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12화 (112/141)

<-- 25. 아이오티스 도착 -->

에밀리의 돌발적인 합류.

프레이 일행과 베네피스 모두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에밀리?”

프레이가 눈을 돌렸다.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오브에 금이 간 건 제 탓이니까요. 저도 책임을 져야죠.”

“에밀리.”

베네피스가 그녀를 불렀다.

엄중한 목소리에 몸이 흠칫 떨린다. 그러나 에밀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예전이라면 찍 소리도 못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녀가 베네피스에게 대항하지 않았던 건, 어디까지나 그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크의 습격으로 베긴네르가 사라지고, 알튼 할아버지 역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프레이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남아 있었다.

“그건...”

베네피스는 말이 궁해졌다.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도록 항상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리 쉽게 내보낼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내 다음 자리를 이어가려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아버지 밑에서 계속 비서 노릇을 하는 게, 제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세요?

에밀리는 지지 않았다.

그녀의 말 속에 그간의 설움이 담겨있었기에 베네피스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던 딸이 태도를 뒤집었으니.

“비서라니?”

“비서가 아니면 뭐예요? 아버님 일정 관리랑 잡무는 제게 넘기고. 솔직히 대학 일보다 연합 일에 더 시간을 쏟고 계시잖아요.”

그녀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냈다.

그녀가 흠모하던 프레이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육체적 매력이 월등한 여자, 그리고 그 정체가 황족이라니?

게다가 그 여자는 프레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여자로서의 촉이 섰다. 이대로 놔두면 영영 그를 잃게 되리라.

접어두었던 연심이 다시 불타올랐다.

“언제나 아버님 말씀대로 했잖아요! 제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도 아버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프레이와 함께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에밀리 잠깐 진정...”

중간에 끼인 프레이가 그녀를 말리려 했다.

“프레이님은 상관하지 마세요. 이건 아버님과 저의 일이에요.”

시도는 좋았다. 성과가 없을 뿐.

프레이를 비롯해 다른 일행들은 입을 다물고 눈치를 봐야했다.

베네피스는 입을 굳게 다물고 딸을 바라보았다.

침묵은 때로는 그 어떠한 말보다 상대를 억누른다.

‘하... 불편하다...’

바이런은 슬쩍 눈치를 보았다.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왔는데, 친구와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베네피스가 짧은 침묵을 깼다.

그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켈라인의 오브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지.”

“그래요, 그러니까...”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조의 유산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녀가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러나 베네피스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너를 밖에 보내도 될지 걱정이 된다.”

“저도 이제 웬만한 마법은 다 쓸 수 있어요.”

베네피스는 에밀리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자질은 자신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해도 무방했다.

짧은 시간 안에 언령마법을 익힌 걸 보면 그 잠재성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아직 갈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녀가 보석의 원석이라면 이제 잔여물을 털어내고 원석의 빛이 보이는 시점이다.

더 정진하고 수련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터.

그런데 이 와중에 외지인을 따라나서겠다니?

‘이게 도움이 될까...’

대학 내에서 가르치는 건 한정되기 마련이다.

베네피스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

“알겠다.”

“네?”

“네가 한 일에 책임을 지고 오거라.”

“아버님...”

에밀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원한 일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허락해 줄 거라 생각지는 않았으니까.

“자네.”

베네피스는 프레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손짓하자 책장 사이에 끼어 있던 두루마리 하나가 프레이의 무릎에 떨어졌다.

“이걸 받아두게.”

“이건...?”

“이곳으로 돌아오는 일회용 차원문을 열 수 있는 스크롤이네.”

에밀리는 프레이의 곁에 붙었다.

“프레이님! 다행이에요!”

“아... 그래.”

프레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두 부녀는 프레이 일행의 의견은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의견을 피력하기도 애매했다.

‘에밀리의 마법은 꽤 유용하긴 했으니까.’

프레이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행들의 의견은 어떨지 돌아보았다.

세이렌은 에밀리를 향해 눈을 흘겼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바이런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스슥- 슥-

그가 손을 움직이자 펜대가 양피지 위에서 춤을 추었다.

“오브의 수리는 그랜드 마스터 타이룸에게 맡기면 될 걸세. 내가 소개서를 써줄 테니, 이걸 가져가면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게야.”

소개서는 금방 완성되었다.

양피지는 스스로 말려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살짝 떠오른 소개서는 차원문 스크롤 옆에 안착했다.

“감사합니다.”

“무사히 오브를 수리해도 사용하려면 500골드가 있어야 하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에밀리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베네피스가 꽤 많이 양보를 해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프레이와 같이 있을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따로 준비할 게 있나?”

“음...”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보았다. 여행물품은 대부분 그가 관리했으니까.

시선의 모이자 바이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이것저것...”

“좋아. 다시 매지카로 보내주겠네. 에밀리, 같이 다녀오거라.”

“네? 하지만...”

그녀는 프레이를 보았다. 같이 가지 않는 걸까?

“아, 저도 같이...”

“아니, 자네랑 황족은 남아있게.”

프레이는 물론 세이렌도 당황했다. 그러나 베네피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수인을 빠르게 맺자 에밀리와 바이런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다른 사람들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음... 그런 건 아니지만, 겁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베네피스는 세이렌에게 손짓했다.

순식간에 그녀는 프레이의 옆자리에 와있었다.

“당신을 죽이려고 의뢰주가 1천 골드를 걸었네.”

“1천 골드...!?”

세이렌의 눈이 커졌다. 황족인 그녀로서도 1천 골드는 쉽게 부를 수 없는 금액이기에.

“그래, 누군지 몰라도 꽤 거물인 것 같아. 문제는 그런 자네 곁에 내 딸이 있다는 거지. 그리고 자네.”

베네피스는 프레이를 바라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뭘 숨기고 있지?”

“숨기다니요...?”

“뭔가 달라. 자네가 유저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그 유저들 사이에서도 뭔가 다른 게 느껴져.”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눈치챈 건가...?’

마른 침을 삼켰다. 옆에서 세이렌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 말하고 싶지 않다면... 직접 알아내는 수도 있지.”

베네피스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그가 보이드의 머리를 헤집는 장면을 떠올렸다.

‘내게도 그런 짓을 하겠다는 건가?’

식은땀이 흐른다.

만약 기억을 읽힌다면 그가 원래 유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터.

그러나 베네피스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남의 과거를 엿보는 건 내 취미가 아닐세. 그러니 직접 말해주면 좋겠군.”

“그건...”

“에밀리의 안전을 위해서야. 내가 모르는 부분이 없었으면 좋겠군. 비록 잠깐 곁을 떠나는 거지만... 꽤 오랫동안 못 보고 지냈으니, 이해해주게.”

부탁이 아니라 통보다.

거절하면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볼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여기서 도망칠 게 아니라면 선택권은 없다.

“직접 보시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음... 알겠네.”

베네피스는 일어나서 프레이의 옆으로 다가왔다.

“프레이...”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보고 나서 결정하지.”

프레이가 다시 대답하기도 전에 베네피스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았다.

* * *

“...언데드랑 그렇게 얽혀보기는 처음이었다니까? 유령선에서 겨우 살아났나 싶었더니, 피스칸이 모르테미안이라니.”

“정말요?”

“그래, 네가 직접 못 봐서 그렇지, 그렇게 신기해할 일이 아니야. 그 악취는 또 어떤지...”

바이런은 주섬주섬 식재료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에밀리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궁금해했기에,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히 말해주었다.

물론 약간의 각색, 주로 자신의 활약을 부풀려서 이야기를 한 부분이 있었지만.

“아, 이것도 살까요?”

“오, 가격이 괜찮은데? 이상하게 여긴 식재료가 싸네?”

자금이라면 여유가 있었다.

에밀리가 자신의 몫으로 내민 골드를 감안하면 넉넉히 사둬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대부분 신입생들은 인근의 농장으로 파견을 나가거든요.”

“파견?”

“네. 마나를 주입해서 작물생산을 촉진시키죠. 덕분에 먹을 것 걱정은 없어요.”

“아... 어쩐지 여기서 다른 상인들이 식재료를 떼다 팔 더니 그런 이유였군.”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얼추 다 산 것 같다!”

바이런은 에밀리와 함께 문을 나섰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하... 저도 기억을 읽는 마법을 배워뒀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면 프레이님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실감 나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에밀리의 말에 바이런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을걸.”

“네? 왜요?”

“잘못하면 트라우마 때문에...”

바이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정신을 공격하는 마법은 유저에게 상대적으로 효과가 작았다.

가령, 공포스러운 환영을 보여주거나 안 좋은 기억을 들춰내는 마법 같은 경우가 그렇다.

NPC는 그대로 적용이 되지만 유저는 그저 관련된 감정만 증폭될 뿐이다.

자칫 잘못하면 실제 현실에서 트라우마를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유저는 그런 게 있어.”

바이런은 손을 내저었다.

설명해봐야 에밀리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 * *

베네피스는 프레이에게 손을 뗐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프레이를 내려다보았다.

“음...”

짧은 신음.

프레이는 긴장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읽어낸 거지...?’

다행히 보이드처럼 괴로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참으로 이상하군.”

베네피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이렌은 그와 프레이를 번갈아 보았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네. 유저의 기억을 읽는 게 처음은 아니니까.”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저들의 기억은 보통 읽을 수가 없어. 마치 텅 빈, 심연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지.”

베네피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거 아나? 마법사는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이야. 하지만 유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이렌이 물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법사에게 무지는 태만이야. 자네는 조금 다르기에 기대를 했네. 유저의 기억, 그러니까 자네의 기억을 읽어내면 그들의 정체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지.”

“그래서... 뭐가 달랐다는 겁니까?”

“벽이 있어.”

베네피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벽...?”

“그래. 자네의 심층 아래에 뭔가 있는데.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없었네.”

“그렇군요...”

프레이는 내심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의 비밀이 들키지 않았으니까.

“정말... 자네 정체가 더 궁금해지는군.”

베네피스가 미소를 지었다. 탐구할 것이 있다는 건 마법사에게 기쁨이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탐구의 때가 아니었다. 그에게 남아달라고 해도 남지 않을 테니까.

자칫 억지로 그를 잡으려 했다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유저들은 그런 존재들이니...’

베네피스는 에밀리를 떠올렸다.

프레이와 에밀리를 이어준다면, 그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으리라.

“자, 그럼 준비는 끝난 것 같군.”

베네피스가 돌아서서 수인을 맺었다.

“으헉.”

프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바이런이 멀뚱한 눈으로 서 있었다.

반면, 에일리는 익숙한 듯 프레이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준비 끝났어요.”

“아, 고마워.”

프레이가 미소로 화답했다.

“아니, 짐은 내가 다 들었는데...”

“물론 형이 고생한 것도 알죠.”

바이런이 구시렁대자 프레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프레이 일행이 차원문 앞에 섰다.

“드워프의 수도, 메탈코어로 향하는 차원문일세.”

우웅-

차원문이 일렁이며 주변의 공간도 같이 일렁였다.

프레이가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베네피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볼일만 보고 바로 오게. 그녀를 노리는 무리가 순순히 놔주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 딸이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의 속삭임에 프레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네피스는 잠시 바라보다가 그를 놔주었다.

프레이는 차원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6 (2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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