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그랜드 마스터를 찾아라 -->
볼크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준비한 후에 해가 지고 출발하죠.”
“지금 가는 게 아닙니까?”
“지금 말입니까?”
볼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입이 달싹였다.
“당신들은 어디에 설 거요?!”
가디움이 소리쳤다. 속삭이던 프레이와 볼크는 눈치를 보았다.
치안유지와 구원요청, 둘 다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디움의 눈에는 프레이와 볼크는 엉거주춤 서서 방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 할 때였다.
“오, 오토마톤이다!”
누군가의 외침. 가디움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방어벽 너머로 오토마톤 하나가 걸어온다. 그들을 습격했던 오토마톤과 달리 모습을 따라 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 하나의 오토마톤이라는 사실에 가디움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맥이 풀렸다.
“뭐지?”
“백기, 백기를 들고 있습니다!”
백기. 항복의 표시가 아닌가?
가디움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혼란은 가까이 다가온 오토마톤이 해결해주었다.
“마키나의 말씀을 전달한다.”
오토마톤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계음. 가디움은 당장에라도 병사들에게 명령해 놈을 부숴야 할지 고민했다.
“너희, 유기체들 그리고 거짓 신들이여.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투항하라.”
“투항?”
방어벽에 붙어있던 드워프 병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토마톤은 말을 이었다.
“기계의 신, 마키나께서는 너희 유기체와 거짓 신을 포용하기로 하셨다.”
‘포용?’
프레이는 오토마톤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포용이라니, 조금 전까지 칼날을 들이대던 행동과는 전혀 상반되는 단어였다.
“마키나께서는 완벽한 기계. 너희를 모두 우리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하나 된 이상, 하나 된 사고에 동참하라. 마키나께서 평화를 주실지니.”
“무슨 소리야?”
“우리를 오토마톤으로 만든다고?”
사람들이 술렁인다. 가디움은 그 분위기를 눈치채고 목소리를 높였다.
“썩 꺼지거라! 이 미친 고철 덩어리야! 어찌 평화라는 말을 입에 담느냐!”
그의 외침에 병사들이 무기를 들었다. 여차하면 바로 뛰어나가 놈을 박살내리라.
“너의 생각이 다른 이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건 오로지 완벽한 기계, 마키나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평가소로 오라.”
오토마톤의 반박에 가디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 뜻도 모르고 지껄이는 고철을 박살내도록!”
“예!”
드워프 병사 두 명이 방어벽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토마톤 전령은 반항하지 않았다.
“마키나와 함께하지 않는 이의 최후를 보라!”
오토마톤이 목소리를 높였다.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내려쳤다.
서슬 퍼런 도끼와 두꺼운 망치가 몸에 부딪쳤다.
그리고.
콰앙-!
오토마톤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드워프 병사들이 폭발에 휩싸였다.
“크아아악!”
“크허억!”
충격파와 더불어 드워프 병사가 날아 방어벽에 부딪쳤다. 가디움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오토마톤이 있던 자리는 작은 분화구처럼 변했다. 쓰러진 드워프의 팔이 사라지고 상처에서는 피가 분출되고 있었다.
“부, 부상자를 안으로!”
주변의 병사들이 서둘러 그들을 인도했다. 프레이는 그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폭발력이라면...’
방어벽은 금방 무너지리라.
그 사실을 다른 이들도 알아서일까. 몇몇 드워프 병사들이 불안한 눈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평가소 방향이군요...”
잠자코 있던 볼크가 입을 열었다. 그도 다른 드워프의 시선을 살피고 있었다.
* * *
베네피스의 서재.
에밀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향해 세이렌이 물었다.
“베네피스님은 어디 가신 거야?!”
스크롤로 만들어진 차원문을 통해 돌아온 둘은 당황했다. 프레이가 그녀들만 돌려보냈기에 걱정이 들었다.
“모르겠어요. 아버님 일정에 자리를 비우실 리가 없는데...”
“하지만 없잖아?”
세이렌은 답답함에 서재를 나가려 했다. 하지만 에밀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
“왜?!”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에밀리도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둘 중에 침착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었다.
“멋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요!”
“그건 무슨 소리야?”
세이렌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밀리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여기는 아버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직접 데려올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나가는 것도 그렇다는 거예요.”
에밀리는 세이렌을 뒤로 밀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휘이잉-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찬바람에 세이렌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도, 도대체 이게 뭐야?”
에밀리는 슬쩍 밖을 쳐다보고는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아이콰이로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아이콰이라면...?”
“네. 북부에 얼어붙은 소대륙말이에요.”
세이렌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문을 열었는데 다른 대륙이 나온단 말인가?에밀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이 서재 자체는 마나홀드 대학에 있지만, 이곳으로 통하는 문은 전부 차원문이에요. 생김새만 일반 문과 다를 바 없을 뿐이지...”
“잠깐, 그럼...”
세이렌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맞아요. 아버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여기에 있어야만 해요.”
“그러면 프레이는 어떡하고? 바이런은?”
세이렌의 물음에 그녀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라고 이렇게 있고 싶겠어요? 하지만 아버님의 마법을 깰 수는 없어요.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는...”
에밀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이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속으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프레이가 무사해야 할 텐데...’
* * *
가디움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부상병을 바라보던 그들은 다시 유저에게로 돌아왔다.
“후...”
깊게 한숨을 내쉰 그는 수염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메탈코어를 벗어나기로 했소.”
유저들을 비롯해 드워프들도 술렁였다. 가디움은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없소. 나는 치안 책임자로서 메탈코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걸고 싶지는 않소. 저런 오토마톤 자폭병들이 덤벼든다면 방어벽은 무용지물이겠지.”
가디움은 도끼를 들어 평가소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저 악랄한 기계에게 현혹되지 마시오! 방금 보지 않았소? 설령 그놈들의 말대로 오토마톤이 된다 한들, 그놈처럼 소모될 것이오!”
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공격으로 인한 폭발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 오토마톤 전령은 자폭했다.
“떠나겠다는 이들을 붙잡지는 않겠소. 허나 잘 생각하시오. 우리는 근처 도시로 가서 지원군을 모아올 것이오.”
가디움은 씁쓸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
“그것이, 치안 책임자로서 메탈코어를 구하는 길이라 생각하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외부의 도움을 청한다. 나쁘지 않은 처세였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와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메탈코어를 벗어나면 다음 그랜드 마스터를 언제 기다린단 말인가?
“볼크, 준비됐습니까?”
그의 속삭임에 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움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오토마톤에게 투항하러 가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으니까. 괜히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볼크는 자신이 작업했던 방어벽 쪽으로 다가갔다. 대충 가려둔 틈으로 기어 나왔다.
“지금부터는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잘 부탁합니다.”
볼크의 말에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두 남자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걸었다. 어디서 오토마톤이 나올지 몰랐기에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조금씩 나아가다가 볼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다니... 아.”
프레이는 그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볼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런 상황 말입니다.”
건물 모퉁이에 붙은 그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상처를 입은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른 시체들 사이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건진 것처럼 보였다.
다리를 절뚝이며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핀다. 그렇게 프레이와 볼크가 있는 거리 쪽으로 힘겹게 다가오고 있었다.
“음...”
프레이는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저 여자가 단순한 부상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변장한 오토마톤일지도 모른다.
특성으로 확인하려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혹시 주변에 다른 놈들이 있지는 않을까?
‘골치가 아프군...’
볼크가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이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손도끼가 쥐어져
있다.
“평가소는...?”
“저쪽입니다. 저기 화단 밑으로 숨어서 지나가면 저 여자에게 들키지는 않을 겁니다.”
볼크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전투의 흔적으로 파손된 화단이 있었다. 하지만 바짝 몸을 숙인다면 몸을 숨길 수 있으리라.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곧 결론을 내렸다.
“일단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이런 경우에는 적일 확률이 높은데?”
볼크는 자신의 게임 경험을 토대로 말했다. 하지만 프레이에게 그런 경험은 없었다.
“만약 오토마톤이더라도... 하나라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으... 알겠습니다. 혹시 위험하면 바로 도와드리죠.”
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는 검을 굳게 쥐고 모퉁이를 돌아섰다.
“아...!”
여자가 프레이를 알아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괜찮습니까?”
“도, 도와주세요!”
낮은 목소리로 물었건만 높은 목소리로 답한다. 프레이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입에 올렸다. 그제야 여자도 실수를 깨달은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람인 것 같아.’
공격해오지 않는다. 그러나 긴장을 늦출 필요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그녀의 속도는 부상 탓인지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려 하지만 평범한 걸음걸이 수준이다. 프레이는 주변을 훑으며 오토마톤이 있는지 확인했다.
여자는 이제 프레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였다. 그 순간까지 프레이는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돌변해서 공격할지도 몰랐으니까.
“다행, 다행이에요.”
그녀가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언제든 그녀를 벨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퀄라이저 특성도 발현되지 않았기에 프레이는 그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변장한 오토마톤 병사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프레이는 검을 휘두르려 했다.
“조심해요!”
뒤에서 볼크가 소리치며 뛰어나온다.
그런데.
적은 프레이의 손을 붙잡으려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키이잉-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뒤쪽에서 시체가 일어섰다.
프레이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시체의 팔에서 튀어나온 검날이 그녀의 등을 꿰뚫었다.
“컥...!”
그녀의 입에서 핏줄기가 뿜어지고, 프레이의 옷까지 닿는다.
그녀의 팔이 허우적거리다가 앞으로 쓰러진다. 프레이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첫 번째 목표를 제거한 오토마톤이 곧바로 그를 향해 쇄도해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7 (2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