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헤븐스미스 -->
몰이치는 파도를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다. 프레이는 곧바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뛰어요!”
볼크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발광석에 빛이 들어온다. 어두운 통로가 하나씩 밝혀진다.
통로의 폭은 성인 남자 4명이 일렬로 서면 꽉 찰 정도.
빛은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 안내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빛이 인도하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프레이와 볼크는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통로에 울리는 쇳소리는 그들의 뒤에 마치 대군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멈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나긴 통로를 계속 달렸다.
통로는 점점 내리막길로 변했다.
“흐아... 흐아...”
볼크의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이 상태로는 방법이 없어!’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토마톤은 지치지 않는다. 그들의 스탯을 이용하는 프레이도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볼크는 다르다. 그는 다리가 짧은 드워프였고, 그만큼 멀리 가기 위해서 더 빨리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이 기나긴 통로의 끝이 보이거나, 볼크가 지쳐 쓰러지거나. 프레이의 머릿속에 그 이후 벌어질 끔찍한 일을 떠올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볼크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가 바이런과 같은 부류의 유저여서이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그가 헤븐스미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레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만약 그를 버리고 앞질러 가서, 그를 미끼로 삼아 시간을 벌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쩌면 헤븐스미스를 보고도 지나칠지 모를 일이었다.
“프, 프레이...!”
상념을 깨고 볼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앞을 향했다.
시선을 따라 돌아가니 멀리 갈림길이 보였다.
“어디로...!?”
“모, 모릅니다!”
프레이가 묻자 그가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대답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차피 모른다면...!’
어디를 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프레이는 좌우로 나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했다. 왼쪽 통로는 어두워 비교적 몸을 숨기기에 좋아 보였으니까.
그런데.
쿠웅-
그의 앞으로 쇠창살이 떨어져 내려왔다. 프레이는 급하게 발을 멈추었다.
“뭐, 뭐지!?”
볼크가 놀라 묻는다. 그러나 한가롭게 놀랄 틈은 없었다.
“어서!”
“커헉!”
프레이는 곧바로 그의 뒷덜미를 잡고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볼크는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오토마톤들이 흉흉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가, 갑시다!”
볼크가 다급하게 발을 내디뎠다. 프레이는 그사이 축적한 마나를 쏘았다.
카가각-
충격을 받은 오토마톤이 뒤로 밀리며 쓰러졌다. 뒤쪽의 오토마톤들이 칼날을 세우고 달려오던 터라 놈은 스스로 칼날 덫에 뛰어든 꼴이 되었다.
잠시 놈들이 주춤거리긴 했지만, 쓰러진 놈을 짓밟고 달려온다. 프레이는 볼크의 뒤를 쫓았다.
‘제길...!’
중간에 멈춘 탓이다. 계속 뛰어오던 놈들과 프레이의 속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가장 선두에 있던 오토마톤이 칼날을 뻗으려 할 때였다.
쿠웅- 카드득-
놈이 뻗은 칼날이 쇠창살에 찍혀 떨어졌다. 뒤이어 속도를 줄이지 못한 오토마톤들이 쇠창살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콰직- 콰지지직-
쇠창살 사이로 놈들의 파편이 튀어나온다. 프레이는 그 광경에 얼떨떨했다.
“뭐 해요! 어서 뛰어요!”
뒤에서 볼크가 소리쳤다. 그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파악했는지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골랐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막힌 오토마톤이 부러지고 파쇄되기 시작했다. 뒤에서 달려오는 오토마톤들이 압력을 가했으니까, 마치 그들 스스로가 압착기가 된 셈이다.
‘살았다...’
프레이는 뒤로 물러나면서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키이잉-
굳건해 보이는 쇠창살이 떨리며 소리를 냈다.
‘뭣...!’
프레이는 빠르게 돌아섰다. 쇠창살이 점점 휘어지면서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볼크가 놀란 얼굴로 손짓한다. 그도 이미 달리고 있었다.
쿵-!
쇠창살이 다시 떨어지면서 망가진 오토마톤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직 많은 오토마톤이 남아 있었다.
“생포, 생포하라.”
기계의 무덤이 생겼다. 목소리는 그 뒤쪽에서 들린다.
철컥- 철컥-
발소리가 들린다. 동족의 주검을 밟고 넘어온다.
오토마톤은 죽지 않는다.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렇기에 동족들의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을 수 있다.
프레이는 다시 통로를 내달렸다. 볼크를 따라잡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미친...!”
볼크가 슬쩍 돌아봤다가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달린다.
“그 쇠창살은 뭔지 아나요!?”
프레이가 달리며 물었다. 마치 시간을 두고 떨어진 것 같은 쇠창살.
볼크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모, 모릅니다! 그, 그래도 다행히 미궁으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미궁이라고요!?”
“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그냥 헤븐스미스 이전에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볼크가 소리치고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다시 묻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달콤한 휴식의 시간은 짧았고, 볼크의 이마에 다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으니까.
비슷한 통로가 이어진다. 그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광석이 켜지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들이 지나간 후에 쇠창살이 떨어진다. 그리고 뒤이어 오토마톤들이 들이닥친다.
‘저 놈들...!’
그러나 오토마톤의 대응이 달라졌다.
선두에 있던 놈 하나가 달려 나가면 뒤에 있는 놈들이 속도를 늦춘다. 충분한 거리가 생겼다 싶으면 쇠창살 앞에 있던 놈이 자신의 가슴을 열어 마정석을 드러낸다.
그리고.
콰앙-! 키이잉-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쇠창살을 밀어낸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한 놈이 다가가 같은 짓을 벌인다.
단 1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자폭부대가 연이어 폭발한다. 그 압력에 쇠창살은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떨어진다.
‘학습하는 건가?!’
단순히 몸을 부딪치던 놈들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냈다.
‘제길...!’
놈들의 숫자는 꽤 줄었다. 그러나 파도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낸다 한들 차이가 있을까?
쏟아져 오는 놈들을 보며 프레이와 볼크는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 *
다시 로그인한 바이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이게 도대체...’
주변에 흩어져있는 시체들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문제는 그런 시체들 사이로 사람의 모습을 한 기계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레이! 세이렌, 에밀리!’
이윽고 떠오른 건 일행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주변은 고요하다 못해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바이런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변을 훑었다. 처음 봤을 때는 놀라움에 알지 못했지만, 시체들의 방향은 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검을 굳게 쥐었다. 주변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오토마톤의 공격이 있던 게 틀림없다. 파손된 오토마톤의 칼날에는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일행들이 살아있기를 바라며, 그는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거리를 걸어 다니기를 잠시, 그는 우뚝 멈춰 섰다. 긴장한 그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살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주변을 경계하며 조용히 걸었기에 들을 수 있었다.
바이런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 모퉁이에 몸을 붙였다. 슬쩍 고개를 들이미니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드워프가 보였다.
‘NPC?’
유저로 보이지는 않았다. 중무장한 갑옷은 피 칠갑이 되어있었고, 머리에서 흐른 피가 병사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바이런은 다급하게 병사에게 다가갔다.
“누구... 누구...”
병사가 짧게 물었다. 바이런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이런... 내 물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데...!’
기껏해야 조금 더 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잘려나간 칼날이 복부에 박혀있다. 출혈이 너무 심한 듯 그의 얼굴은 파리했다. 오히려 얼굴 위로 흐르는 피가 더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사람... 사람입니까...?”
“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바이런이 물었다. 병사는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살려, 살려주시오...”
바이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살릴 방도는 없다. 그걸 솔직히 말할 필요가 있을까?
병사는 잠시 바이런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불꽃으로 돌아갈 때인가...”
바이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병사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디움님을 따라가시오. 도시의 출구로 향하시오... 이곳은 더 이상 희망이 없소...”
“출구...”
“아직 쫓아갈 수 있을...”
병사는 바이런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뱉자, 바이런은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출구? 모두 대피한 건가?’
바이런은 그를 눕혀두고 이정표를 찾았다. 그가 말하는 출구는 멀지 않으리라.
‘다들 그쪽으로 간 건가...’
섭섭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다고 탓할 수도 없었다.
‘일단 가는 수밖에 없겠어.’
일행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바이런은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 * *
“후우... 후우...”
볼크는 지친 몸을 이끌고 구석으로 움직였다.
“우욱...!”
그가 토악질을 시작했다. 프레이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땀을 닦아냈다.
‘그래도 다행이군...’
몇 번의 갈림길을 거치며 놈들을 떨쳐냈다. 갈림길을 지나갈 때마다 쇠창살이 내려왔고, 놈들의 속도를 늦추었다.
놈들이 쇠창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확인한 순간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행히 귓가에 박혀버린 것 같은 쇳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건 이퀄라이저 특성이 해제됐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프레이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괜찮습니까?”
프레이가 다가와 묻는다. 볼크는 입을 쓱 닦아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일단은 살아 있습니다.”
“후... 그런데...”
프레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돔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은은한 발광석이 내부를 밝혀준다.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이 지나온 통로에는 쇠창살이 내려와 있으니까.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다. 통로는 모두 3개.
“도대체 여기는 뭡니까?”
“말 그대로 미궁입니다. 헤븐스미스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켈라인이 만든 공간이라더군요.”
“켈라인이요?”
프레이는 마법사의 이름이 다시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저기 오지랖이 심한 양반이군...’
“예. 그랜드 마스터의 징표가 있다면 올바른 길을 알 수 있다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볼크가 한숨을 내쉰다. 프레이는 천천히 통로 쪽으로 다가갔다.
“그나저나 놈들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습니까?”
“미궁이 얼마나 넓은지 아십니까?”
볼크의 말에 프레이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메탈코어의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디로 갈지 서둘러 결정해야겠네요. 놈들의 숫자는 이곳을 전부 뒤지고도 남을 테니까요.”
프레이의 말에 볼크도 동의했다.
개미굴에 형태를 알기 위해 녹인 알루미늄을 붓기도 한다. 이 미궁이 개미굴이라면 오토마톤은 액화 알루미늄과 같았다.
수많은 오토마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미궁을 뒤지고 있으리라.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뿐.
‘어디로 가야 하지?’
갈림길 앞에서 프레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