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그랜드 마스터를 찾아라 -->
아이콰이.
얼음과 눈, 추위와 냉기만이 존재하는 소대륙.
쾅- 휘이이잉-
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눈보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 있던 남자는 놀라서 입구를 바라보았다.
“누, 누구십니까?”
침입자가 그를 노려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침입자의 망토가 펄럭인다.
“무, 무슨...”
침입자의 복장은 아이콰이에 사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이런 혹한에서 살아남으려면 털모자와 두꺼운 가죽옷이 필수였다.
침입자는 겉으로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부드러워 보이는 소재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며 어깨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냈다.
“다 알고 왔으니, 피곤하게 하지 말자고.”
탁-
그가 손을 흔들자 열린 문이 저절로 닫혔다. 바람은 들어오지 않지만 냉기는 남아있다. 집주인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방문자를 어떻게 대할지 몰랐다.
“뭐, 뭘 말입니까?”
“피곤하군. 자네들은 항상 그런 식인가?”
침입자는 고개를 돌렸다. 벽난로가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있다. 냉기를 지우려면 더 센 화력이 필요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벽난로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벽난로의 열기가 한 번에 냉기를 몰아냈다.
“다, 당신은...!”
그제야 집주인은 침입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베네피스, 마나홀드 대학의 학장.
그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집주인은 곧바로 태도가 돌변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둔 얼음송곳을 던졌다.
“쯧, 하여간 못 배운 놈들은...”
베네피스는 슬쩍 손가락을 튕겼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얼음송곳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날아온 속도 그대로 돌아가 집주인의 손바닥을 꿰뚫었다.
“크악!”
송곳은 벽을 파고들었다. 집주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왜...!”
“내가 구태여 설명까지 해야 하나?”
베네피스가 양손을 들어 수인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집주인의 몸이 굳었다.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마비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베네피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자네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네.”
베네피스는 집주인의 기억을 읽었다.
그는 얼음 호수 근처에서 낚시로 연명하는 낚시꾼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실제로는 메멘토 모리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베네피스는 보이드의 기억을 토대로 메멘토 모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메멘토 모리는 그 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명령은 사람과 사람을 거쳐서 전달되었기에 단번에 본거지를 찾기는 힘들었다.
보이드의 기억에서 뻗어 나온 줄기를 타고 온 결과 아이콰이까지 오게 된 것.
“음...”
베네피스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위치는 찾았으니 이곳에 용무는 없었다.
“아이콰이는 조용해서 좋은데, 너무 추운 게 문제야.”
마비된 집주인을 놔두고 베네피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슬쩍 손가락을 올리자 벽난로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불길이 점점 커지며 벽난로 밖까지 불꽃이 넘실댔다. 결국 가구에 불이 옮겨붙기 시작하고, 벽난로 안 모닥불은 점차 화재로 변했다.
“그럼, 따뜻하게 몸 좀 녹이라고.”
베네피스는 집주인을 향해 미소를 짓고 그의 기억에서 알아낸 지점으로 향했다. 물론 집주인의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보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 *
“어떻게 하죠?”
볼크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프레이 역시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광산 앞은 마치 오토마톤으로 이루어진 늪 같았다. 문제는 그 늪에 빠지면 가라앉는 게 아니라 칼날에 갈기갈기 찢긴다는 게 문제였다.
“싸우는 건...”
볼크가 슬쩍 말을 꺼냈다. 그러나 프레이의 얼굴을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많은 숫자와 싸워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무리 이퀄라이저 특성이 만능은 아니니까.
“하아... 어떻게 유인할 방법도 없는데 말이죠.”
볼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돌아가야 하나?’
오토마톤들 너머로 보이는 건물, 분명 저것이 평가소이리라.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어떻게든 통과한다면 안에 숨을 수 있지는 않을까?
“평가소로 들어가는 길은 저곳뿐입니까?”
“네? 아... 그렇죠. 출입구는 저 문 하나입니다.”
볼크는 예상대로 그 건물을 가리켰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 평가소에 들어간다 한들 문제가 남는다. 저 안에도 오토마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자칫 잘못하면 안팎으로 적에게 포위된다.
‘음...’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볼크는 이미 반쯤 포기한 상태였고, 프레이는 주변을 살폈다.
관찰 결과 오토마톤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도시로 흩어졌다. 아무래도 오면서 상대한 놈들은 저 결집장소에서 벗어난 놈들인 것 같았다.
‘즉... 저 광산 앞에 있는 오토마톤들은 일정한 숫자를 유지한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마톤이 생산되는 곳이니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곳일 테니까. 저렇게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저 오토마톤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잠깐... 혹시...’
프레이는 오토마톤을 바라보며 말리온 박사를 떠올렸다. 괴짜기는 해도 실력은 확실했으니까.
“볼크, 오토마톤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네?”
그의 물음에 볼크는 눈을 굴렸다. 그러다가 곧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계공 스킬을 말씀하는 거라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대장장이보다 더 복잡하니까요. 오토마톤을 만드는 건 조각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그 조각 개수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죠.”
프레이는 조각 퍼즐이 뭔지 몰랐다. 그러나 그의 표정으로 보아 어렵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일단 만들 줄은 아는 겁니까?”
“알긴 알지만... 그건 도대체 왜 묻는 겁니까?”
볼크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오토마톤을 만들어서 뭘 한단 말인가? 오토마톤과 함께 싸우기라도 하려는 걸까?
“어차피 마정석도 없어요. 오토마톤은 못...”
“아뇨.”
그러나 프레이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뒤집었다.
“오토마톤의 외모만 있으면 됩니다.”
“뭐라고요?”
황당해하는 볼크에게 프레이는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의 모습을 감출 수만 있으면 됩니다. 놈들의 눈을 속이고 저곳을 지나갈 겁니다.”
말리온 박사에게 부탁했던 작전을 뒤집었다. 그때는 사람 같은 오토마톤을 만들어서 적의 이목을 속였다면, 지금은 오토마톤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무슨...”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아니... 하지만 재료가...”
볼크는 눈을 껌뻑였다. 그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재료라면 충분합니다. 도구는 있으니 가능하겠죠?”
그에게는 휴대용 도구가 있었다. 볼크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는 몸을 돌려 대열을 벗어나 흩어지는 오토마톤들을 바라보았다.
* * *
카득- 카드득-
볼크는 작동을 멈춘 오토마톤의 내부를 헤집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지?’
홀린 듯이 승낙하기는 했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런 방법이 통할까?
그러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프레이가 처리한 오토마톤들은 모두 깔끔하게 가슴을 공격, 마정석을 부순 터라 외관이 깨끗했다.
지금 그가 만드는, 그리고 프레이가 고안한 오토마톤 위장 아이템은 방어구가 아니었기에 자동으로 사이즈가 조절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토마톤의 사이즈를 둘의 신체 크기에 맞추어야 했기에, 볼크는 망치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한참을 망치질에 집중하는 그의 뒤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프레이가 오토마톤 잔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볼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작업하려면 언제 끝날지 몰랐다.
그런데.
“혹시 남는 도구가 있으세요?”
“예?”
“저도 돕겠습니다.”
볼크는 또 한 번 놀랐다.
“대장장이 기술을 배웠습니까?”
자신이 드워프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NPC에게 직업기술을 배우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명장이 만든 검을 들고, 전투에도 능통하면서 전문기술까지 배운 유저. 볼크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스펙이었다.
“네, 기회가 있어서...”
“아, 알겠습니다. 잠시...”
대장장이의 도구도 내구도가 있기에, 볼크는 여분을 가지고 다녔다.
다른 이에게 빌려주는 건 아까운 일이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아니었다. 혼자서 작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프레이는 볼크가 건네준 도구를 받았다.
“최대한 소리는 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알고 있습니다.”
볼크의 말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철컥- 철컥-
드워프 보다 조금 큰 크기, 그리고 남자보다 조금 큰 크기의 오토마톤이 거리를 걷는다.
“이렇게 걷는 거 맞습니까...?”
볼크가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프레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임이 어색하다. 그도, 프레이도 오토마톤 외골격을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오, 옵니다...!”
볼크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외골격을 입기 위해 장비를 둘 다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맨손으로 적을 처리해야 한다.
‘마나핑거가 있으니까...’
그나마 믿을 건 말리온 박사가 달아준 의수. 만약 일이 틀어지면 마나핑거로 상대하면서 무기를 꺼내면 될 일이다.
“오, 옵...”
“쉿...!”
볼크는 프레이가 대답이 없자 다시 말하려 했다. 프레이는 짧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들의 옆으로 오토마톤이 지나간다. 둘은 계속 걸었다. 오토마톤이 멀어져간다.
“돼, 됐어요!”
볼크는 놀랐다. 설마 했는데, 효과가 있다니.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이제 실전입니다.”
그의 말에 볼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광산 입구 앞에 서 있는 오토마톤들, 저 무리를 지나야 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도전해야 한다.
프레이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볼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먼저 발을 내디뎠다.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좁은 시야 사이로 오토마톤들의 모습이 보인다.
철컥- 철컥-
발소리가 들린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오토마톤은 걷다가 뒤를 돌아보지 않으니까.
볼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잘 따라온다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스쳐 지나가는 오토마톤들이 마치 자신을 주시하는 기분이었다. 만약 들킨다면 그 자리에서 칼날에 난도질을 당하리라.
적들 한복판을 걷는 기분은 실로 미묘했다. 적을 속였다는 쾌감과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왔어...!’
이 압박감에서 해방된다. 그런 기대 때문이었을까.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더 크게 내디뎠다.
끼기긱-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의 발목 쪽에 바깥바람이 느껴졌다.
‘이런...’
이음새를 잘 마무리하지 못한 것일까. 발목을 감싸는 금속판이 느슨해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8 (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