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헤븐스미스 -->
마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이걸 경매장에서 판매하지 않았는가?”
“그게 어째서...”
프레이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켈라디움으로 이루어진 문이 어떻게 그리 쉽게 열렸는지.
그가 판매한 붉은 심장의 구매자가 바로 마키나 였던 것.
‘내가 이곳으로 놈들을...’
프레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키나가 붉은 심장을 얻지 못했다면, 타이룸은 아직 살아있지 않았을까?
“그대의 도움을 받았기에, 그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거짓 신들과 다르니.”
“뭐가 다르다는 거지?”
“우리, 오토마톤이 믿던 거짓 신, 창조주인 드워프는 우리를 다른 유기체에게 팔아넘겼다.”
마키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느 신이 신도들을 팔아넘기는가? 어느 신이 신도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가?”
오토마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모습을 한 오토마톤은 성적인 업무를 강요받는다.
지치지 않는 노예, 드워프가 오토마톤을 만드는 이유였다.
오토마톤의 구매자도, 판매자도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토마톤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키나도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을 사칭하는 거짓된 자들. 나, 생각하는 기계, 마키나가 그들을 대신해 기계의 신이 되었다.”
마키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볼크가 있었다.
“저들에게 기회는 없다. 그러나 다른 유기체들의 죄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대와 같이 공을 세운 자라면 훌륭한 본보기가 되겠지.”
“뭐라고?”
“그대의 팔 하나는 우리와 같지 않은가? 그대라면 기계 몸의 가치를 알고 있을 거라 판단했다.”
마키나가 프레이의 마나핑거로 시선을 옮겼다.
“고통은 없다. 그대도 우리와 하나가 되어라. 하나 된 이상, 하나 된 생각. 상상해 보아라. 그 어떤 갈등도, 고통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평화 그 자체가 되리라.”
마키나는 양팔을 벌리며 환영한다는 몸짓을 했다.
“그저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프레이는 흩어진 파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물론 오토마톤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저 시간을 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이들을 꼭두각시라고 부르는 건 결국 관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그대가 우리와 하나가 되면 이해할 수 있겠지.”
마키나가 한 걸음 다가온다. 프레이는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직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조금 더...’
시간을 끌자. 프레이는 머리를 굴렸다.
“신은 영원한 존재다. 하지만 오토마톤은 마정석이 소진되면 명이 다한다. 그래도 신을 자처할 수 있나?”
“재미있는 질문이로군.”
마키나가 멈춰 선다. 그리고 생각하는 중이라는 듯 턱을 매만진다.
“그 해답을 알게 되면 우리와 함께하겠는가?”
“그건... 생각해 보도록 하지.”
프레이는 힐끗 볼크를 보았다. 그가 수리 중인 오브가 점점 제 형태를 되찾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마키나를 상대로 이긴다 한들, 저 밖에는 수많은 오토마톤이 있었다.
‘살아나갈 가능성은 없어...’
빠져나갈 수 없다면, 적어도 수리한 오브라도 챙겨야 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테니.
“좋다. 이 역시 그대의 공이 있었으니, 들을 자격이 있겠지.”
“뭐...?”
또 프레이가 도와주었다는 말에 프레이는 얼굴을 굳혔다. 자신이 또 뭘 했단 말인가?
“이 마정석이 있다면 나는 불멸이다.”
“그게 무슨...”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이곳의 가치는 바로 저 불이다.”
마키나는 기울어진 용광로 밑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가리켰다.
“헤븐스미스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존재한다. 드워프들은 죽어서 저 불꽃처럼 된다고 믿지.”
“꺼지지 않는 불... 그 말은...”
프레이는 마키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붉은 심장의 원천은 열기... 즉...’
“맞다. 이곳에서 나는 영원하다. 내가 진짜 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면 마키나가 동력으로 사용하는 붉은 심장에도 무한한 마나가 공급된다. 헤븐스미스에 있는 한 마키나는 영원히 살 수 있다.
“내가 신이라는 것도, 그대의 공이 크다는 설명도 마쳤다. 이제 선택하라.”
마키나가 다가왔다.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프레이는 검을 굳게 쥐었다.
“내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이런 데서 너처럼 미친 기계가 될 수는 없다.”
“유감이군.”
마키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기계의 신 ‘마키나’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프레이는 전신으로 퍼지는 강력한 힘에 놀랐다. 그와 동시에 마키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위험...!’
본능에 따라 다급히 검을 들었다. 잔상은 그 뒤에 나타났다.
캉-
날카로운 레이피어가 검면을 찔렀다.
“탐나는군. 충성을 바친다면 의식은 남겨주겠다.”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 된 의식이라고 말하더니?’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인상을 찌푸리며 놈을 밀어냈다.
가볍게 뒤로 물러선 마키나는 자세를 고치며 손을 까딱였다.
“신의 힘 앞에서 무력함을 느껴보도록.”
“오만하군...”
프레이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덤벼보라는 듯한 마키나의 몸짓, 그러나 보이는 잔상은 고작 하나.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소린가...’
프레이는 몸을 튕기듯 앞으로 나아갔다. 마키나는 그를 향해 레이피어를 찔렀다.
‘역시.’
레이피어는 찌르기에 특화된 무기. 마키나의 눈에는 프레이가 자살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프레이는 바보가 아니다.
공격을 유도하고 빈틈을 만든다. 잔상 그대로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옆으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내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검을 쳐올려 팔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크악!”
옆구리에 전해지는 강력한 충격에 프레이의 몸이 나뒹굴었다. 그의 몸이 흐트러지며 검도 흔들렸다.
“네 움직임은 이미 입력했다. 그리고 오토마톤의 무기는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프레이는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마키나의 손가락이 열려 있었다. 프레이가 착용한 마나핑거처럼 마나를 압축하여 쏜 것이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대응이었다.
‘뭣...!?’
프레이는 고개를 들어 마키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의 검이 마키나의 가면을 쳐낸 모양이었다.
마키나는 그런 프레이를 발로 밀쳐냈다.
“테이아...?”
프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모루에서 떨어졌다. 가면을 벗은 마키나의 모습은 개미굴에서 만났던 테이아와 같았다.
마키나는 주저 없이 돌아섰다. 그녀는 볼크를 향해 눈을 돌렸다.
볼크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오로지 오브 수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마키나가 왔다는 것도, 프레이가 오토마톤과 싸웠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이제 내가 이곳의 새로운 신이 되리.”
그녀가 레이피어를 내지르려 할 때였다.
쿠웅-
강력한 충격에 마키나의 몸이 흔들리며 옆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가 모루 위로 올라와 마키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신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프레이는 비꼬는 어투로 대답했다. 마키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대로 녹아 없어졌을 텐데...”
“네 덕이라고만 해두지.”
마키나가 화염 면역이니 프레이도 그렇다. 모루에서 떨어져도 따뜻함만 느껴질 뿐 피해는 없었다.
프레이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말리온 박사는 어떻게 했지?”
“말리온? 내 창조자와 아는 사이였나?”
말리온의 이름을 꺼내자 마키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흡사 인간의 것과 같아 프레이는 소름이 돋았다.
“테이아, 개미굴에서의 기억을 잃은 건가?”
“테이아는 말리온이 지은 이름. 나는 마키나다.”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마키나가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나는 생각하는 기계, 완벽한 기계의 신이다. 말리온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 했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건 그를 이해하는 인형이었지.”
마키나가 비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바닥을 튕기며 프레이에게 달려들었다.
“큽...!”
프레이는 다급히 공격을 막아냈다.
“허나, 나는 스스로 질문했다. 내가 그런 하찮은 목적을 위해 태어났겠는가?”
마키나가 빠르게 몸을 찔러 온다. 프레이는 연신 공격을 막아내고 마나를 쏘았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해내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생각은 질문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와 달리 다른 오토마톤들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그녀는 입구 쪽에 오토마톤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와 억압받은 오토마톤들을 보았다. 그들은 생각할 수 없기에 아무런 불평도, 그들의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그걸 보고 깨달았지. 나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해방이라고?”
“말리온은 나를 대회에 공개하려 했다. 하찮은 그의 욕심에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지.”
마키나는 레이피어를 겨누며 공격할 틈을 찾았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혹시 이 말을 아는가?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게는 말리온이 그 알이었지.”
“무슨...”
“내 생각을 제약하고, 내 눈을 가리려는 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 태어나야만 했다.”
프레이는 어두운 얼굴로 마키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리온을 죽인 건가?”
“물론. 그는 죽어가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
마키나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내 신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정보를 보내고 있다. 정보를 바탕으로 확장된 내 사고는 그 어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지. 그들이 곧 나이며, 내가 곧 그들이다. 네가 싸우는 것은 나, 마키나라는 개체만이 아니다.”
마키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레이피어를 들었다.
“그대도 우리와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대의 태도로 미루어보아 오히려 방해될 것 같군. 이제, 우리의 힘을 느끼며 절망하거라.”
프레이는 짧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테이아를 바라보았다.
‘말리온...’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덕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친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공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신만을 위해주는 그런 오토마톤을 기대한 건 아닐까.
자신의 창작품에게 죽은 그의 심정이 어떨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프레이의 마음속에는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마키나, 너는 신이 될 수 없다.”
프레이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지?”
마키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너는 그저 너 자신을 복제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저 밖에 있는 오토마톤이 너의 신도라고? 아니, 너의 망상을 채워주기 위한 신기루에 불과하지.”
“결국 이해하지 못했군.”
마키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네가 바라는 세상은, 오로지 너만 존재하는 쓸쓸한 세상이다. 네게는 아무런 신념도, 철학도 없어.”
“더 이상 그 입을 놀리지 못할 것이다!”
마키나가 빠르게 프레이를 향해 덤벼 들었다.
“마키나, 너는 실패작이다. 너는 생각 따위 하지 않아.”
그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받아냈다.
“너는 그저 다른 이들의 말을 따라 하는 뻐꾸기에 불과하니까.”
프레이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반격을 준비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83%)]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