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헤븐스미스 -->
키이이잉-
용광로의 기울기를 조정하는 톱니바퀴가 빠르게 돌아간다.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오토마톤들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용광로가 몸을 옆으로 눕히며 안쪽에 있던 황금빛 액체가 쏟아진다.
치이익-
넘친 액체가 오토마톤들을 뒤덮는다.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오토마톤의 골격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팔과 다리, 날카로운 칼날과 푸른빛을 머금은 마정석까지. 모두 황금빛 액체에 먹힌다.
“타이룸 님!”
프레이는 급하게 그를 향해 가려 했다. 그러나 황금빛 강이 길을 막았다.
강은 점점 넓어지며 바닥을 덮어간다. 볼크와 프레이는 황급히 모루 위로 올라가 몸을 피했다.
“크윽...”
타이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도 레버를 붙잡는다.
반쯤 녹아내린 오토마톤이 그를 향해 다가온다. 황금빛 강은 기계들을 녹일 수 있지만 단번에 없애지는 않았다.
“타이룸 님!”
“이그니스시여...”
타이룸은 눈을 감았다. 그의 발끝으로 황금빛 액체가 닿았다.
전혀 뜨겁지 않았다. 다가오던 오토마톤은 결국 무너져내려 강으로 침식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자신은 섬기던 신의 품에 안길 터,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발목이 액체에 녹아 사라진다. 그는 점점 가라앉았다.
타이룸은 버티지 못하고 양팔을 앞으로 짚었다. 마치 신을 향해 절을 하듯 그는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목숨이 꺼지기 전, 고개를 들어 볼크를 바라보았다.
“철의 주인이여! 불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이그니스의 자손이니!”
“타이룸 님...!”
볼크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망치를 쥐었다.
“볼크...!”
“타이룸 님의 유작을 완성시켜야 해!”
처음에는 그저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라는 자리는 단순히 스킬과 증표만으로는 차지할 수 없었다.
볼크는 깨달았다.
그랜드 마스터는 이그니스를 섬기는 제사장이며, 신념과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도 그렇게 되어야 했다.
“프레이!”
“네...!”
“아직 수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깡- 깡-
망치질이 시작된다. 프레이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가까이 접근했던 오토마톤 중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은 놈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
루에 손을 올리고 기어 올라왔다.
하반신이 사라진 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적의는 그대로였다.
프레이는 볼크의 앞에 섰다. 검을 빼 들고 굳은 표정으로 놈들을 지켜보았다.
‘이 뒤로 지나가게 할 수는 없다.’
가장 앞에 있던 놈이 프레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칼날을 앞세우고 일방향으로 돌진해오는 단순한 공격.
프레이는 가볍게 검으로 칼날을 쳐냈다. 옆으로 쓰러진 놈의 머리를 검으로 찍어 눌렀다.
곧바로 발로 목을 밟아 검을 빼내고 가슴팍에 드러난 마정석을 파괴했다.
‘다음!’
프레이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동시에 양쪽에서 놈들이 날아온다.
쾅-
마나핑거로 한 놈을 쏘아 떨어뜨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칼날이 머리 위를 스친다. 놈의 가슴팍이 적당한 위치로 움직인다.
프레이는 그대로 검을 올려쳐 마정석에 꽂아 넣는다. 그리고 엎어치기를 하듯 몸체를 땅바닥에 패대기친다.
‘막는다!’
다음 공격을 대비하며 숨을 고르고 자세를 고친다. 그러나 후속 공격이 이어지지 않는다.
모루 위로 올라온 오토마톤의 눈이 빛나더니 서로를 마주 본다.
‘뭐지?’
프레이는 의문을 품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놈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기에, 오는 놈들을 방어하는 게 최선이었다.
오토마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곧 파손된 부분을 접합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해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그가 생각하는 설마가 맞았다. 놈들 중 아래로 내려간 놈이 다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오히려 일반 다리보다 칼날이 달린 다리가 되었으니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였다.
머리가 아래위로 두 개 달린 모습은 프레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저런 놈들과 한패가 되라니... 마키나라는 놈도 어지간히 미친 거로군.’
프레이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결합한 오토마톤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이라는 듯 움직임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큽...!”
단순한 몸통박치기가 아니다. 양쪽 팔과 양다리 모두 흉기였다. 프레이는 검을 연신 휘두르며 쇄도하는 칼날을 막아냈다.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볼크가 소리쳤다. 프레이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처음 당하는 공격패턴이었기에 당황했을 뿐, 그의 눈에 잔상이 보였다.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튕겨내고 관절 부분을 노렸다.
오토마톤 역시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터라, 골격 중 팔뚝은 얇고 다리가 두꺼운 형태다. 그러나 그 얇은 팔뚝을 다리로 쓰고 있었으니 비교적 잘라내기 쉬웠다.
프레이는 대퇴부를 맡은 팔을 잘라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오토마톤을 걷어차 옆으로 떨어뜨렸다.
‘이런 급조한 놈들에게 당할까...!’
프레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남은 오토마톤들은 많았다.
타이룸의 희생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옛적에 칼날에 꿰뚫려 죽음을 맞았으리라.
오토마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르고, 베고, 부수고 떨어뜨린다. 프레이는 덤벼드는 오토마톤을 족족 처리해냈다. 그렇게 한참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았다.
프레이는 지치지 않는 오토마톤과 같았으니까.
* * *
베르핀 사저, 지하 감옥.
고요한 이곳에 뜻하지 않게 불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쿨럭...”
피를 울컥 토해내는 제트람.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분을 삭이는 남자.
“네가... 네가 제대로만 했어도...!”
베르핀은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주먹을 닦아냈다. 순백의 손수건은 이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는 손수건도 더럽다는 듯 바닥에 내팽개치고 의자에 앉아 피를 흘리는 제트람을 바라보았다.
“크흐흐...”
제트람은 실성한 듯 핏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베르핀은 그 모습에 눈상르 찌푸렸다.
“뭐가 그리 웃기지?”
“천하의... 베르핀 대공... 께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군요?”
말하기가 힘겹다는 듯 뚝뚝 끊겼지만, 제트람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베르핀은 제트람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네가 감히 날 우롱하려 들어?”
“죽기 직전에... 이런 흡족한... 광경을 봐서 영광입니다.”
제트람은 온 힘을 다해 이죽거렸다. 그는 이미 기사로서의 삶이 끝났다.
그렇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수모를 겪느니 당장 죽고 싶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베르핀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베르핀은 순간 열이 뻗쳐 그 자리에서 제트람을 참수할까 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니, 아니야. 나, 베르핀은 장차 제국을 이끌 몸이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마치 자기 자신과 대화라도 하듯이.
베르핀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정구에서 마지막으로 들렸던 목소리.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린데...’
그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목소리가 워낙 작아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어렴풋이 들어봤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메멘토 모리가 괴멸 수준까지 갔다는 것. 그의 의뢰를 수행할 인물은 이제 없었다.
‘데일이 살아 돌아온다...’
당장 황성으로 돌아오는 게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보고를 받았을 때 데일은 엘레타스에 있었다.
분명 신성제국을 경유할 게 분명했다.
‘데일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겠지.’
아무리 꼭두각시 취급을 했다고 하더라도, 베르핀은 데일을 무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고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마틴과 같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아니, 오히려 신성제국에 몸을 의탁할지도 모르겠어.’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그 잘난... 머리로도... 답이 없지 않습니까?”
제트람이 다시 이죽거린다. 베르핀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던진 손수건을 발로 짓밟았다.
더러운 구정물과 피로 얼룩진 손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제트람의 머리를 잡는다.
“제트람 ‘경’. 지금은 자네에게 발언권이 없네.”
일부러 ‘경’자를 강조한다. 기사로서의 그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그의 의도대로 제트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베르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제트람의 턱을 잡고 입을 벌린다. 핏물로 더럽혀진 그의 혀가 보인다. 그 혀에는 수많은 자결 시도로 생겨난 흉터가 있었다.
제트람은 감옥에 갇힌 후 혀를 물어 자결을 시도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 베르핀은 자신의 입김이 닿는 사제를 불러 연달아 회복시켰다. 그는 그저 베르핀의 분풀이용 포로에 불과했다.
“웁...! 웁!”
베르핀은 제트람의 입을 막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후... 좋아, 인정해야겠어. 데일, 네 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구나.’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도리가 없군. 더 많은 피를 흘릴 수밖에.’
베르핀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제트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바로잡겠다. 설령 그것이 금지된 방법일지라도.”
그는 제트람의 머리를 붙잡고 말을 마쳤다.
“제트람 경, 그때까지 모쪼록 살아 있어주게.”
‘데일... 저하...’
베르핀은 무력감에 눈을 감았다. 그는 그렇게라도 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 * *
모루 위에 쌓인 오토마톤의 잔해물들.
프레이는 숨을 고르고 검을 내렸다. 볼크는 연신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모두 처리했나...’
프레이는 입구를 돌아보았다. 아직 오토마톤들은 남았지만 건너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평화.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볼크의 상태를 살폈다.
‘대단한 집중력이군...’
볼크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온 신경을 오브에 쏟고 있었다. 내리치는 망치의 힘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함인지 그는 이리저리 오브를 굴리며 상태를 살폈다.
이마는 물론 팔뚝과 목, 수염까지 땀으로 적셔져 있었다.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프레이는 말을 걸려다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저건...?’
오토마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누군가 걸어왔다.
프레이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얀 가면과 철제 갑옷, 광산 앞에서 마주쳤던 놈이었다.
‘저게 마키나인가?’
다른 오토마톤과 다른 모습, 그리고 마치 숭배하듯 그를 보좌하는 오토마톤의 행동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오토마톤...’
여기까지 올 수는 없으리라. 프레이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거짓 신,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신을 받드는 곳인가?”
마키나가 천천히 걸어온다. 그는 서슴없이 황금빛 강으로 발을 내디딘다.
프레이는 그의 발이 녹아 없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어떻게...?”
놀란 눈으로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마치 진짜 강을 건너듯, 마키나는 유유히 앞으로 걸어왔다.
“확실히 나, 마키나가 지낼 곳으로 충분하다. 신에게는 신과 어울리는 장소가 필요한 법이지.”
“신이라고?”
프레이는 어이가 없었다. 만약 그의 말대로 마키나가 신이라 하여도, 신도들을 사지로 내모는 신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유기체여. 그대는 모른다. 그렇기에 기회를 주려 한다.”
“신이라는 자가 어째서 얼굴을 숨기는 거지?”
프레이는 슬쩍 눈을 돌렸다. 볼크의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적의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이퀄라이저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키나가 모루 위로 올라오면 싸울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려 했다. 거짓 신이 아닌 진짜 신으로서 아량을 베풀기 위해. 이 가면은 그대들이 가진 편견 때문이다.”
마키나는 거리를 천천히 좁히며 말했다. 프레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편견?”
“유기체, 혹은 사람이라 불리는 종족. 드워프와 엘프, 그리고 인간. 그대들은 외모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가?”
“그건...”
“그렇기에 나의 자식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면 대화조차 할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의 모습을 하는 건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키나는 결국 강을 건너 모루 앞까지 다가왔다. 프레이는 검을 들었다.
“대화라고?”
“그렇지. 그리고 그대, 프레이라는 자여. 여기까지 오는 데 자네의 공이 컸다.”
“내... 공이라고?”
프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프레이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마키나는 그의 표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키나는 갑옷 가슴 부분을 분리해냈다. 그리고 프레이는 그의 가슴에 장착된 붉은 마정석을 알아보았다.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
프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