이 그를 덮쳤다.
“웃...”
“프레이!”
볼크가 황급히 그를 향해 달려왔다.
“이런, 출혈이...!”
프레이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 * *
“후... 못난 제자의 주검을 처리해야겠소. 모르템에게 오염된 검은 피를 오퀸에 흘릴 수는 없는 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동안 이곳을 조사하겠습니다.”
페이완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검을 들었다.
그가 떠나고 베네피스는 동굴 안을 살폈다. 특별히 모르테미안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흠... 청부살인업으로 자금을 융통하고 있던 건가?’
모르테미안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가 했더니, 이렇게 뒤에서 구린 일을 해주고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베네피스는 동굴 벽을 파내어 만든 책장으로 다가섰다.
‘암살자에게 책이 필요할 리는 없을 터...’
그는 직감적으로 책장에 놓여있는 서적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분명 메멘토 모리는 의뢰주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이걸 빌미로 협박이라도 할 수 있겠군.’
베네피스는 슬쩍 입구를 바라보았다. 페이완 장로는 이미 나간 지 오래, 이 어둡고 고요한 동굴 속에는 그 외에 다른 인물은 없었다.
‘장로가 제자에게 신경을 집중해서 다행이군.’
베네피스는 가장 위에 있는 서적을 펼쳤다. 그의 예상대로 의뢰주와 의뢰주가 부탁한 목표가 누구인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허... 이것 참 놀라운 일이군.’
그는 서적 안에 적혀있는 인물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기억에 따르면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사망한 인물들이었다.
‘어쩌면... 이용당하고 처리당한 걸지도 모르겠어.’
이용가치가 없으면 제거하는 게 모르테미안 입장에서는 좋으리라. 자칫 꼬리를 밟힐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아쉽지만 이건 가치가 없군.’
이용가치가 없는 목록이었다. 베네피스는 다른 서적을 찾았다.
여러 서적 중 마치 유약을 바른 듯 검은 광택이 흐르는 서적에 눈이 닿았다.
‘이게 그나마 가장 최근 것 같군.’
관리 상태로 짐작한 베네피스는 서적을 꺼냈다. 그리고 첫 장을 펼친 순간.
파악-
“읍!”
베네피스는 급하게 서적을 떨어뜨렸지만, 책에서 퍼져 나온 검은 기운이 그를 휘감았다.
“이런...!”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앞으로 쓰러졌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9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