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24화 (124/141)

<-- 27. 헤븐스미스 -->

프레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볼크가 다가왔다.

“어디로 가든 어차피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럼 아무데나 가봅시다. 지금 당장 도망치는 게 우선이니까요.”

볼크가 성큼 발을 내디뎠다. 프레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방법이 없나...’

머리를 헝클으며 그의 뒤를 따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볼크의 뒤를 따라가려다가 멈춰 선 프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볼크는 주변을 경계하며 통로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볼크!”

“아잇! 놀랬잖소!”

볼크가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이쪽으로.”

“뭔가 알아내기라도 했어요?”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가 헤븐스미스로 갈 실마리라도 찾은 것일까?

“이번에는 저기로 가보세요.”

“흠, 알았어요.”

프레이가 이번에는 중앙을 가리켰다. 볼크는 잠깐 주저했지만 곧 천천히 중앙 통로로 향했다.

“멈추세요!”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러는 거요?”

볼크는 프레이가 다시 손짓하자 그의 옆으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궁금함이 가득했다.

“마지막입니다. 오른쪽으로 가주세요.”

“일단 설명이라도 먼저 해주는...”

철컥- 철컥-

통로를 울리는 소리에 볼크는 입을 다물었다. 둘은 서로 마주했다.

“어서요!”

“아, 알았어요!”

볼크가 서둘러 오른쪽 통로로 향했다. 프레이는 슬쩍 눈을 들었다.

‘생각대로야!’

공간이 조금 밝아졌다. 볼크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빛을 내는 발광석이 늘어났기에.

다른 쪽 방향과 달리 오른쪽 통로로 갈 때만 그랬다.

정작 들어가는 본인은 알 수 없다. 주위가 밝아졌는지 신경 쓰기보다 언제 쇠창살이 떨어지는지 주의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뒤쪽 통로를 따라 소리가 가까워진다.

더 지체할 틈이 없었기에 프레이는 바로 볼크의 뒤를 따랐다.

“여기가 맞습니까?”

“맞길 바라야죠!”

볼크와 프레이가 완전히 통로로 들어서자 쇠창살로 입구가 막힌다.

“놈들이...!”

오토마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 하나씩 숫자가 늘어난다.

볼크와 프레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 * *

오퀸.

엘레타스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엘프들이 거주하는 소대륙.

해안가를 제외하고 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오로지 엘프만을 위한 곳.

그들의 수도 엘프리칸, 높게 솟아오른 목조 건축물의 최상층.

대장로 페이완은 묵묵히 찻잔을 들었다.

“오랜만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나...”

차를 한잔 홀짝이고 그는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는 눈앞의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지금 하신 말씀은 허투루 넘길 수 없소. 베네피스 학장.”

페이완의 말에 베네피스는 고개를 돌렸다.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오퀸은 다른 대륙보다 마나가 넘치기에, 어째서 켈라인 선조께서 이곳에 자리를 잡으시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페이완은 엘프 특유의 긴 귀를 쫑긋거렸다. 그는 도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마 분명 배려였을 겁니다. 이곳에는 당신들, 엘프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선조께서는 엘레타스 대륙에 자리를 잡으신 것이겠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저 역시 그런 배려심을 가졌기에, 페이완 장로님을 찾은 것입니다.”

페이완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는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찻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확실히 켈라인은 대단한 마법사였으나...”

탁-

페이완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인간보다 수명이 긴 엘프, 페이완은 켈라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불쾌했다.

“당신처럼 오만하지는 않았소. 선조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마시오.”

“페이완 장로님. 지금 느끼는 불쾌함보다, 엘프 중에 살인청부업을 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불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네피스는 아무렇지 않게 페이완의 말을 넘겼다. 오히려 더욱 심경이 복잡해진 건 페이완 쪽이었다.

“장로님 모르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닙니까?”

“후... 좋소. 그러면 어디 당신의 말이 맞는지 봅시다. 그곳이 어디라고 하셨소?”

베네피스는 마지막으로 읽은 메멘토 모리 자객의 기억을 떠올렸다.

“따라 오십시오.”

“좋소.”

베네피스가 비행마법을 이용해 창문으로 나섰다. 페이완 장로는 도복을 붙잡고 하늘로 솟았다.

“볼수록 편리해 보이는 군요. 경공(輕功)이라는 것 말입니다.”

“허허, 이것은 엘프의 비전이니 알려줄 수 없소.”

페이완의 말에 베네피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선조께서는 저들의 비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둘은 빠르게 수도를 벗어나 산을 넘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동굴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이곳저곳에 발광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으음...”

페이완은 신음을 흘렸다. 베네피스의 말이 옳다는 걸 직감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내심 엘프가 아닌 다른 종족이 영토를 침범했기를 바랐다.

“들어가 보죠.”

“좋소...”

처음보다 목소리가 매우 작아졌다.

베네피스는 수인을 맺어 투명화 마법을 자신과 페이완에게 걸었다. 그들의 모습이 주위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말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의뢰는 어떻게 할 건가? 데일을 확실히 죽이기로 하지 않았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페이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말로... 내 제자들 중에 살인 청부를 하는 아이가 있단 말인가!’

엘프의 이름에 먹칠을 한 놈이 누구일까.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최근 우리의 정체를 들추려는...”

“네놈!”

페이완이 버럭 성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베네피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장로! 놈을 생포해야만...!”

「무, 무슨 일인가!?」

수정구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로브를 뒤집어쓴 자객은 황급히 수정구를 파괴했다.

그와 동시에 모습이 사라졌다.

페이완은 자객을 향해 마나를 담은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신형이 마치 화살처럼 쏘아졌다.

“큭!”

자객은 급하게 양팔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후드가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너는...!”

“큭...!”

페이완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 사이 그는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후... 어떻게 이곳을... 아, 대충 알겠습니다.”

베네피스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베네피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붙어 있다니 대충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놈! 몸이...! 다크엘프가 된 것이냐!”

그의 피부는 페이완의 하얀 피부와 달리 잿빛이었다. 페이완의 입술이 달싹였다.

“예, 보시는 대로. 모르템의 힘을 받아들였죠.”

그는 정체가 드러났으니 더 이상 숨길 게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누누이 사도(邪道)를 걷지 말라 했거늘...!”

“그런 고리타분한 말씀이 통할 거라 생각합니까? 어디 그 사도의 힘을 느껴보시지요!”

페이완의 말에 비웃음을 흘린 그가 달려들었다. 베네피스가 나서려 했지만 페이완이 손을 올려 그를 막았다.

“이건 나의 잘못이오! 당신은 가만히 있으시오!”

“허... 그럼 죽이지만 마십시오.”

베네피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남의 집안싸움에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잦은 대륙 간 순간이동으로 조금 피로한 상황이었다. 페이완이 처리해준다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제자는 무시당한 기분에 얼굴을 찡그렸다.

“감히 누가 누구를!”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페이완은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쾅-!

격돌로 인해 동굴이 흔들린다. 베네피스는 그들의 위로 떨어지는 잔해를 막아냈다.

‘그나저나... 누구와 연락을 하고 있던 거지?’

베네피스는 깨진 수정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억을 읽으면 될 일이니...’

페이완이 어서 제자를 제압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제압하려는 공격과 죽일 마음으로 하는 공격은 달랐다. 제자의 맹공세에 페이완은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크아악!”

이대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순간, 페이완은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한때 제자였던 이가 자신에게 살의를 품다니, 그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날아드는 주먹을 모두 쳐냈다.

“아니...!”

제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힘을 얻었음에도 느껴지는 격차.

페이완은 손바닥으로 제자의 가슴을 쳤다.

“잠깐...!”

베네피스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제자가 검은 피를 뱉으며 벽으로 날아갔다.

콰앙-

벽에 균열이 생겼다. 페이완은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이런... 죽이시면 어떡합니까?”

베네피스가 씁쓸하게 말을 내뱉었다. 모르테미안이 된 엘프라면 또 다른 배후가 있을 터였다.

페이완은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미안하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요. 이제 이 일도 끝내야겠군요.”

베네피스가 막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페이완이 돌아서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이 왜 직접 온 것이오?”

연합과 대학을 비우고 그가 직접 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을까?

그의 말에 베네피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못난 아비라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 * *

프레이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발광석의 빛을 쫓았다. 다행히 막다른 길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는...!”

통로를 나와 볼크가 탄성을 내질렀다. 프레이가 그의 뒤에 섰다.

‘대단하군...’

탄성이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붉은 문이 세워져 있었다. 문에는 화염으로 휩싸인 대장간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는 드워프 하나가 모루를 두들기고 있었다.

얼핏 보면 불지옥에 빠져있는 것 같았지만, 드워프의 표정은 고통스럽다기보다 환희에 차 있었다. 조각 속의 드워프는 온 신경을 자신의 모루에 쏟고 있었다.

“이건... 이 거대한 문이 모두 켈라디움입니다!”

볼크가 홀린 듯이 다가가 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프레이 역시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건...!’

그러나 프레이는 다른 의미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상의 대장간 ‘헤븐스미스’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헤븐스미스’에 입장하려면 ‘이그니스’의 신물(神物)이 필요합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신물... 분명 그것이 타이룸이 가지고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겠죠.”

볼크도 메시지를 읽었다. 프레이는 문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빈틈 하나 없네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면 제가 벌써 들어갔을 겁니다.”

볼크는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힘껏 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켈라디움이라 부실 수도 없어요. 이것 참...”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물, 신물... 만약 붉은 심장을 팔지 않았다면...!’

경매장에 내다 판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 분명 이그니스의 이름이 들어가니 신물일 터.

지금 당장 필요하지만 이미 그의 손을 떠나고 없는 물건이었다.

프레이는 한때 자신의 손에 넣었던 신물을 생각하며 후회했다.

“하...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가로막혔네요. 어쩌면 징표를 먼저 가지고 왔어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타이룸의 시체가 미궁 속에 있을 수도 있고요.”

볼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오토마톤에게 쫓기지 않았다면 미궁을 천천히 뒤져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쉿!”

프레이가 손을 올리자 볼크가 눈을 돌렸다. 둘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미약하게 땅으로 진동이 느껴진다. 프레이는 볼크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옵니다.”

“아직 멀지만... 곧 이곳을 발견하겠죠.”

볼크의 얼굴에 절망이 스쳐 지나갔다. 헤븐스미스를 바로 눈앞에 두고 죽는다니, 아쉬움이 그의 마음에 차올랐다.

“한 번이라도 구경해보고 싶었는데...”

그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쿠웅-

“놈들이 벌써 이렇게 가까이...!”

볼크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볼크!”

“좋아요. 그래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습니다!”

볼크는 입술을 깨물며 증기소총을 꺼냈다. 도끼로 잡는 것보다 원거리에서 프레이를 지원할 속셈이었다.

“들어가요!”

“들어가라니 어디를...”

볼크는 말하다가 말고 입을 크게 벌리며 뒤로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을 뒤덮는 화끈한 열기.

프레이는 황급히 뛰었다. 볼크도 소총을 들쳐 메고 그 뒤를 따랐다.

헤븐스미스의 문이 열렸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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