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22화 (122/141)

<-- 27. 헤븐스미스 -->

프레이는 그대로 멈췄다. 한 걸음 더 걸어가면 헐렁한 이음새가 완전히 떨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식은땀이 흘렀다. 혹여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까 조심했다. 좁은 시야에도 불구하고 가득한 오토마톤들.

다행히 그가 움직이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오토마톤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었으니까.

철컥- 철컥-

쇳소리가 들린다. 옆으로 오토마톤이 다가왔다.

프레이는 마나핑거를 사용할 준비를 했다.

여차하면 자신이 주의를 끌고, 볼크가 빠져나갈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 프레이는 자신의 옆에 선 오토마톤이 볼크임을 깨달았다.

‘볼크...!’

입을 열고 싶어도 주변에 오토마톤이 있다. 작은 목소리라도 들킬 우려가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싶었다. 다행히 볼크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프레이가 멈추자마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닫고 그를 눈으로 훑었다. 헐렁해 보이는 이음새 옆에 바짝 붙어섰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슬쩍 돌아보니 볼크가 머리를 미세하게 끄덕인다.

볼크의 속도에 맞추어 프레이가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둘 다 주변 오토마톤의 상황을 살폈다.

‘들키지 않았어...!’

조금만 더 가면 될 일이다. 프레이와 볼크는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오토마톤의 대열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척-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모든 오토마톤이 광산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프레이와 볼크만 제외하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늦게 프레이와 볼크는 고개를 돌렸다.

오토마톤의 시선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다른 오토마톤과 달리 철제 갑옷을 입고, 투구 대신 하얀 가면을 썼다.

프레이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너희들은... 누구지?”

그것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착-

오토마톤의 머리가 돌아간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오토마톤 병사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메시지, 프레이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볼크! 뛰어요!”

미리 준비했던 마나핑거에서 마나가 폭발하듯 쏘아졌다. 가장 가까이 있던 오토마톤이 밀려나며 그 뒤의 놈들을 넘어뜨렸다.

“이런 제기랄!”

볼크가 달리면서 위장을 벗어 던진다.

프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잡았다. 그리고 부리나케 뛰었다.

“평가소로!”

볼크가 한 건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벽면에 망치와 모루, 그리고 드워프의 흉상이 조각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키이잉-

프레이는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벽을 타고 그를 향해 뛰어오는 오토마톤 하나가 보였다.

팔에는 서슬 퍼런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 안쪽의 톱니바퀴들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젠장...!’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놈을 쳐냈다. 바닥에 나뒹구는 놈을 뒤에서 따라오는 오토마톤들이 뛰어넘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해일과 같았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프레이를 덮치기 위해 뛰어오고 있었다.

“프레이!”

볼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평가소 입구에서 끙끙대며 문을 열고 있었다.

프레이는 전력으로 달렸다.

“서둘러요!”

“그러고 있습니다!”

악에 바친 듯 소리치며 그가 문을 밀었다.

쿠우웅-

불의 신 이그니스에게 불꽃을 하사받는 드워프의 모습이 조각된 문. 그 가운데를 잘라내듯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서!”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틈을 벌리고, 볼크가 안에서 소리쳤다. 그도 프레이의 뒤를 쫓는 오토마톤들을 보고 있었다.

프레이는 달려드는 놈들을 마나핑거로 튕겨냈다. 응축할 시간이 많지 않아 큰 충격은 주지 못 해도 덤벼드는 것들을 저지하기에 충분했다.

오토마톤을 박살 내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에, 프레이는 오로지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프레이가 처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이대로는 잡히고 만다. 그가 속도를 늦추려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볼크라도 살릴 셈이었다.

그런데.

타앙-!

굉음과 함께 프레이를 덮치던 오토마톤이 밀려났다.

“뭐 합니까! 뛰어요!”

볼크가 소리쳤다. 프레이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소총이 들려 있었다.

‘증기소총?’

프레이는 놀랐지만 그의 다그침에 다시 땅을 박찼다. 그가 통과하고 나서도 볼크는 총을 한 발 더 쏘았다.

총알을 맞은 오토마톤이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 프레이는 다급하게 문을 밀어 닫았다.

쿠우웅-

볼크는 곧바로 레버를 당겨 문을 잠갔다.

텅- 터텅- 텅-

곧바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놈들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괜찮습니다. 평가소는 켈라디움으로 만들었으니 뚫고 오지는 못할 겁니다.”

볼크가 겨우 살았다는 듯 숨을 내쉬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건...”

“아, 원래 팔려고 만들어 뒀던 건데... 써버리고 말았네요.”

그가 증기소총을 가리키자 볼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거... 귀족들이나 쓰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 귀족들이 어디서 증기총을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볼크가 웃으며 되묻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아이오티스에서 수입해온 무기라는 건가...’

쉽게 볼 수 없는 무기였기에 프레이는 증기소총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위력을 직접 눈으로 보니 왜 비싼지 알 수 있었다.

‘그 기계들을 단숨에 고철 덩어리로 만들다니...’

그나마 연달아 발사할 수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두드림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제야 프레이는 검을 내렸다.

“후... 여기도 한껏 휩쓸고 지나간 모양입니다.”

볼크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프레이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래 평가소를 지키던 것으로 보이는 오토마톤 병사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역시 안에서 습격을 당했네요.”

볼크가 심사단으로 위장한 오토마톤의 머리를 들며 말했다. 굳어버린 가짜 피 밑으로 드러난 금속 부품이 보인다.

만약 진짜 사람의 머리였다면 꽤나 잔혹한 장면이겠지만, 기계라고 생각하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 잔당들이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건... 확실히 그렇죠. 총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볼크가 쏜 총소리는 분명 안쪽까지 들렸으리라. 프레이의 말에 그도 정신을 차린 듯 재장전을 마치고 증기소총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살아있을까요?”

“글쎄요... 그래도 헤븐스미스에 도착했다면 아직 살아있을 겁니다.”

볼크는 확실하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그랜드 마스터의 안위가 아니라 그가 가진 물건이었기에, 프레이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럼 다시 움직일까요.”

“예, 어차피 돌아갈 길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볼크는 혹여나 문이 다시 열릴까 레버를 다시 제대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프레이의 뒤를 따라 평가소 안으로 들어갔다.

* * *

“거기는 어떻습니까?”

“없어요. 전부 심사단들입니다.”

프레이의 물음에 볼크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남아있는 오토마톤 병사는 없었다.

이미 시체로 위장한 오토마톤을 보았던 지라 천천히 진입했다. 가장 시체가 많은 곳은 바로 발명품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전당이었다.

“허... NPC인 건 알지만 참 안타깝네요.”

볼크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넓은 전당이었지만 둘 외에는 살아있는 자가 없었기에 고요했다. 침묵 속에서 중얼거린 그의 말은 명확하게 들렸다.

프레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볼크 역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성질이 괴팍하고, 외곬수가 많기는 해도, 다들 착했는데...”

프레이는 볼크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이런 형 같은 사람이군...’

유저들은 모두 자기 마음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줄 알았다. 그런 대다수의 유저들 때문에, 그는 가족을 잃었지 않은가?

하지만 바이런을 만나고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모든 유저가 나쁜 건 아니다.

증오심이 무뎌졌는가? 그건 아니었다.

증오할 대상은 명백하다. 리반이라는 이름의 유저, 그리고 그가 이끄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이름의 길드.

그 외의 유저들 중에는 크젤처럼 주의해야 할 족속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볼크나 바이런 같은 유저까지 배척할 이유는 없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유감입니다.”

“네, 그래도 다행히 타이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사히 도망친 모양이에요.”

볼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그가 살아있다면 켈라인의 오브를 고칠 수 있으리라. 이제 중요한 건 그가 어디에 숨었는가였다.

“그 헤븐스미스라는 곳,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볼크는 타이룸이 헤븐스미스에 숨었을 것이라 했다. 지금 타이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는 헤븐스미스에 있을 터.

“그게...”

볼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프레이가 다시 다그치려 할 때였다.

쿠웅-!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방금...!?”

프레이가 놀라서 물었다. 자신만 들은 걸까 싶었는데 볼크의 표정을 보니 그도 들은 것 같다.

“입구 쪽에서...! 설마, 켈라디움으로 만든 문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미 벌어졌으니 문제였다. 그는 볼크의 눈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헤븐스미스가 어디에요!?”

“그,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평가소 깊숙이 있다고만 들었어요! 그리고...”

볼크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말을 이으려 할 때였다.

철컥- 철컥-

기계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더 머물 여유는 없었다.

‘깊숙한 곳이라고?’

어차피 입구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은 설명은 나중에! 일단 움직여요!”

“아, 알았어요!”

맞서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길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가 맞선다고 볼크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일단은 최대한 도망쳐야 했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프레이와 볼크는 쌓인 시체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움직였다.

키기긱-

“우악!”

막 시체 하나를 뛰어넘었던 프레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볼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을 짚고 있었다.

그의 발목에 피부가 벗겨진 오토마톤의 손이 보였다.

“이런 미친...!”

볼크가 놀라 도끼로 오토마톤의 손을 내리쳤다. 그러나 상반신만 남은 놈은 절대로 볼크를 놓지 않을 기세였다.

프레이는 다급히 그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순간 그는 멈칫하며 소리를 질렀다.

“볼크!”

통로 끝자락에 오토마톤 군단의 선두가 도착했다. 볼크도 프레이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확인했다.

캉- 캉-!

“제발, 좀!”

볼크가 연거푸 도끼를 내리쳤다.

“생포, 생포하라.”

키이잉-

선두가 달려온다. 마치 밀물처럼 오토마톤들이 들이닥친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검을 들어 내리쳤다.

“고, 고마워요!”

“인사는 나중에!”

손목을 끊고 그를 잡아 일으켰다. 프레이는 통로 끝으로 마나핑거를 쏘았다.

충격을 받은 오토마톤이 무리에 먹혀 사라졌다. 몰아치는 파도를 손가락으로 미는 격이었다.

오토마톤으로 구성된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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