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헤븐스미스 -->
어두웠던 통로와 달리 안은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쿠우웅-
프레이와 볼크가 들어서자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천상의 대장간 ‘헤븐스미스’에 입장합니다.]
[불의 신 이그니스의 보살핌으로 ‘대장장이’, ‘기계공’ 스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초급 수리 Lv9’가 ‘중급 수리 Lv3’으로 적용됩니다.]
[손상된 장비의 수리 속도가 빨라집니다.]
[장비 제작시 좋은 품질로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프레이는 눈을 껌뻑였다.
‘수리 스킬이?’
“우와아아아!”
프레이는 흠칫 놀랐다. 볼크가 옆에서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물론 그도 메시지를 읽었으리라.
“제, 제 장비 제작 스킬이랑 수리 스킬이 고급이 됐어요!”
볼크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프레이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압니까? 거의 1년은 투자해야 할 경지가 단번에 올랐다고요!”
‘1년...!?’
프레이는 오히려 중급에서 고급으로 올라가는 데 1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새삼 유저와 일반인의 격차에 대해 실감했다.
일반인들이 고급스킬이 되려면 몇 년을 노력해야 할까?
그런 경지를 고작 1년이라고 말하는 볼크의 말은 프레이가 듣기에 배가 부른 소리였다.
“대박, 대박이에요! 어서, 어서 장비를 제작해야...”
“볼크, 볼크!”
프레이는 흥분한 볼크를 흔들며 정신을 일깨웠다.
“네? 네?”
“저기...!”
프레이는 손을 들어 안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볼크는 헤븐스미스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대장간의 평범한 모루와 달리, 귀족들이나 쓸 법한 거대한 방의 바닥만 한 크기의 모루. 그리고 그 옆에서 밝은 빛을 내는 용광로가 보였다.
용광로의 크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치 성벽만한 크기의 거대한 항아리처럼 생겼다.
모루와 용광로는 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루 옆에는 숨을 헐떡이는 드워프가 있었다.
“타이룸 님!”
볼크가 놀라서 소리쳤다. 프레이는 입술을 꺠물었다.
‘역시...!’
프레이가 뒤를 따라 달렸다. 타이룸은 단상처럼 보이는 곳에 기대고 있었다.
“자네들은...”
그의 입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볼크가 놀라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보, 볼크라고 합니다.”
“오토마톤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에요.”
볼크가 손을 내저었다. 타이룸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은... 메탈코어는 어떻게 됐나...?”
“그게...”
볼크가 주저했다. 그러나 프레이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직 오토마톤들이 남아 있습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군...”
타이룸은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봤다고요?”
“자네들이 구조대이기를 바랐네만...”
타이룸이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볼크가 그를 부축했다.
“상처가...!”
볼크가 놀라서 소리쳤다. 타이룸의 옆구리에 난 기다란 자상. 그러나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상처 부분에 심한 화상이 보였다.
“나름의 응급처치였네. 안 그랬으면 이미 죽었을 거야. 출혈은 막았지만... 나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
타이룸이 쿨럭거리며 기침을 했다. 그는 볼크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 앞으로 갔다.
“후우... 오토마톤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네. 나는 자네들이 구조대가 보낸 선발대이기를 바랐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
“예... 아쉽게도 둘뿐입니다.”
프레이가 대답했다. 타이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상 위를 조작했다.
그러자 미궁의 단면도가 떠오른다.
“켈라인이 남긴 선물일세. 미궁 내에 방문자, 혹은 침입자들을 알 수 있지. 기계들은 붉은색으로, 사람들은 파란색으로 나온다네. 이걸로 자네들이 오는 걸 알 수 있었지.”
“그렇다면...”
“다행히 발광석을 따라올 정도로 똑똑했군. 하지만 결국 조금이나마 삶을 연명한 것에 지나지 않았어.”
미궁은 붉은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붉은 물결이 통로를 따라 최하단, 헤븐스미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켈라디움으로 만들어진 문이 아닙니까!?”
볼크가 소리쳤다. 그의 말 속에는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었다.
“평가소 입구도 켈라디움이 아니던가?”
그러나 타이룸은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입구를 이미 돌파했네. 비록 헤븐스미스의 문이 더 두텁기는 하나... 시간문제일 게야.”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죽게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조금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이룸을 구할 수 없다면, 적어도 목적이라도 달성해야 했다.
“타이룸 님.”
“음...”
그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켈라인의 오브를 꺼냈다.
“사실은 이걸 수리하기 위해 당신을 찾았습니다.”
구구절절이 사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프레이는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이건...”
타이룸은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물건이 등장하자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오브를 잡았다.
“켈라인의 오브라...”
“예.”
“미안하지만 힘든 일이네.”
“그건...!”
프레이가 소리를 높이자 타이룸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못 하겠다는 게 아니야. 죽음을 앞두고 다시 망치를 들 일이 있다니, 나로서는 그저 기쁠 따름이네.”
“그렇다면 뭐가...”
“내 몸이 문제야. 지금 몸으로는 세심하게 힘을 조절할 수 없네. 자칫하면 오브가 완전히 파괴될 거야.”
타이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단상을 잡은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도저히 뭔가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프레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모두 헛수고였단 말인가...?’
그가 좌절하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손을 빌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손이라니...?”
타이룸이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둘의 시선은 볼크에게 멈췄다.
“제, 제가...?”
“그래. 자네도 드워프가 아닌가. 멀리서 환호하는 소리가 다 들렸네.”
“하, 하지만...!”
“자네가 하지 않겠다면 그저 죽는 수밖에 없어.”
타이룸은 굳은 얼굴로 볼크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헤븐스미스네. 자네는 이곳에서 망치를 들고 싶지 않은 건가?”
천상의 대장간에서 직접 망치를 들고 모루를 두드리는 일. 드워프라면 누구나 꿈꿔 볼 일이었다.
오로지 그랜드 마스터에게만 허락되는 공간이다. 볼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가, 감히 제가...!”
“자네가 말하는 걸 들었네. 이그니스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라면... 자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축복, 스킬 상승 효과를 말하는 것이리라.
거기에 타이룸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를 건넸다.
“헤븐스미스와 적합한 장비가 있는 법이지.”
“이, 이건...!”
[‘이그니스의 손길’]
[불의 신 이그니스의 축복을 받은 대장장이용 망치입니다. 대대로 그랜드 마스터에게 전해지는 징표로 사용됩니다. 대장장이 혹은 기계공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이게 헤븐스미스로 들어오는 열쇠인가?’
프레이는 얼핏 스쳐지나간 메시지를 보고 생각했다. 볼크는 황송하다는 얼굴로 망치를 바라보았다.
“제, 제가...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를...?”
“어차피 여기에 남은 드워프는 자네뿐이네. 오토마톤의 손에 넘어가는 꼴은 죽어서도 볼 수 없어...”
타이룸이 다시 기침을 쿨럭거렸다. 그는 볼크를 붙잡고 모루로 고개를 돌렸다.
“서두르세. 내 마지막 작품을 미완으로 남기고 싶지 않네.”
“네, 넷!”
볼크는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를 부축하고 모루로 향한다.
타이룸은 모루에 몸을 기대고 오브를 올려 두었다.
“자네... 이름이 뭐였지?”
“보, 볼크입니다.”
“저는 프레이라고 합니다.”
타이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프레이를 향해 손짓했다.
“저기, 용광로를 조절하는 레버가 있네. 내가 멈추라고 할 때가지 용광로를 부어주게.”
“네!”
“볼크, 잘 듣게. 오브류를 수리하려면...”
프레이는 곧바로 레버를 돌렸다. 옆으로 기울어진 용광로에서 꾸물거리며 흘러나오는 고온의 용액. 동시에 후끈한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열기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볼크가 용광로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오브가 들려 있었다.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 볼크가 오브를 용액에 떨어뜨렸다. 오브의 겉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방해하지 말게.”
타이룸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의 말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볼크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흐물거리는 오브를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타이룸이 쥐어짜듯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볼크가 옆에 비치된 꼬챙이로 오브를 꿰뚫었다.
쿠웅-!
“뭣...!?”
프레이는 큰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문 쪽에서 들렸다.
“놈들이 왔군...”
타이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곧 볼크를 향해 소리쳤다.
“꾸물거릴 틈이 없네!”
“네!”
볼크가 빠르게 달궈진 오브를 모루로 가져왔다.
쿵- 쿠쿵-
문에서 들리는 소리는 점차 연달아 들리기 시작했다.
‘오토마톤이 연달아 몸을 부딪치는 건가!?’
아니면 쇠창살을 처리하듯 자폭하는 걸지도 몰랐다. 프레이는 검을 빼 들었다.
놈들이 쳐들어오면 최대한 시간을 벌어볼 셈이었다.
깡- 깡-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가 돌아보니 볼크가 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완급이 가장 중요하네!”
“알겠습니다!”
“망치로 전해지는 그 감각에 집중... 쿨럭!”
타이룸이 연신 기침을 했다. 볼크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곧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타이룸 님!”
덕분에 그를 부축하는 건 프레이의 몫이었다.
“좋아... 철의 주인이라면 모름지기 작품에 집중을 해야 하는 법이야...”
파리한 안색임에도 미소는 잃지 않는다. 타이룸은 볼크를 바라보며 웃었다.
“유저 중에도 드워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이가 있었군.”
“타이룸 님, 조금 쉬시는 게...”
프레이가 놀란 얼굴로 그를 말렸다. 그러나 타이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 수 있어. 곧 나는 이그니스 님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온 세상의 금속을 녹이며 다른 드워프의 작품을 빛내는 불꽃이 되겠지.”
타이룸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볼크의 작품이기도 하나,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걸세. 내 마지막 작품을 실패할 수는 없지.”
그는 전력을 다해 몸을 바로 세웠다. 그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두드려라! 자랑스러운 드워프여! 너의 망치질이 세상을 흔들 것이다!”
볼크는 타이룸의 노래를 들으며 점점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치 그 자신이 불꽃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그가 드워프로서 꿈꿔왔던 일이다. 다른 유저들이 생산직을 멸시하고 차별할 때, 그는 언제나 명작을 완성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드워프와 같이 지내며 그들의 열정과 신념을 배웠다. 다른 이들은 그저 데이터 덩어리라고 생각할 때, 볼크는 그들을 누구보다 뛰어난 스승이라 생각했다.
“너의 작품이 악을 물리칠 것이오, 어둠을 걷어내는 불꽃이 되리라! 드워프여, 망치를 든 철의 주인이여!”
타이룸은 볼크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그 노래에 맞춰 볼크의 망치가 움직인다.
회광반조, 꺼지기 전의 불꽃이 가장 밝게 타오른다고 했던가.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했다.
그러나.
쿠우웅-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프레이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어찌된 일인지 문이 열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오토마톤이 쏟아져 나왔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타이룸의 곁을 떠나 앞으로 나섰다.
‘너무 많다...!’
수가 너무 많았다. 오토마톤은 위협적으로 그들을 포위했다.
“무슨...!”
“볼크! 멈추지 말아라!”
타이룸이 소리쳤다. 그는 어느새 용광로를 조절하는 레버 옆에 섰다.
“타이룸 님!”
“볼크, 자네라면 할 수 있네!”
그는 웃으며 볼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레버를 내리며 노래를 끝마쳤다.
“이그니스시여! 당신께서 내려주신 축복은 너무나 달콤했소! 이제 내가 그대를 위한 불꽃이 되리!”
끼이이이익-
용광로가 한 번에 옆으로 기울어졌다.
========== 작품 후기 ==========
4화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