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켈라인의 오브 -->
프레이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밀리는 프레이가 대답이 없자 슬쩍 눈치를 보았다.
“제가... 괜한 짓을 했나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그는 시선을 떨구어 손에 든 오브를 확인했다.
[‘켈라인의 오브’]
[켈라인의 유물 중 하나입니다. 생물체의 혈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의 피가 필요합니다.]
[해당 아이템이 파손되었습니다.]
[유니크 아이템을 수리하려면 명장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파손...?’
프레이는 눈이 크게 뜨였다.
“프레이, 뭔데?”
“설마 그거...?”
세이렌과 바이런이 옆에 붙었다.
그녀는 에밀리를 견제하듯 쳐다보고, 바이런은 오브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맞는데...”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켈라인의 오브가 맞지만 문제가 있다.
“뭐야... 이거 왜 파손된 거야?!”
“뭐라고요?”
세이렌이 눈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오브에 실처럼 금이 가 있다.
“아... 그게...”
에밀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 * *
에밀리는 프레이와 헤어진 후 곧장 대학으로 향했다.
켈라인의 유품은 하나하나가 값어치 있는 물건들이라 일반인은 물론 학생에게도 공개되지 않는다.
‘분명 여기 어디였는데...’
아버지, 베네피스가 자리를 비운 걸 확인한 에밀리는 곧장 그의 서재를 뒤졌다.
켈라인의 유품을 일반적인 금고에 보관할 수는 없었다. 도난의 위험성은 물론, 보안 유지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베네피스는 아예 공간을 창조했다.
아주 작은, 사물함만한 크기의 아공간에 모든 유품을 보관했던 것.
에밀리가 찾는 건 그 아공간을 여는 매개체였다.
‘어쩔 수 없나...’
그녀는 재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본질은 숨기려도 숨길 수 없으니, 그대의 진짜 모습을 보겠노라.”
언령마법을 마치자, 그녀의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베네피스가 세이렌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프레이의 팔이 오토마톤 부품이라는 걸 안 것도 이 마법, ‘마나탐지’ 때문이다.
그녀와 아버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베네피스는 이걸 별도의 주문이나 수인 없이 항상 사용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사실.
‘아, 저건가?’
기억과 달리 서재에 놓인 책 중 하나가 아니었다.
마나가 느껴지는 물건은 바로 책장 앞에 놓인 켈라인의 흉상.
그녀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맴도는 흉상으로 다가갔다.
흉상에 손을 올렸다.
우웅-
흉상에서 공명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흉상 위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됐다!’
에밀리는 기뻐하며 열린 아공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얼굴을 굳혔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지...?’
아공간은 열렸지만 곧바로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열린 아공간은 마법진이 새겨진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문의 중앙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격을 증명하라.]
문자 밑에는 보랏빛 오브가 박혀 있었다.
에밀리는 초조해졌다.
언제 아버지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수수께끼를 풀 틈이 없었다.
‘에이...!’
이 오브가 마법진을 제어하는 것이라면 떼어내면 그만.
그녀는 아버지의 책상 위에 있는 만년필을 들었다.
틈 사이로 만년필을 쑤셔서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면 쉽게 떼어낼 수 있으리라.
촤악-
그러나 너무 힘을 준 탓일까. 펜촉이 그녀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연한 살을 찢었다.
“읏...!”
그녀가 짧은 신음을 뱉었다.
상처 사이로 흐르는 피가 오브 위에 떨어졌다.
우우웅-
‘어?’
그와 동시에 오브가 빛을 발했다.
오브에서 퍼져 나온 빛은 마법진으로 퍼져나간다.
쿠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에밀리는 대충 상처를 지혈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프레이가 찾는 물건이 없다.
안에는 낡은 서적과 보석, 지팡이와 로브가 들어 있었다.
‘잠깐... 설마...?’
에밀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오브를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된 거예요.”
에밀리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도대체 그걸 왜...!”
세이렌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몰랐어요... 그냥 보안 때문에 설치해둔 건 줄 알았죠... 그래도 제 피로 열린 거 보면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라고요!”
에밀리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오브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이 눈빛은 뭐란 말인가?
물론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원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렇지...! 지금 상태면 가다가 아예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요!”
세이렌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말에 프레이는 갑자기 긴장됐다.
자기 손 위에서 깨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테니까.
“조심해서 가져가면 되죠! 유저들은 인벤토리가 있잖아요!”
“그러다가 증명하기 직전에 깨지면요?”
“그러면 당신이 운이 없는 거죠!”
세이렌과 에밀리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바이런은 조심스럽게 프레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인마, 이게 다 네가 문제야.”
“네?”
“에휴... 아무튼, 그거 얼른 인벤토리에 넣어. 진짜 깨지면 어떡하냐.”
“아, 그러려고 했어요.”
일단 프레이는 오브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세이렌과 에밀리가 진짜로 싸우기 전에 말려야 했다.
“다들 일단 진정해요.”
“진정하게 생겼어?”
“프레이님! 왜 이런 여자랑 같이 다니는 거예요?”
“이런 여자? 이게 진짜...!”
“여기 엘레타스에요! 당신이 황태자인 거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두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뭐야? 왜 싸워?”
“아, 거. 소란스럽게...”
“황태자는 또 뭐야?”
프레이는 다급하게 두 여자의 입을 막았다.
“일단 다들 진정해요. 자리부터 옮기죠.”
프레이 일행은 수도 서쪽 외곽까지 나왔다.
오는 길에도 두 여자는 티격태격했지만, 그래도 이목을 끄는 건 피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오면서 조금 진정했는지, 세이렌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에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실수한 거죠...?”
에밀리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한 거니까...”
“저, 저 여우 같은 년...”
세이렌은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바이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오브가 깨질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야. 혹시라도 정말 깨져버리면 어떻게 보상을 하겠어?”
“그래요. 일단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바이런과 프레이가 대화의 중심을 잡았다.
“그래서, 이거 고칠 수는 있는 거야?”
세이렌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명장의 기술이 필요하다... 근데 명장이 누구죠?”
프레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브를 고칠 수 있는 명장이라니, 너무 두루뭉술한 표현이었다.
“아마... 명장이라면 그랜드 마스터를 말하는 걸 거예요.”
에밀리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면... 드워프?”
“네. 애초에 켈라인의 오브를 만든 것도 드워프니까요.”
바이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밀리가 담담히 대답했다.
“드워프가 왜 오브를? 이거 켈라인이라는 마법사가 만든 거잖아?”
세이렌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애초에 켈라인의 오브는 인간을 위해 만든 게 아니에요. 켈라인 님이 드워프와 엘프를 화합시키는 도구였죠.”
“화합?”
“네. 켈라인 님이 살아 있을 때에는 드워프와 엘프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거든요. 엘레타스에 대학을 설립하면서 켈라인 님이 드워프의 신세를 많이 지셨죠.”
에밀리는 내용을 떠올리는 듯 눈을 굴렸다.
“그리고 켈라인 님은 엘프들에게 마법재료 때문에 신세를 졌었어요. 오퀸에서만 자라는
재료들이 많았거든요.”
“여기저기 신세를 많이 졌구만.”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당시에는 엘프가 혈통을 무척 중시했었죠. 순수한 엘프가 인정을 받는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엘프가 혈통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을 부탁한 거예요.”
“허... 순혈주의라는 건가.”
바이런이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품종을 따지는 개처럼, 엘프도 순수한 혈통을 우수하다고 봤다.
“그런 셈이죠. 처음에는 켈라인 님은 마법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걸 아티팩트로 만들 능력은 없었어요. 그래서 드워프를 찾아갔죠.”
“또 신세를 지는 건가?”
“그래도 이번에는 보상을 준비했죠.”
“보상?”
“네. 켈라디움말이에요.”
프레이는 에밀리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그의 시선이 검으로 향했다.
“켈라디움은 자연적인 광물이 아니에요. 자연의 광물이 가지는 한계를 마법으로 극복한 거죠. 그래서 이름도 켈라인 님의 이름을 딴 거니까요.”
“아... 그래서 말리온 박사가 엘레타스에 있었구나...”
바이런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말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켈라디움을 선물로 주고 오브를 만들었어요. 완성된 오브는 엘프에게 선물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혈통을 중시하는 풍조가 사라지고, 오브는 다시 인간의 손으로 돌아왔죠. 그러니까 오브를 만든 종족이 수리 할 줄도 알겠죠.”
“그걸 다 학교에서 배운 거야?”
바이런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기도 하고... 가족사기도 하니까요.”
“가족...?”
“네. 켈라인 님이 우리 조상님이시니까요.”
프레이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에밀리는 이상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아이오티스에 가야겠군.”
“그렇죠.”
충격에서 벗어난 바이런이 말하자 프레이가 맞장구를 쳤다.
어차피 아이오티스에 가려 했었다.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뿐.
“하지만 돈이 없잖아?”
세이렌이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니 돈을 벌어야...”
“얼마나 부족하신 데요?”
에밀리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13골드. 순간이동 비용이 1인당 10골드더라고.”
바이런이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그러면... 제 것까지 포함해서 23골드만 있으면 되는 거죠?”
“뭐? 네 거라니...”
세이렌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23골드도 그렇게 적은 돈이 아니다. 그녀는 에밀리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간과한 점은, 여기가 엘레타스이며 마법사의 대륙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요.”
“너...?”
금화가 가득한 주머니다. 바이런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틈틈이 마법 팔아서 모아둔 돈이에요.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은 별로 받고 싶지 않아서...”
마법이 곧 능력인 곳. 그런 면에서 에밀리의 마법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세이렌은 왠지 패배를 맛본 기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 거죠?”
에밀리의 말에 프레이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바이런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
세이렌은 어떨까 싶어 돌아본 프레이는 크게 눈을 떴다.
그녀의 뒤에 공간이 일렁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프레이는 세이렌을 붙잡았다.
“뭐...!”
스릉-
날카로운 단검에 잘린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린다.
“운이 좋았군.”
일렁이는 공간에서 나타난 자객, 보이드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메멘토 모리.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프레이는 곧바로 검을 빼 들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보이드’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사, 사람을 불러올게!”
바이런은 다급하게 뛰었다.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형, 잠깐...!”
보이드가 빠르게 수인을 맺는 걸 보고 프레이가 소리쳤다.
분명 바이런을 노리는 것이리라.
보이드가 다시 근거리 순간이동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뒤틀린 것은 본연의 것으로.”
에밀리가 말을 마치자 흐릿해졌던 보이드의 몸이 선명해졌다.
그녀가 행한 것은 변형된 마나를 원래대로 돌리는, 일종의 마법차단용 주문이었다.
그의 시선이 에밀리에게 닿았다.
“마법사여... 네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방해를 받은 보이드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분노가 담겨있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76%)]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